<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7화>
Quest 2. 재회한 천마님
진유성이 누카 종족을 학살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생존 미션이 예고될 때까지만 해도 게이트 안에는 각성자가 없는 듯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니, 각성자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미친놈인 줄 알았다.
관리자에게 시비를 걸고, 혼잣말을 하던, 이상한 복장의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으니.
하지만 소년이 보여 준 강함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쯤 되니 소년의 행동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고, 다들 기쁨에 젖었다.
“살았어! 우린 살았다고!”
“존나 세잖아!”
“각성자 만세다! 씨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존의 기쁨을 누리는 와중에, 소수의 몇몇이 딴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안전이 보장되니 욕심이 불쑥 치솟아 오른 것이었다.
“아니, 이러면 우리는 게이트에 들어오고도 각성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도 각성해서 부자돼야지! 거 뭐야, 용산역 장 씨처럼!”
“그러니까 말이야!”
게이트에 들어온 것만으로 각성자가 되는 건 아니다.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려야만 각성자로 인정받는다.
사실 노숙자들 입장에서는 게이트에 들어온 것이 인생을 역전할 마지막 찬스였다.
그리고 각성자 소년은 너무나 손쉽게 몬스터들을 도륙한다.
멀어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봉을 몇 번 휘두르면 몬스터들이 나가떨어지는 게 아닌가?
‘시벌, 알고 보니 조또 약한 거 아니야?’
진유성의 손에 의해 몬스터가 계속 줄어들자, 욕심이 생긴 이들은 초조해졌다.
“같이 한 손 거들 사람 없어? 꼬맹이 혼자서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주자고!”
욕심을 명분으로 포장한 말에 몇몇 노숙자들이 호응했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도 끼어들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어이가 없어진 김인창이 그들을 말렸지만, 한번 불붙은 욕심은 쉬이 꺼지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말리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이들을 통해 몬스터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게 증명되면 뒤늦게라도 사냥에 뛰어들면 되니까.
그렇게 13명의 사람들이 외곽의 누카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던 진유성이 그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에게 이 정도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귀에 대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진유성은 무고한 희생을 싫어하지만, 이 경우는 그들의 자유의지다.
‘꼭 이겨서 각성하라고.’
무운을 빌어 준 진유성이 다른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 뒤.
“이럴 수가…….”
“…….”
13명의 사람이 13구의 시신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13이란 숫자는, 1일차 생존 미션의 전체 사망자 숫자와도 같았다.
* * *
“흠.”
전투를 끝낸 진유성은 주변에 널린 괴물들의 시체가 사라지는 걸 구경했다.
시체는 신기하게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건 나도 잘 모르겠군.’
기운을 느껴서 이해해 보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지만, 몬스터들이 사라지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진유성의 인벤토리 메시지창 알람이 끝없이 울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누카 전사의 어금니 X 107
[용맹한 누카 전사의 어금니입니다. 높은 강도를 자랑하며, 외부 기운에 저항하는 성질이 있어 무기 제작에 이용됩니다.]
-누카 광전사의 각성제 X 4
[희귀한 누카 광전사의 각성제입니다. 광전사들의 전투력 상승을 만드는 비약입니다.]
-데롱의 가죽 X 270
[누가 종족이 기르는 가축 데롱의 가죽입니다.]
-누카 종족의…….
-누카 종족의…….
-수인족의…….
-전사의…….
-심연용의…….
이후에도 수많은 알림이 떠올랐지만 진유성은 듣기 싫다는 듯이 전부 꺼 버렸다.
“아, 이것 좀 안 나오게 할 수 없어?”
[인벤토리 알림 기능이 중지됩니다.]
[플레이어가 원할 시, 알림 기능을 재설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진유성이 평원을 지나쳐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헛짓거리를 하다가 죽은 몇 명을 제외하면, 다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진유성이 그들 사이로 파고들자, 다들 분분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13명이 죽은 뒤, 사람들은 각성자 소년의 힘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13명은 고작 몬스터 4마리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런 몬스터 수백 마리를 도살한 각성자라면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의 두려움과 경외는 수십 년 동안 받아 오던 것이라서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야, 인창아.”
김인창을 발견한 진유성이 말을 걸자, 김인창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봤냐? 내가 초고수라고 했지?”
“너…… 몇 살이라고?”
“백 살 이후로 안 세어 봐서 모른다니까.”
“고려의 왕자고?”
“어어.”
김인창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건 놀랍지만, 역시 진유성의 정신 상태는 썩 좋지 못한 듯했다.
가끔 뉴스에 사고를 쳐 범죄자가 된 각성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늘 게이트 안에서 무슨 정신 질환을 얻었다고 했다.
진유성도 그런 게 아닐까?
“아, 배고프다. 아까 퍼런 놈이 어떻게 밥 먹는다고 했는데?”
“그러게. 필요한 생존 물품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보따리에 있으려나?”
“보따리? 인벤토리?”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진유성과 40대 초중반의 김인창이 서로 반말을 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두 사람이 어떤 관계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때 웬 남자가 진유성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 각성자님…….”
“왜?”
“저희는 이제 뭘 하면 됩니까?”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아, 도시락은 내가 잡아 줄 거니까 걱정 마.”
“도시락이요?”
“몬스터들.”
남자는 잠깐 당황하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서울역에서 일하는 지하철도 공무원입니다. 그래서 SG의 게이트 대처 수칙을 대충 알고 있는데…… 민간인이 포함될 시 각성자가 이끌어서 생존율을 높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진유성이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 각성자 아닌데?”
“네? SG 소속이 아니십니까?”
“아니, 각성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몬스터들을 잡으셨잖습니까? 각성자가 아니라면 그런 힘이…….”
“이건 각성이 아니라 무공이야. 너 무공이 뭔지 알아?”
공무원이 아무 대꾸도 못 할 때, 김인창이 조용히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머리가 좀 아픈 친굽니다.”
“네?”
“그, 왜 각성 후유증 같은 그런 거 아닐까요?”
귓속말을 들은 진유성이 인상을 팍 쓰며 김인창에게 말했다.
“너 이 자식, 아직도 내 말 안 믿냐? 보여 줬잖아!”
무공을 보여 주기 전에 안 믿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무공을 보여 주지 않았나?
김인창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믿어.”
“난 제정신이야. 그냥 남들이 믿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아, 참. 명나라에서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게이트를 만들어서.”
“그렇구나. 신기하네.”
“하, 참.”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김인창은 전혀 안 믿고 있었다.
이해는 한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당장 진유성만 해도 중원에 있을 때 누군가 ‘나 다른 세계에서 왔소.’ 하면 안 믿었을 테니까.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유성이 난데없이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야.”
“네?”
“네가 애들 좀 이끌어.”
“네? 제가 왜…….”
“맞고 할래, 그냥 할래?”
“하지만 제가 어떻게……?”
“너 각성자잖아.”
진유성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대번 남자에게 쏠렸다.
남자, 강새룡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뭘 어떻게 알아? 느껴지니까.”
사실 진유성은 처음부터 남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2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기운을 품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좀 약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적 규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보다는 훨씬 사람들을 잘 통솔할 것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강새룡입니다.”
“이제부터 네가 대장이다. 알겠지? 전투는 내가 할 테니까, 네가 사람들 좀 어떻게 해.”
강새룡이 말했다.
“하지만 전 CSG 소속의 중국인입니다.”
“그게 뭔데?”
“UN 조약에 따라 타국 각성자는 타국의 게이트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 조약이란 게 네 몸의 안위보다 소중해?”
“네?”
“안 하면 뒈진다는 거야.”
“…….”
강새룡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사실 강새룡은 진유성의 힘을 보고 크게 놀란 상태였다.
세계는 넓고 강한 각성자들은 많다. 하지만 단신으로 누카 종족 오백 마리를 학살할 수 있는 각성자가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절대 백 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즉, 눈앞의 소년이 각성자 랭킹 200위 언저리의 하이 랭커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강새룡은 이토록 어린 소년이 하이 랭커라는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누구지?’
강새룡이 고민하고 있을 때, 진유성이 물었다.
“할 거야, 말 거야?”
“각성자가 저밖에 없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일단 사람은 살고 봐야죠.”
강새룡은 존댓말을 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아무리 자신보다 강한 각성자라고 해도, 각성자들은 칼밥을 먹고 산다.
죽을 땐 죽더라도 한 칼 먹이고 죽겠다는 오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소년 앞에서는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왠지 모르게 당연한 것 같다.
‘혹시 모습을 바꾼 탑 랭커가 아닐까?’
그사이 진유성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전투는 내가 할 거니까 다치는 사람만 없게 해.”
“그게, 그렇게 되진 않을 겁니다.”
“뭐? 왜?”
“정말 모르십니까? E 등급 이상의 게이트는 이틀부터 어그로가 안 먹습니다.”
“뭔 소리야?”
강새룡이 설명을 시작했다.
관리자는 자신을 라고 밝혔는데, 관리자의 코드네임에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D’는 게이트 등급으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강함을 뜻한다.
‘1’은 3가지 미션(수비, 공격, 레이드)의 순서를 뜻하고, 여기서는 수비 미션을 뜻한다.
‘C’는 전체 인원수에 따른 난이도를 뜻하는데, 전체 인원이 적으면 높은 난이도(S~B)가 뜨고, 전체 인원이 많으면 낮은 난이도(E~F)가 떴다.
C 정도면 참여 인원수 대비 난이도는 중간이었다.
“이해하셨습니까?”
“대충.”
강새룡은 눈앞의 소년이 정말 이 내용을 모르는 기색인지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E등급 게이트부터 몬스터들이 어그로를 안 먹습니다. 여긴 D등급이고요.”
F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최우선한다.
즉, 몸이 날랜 사람이 어그로를 유지하면서 사냥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다들 그렇게 각성했고.
하지만 E등급 게이트 몬스터부터는 약해 보이는 이들을 우선 공격한다.
첫날만 예외일 뿐이었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어그로가 안 풀리고 그쪽……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왕후.”
“왕후 씨에게 어그로가 쏠렸던 겁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사람들에게 달려들 겁니다.”
강새룡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누구도 전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어떻게 해?”
“제가 사람들을 이끌고 최대한 버틸 테니, 왕후 씨가 몬스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말했다.
“야, 레벨이란 건 아무 몬스터나 서너 마리 정도 잡으면 오르는 거냐?”
“네? 한데 그건 1, 2렙 때나 가능한 이야기겠죠. 아시다시피 레벨이 높아지면 요구되는 경험치가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그래? 그렇군.”
강새룡은 진유성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어필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때 사람들이 다가와 강새룡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각성자님. D등급이라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겁니까?”
“……꽤 어렵습니다.”
강새룡은 각성자 두 명이서는 클리어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을 삼켰다.
설령 저 소년이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게이트를 클리어한다고 해도, 아마 민간인들은 대부분 죽을 것이다.
‘내 목숨도 장담하기 힘들겠군.’
강새룡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사람들을 모았다.
일단 최소한의 훈련이라도 진행해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