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4화 (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4화>

* * *

진유성은 본래 고려의 왕자였다.

막내였기 때문에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왕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왕세자인 큰 형님을 존경했기에 불만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유성의 나이가 8살이 되던 해,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노복들의 도움으로 홀몸으로 도망친 진유성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고려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기는 힘들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명나라로 국경을 넘었다.

하지만 고아가 살아가기엔 당시 명나라의 내부 상황은 너무나 험했다.

압도적인 마교의 공세 속에서 정파와 사파가 힘을 합쳐 대항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더 웃긴 건, 서로 간에 힘을 합쳐 대항해도 모자랄 판에 정파와 사파가 서로를 경계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피폐해진 것은 민초들의 삶과 그들의 민심이었다.

진유성은 결국 화전민들에게 붙잡혀서 노예상에 팔려 갔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운이라고 해야 할지…….

그가 팔려 간 곳이 바로 정도맹의 비밀단체였다.

진유성은 마교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멸마대>의 살육병기로 키워졌고,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멸마대주가 되었다.

몇 년 뒤,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어이없게도 마교주가 주화입마로 갑작스레 사망하고, 내분으로 마교가 망해 버렸다는 것.

또 하나는 마교를 사냥하기 위해 키운 멸마대가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것.

결국 정파는 멸마대의 토사구팽을 계획했다.

멸마대주였던 진유성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들이 죽을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말해 줘도 세뇌를 당한 멸마대원들은 상부의 명령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상태였다.

결국 진유성은 100명의 멸마대 중에서 자신을 믿어 준 13인을 이끌고 도망을 선택했다.

병기로 키워진 그들에게는 꿈도, 목표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곤 오직 생존뿐.

그래서 그들이 <생존대>였다.

생존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세 명뿐.

진유성, 신주청, 상림.

이들은 살기 위해 도망치다가 마교의 잔당과 조우했고, 그들 세력을 흡수해 정파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게 바로 향후 명나라와 무림을 지배하는 진유성의 <천마신교>였다.

* * *

“……재밌다.”

“엄청 재밌는데?”

“흥미진진해…….”

낭인들의 반응에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생존과 투쟁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데 감히 재밌다니!

무엄한 놈들이다.

“말을 가려라. 재밌다고 평가하기엔 너무 처절한 날들이었다.”

“어어.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

“아니, 그러지 말고 소설 제목을 알려 줘 봐. 나도 무협지 좀 읽었는데 이런 스토리는 못 봤는데?”

“그래서? 천마신교는 정파에 복수를 했어?”

“왕후, 그러니까 주인공은 얼마나 셌던 거야? 도망칠 당시에도 정파의 장문인들을 이길 정도였나? 그러니까 정파 꼰대들이 두려워했겠지?”

노숙자들 중에는 돈이 생기면 샤워 시설이 있는 24시간 만화방에서 죽어라 버티는 이들이 많았다.

노숙자들이 느끼기에 진유성의 이야기는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정말로 그곳에 있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리얼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기분이 상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흥밋거리가 아니다!

투쟁록이자 생존록이란 말이다!

삐진 진유성이 입을 다물자 안달이 난 노숙자가 말했다.

“너 소주가 맛있다고 했지? 근데 더 맛있는 게 뭔지 알아?”

“더 맛있는 거? 돈이 없어서 못 먹는다며.”

“이 술은 무공으로 따지면 음과 양의 조화 같은 거야. 하나씩 놓고 보면 싸구려지만 합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술이지.”

“……뭔데?”

“소맥이라고, 이게 진짜 귀한 건데 내가 특별히 대접할게. 그럼 다음 이야기 말해 줄 거지?”

진유성이 솔깃한 표정을 짓자 노숙자가 자신의 가방에서 웬 거무튀튀한 병을 꺼냈다.

그 순간이었다.

지하철 운행이 종료되고 손님들이 완전히 끊긴 새벽.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코를 골며 잠에 들고, 김인창의 패거리를 비롯한 몇몇은 소주를 까며 취하는 새벽 1시 47분.

야심한 서울역에 첫 번째 <비징후 게이트>가 나타났다.

* * *

SG(Safe Gate) 서울지부에서 근무하는 스태프 중 한 명이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GEL 수치를 잘못 본 줄 알았다.

GEL 수치란 게이트를 태동시키는 에너지 레벨로써 1부터 10까지의 단계를 가지고 있다.

GEL은 1부터 순차적으로 증가하는데, 10은 게이트가 열렸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서울역의 GEL 수치가 벌써 9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런 징후 없이!

“한 소장님! 서, 서울역 GEL 수치가 9를 돌파했습니다!”

난데없는 스태프의 비명에 SG 서울지부 한지후 소장이 대뜸 욕설을 뱉었다.

“개소리!”

SG 지부장과 부지부장은 2시간 단위로 GEL 수치 2가 넘는 지역을 보고받고, 위험지역으로 분류한다.

분명 2시간 전의 보고 때 서울역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GEL 산출 맵을 확인한 한지후 소장은 붉은 표시가 된 서울역을 보자마자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빠르게 받아들였다.

“서울역 CCTV 띄워! 아니! 내부, 외부 가리지 말고 싹 다 띄우라고!”

“아, 알겠습니다!”

“각성자! 현재 서울역에 가장 가까운 각성자가 누구야?!”

“손창수! A급 각성자 손창수의 거주지가 서울역 인근입니다!”

“손창수에게 당장 연락해서 게이트 미션에 참가하라고 해! 반드시!”

한지후 소장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게이트는 완성되는 순간 근처의 인간들을 소환해 <게이트 클리어 미션>을 시작한다.

근처란 애매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게이트 케이스마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반경 50미터짜리 게이트도 있었고, 반경 500미터짜리 게이트도 있다.

또한 게이트가 반경 안의 모든 인간을 소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역시 무작위였다.

변하지 않는 건, 게이트 클리어 미션이 무조건 셋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1. 수비

2. 공격

3. 레이드

<수비>는 말 그대로 수비.

7일간 이어지는 몬스터들의 웨이브를 모두 처리해야 하는 미션.

단 한 마리라도 사람보다 몬스터가 많이 살아남는다면 미션은 실패였다.

<공격>은 타임 어택.

7일 안에 정해진 거점을 점령해야 했다.

너무 빠른 시일에 거점을 점령해 버리면 보금자리를 되찾기 위한 몬스터들의 침공이 시작되기에, 역으로 수비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는 미션이었다.

마지막은 <레이드>.

레이드는 일반 몬스터보다 훨씬 강한 보스 몬스터를 사살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각성자들의 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미션이었다.

사실 90퍼센트 이상의 미션이 수비와 공격이었고, 레이드는 간혹 등장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떤 미션이라도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게이트가 폭주한다는 것이었다.

게이트가 폭주하면 참가 인원이 전원 사망하는 것은 당연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의 범위는 제각각.

SG 과학자들은 게이트 등급과 클리어의 진행 정도에 따라서 폭발 에너지가 정해진다고 발표했다.

즉, 게이트 등급이 높을수록 폭발 범위가 크고, 클리어 진척률이 높을수록 폭발 범위가 작아진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가 서울역이라는 것.

‘서울역 게이트가 폭주하면……?’

중요 도로가 파괴되며, 1호선과 4호선, 공항철도와 KTX 노선이 일제히 마비된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 인근에는 많은 기업들과 번화가가 존재한다.

이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때 스태프가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각성자 손창수! 서울역으로 출발합니다. 예상 도착 시간은 4분 후!”

“넉넉하게 도착하겠군.”

한지후 소장이 한숨 돌렸다.

위험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희망이 보인다.

A급 각성자라면 민간인들을 규합해 클리어를 노려 볼 수 있으리라.

그 순간이었다.

“소, 소장님!”

여자 스태프 중 한 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울역 CCTV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이트…… 완성되었습니다.”

“뭐?!”

한 소장이 CC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농축 에너지로 인해 지지직거리는 CCTV 속, 하얀색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서울역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노숙자, 지하철도 직원,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사라져 있었다.

운 좋게 게이트에 포함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장이 마지막 희망을 담아 물었다.

“……게이트 등급은?”

F등급이라면 일반인 선에서 클리어될 수도 있다.

SG 소속 각성자들이 바로 게이트 클리어를 통해 각성한 이들이니까.

하지만 한지후 소장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최소 E등급…… 아마…… D등급일 겁니다.”

신이시여.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소장의 마음을 대변했다.

일주일 후.

서울은 4년 만의 게이트 폭주 사태를 겪게 되리라.

* * *

낭인 중 한 명이 소맥이라는 희대의 영약을 만들려는 찰나, 진유성은 갑자기 막대한 기운이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기운은 순식간에 타원을 만들어 냈고, 밝은 빛을 뿜었다.

빛에 닿은 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빛을 피할 수 있었다.

속도가 제법 빨랐지만 확실한 가능의 영역이었다.

그는 이것이 낭인들이 말하던 ‘게이트’란 놈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유성은 게이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빛을 피하지 않았다.

빛에 접촉한 순간, 몸이 어딘가로 이동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풍경은, 수백 명이 서 있음에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넓은 평원이었다.

* * *

기온과 습도가 쾌적하고, 지면의 경사나 자연 지물이 전혀 없어 활동하기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 평원은 인위적이다.

풀과 흙은 있지만, 그 안에 있어야 할 작은 벌레 따위의 생명체가 전혀 없다.

아니나 다를까, 기경팔맥을 열어 내공을 쌓으려고 해도 이곳의 기운들은 흡수가 불가능했다.

“여긴 뭐지?”

신체 상태를 점검한 진유성은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김인창을 비롯한 낭인들은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같은 곳에 있었지만 도착 위치는 다르군. 기준이 있는 걸까?’

태평한 진유성과 달리 주변은 난리가 나 있었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이거 혹시…… 게이트 아니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SG가 뻔히 있는데 게이트가 왜……!”

“하지만……!”

“이봐! 이봐! 아무도 없어?!”

넓은 평원에 놓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떠든다.

모두의 목소리 속에는 두려움이 묻어나 있었다.

그때였다.

사람들의 두려움에 화답하듯 관리자가 나타난 것이.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지만, 누구나 인간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허공에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D-1C’입니다.]

[우선, 게이트 인원에 선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재 인원은 214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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