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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화 (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화>

Quest Start. 차원 이동한 천마님

명나라 황궁, 자금성.

자금성 북쪽에는 황족들이 생활하는 내정이 있고, 내정 안에는 황제가 기거하는 건청궁이 있다.

본래 건청궁은 내정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이어야 했다.

천자(天子)인 황제가 사니까.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천신궁(天神宮).

하늘의 신이 기거하는 궁.

건청궁의 측면에 세워진 천신궁은 건청궁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이것은 천신궁의 주인이 대명제국의 황제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혹자는 그자를 불편한 기색으로 천마(天魔)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오, 염병. 오늘도 존나 심심하네.”

비단 위에 드러누워 발가락을 까딱거리는 시정잡배, 아니, 천마신교 교주 진유성이 있었다.

* * *

천신궁의 주인.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 진유성.

무수한 이들의 존경과 경외를 받는 그의 하루 일과는 오늘도 불평에서 시작해 불평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무림을 통일해 가지고는…….”

“아니, 애당초 교주직을 안 받았어야 해.”

“아니, 그보다 신교에 투신을 안 했어야지.”

“그냥 농사나 짓고 살걸.”

“아니, 아니. 그냥 태어나지 말걸.”

진유성의 불만이 ‘태어나지 말걸’까지 이어지자, 그의 등 뒤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신주청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수하들이 듣습니다.”

“뭐! 뭐! 들으면 어때! 이제는 하다하다 뚫린 입으로 말도 못 하냐?! 그리고 수하는 뭐! 너밖에 없잖아!”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니? 안 지킬 건데? 염병! 지랄!”

진유성이 온갖 주접을 떨었음에도 신주청은 무표정하게 석상처럼 기립해 있었다.

흥이 식은 진유성은 신주청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야, 주청아.”

“하명하십시오.”

“너 지금 나 호위하려고 내 뒤에 서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근데 네가 날 어떻게 호위해? 호랑이가 용을 호위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너 날 수 있어? 난 날 수 있다!”

“제 실력이 교주님에 비하면 부족한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교주님을 대신해 죽을 실력은 됩니다.”

“그러니까! 난 대체 언제 위급해지냐고오! 제발 위급해지고 싶다!”

“…….”

“야, 우린 왜 그런 거 없냐? 어둠 속에 숨어서 천마신교를 전복시키려는 비밀 세력! 아니면 외세의 침략! 그것도 아니면 외지인인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기득권의 반역!”

“일을 꾸미던 정파 장로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은 교주님의 명을 받고 서역에 간 수하들이 알아보는 중이고, 기득권은…….”

신주청이 서릿발 같은 기세를 내뿜으며 말했다.

“본 교의 장로들에게는 그런 위험성이 있군요. 전부 죽여야겠습니다.”

진유성이 펄쩍 뛰었다.

“아니, 죽이긴 왜 죽여? 그 노친네들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장로들은 교주님께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부 죽이겠습니다.”

“야! 그러지 마! 불쌍하잖아.”

“그럼 특급 감시조를 붙이겠습니다. 불민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진유성은 신주청의 말이 일 푼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천신궁에서 자신과 농담이나 따먹고 있는 것 같아도 신주청은 천마신교의 이인자였다.

그말인즉, 전 중원에서의 이인자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아 씨. 나 때문에 노친네들이 감시받게 생겼네.’

진유성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청아.”

“하명하십시오.”

“나 진짜 너무 심심하다. 심심해서 뒈질 것 같아.”

“그럼 신교의 경전을 검토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당대 최고의 사학자들이 모여서 교주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경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당장 중지시켜. 쪽팔리니까. 교주의 명령이다!”

“교주님!”

언성이 높아진 순간, 진유성과 신주청은 누군가 천신궁의 정문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천신궁의 내궁과 정문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그들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객일까? 자객이면 좋겠다. 야! 자객이면 내가 싸울 거다.”

“세상에 어떤 자객이 정문으로 들어오겠습니까?”

“또 모르지. 겁나 신박한 놈이라서 정공법을 택한 것일 수도 있어.”

자신의 심심함을 달래 줄 자객을 기다리던 진유성이었지만, 방문객은 자객이 아니었다.

그의 수하인 상림이었다.

하지만 상림은 자객이 아니어도 진유성의 심심함을 달래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억만창생! 신교천하!”

“에이 씨, 그거 하지 말랬지?”

“하지만…….”

상림이 신주청을 슬쩍 쳐다보며 말꼬리를 흘렸다.

그 모습에 진유성이 눈썹을 까딱 올렸다.

“어쭈. 주청이가 나보다 높냐?”

“아닙니다!”

“근데 왜 주청이 눈치를 봐?”

“죄송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진짜 죽여 줘?”

“그…… 아닙니다!”

“아닌데 왜 거짓말해? 지금 나 능멸하냐?”

“절대 아닙니다!”

평소 같으면 상림을 더 갈궜을 진유성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상림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서역인들은 어땠냐?”

약 2년 전.

진유성은 그의 왼팔격인 상림에게 서역에 다녀올 것을 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연히 난파된 서반아(스페인)인들에게 듣기로, 서역에는 명나라보다 훨씬 발전된 총화기와 기술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도사’가 있다.

중원에 무공이 발전했다면 서역에는 마도술이란 기술이 발전한 듯했다.

마도사들이 강하다면?

위협적인 적으로 규정된다면?

중원의 수호자로서 원정을 떠나겠다!

이것이 진유성이 기대하는 논리 구조였다.

진유성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재차 물었다.

“말해 봐. 서역인들은 어땠냐니까?”

“음, 어…… 소신이 서역에, 그, 당도해…… 음, 불민한…….”

“아, 뭔 격식이야! 그냥 말해!”

상림이 신주청을 슬쩍 쳐다보자 신주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이 원하시니 격식 없이 편하게 말해라.”

신교가 중원을 일통하고 황실과 합치됐다지만, 사람의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땠냐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아무래도 전장을 누비던 그의 수하들은 격식을 차리는 것에 익숙해지지…….

“좆밥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노력의 문제 아니냐?!

* * *

결과만 말하자면, 상림과 함께 떠난 수하들은 마도 세력 수뇌부의 7할 이상을 굴복시켰다.

진유성은 분명 상림에게 마도 세력들과 함부로 시비를 붙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마도 세력들이 그들을 사악한 세력으로 몰아가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최대한 살상은 자제했습니다.”

“그렇게 약해?”

“능력은 뛰어났습니다만 마도술이란 게 전투술보다는 기술로 발전한 것 같았습니다.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먼 거리에서 의사소통을 한다든가.”

“이제 그쪽에서 어떻게 대응할 거 같아?”

“사실상 굴복했습니다. 저희가 목숨이나 영토를 내놓으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요.”

“에휴…….”

서역으로 나들이를 떠나려던 계획이 무산된 진유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약하면 나갈 명분이 없다.

어깨가 축 늘어진 진유성을 보던 상림이 잠시 품속의 물건을 떠올렸다.

그는 진유성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서역에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도사들과 관계가 틀어진 시점에서부터 이런저런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저런’이란 진유성의 심심함을 해결해 줄 것들.

그중 대부분은 그저 서역의 신기한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마도사들의 수장에게서 항복의 징표로 받아 낸 이것만큼은 비범한 무언가가 있었다.

“교주님.”

“뭐! 왜!”

“서역 마도사 세력의 수장에게서 신기한 물건을 받았습니다.”

상림이 품에서 서책과 보석을 하나 꺼냈다.

진유성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이게 뭔데?”

“마도사들이 말하길,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는 연금술이라고 했습니다.”

“연금술?”

“하위 재료를 조합해 상위 재료를 만드는 기술이라더군요. 예를 들면 돌멩이로 금을 만드는.”

“저잣거리 야바위꾼들이 많이 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아무튼,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다 높은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담아 둔 서책이고, 보석은 재료입니다.”

“보다 높은 세계가 뭐야?”

“무릉도원 같은 게 아닐까요?”

“흠…….”

상림이 서책과 보석을 건네자, 진유성은 진지한 얼굴로 서책을 보다가 탁 덮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냐?”

그때 다시 한번 정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상림 때와 달리 이번엔 여러 명의 기척이었다.

“금군이네?”

“한 시진 전에 황제가 알현을 요청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나? 왜? 무슨 일 있어?”

“절강성에서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아아, 들어오라고 해.”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귀찮을지언정, 진유성은 명실상부 대명제국의 지배자였다.

* * *

천마신교는 한동안 바빴다.

절강성에서 관리 22명이 대거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흔적도 없이 22명의 관리를 암살했다는 것은 분명 무림인의 소행.

절강성의 사건을 조사할 조사인단이 꾸려지고, 총책임자가 선정되고, 황실과의 연계를 구축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조사 방침을 결정하는 동안 진유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진유성은 움직이지 않을 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니까.

마치 신처럼.

그래서 진유성은 외로웠다.

* * *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사이 절강성의 음모는 파훼되었고, 그 외에도 자잘한 일들이 벌어지고, 해결되었다.

“흐아아암. 존나 심심하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진유성을 보며 석상처럼 기립해 있던 신주청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엉.”

“신교의 경전 제작이 7할 이상 완료되었습니다.”

“책?”

문득 진유성은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야, 서역에서 가져왔던 책 어디 있냐? 보석이랑.”

“마도서 말씀이십니까?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거 한번 만들어 보자.”

“예전에는 허황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번역해 놓은 거 보니까 말도 안 되는 것 같더라고.”

“한데 어째서 그러십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마도술을 전혀 모르니까 허황돼 보인 거지, 마도사들에게는 절세무공비급 같은 거일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합니다.”

“저번에 사절단으로 왔던 마도사들 아직 집에 안 갔지?”

“예.”

“데려와 봐.”

잠시 뒤, 부름을 받은 마도 사절단의 대표 멀더가 진유성에게 어색한 중원식 예를 표했다.

인사를 받은 진유성이 들고 있던 서책을 팔랑거리며 물었다.

“이 책에 있는 거, 만들 수 있냐?”

“이론상으론 가능한데 실제 제작은 불가능합니다.”

멀더의 대답에 진유성이 엉뚱한 말을 했다.

“야, 신기하네. 어떻게 우리말을 그렇게 빨리 배웠냐?”

“네? 아, 타국의 언어를 쉽게 익히게 해 주는 술법이 있습니다.”

“확실히 니네가 기술 쪽으로 발달했네. 상림한테 졌다 그래서 좆밥인 줄 알았는데.”

“…….”

숨김없는 진유성의 속마음에도 멀더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마력이다.’

안으로 완벽히 갈무리하고 있지만, 중원의 지존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마력을 지녔다.

“근데 왜 제작이 불가능해? 이론상으로 완벽하다며?”

“게이트를 작동시킬 에너지가 없습니다.”

“게이트? 에너지?”

“아, 죄송합니다. 고유명사들은 치환이 잘 안 돼서…….”

멀더가 말을 이었다.

“게이트는 명나라 언어로 쾌락의 문, 에너지는 정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쾌락의 문을 위한 정력?”

“예, 그렇습니다.”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그거라면 문제될 게 전혀 없는데?”

“예?”

“너. 여신도라고 알아? 걔들이 남자 유혹해서 흡정대법으로 양기를 모으는 애들인데, 어, 내가 거기 문주랑, 어? 밥도 묵고, 어? 목욕도 하고, 어?”

깜짝 놀란 신주청이 재빨리 다가와 속삭였다.

“교주님, 체통을 지키시지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어? 아, 주접떠는 게 버릇이 돼서…….”

헛기침을 한 진유성이 멀더에게 물었다.

“그래서, 에너지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실행할 수 없는 술법을 왜 애지중지하며 계승해? 이게 니네한테 엄청 귀한 거였다며?”

“한 가지 가능성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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