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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특별 외전 7화 (350/352)

특별 외전 7화





“회귀를…… 했다고? 그래서 나를 아는 거라고?”


“못 믿겠어, 티미 릴리?”


“내, 내 이름을 어떻게- 아, 아니지. 회귀했다고 했지. 그럼 당연히 알겠구나.”


어린 얼굴의 티모시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다시 살핀다.


아무리 사람 좋고 순수한 그라지만, 길 잃은 낯선 땅에서 초면의 외국인 소년이 불쑥 다가와 건네는 이야기를 이대로 믿기에는 좀…….


“네 천사들이 아무런 말도 안 해?”


“……!”


티모시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성약성이 둘이며, 그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천사라는 것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그만의 비밀이었다.


“나를 믿어, 티미.”


“…….”


“내게 기회를 준 것은 ‘우리의 귀부인Our Lady’이니까.”


우리의 귀부인.


그 호칭이 가리키는 대상은 지구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의 아들’을 자처하고 있는 티모시 릴리와이트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경계심이 완전하게 꺾인다.


경건히 성호를 내리그은 티모시가 광활한 하늘이 담긴 눈으로 진중하게 물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형제?”


“도와주려고?”


“내 힘이 닿는 일이라면 기꺼이.”


“어렵지 않아. 약속된 네 숙명을 내게 넘겨주면 돼.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돌아왔거든. 자세한 얘기는 어디 들어가서 할까?”


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


티모시가 저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의 복잡하고 긴 상태창 한쪽에, 늘 변함없이 자리해 있는 [역할]과 관련한 일이었다.


‘별들이 그랬지. 때가 되면 넘기라고.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다행이다. 미리 귀띔받은 내용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탁 풀렸다. 웃음을 되찾은 티모시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하하, 그런데 네가 종교인일 줄은 몰랐어. 형제님들 만나면 바로 아는데, 그런 느낌이 별로 없어서. 경계해서 미안해.”


“괜찮아. 믿은 지 얼마 안 됐거든.”


“오, 그래?”


반듯한 쇄골 위에 자리한 로사리오가 걸음을 따라 흔들린다. 멀리 보이는 성소를 일별하며 키도는 싱긋 웃었다.


“그래도 지금의 난 누구보다도 신실해.”


‘시킨다면 발바닥도 기쁘게 핥을 만큼.’


냉혹한 냉담자는 그날 성당 바닥에서 죽었다.


마피아는 계산이 철저하다.


다시 살아난 계승자의 신앙심에는 더 이상 성자의 이름이 과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기억한 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몇 배나 빠른 패스트 트랙을 달리는 일과 같았다.


키도는 아주 손쉽게 코사 노스트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가 되었다.


더 이상 오솔리니 패밀리의 일에도, 마굴가의 사정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세계로부터 받은 특혜와 마침내 각성한 힘을 양손에 거머쥔 채 그는 날개 돋친 새처럼 훨훨 날아갔다.


막힘없이 올라가던 계단에서 멈춘 것은 열여덟 살의 가을.


‘왜 안 오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해의 10월이 되었으나 지오가 시라쿠사에 오지 않았다.



‘성모상의 권능이 퇴색해서인가?’


[기적 구현]을 그가 이전 생에서 써 버린 탓인지, 성모상에는 더 이상 그와 같은 권능이 없었다. 혹시 몰라 몇 번이고 확인해 본 사실.


“음…….”


다시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 애는 비록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 때문에 그런 일을 겪게 해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한 다음, 이번에야말로 잘 대해 주고 싶었다.


“뭐, 됐어. 안 오면 내 쪽에서 가면 되지.”


더 이상 하루 살기 급급하던 일반인 마피아가 아니지 않나.


그는 이제 죽은 자들의 지휘자였고,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S급 각성자였다.


[AWAKENER STATUS]


· 이름: 없음

· 등록명: 키도 / Kiddo

· 나이: ??

· 등급: S급 (특수계 ― 정신 특화)

· 랭킹: World - | Local 1위

· 성향: 염세적인 낭만주의자

· 소속: 행성 어스 ― 무주의 땅

· 퍼스트 타이틀: 심판의 계승자(M)

· 세컨드 타이틀: 사령 군단의 마에스트로(L)

· 고유 타이틀: 사산아, 영원히 기억하는 자, 망향의 지배자, 마리아의 사도, 경국지색, 예쁜 쓰레기, 순애보, 제비



티모시에겐 진작 [역할]을 양도받았다.


그 변화로 퍼스트 타이틀 앞에 ‘심판’ 두 글자가 붙었으며 그걸 누르면 예의 줄글 설명이 주르륵 떴지만, 거기까지.


키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는 저를 대리해 왕을 심판하라고 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또 어떻게 하라는 건지에 대해선 무엇 하나 일러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든 그의 판단에 맡긴다는 뜻 아니겠나?


숙명의 적.


네이밍이 제법 거창하기야 하다만…….


그거야 견지오의 재능이 원체 대단하니까.


‘보나마나 별들이 쓸데없이 경계하는 거겠지.’


사사건건 어디에나 간섭하는 천문은 늘 시끄럽다.


태초부터 이름 없이 죽어서 태어난 그는 세계율을 크게 겉도는 존재였다. 덕분에 어딘가에 소속되어 탑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꺼운지.


키도는 흥얼거리며 달력을 셌다.


‘지금은 예전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니까, 지오가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려서…….’


아주 근사한 모습으로 찾아가야지.


재회의 인사말도 벌써 정했다.


‘안녕, 시뇨리나. 태양 같은 눈을 가졌네.’


별 쪽이 나을까 싶기도 한데 태양도 결국 가장 큰 별이니까.


바다와 태양이라니,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 아닌가?


“하하.”


바보 같네, 나.


키도는 거울에 비치는 사파이어처럼 푸른 제 눈을 보며 실없이 웃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눈이 부시고 찬란해서 마냥 벅차기만 했다.


꼭 꿈속을 걷는 것처럼.





“차오, 시뇨리나. 태양 같은 눈을 가졌-”



“비켜. 이건 또 뭔……. 아는 새끼야, 누나?”


“에엥, 노노. 뭐야, 이 느끼한 외국인은? 시대가 어느 땐데. 외국인 아재요, 업뎃 좀 하고 사쇼.”


“…….”


열다섯 살의 견지오는 매우 도도했다.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가 따로 없었는데, 그 옆에는 상대 안 가리고 대뜸 뿔부터 들이박고 보는 안하무인 미치광이 수사슴까지 붙어 있었다.


‘얘가 그 남동생인가. 이번 생에는 저주 같은 거 안 걸렸나 보네…….’


조금 아깝다.


……고 생각했지만, 퍼뜩 정신 차렸다.


신실한 신앙심을 지닌 마피아로서 품어서는 안 되는 못된 생각이었다.


키도는 얌전히 현실을 수긍하고 지오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데다가 요령까지 없는 S급 견지오는 적이 많았고, 그런 그녀에게 무한한 호감을 표하는 능력 좋고 연고 없는 외국인 헌터는 여러모로 쓸 만한 패였다.


견지오의 측근들은 고민 끝에 내키지 않는 얼굴로 그에게 한자리를 내주었다.


‘역시 지오 혼자 있을 때가 더 좋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예나 지금이나 그를 편안하게 웃게 하는 것은 지오뿐이었다. 키도는 욕심부리지 않고 성심껏 주어진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르고 흘러,


견지오라는 소녀가 성장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뭐라고?”


키도는 멍청하게 굳어 눈앞의 견지오를 바라봤다.


이번 생의 귀도 마라말디.


요괴 구미호조차 한 수 접어줄 만큼 고혹적인 미남자였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당에서 미사드리는 독실한 신자였다.


몸가짐은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고 나긋하고, 숙녀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이탈리아 신사답게 흠잡을 데 없이 자상했다.


뿐만인가?


참여하는 전투마저 백전백승.


사령 군단을 지휘하는 그가 나서면 아군은 다치는 일이 드물어 대중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두루 신뢰받는 영웅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하다는 표현도 부족한 남자.


그런 이가 온갖 부귀영화도 마다한 채 미모에 물이 오른 절정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곁에서 바치고 있으니…….


마음을 내주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고, 견지오는 당당히 생각했다.


“들었잖아.”


“……아니, 듣긴 했는데…… 뭐?”


“두 번 말하기 싫음.”


“왜? 내가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잖아, 달링. 그래, 그럴 수 있어. 응. 잘못 들은 거 같아. 다시 말해 봐.”


“지금 나 차는 거야?”


“…….”


아니, 그럼 진짜로 잘못 들은 게 아니라…….


키도는 넋이 나갔다.


진짜, 문자 그대로 넋이 나갔다. 헤벌어진 입으로 영혼 같은 게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못난 꼴을 지켜보던 지오가 뾰로통해져 입을 비죽였다.


“연하의 천재 미소녀가 고백해 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삼보일배 올리면서 넙죽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반응 진심 뭐지?”


“……그게 그러니까.”


“하아. 알았어. 한 번만 다시 말해 준다. 딱 들어.”


팔짱을 풀고 지오가 턱을 척 치켜들었다.


“이 몸의 깔이 되라, 귀도 마라말디. 이대로 계속 평생 호구 해 주면 더 좋구.”


“이딴 게 고백……?”


“수줍네, 정말. 체질에 안 맞아서 진짜루 세 번은 못 하겠당. 에구구.”


“…….”


“야. 내가 세 번은 못 하겠다고 3초 전에 말했지. 계속 그렇게 어버버 하고 있을 거?”


진심으로 슬슬 짜증이 차오른 지오가 바닥을 탁탁 걷어찼다. 그냥 오케이, 하면 될 걸 왜 이리 질질 끄나 몰라.



“님도 어차피 나 좋아하잖아.”


“내가?”


“그래. 나도 알고, 우리 가족도 알고, 내 별님도 알고, 길드 사람들,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이제 와서 설마 아니라고 하진 않…….”


설마.


“않겠…….”


서얼마.


“……아니지?”


“……그게…….”


“…….”


“아니지…… 않을까?”


“…….”


지오가 망부석처럼 굳는다.


그것을 보며 키도는 당혹감을 서서히 추슬렀다.


그래, 생각해 보면 고백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흔하디흔한 이벤트였다. 이렇게 당황할 필요 없지 않나.


지오도 어리고, 여자니까 이럴 수 있지.


고작 이런 일로 상처받을 위인도 아니니 잘 달래 돌려보내면 자다가 이불 몇 번 걷어차고 말 것이다.


‘……귀엽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애다워.


빠르게 여유를 되찾은 연상의 남자가 언제나처럼 상냥한 미소를 머금었다.


“괜찮아. 한국 문화 배울 때 들었어. 사춘기 한국 여성들이 교회 오빠한테 반하는 건 필수 통과 과정 같은 거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이 나라의 토착 문화인가 봐.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럼 성당 오빠인가? 사실 비슷하긴 하지. 놀랄 것 없어, 달링.”


“…….”


“알고 있지? 굳이 그런 사이 아니어도 나한테는 자기밖에 없다는 거. 여러 번 말했지만 난 지오 너만 특별하고, 너를 위해선 뭐든지 할 거야.”


너는 내 숙명의 구원이고,


내 기적의 별이며,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떠오른 나의 태양이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시라쿠사 골목에서 보낸 그 나흘만은 예외였다.


키도라는 남자가 처음으로 가진 그만의 것이었으므로.


특별한 만큼 소중하게 품었기에 소년이었던 그의 가장 연약한 속살이 되었고, 죽어 가던 그를 되살려 두 번 살게 한 원동력이기에 변하지도 왜곡되지도 않았다.


항상 그 자리,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그러니 또 다른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그녀의 발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양 아래 바다가 마땅히 그러하듯이.


그러나.


‘사랑은 아니지.’


이게 사랑은 아닐 것이다.


이성 간의 사랑?


그깟 저열한 감정과 천박한 욕망 따위로 우리를 묶을 수 없었다. 길거리의 누구나 하는 그런 사랑일 리 없었다.


키도는 확신에 취해 웃었다. 그런데.


“……지오?”


“…….”


“이런, 지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던 빛의 각도가 바뀌며 지오의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당황스러우리만치 고요했다.


“내가 장난처럼 말해서 그래? 그래서 장난처럼 취급하나?”


“그게 아니야.”


“그럼 왜 내가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막말로.”


“…….”


“고백했다가 차인 건데. 그것도 ×나 얄짤 없이. 본전도 못 찾고.”


“자기야.”


“때려치워.”


“어?”


덤덤한 얼굴로 말을 잇던 지오가 혀를 찬다. 다소 사나운 손길로 제 앞머리를 훑더니 노려보듯 그를 쏘아봤다.


“자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짜증 나게 설레고, 등신처럼 착각하게 되니까. 간다. 따라오지 마. 혼자 처박혀서 엉엉 울 거임.”



“자-”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지.


습관처럼 나오던 호칭이 멈칫 혀 위에서 굳는다.


키도는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지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갈빗대가 조이듯 욱신거렸다.


아릿하고 희미한 통증이 명치를 거슬러 와 불편하게 자리했다.


무언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을 놓친 기분이 드는데…… 그게 뭔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죽은 마피아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정부의 요청으로 긴급 지원 나가던 비행기가 1급 돌발 균열에 휘말려 실종됐다.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탑승해 있었기에 일반인들을 포함한 승객 전원이 무사 귀환했지만, 단독으로 사생 결전을 벌이던 마법사만은 돌아오지 못했다.


견지오, 열아홉 살의 생일을 넘긴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온 세상에 그 이름 석 자가 실종 처리되던 날.


키도는 오열과 절규를 멈추지 못한 상태로 깨어났다. 흐느끼며 고개를 들자 깨진 거울 위로, 비통에 잠긴 얼굴이 보였다.


풋내 나는 어린애의 얼굴.


두 번째 회귀.


또……


두 번째 [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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