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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특별 외전 6화 (349/352)

특별 외전 6화





은근슬쩍 미인계 쓰면 다야?


이렇게 깜빡 속았다니 분해 죽겠다! 지오가 콩콩 발을 굴렸다.


‘하하, 이거 안 먹히네.’


키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도 나 지금 꽤 진지한데. 엄청 고민하고 말하는 거야. 약속해 주면 성모상은 기꺼이 지오한테 넘길게.”


“……뭔데. 아니, 근데 한국말 왜 이렇게 잘해? 혼혈임? 어디 키씨야?”


“내 성은 키가 아니라- 아니, 됐고.”


또 페이스에 말릴 뻔했다. 키도는 고개를 젓고 바실리카를 향해 걸어갔다.


넘겨주기로 결정을 마쳤으니 더 이상 다른 길로 빙빙 돌아갈 필요 없었다.


행방불명되었던 귀도 마라말디가 며칠 만에 거리로 나타나자 곳곳에서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근처에 있던 그의 부하들도 재빨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카포!]”


“[돌아오셨습니까, 지부장!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응.]”


코트를 받아 사뿐히 어깨에 걸친 키도가 머리칼을 정리했다.


얇은 셔츠 위 긴 코트에 가죽 장갑, 성별이 모호할 만큼 화려한 귀걸이…….


시라쿠사의 제일 이름난 보석.


우아하고 잔혹한 젊은 카포레지메의 모습으로 한순간에 그렇게 돌아온다.


바실리카의 입구까진 지척.


가는 길에 뒤따르는 무리가 점점 늘어났다.


지오는 조용히 키도를 바라봤다.


‘보통 놈이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지역 마피아였다니.


성소의 경건한 입구 앞에서, 키도가 걸음을 멈췄다. 지오를 돌아본다.


“어려운 거래는 아니야. 어때?”


조금 전 대화의 연장이다. 지오는 다소 무뚝뚝하게 받아쳤다.


“뭐냐고 지금 세 번째 묻는데.”


“물건을 가지고 가서 네 동생을 살린 다음, 다시 시라쿠사로 돌아와 줘. 나랑 한 번만 다시 만나 주면 돼.”


“……너무 쉬운데? 그게 다야?”


지오가 의심스레 눈을 좁혔다. 키도는 소리 내어 웃었다.


“글쎄, 쉽진 않을걸. 물건을 가져가면 너는 이 나라의 원수가 될 거고, 나는 연약해서 이곳을 벗어나기가 어렵거든. 네 쪽에서 힘을 내 줘야 해.”


“뭐어, 그래도 별로 안 어려워 보이지만. 알겠어. 기간은? 언제까지 돌아오면 되는데.”


“내년. 1년 안에 돌아와.”


“접수. 근데 만나기만 하는 거다. 이민 이딴 건 꿈도 꾸지 마.”


“응.”


키도는 순순히 끄덕였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건데, 그깟 대답쯤이야. 그는 생각했다.


내년.


앞으로 1년 안에 티모시 릴리와이트로부터 [역할]을 양도받는다.


그리고 견지오는, 나만의 운명이 된다.


이게 바로 그가 내린 결심이었다.


“문 닫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끼이이익-.


책임자의 명령에 수하들이 성소의 문을 굳게 닫았다. 모두가 나가고, 고요하고 경건한 적막이 공간을 메꾼다.


눈물의 성모에게 인간들이 헌정한 성소.



저 먼 천국을 향해 장엄하게 치솟은 서까래 사이로 사시사철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곳이었다.


하얀 채광이 비치는 제대 위, 바로 그곳에 특수 장치로 보관한 성모상이 놓여 있다.


이달의 순번, 해당 관리자의 혈액으로만 열리는 장치였다.


성큼성큼 그 앞으로 걸어간 키도가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담담히 손바닥을 찢으려는 그때, 지오가 불쑥 물었다.


“근데 너 이거 걸리면 큰일 나는 거 아냐?”


“큰일은 벌써 났지, 달링.”


“진짜?”


키도는 웃으며 돌아봤다.


“왜, 설마 걱정돼? 내가?”


“……그럼 안 됨? 기껏 살려 놨더니.”


“그래도 주면 받을 거면서.”


“그건 당연하지. 울 밤비 살려야 하는데.”


망설임 없이 바로 대꾸해 놓고선 다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지오가 툭 던졌다. 너 있잖아.


“그냥 나 따라서 한국 갈래? 연약해서 못 떠나는 거면 누가 지켜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저게 무슨 말이지? 조금도 이해 못 한 키도가 어리둥절해져 되물었다.


“누가? 누가 뭐를 지킨다고?”


“나.”


“뭐?”


지오는 왈칵 짜증이 났다.


저 여우 자식 백치가 아니었다는 건 아까 진작 알았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멍청한 척이지?


“내가 님을요. 내가 너 지켜 주면 되는 거 아니냐구. 이미 한 번 지켜 줬는데 두 번은 못 할 게 또 뭔데?”


“…….”


키도는 또 얼이 빠졌다.


‘나를 지킨다고?’


누가 나를, 지켜?


“……그만. 그만해, 지오. 여기서 더하면 치사량이야. 이미 나는 너무 곤란해.”


“뭐래, 미친.”


지오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흘겨본다.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혀가 뻣뻣이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목 부근에 뜨뜻한 열이 올랐다.


키도는 그의 귓불이 빨개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수치스러웠다.


철들기 전부터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봤던 그다. 그런데 고작 이딴 유치한 말에 설렌다고?


정신 차리자.


그는 이를 악물고 손에 힘주어 단도를 휙 내리그었다.


선명하고 붉은 핏방울이 아롱지며 성모상 위로 떨어졌다. 진동하기 시작한 제대의 모습에 키도가 팔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브라보!]”


“!”



타아아아앙!



벼락과 같은 총성.


키도가 경악에 차 눈을 부릅떴다.


두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와 달리 어리고 여렸던 소녀의 몸이었다.


낙화하듯 맥없이 뒤로 넘어가는 장면이 그의 눈에 아주 느린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안 돼!


키도는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설마하며 지켜봤는데 진짜 제 손으로 자물쇠를 열 줄이야! 죽음을 자처하는군. 맘마미아. 신께서 우리 제르마노를 보우하시는구려!]”


철컥, 어느새 다가온 총구들이 그의 등을 겨눈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니콜라스 제르마노의 총구가 그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짓눌렀지만, 키도는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무장이 원칙인 성소 안이었다.


천문의 고고한 성위들이 감히 발을 못 디딜 만큼 강력한 성물의 영향권이기에 항마 결계 역시도 무자비했다.


지쳐 있는 어린 마법사가 습격에 미처 방어하지 못할 만큼.


가슴이 꿰뚫려 쓰러진 지오에게선 반응이 없다.


고결한 백색 대리석 위로 핏물이 고인다. 붉은 웅덩이 위에 엎어진 얼굴이 그를 향해 있었다.


눈꺼풀이 당장이라도 감길 듯 힘없이 깜빡인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애처롭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뇌가 타는 듯 뜨거워졌다.


적들에게 손발이 붙잡힌 채 키도는 입을 뻐끔거렸다. 혀가 토막 난 것처럼 말문이 콱 막혔다. 처음 느끼는 감정의 격동에 숨조차 내쉬기 힘들었다.


“지…… 지오…….”


“[이거 원, 오솔리니의 예쁜 쓰레기 꼴이 말이 아니로군. 입 잘 놀리기로 유명한 놈이 고작 며칠 만에 금치산자가 됐나? 꼴이 이게 뭐야, 젊은 친구. 내 아들의 시신에선 아직 온기가 식지도 않았는데.]”


총구가 거칠게 머리를 툭툭 친다.


키도는 핏줄이 터진 눈으로 니콜라스를 올려다봤다.


Don 제르마노.


복수귀가 된 아비가 못지않은 증오심으로 그를 마주 봤다. 이를 드러내 웃는다.


“[벤데타Vendetta. 피에는 피로. 우리의 규율을 잊지 말아야지, 지부장. 어린 나이에 죄를 많이도 쌓았어.]”


귀도 마라말디는 어렸다.


열아홉 살도 되지 못한 미성년.


너무나도 어렸기에 출중한 능력과 무수히 쌓은 공에도 패밀리의 진심 어린 존경 대신 질시를 받았고, 존경받지 못한 간부의 말로는 대개 비슷했다.


배신.


내부의 배신자들이 이웃의 복수귀와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손발의 힘줄이 잘리고, 자식을 잃은 아비의 칼이 그를 거침없이 난도질했다.


그 과정을 키도의 수하였던 자들이 뒷짐 진 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


거룩한 성당.


성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피눈물이 강처럼 흘렀다.


돈 제르마노는 그에게 빠르고 편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총에 맞은 것은 관계외자인 견지오뿐이었다.


만족한 복수자와 배신자들이 떠났다.


홀로 남은 키도는 엉금엉금 지오를 향해 기어갔다.


핏물과 눈물로 한껏 짓이겨진 얼굴에선, 시칠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미소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길바닥의 지렁이만도 못한 꼴로 그는 간절하게 계속해서 기어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닿아 보고자.


“지오…….”



「[그런데 지오, 나를 왜 구해 줬어? 역시 얼굴 때문에?]」


「또 뭐라는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키도는 실실 웃으며 종이를 가져왔다.


말이 안 통하는 그들이 인내심이 닳았을 때 쓰는 최후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그간 주고받은 낙서로 가득한 종이 위로 하얀 손이 그림을 끄적였다. 얼굴 하나를 대충 그려 낸 키도가 그림과 제 쪽을 번갈아 가리키자 지오가 엑스 자를 그렸다. 아니라고.



「[거짓말. 반짝이는 것도 땅에 굴러다니냐고 했잖아. 나 다 기억하는데.]」


「요거 눈빛 봐라. 거짓말 아니거든.」


「[그럼 뭔데. 얼굴이 아니면?]」


「눈.」


「…….」


「눈이 예뻐. 보석처럼 파랗게 반짝반짝해서. 딱 내 취향이야.」



자기가 세상에서 본 눈들 중 가장 예쁘다고 지오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솔직했다.


키도는 의외였지만, 동의하진 못했다.


왜냐면.


그 역시 그날 목격했기 때문에.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던,


별빛 가득한 눈을.



그랬던 그 눈에서 빛이 꺼져 가고 있다.


피로 물든 키도의 손톱이 부서져라 바닥을 긁었다. 짐승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운명이었는데.’


처음으로 욕심낸 내 것이었는데.


처음으로 나를 지켜 주겠다고 한, 처음 가질 수 있는 구원이었는데!


이 망할 세상이 처음으로 내게 허락한…….


“마리아여!”


그들을 내려다보는 성모가 보였다.


너덜너덜해진 시궁창의 마피아는 고요하고 거룩한 초상으로 늘 그곳에 존재하는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신이시여, 어머니시여, 제발……!”


마피아에게 신앙이란, 지옥이 마땅한 그들을 건져 내 줄 유일한 부표.


조직의 유일한 냉담자였던 남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께 애원하며 빌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한 번만…….”


단 한 번만 내게 자비를 베풀어 준다면,


당신의 발바닥이라도 기꺼이 핥겠습니다.


“지, 오…….”


시야가 흐릿해진다.


바닷속으로 침잠하듯 의식이 침몰했다.


그러나 그 직전, 어떤 메시지를 본 듯도 했다.


마지막까지 쓰러진 지오를 눈에 담던 키도의 눈꺼풀이 허망하게 닫혔다.


침묵.


또 침묵.


…….



띠링!


[축하합니다!]

[해금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유물 ‘마리아의 눈물’이 깨어납니다.]

[성유물의 숨겨진 옵션 ‘기적 구현’이 최초 적격자의 의지에 따라 발동됩니다!]


[시나리오 레벨의 ‘기적 구현’으로 인해 권한 미달로 박탈되었던 선천자의 격이 복구되었습니다.]

[각성자의 접근 제한이 말소됩니다.]

[선천 특성, ‘레테의 저주’ 복구 완료]

[축하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 숨겨진 타이틀의 발아 단계가 완료되었습니다.]

[퍼스트 타이틀, ‘계승자繼承者(신화)’가 개화합니다!]




【가여운 어린양아.】


【죽어서 태어난 바다의 사산아여.】


【망각의 축복을 허락받지 못한 너는 앞으로 어떠한 것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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