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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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다 나았다. 끝!”
날이 밝은 아침, 지오는 뿌듯해져 키도의 하얀 복근에서 손을 뗐다.
‘크으…… 깔끔, 말끔, 완벽!’
신성 계열의 힐러가 아니다 보니 마법사의 치유 마법은 필연적으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마력 불균형으로 인해 컨트롤에 취약한 견지오로서는 현재 익히고 있는 마법 스킬의 종류도 극소수.
그마저도 다 공격 계열이라…….
복부에 구멍 난 키도를 치유하는 일은 없는 마력 탈탈 털어 쥐어짜 낸 어거지 봉합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공한 게 기적인.
‘보조해 줄 별님도 없- 아니지.’
또다시 울적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고 지오는 높이 턱을 들고 거들먹거렸다.
“알고 있었지만, 진심 나 천재 아님? 이제 성모한테 이 몸을 안내하도록. 여우면 여우답게 보은을 해.”
「명심해, 지오. 딱 일주일이야. 일주일만 다녀오는 거다. 그 이상은 우리도 커버 못 해.」
출국하기 직전 들었던 범의 경고였다.
장일현 국장처럼 사사건건 과장하고 축소하는 법 없는 호랑이가 진지 떨면서 한 말이기에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며칠 전의 역사 폭발 때, 지오가 일으킨 마력 흔적을 보고 자발적으로 도망간 것까진 눈치챘을 터.
데드라인은 내일.
내일이 되면 야금야금 간 보듯 추적해 오는 지금과 달리 본격적인 추적을 가하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사실 지오의 목적이 목적인지라 참아 주고 있는 거라고 봐야지.
그녀의 보호자인 범은 이번 시라쿠사행의 궁극적 목표가 <견지록을 위한 성모상 강탈>임을 아는 유일한 동행이었다.
바티칸에 심어 둔 인맥을 통해 [눈물의 성모상]의 숨겨진 능력이 [기적 구현]임을 알아 와 알려 준 사람도 범이었으니까.
“내 말 듣고 있어? 헤이, 유, 안내 미, 오케이?”
‘캬, × 선생 영어는 이제 끊어도 될 듯.’
이 정도면 이제 거의 원어민이지.
지오는 뿌듯함에 코를 슥 훔치며 키도의 답을 기다렸다. 당연히 알아들었을 텐데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
참…… 언제 어떻게 봐도 지루한 일 없을 미모긴 한데…… 뭐라고 대답을 하셔야지?
“뭘 꼬나봐?”
키도가 방긋 웃었다.
지오는 거칠게 말할수록 이놈이 더 환히 쪼갠다는 사실을 슬슬 깨닫는 중이었다.
‘한국 욕이 그렇게 듣기 좋나? 천상의 소리 뭐 그런 거야?’
“[알겠어. 가자, 지오.]”
그래도 보디랭귀지라는 만국 공통어가 존재해 천만다행.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키도가 일어나며 손짓했다.
천막을 걷고 골목 밖으로 나서는 그의 청록색 단발이 보기 좋게 흔들린다.
내리쬐는 햇볕에 얇은 셔츠 속이 비치며 드러난 몸 선이 얼핏 가녀려 보였으나 요 며칠간 그의 몸을 가까이서 본 지오는 속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처럼 흰 몸에 선명히 새겨진 복근.
그리고 그 위로 겹겹이 쌓인 흉터들.
태어나서 본 사람들 중 누구와도 비할 바 없이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친근하단 말이지.’
경계심이 이만큼 빨리 허물어지는 것도 사실 비정상적이지 않나?
지오는 석연찮음을 누르며 뒤따랐다.
어차피 뭐, 쟤랑은 오래 볼 사이도 아니니까.
“[여기가 오르티자야.]”
인적 많은 큰길로는 갈 수 없었다.
도처에 지부장을 찾는 마피아들과 귀중한 S급을 찾는 외국 헌터들의 시선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지중해 해안가를 둘러싼 외곽 길.
곳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는 그리스 시대 유적 더미들이 보였다.
한때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그러나 지금은 무관심 속에 부서지고 있는 고향을 가리키며 키도가 싱긋 웃었다.
“여기가 네 집이라고?”
지오는 본능적으로 뜻을 눈치챘다. 키도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래. 예쁘긴 한데, 근데 왜 여기 데려옴? 나 빨랑 성모한테 가야 한대도?”
“[아직 선셋 타임이 아니잖아.]”
예술처럼 뻗은 손이 작열하고 있는 태양 쪽을 가리킨다.
아, 성모상의 버프 타임.
금방 납득한 지오가 끄덕였다. 흠. 그래, 도둑질하려면 밤 시간이 적절하긴 하지.
“그럼 그때까지 뭐 하게? 설마 돌아다니게?”
키도가 어깨를 으쓱인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미소만 짓다가 앞장서길래 지오는 별수 없이 총총 따라갔다.
걸음이 멈춘 곳은 두 사람이 나흘간 숨어 있던 골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열악한 곳이었다.
‘여기 마굴 근처 아냐?’
“이런 시궁창에도 사람이 산다고? 미친, 제정신-”
“[내 고향이야.]”
“빈티지하고 아주 괜찮네.”
초감각의 각성자는 민첩했다.
요령 좋게 본능대로 회피한 지오가 구겼던 인상을 억지로 편다.
지린내, 시체 썩은 내 등등…… 악취에 어질어질한 지경이었다. 그런 지오를 흘긋한 키도가 손을 잡아 제 가까이로 당겼다.
나흘간 함께 지냈어도 여전히 어딘가 꺼림칙한 체향.
그러나 그만큼 강렬하기도 해 악취 또한 묻힌다. 지오는 키도 가까이로 몸을 더 붙였다.
여유로운 자세로 주변을 둘러보던 키도가 낮게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그러자 쌓인 오물 덩어리처럼 생긴 벽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입구가 나타났다.
‘뭐야?’
지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도!]”
“[살아 있었구나!]”
“[형! 오솔리니 패밀리가 형이 죽었대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구멍에서 쥐 떼가 쏟아져 나오듯 아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개중 제일 큰 몸집의 라틴계 소년을 보며 키도가 피식 웃었다.
“[매드독, 내 형제. 잘 있었어?]”
‘형제라고?’
마이 브라더.
그 정도 단어는 알아듣는다.
지오가 관찰하듯 눈을 좁혔다.
매드독이라고 불린 백발 소년은 놀랍게도 외팔이었다.
영양 상태는 썩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팔을 잃고 제때 조치하지 못했는지 살점이 썩어 가고 있었다.
‘저러다가 곧 죽겠는데.’
복부에 구멍이 뚫렸던 키도보다도 상태가 훨씬 안 좋다.
두 소년은 지오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서로 대화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키도가 간혹 이쪽을 가리키면서 무어라 말하는 게 아무래도 성모상 얘기를 하는 듯싶다.
‘흠…….’
견지오는 잠깐 고민했지만.
‘여긴 시내랑 먼 외곽이고, 아주 잠깐이면 괜찮을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가엾잖아.
“[영역 선포.]”
라이브러리, 편집 모드.
『단축키 ― 영역 되돌리기』
대화만 나누지 못할 뿐 그녀의 별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3월 이후,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견지오는 셀 수 없이 애써 왔다.
세상의 시간을 되돌리는 일 같은 건 결국 불가능했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수없이 쌓인 실패 덕에 버거운 능력들 중 이것만큼은 나쁘지 않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작은 영역, 예컨대 불쌍한 어린애의 팔 하나를 되돌리는 정도라면 충분히.
차라라라락-.
금색.
찬란한 황금빛이다.
키도는 숨을 멈췄다.
머리 위 태양이, 순식간에 하찮아진다.
저것이 내뿜는 광휘가 감히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앞에서 터진 빛만큼 반짝일지 모르겠어서.
지중해의 가장 낮은 곳, 오물 가득한 쓰레기장 한가운데서 키도는 그렇게 기적을 목격했다.
흑색 단발이 황금색 별빛을 머금는다.
지휘하는 듯한 손짓을 따라 형제의 썩어 문드러진 어깨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그 광경을 보는데…… 모르겠다.
머저리가 된 듯 얼이 나갔다.
이곳은 오르티자 마굴가인데.
그가 아득바득 자라며 더러워지도록 굴렀던 시궁창 바닥인데.
모두가 경멸해 마지않는 밑바닥인데.
너는 어떻게 이런 곳에 구원을 가져오지?
‘어떻게 이럴 수가.’
“[마, 마법?]”
“[각성자! 헌터야! 혀, 형! 매드독! 팔이, 팔이 생겼어! 우와!]”
흥분에 찬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매드독이 얼떨떨한 얼굴로 연신 제 팔을 매만진다.
경외심 반, 두려움 반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인사하자 지오가 코웃음 치며 턱을 까딱였다. 오만한 얼굴임에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는지 피로를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애써 태연한 척 아이들을 뒤로하고 조용해진 이쪽으로 다가온다.
“에구구, 힘들어. 나 죽네. 엥, 님 표정 왜 그래? 설마 님한테는 안 써 줬다고? 이런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으니. 이게 아무 때나 쓰는 건 줄 알아?”
그가 서운해할까 봐 일부러 성질부리는 걸 알았지만, 키도는 평소처럼 웃을 수 없었다.
아무 데서나 흘리고 다녔던 그 흔한 웃음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지오를 마주 봤다.
‘……큰일 났다.’
그저 그 생각만 밀려들었다.
정말, 나는 큰일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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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성모 마리아 성당.
정식 명칭은 Basilica Santuario Madonna Delle Lacrime.
언뜻 보면 하얀 고깔모자처럼 생긴 이 성소는 아웃브레이크 이후, 바티칸 기사단의 보호 아래 있었으나 연달은 균열로 시국 상황이 악화해 몇 년 전부터는 지역 자경단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었다.
즉, 마피아들 관리하에 있다는 얘기.
매월 초일, 추첨식으로 지킬 순번을 정하는데 이번 10월은 오솔리니 패밀리의 차례였다.
오솔리니 패밀리.
성모상을 따라 이권이 모여드는 시라쿠사엔 항상 마피아들의 세력 싸움이 활발했다.
하지만 마굴가 출신의 어떤 걸출한 소년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오솔리니 패밀리의 승기가 서서히 굳어지는 추세.
덕분에 카포 데이 카피(Capo Dei Capi : 왕 중의 왕)의 부름을 받아 시칠리아 중심 도시이자 코사 노스트라의 본거지인 팔레르모로 영전하게 된 대부는 당연히 입이 귀에 걸렸다.
오래된 간부들을 제치고 제일 총애하는 부하가 된 젊은 지부장에게 중요 업무인 성모상의 관리를 직접 맡기고 갈 만큼.
그러니 키도가 성모상의 위치를 아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일이었다.
“조건이 있어, 지오.”
“또 뭔데. 참 나, 너무 뻔뻔한 거 아님? 내가 너 구해 줘, 님 형제 팔까지 고쳐 주- 흐갸악?”
제자리에서 펄쩍 뛴 지오가 기겁해 삿대질했다.
“하, 하, 한국어?”
“응. 속여서 미안, 달링. 사정이 있었어. 이해해 줄 거지?”
“어어, 뭐 그럴……겠냐! 장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