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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특별 외전 4화 (347/352)

특별 외전 4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최초 S급 각성자, 견지오가 시라쿠사에 방문한 목적은 [눈물의 성모상].


배짱 좋게도, 시나리오 아이템으로 익히 알려진 그 성물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듣기론 남동생이 위독하다나.


한국 방송국의 실수로 견지오의 신상이 자세히 노출되면서, 어리디어린 S급을 노리는 놈들이 생긴 게 원인이었다.


한데 견지오의 외관이 보통보다 어린 탓에, 함께 있던 동생을 그녀로 착각하고 납치한 것.


그 과정에서 동생이 저주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고, 견지오는 치료법을 수소문하다가 성모상의 존재를 들었다.


머나먼 땅 이탈리아.


그것도 악명 높은 시칠리아 외곽으로 가겠다는 S급의 의지에 당연히 모든 이들이 기겁하고 반대했다.


하지만 동생의 생명이 걸린 문제.


협상이 불가능한 견지오의 의지는 누가 와도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최연소 월드 랭커인 소녀는 <은사자> 길드와 한국 정부의 철통같은 호위 속에서 바티칸 특사단에 합류했다.


“[엉엉 울면서 확인만 하고 오겠다고 하니까 다들 홀라당 속더라구. 참 나, 고양이가 생선 가게를 구경만 하구 가시겠냐고. 멍청이들 아녀? 정의의 도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오. 도착하자마자 니드호그 타고 먹튀하려고 했는데, 마더 마리아도 나를 기다렸던 거지. 타이밍 좋게 폭탄이 쾅 터지는데, 히야~.]”


키도는 앞에서 쫑알쫑알 떠드는 그의 숙명을 턱을 괸 채 구경했다.


역할을 양도받길 포기하면서 머릿속에서 멀리 치워 둔 상대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또…… 글쎄, 처음 그녀의 이름을 봤을 때, 느꼈던 이상한 감상 덕일까? 5년 내내 뻗어 가는 호기심을 걷잡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조직 일에 뛰어들어 ‘견씨’에 대해 샅샅이 찾은 것도, 굳이 쓸데없는 한국어를 고집해 배운 것도 다 그의 일환.


하지만 정작 맞닥뜨린 순간이 오자 그간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나 어리고.’


“[이끼 머리. 뭘 알아듣는다고 실실 쪼개긴 쪼개? 위대한 한국말도 모르는 게. ……뭐, 그래도 듣는 자세는 되어 있네. 네가 들어도 한국말이 듣기 좋지? 흠흠, 근본이 된 녀석이야.]”


‘이렇게나 어설프다니.’


몰래 탈출해 성모상을 약탈하겠다는 지오의 계획은 나름 거창하고 깜찍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로였다.


딱 어린애 수준이라고 할까.


지금만 봐도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된 제 처지에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이러면서 뭔 도둑질을 하겠다고.’


본인은 안 그런 척하지만, 키도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이렇게 붙들고 있을 이유가 뭐겠나.


불안정한 심리에는 성약성의 부재도 한몫할 터다.


각성한 순간부터 쭉 함께였다는 그녀의 성약성은 안타깝게도 성모의 영향력이 강한 이 땅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시라쿠사에 처음 오는 헌터들, 성약성이 있는 헌터들 대부분이 식겁하는 이유다.


그 때문에 강력한 상위 헌터들 대신, 마굴을 노리는 어중이떠중이들만 이곳에 잔뜩 모여드는 건데, 자칭 위대하신 견지오께선 쥐뿔도 몰랐다.


“[혼잣말하는 취미 같은 거 없는데, 네가 백치라서 그런가 맘 놓고 떠들게 된단 말이지. 헉, 이게 바로 범죄자들이 교회 가서 고해 성사하는 심리인가?]”


“교회가 아니라 성당. 그리고 누가 백치야. 말이 심해, 달링.”


“[뭐? 내가 범죄자는 아닐 거라고? 그치. 아니시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소녀 천재 마법사지.]”


“정말 듣고 싶은 대로만 듣네. 이러려고 외국어도 안 배우는 거지? 솔직히 말해 봐.”


“[내가 존경스러워? 어어, 알아, 알아.]”


정말 뭐 이런 마이 페이스가 다 있지?


그가 실실 웃을 때마다 멍청한 놈이라고 지오가 구박했지만, 키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나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뭘 또 웃어. 에휴, 속 편해서 좋겠다. 암튼 너 분명 성모상 위치 안다고 했어. 구라기만 해.]”


“안다고 했지, 안내해 준다고는 안 했는데.”


“[뭐래, 옷 벗어. 치료할 시간이에용.]”


“또 멋대로 벗기지. 우리가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미성년자인데, 이렇게 치한처럼 벗길 필요 있어? 부드럽게 좀 다뤄 줘.”


“[신세 져서 미안하다고? 괜춘~ 나중에 돈으로 다 갚아. 보석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돈도 많아 보이구만. 순요 씨, 장녀가 달러 벌어 갑니다.]”



“하하하하.”


달러가 아니라 유로화겠지, 이 바보야.


붕대를 들고 그에게 다가오는 새치름한 눈매를 보며 키도는 소리 내어 웃었다.


누가 더 바보 같은 꼴인지 모르고.





시간이 웃느라 정신없이 흘렀다.


무려 나흘씩이나.


견지오는 정말이지 형편없는 사고뭉치였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걔를 보고 있으면 하루가 지나치게 짧아 시간이 흐르는 걸 잊게 됐다. 과장 같은 게 아니라 평생 웃을 양을 요 나흘간 다 해치운 느낌이었다.


늦은 밤.


월광이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키도는 좌로 누워 옆자리에서 색색 잠든 지오를 구경했다.


풋내 나는 어린 얼굴, 동양의 붓 따위로 그려 낸 듯한 오밀조밀하고 신비한 이목구비,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눈물점…….


충동적으로 속눈썹을 살짝 건드려 보자 지오가 깜빡이며 눈을 떴다. 졸음기에 잔뜩 취해 팔을 뻗는다.


“[왜애…… 또 아파? 그렇게 마법을 퍼붓는데 왜 낫질 않는 거야. 나도 발작 때문에 마력을 많이는 못 쓴다구.]”


투덜거리며 그의 허리 부근을 다독이는 조그만 손은 무심한 듯하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했다.


소중한 제 동생들이 아파서.


또 저 자신이 자주 아프기에 가까운 아픔에 한없이 예민해지는 어린애.


실수로 주워 온 상대가 귀찮아도, 그렇기에 결국에는 품고 만다.


이게 견지오라는 인간의 본질이리라.


마법사란, 기적을 나눠 주는 존재들이니까…….


소년은 제 몸집의 반도 안 되는 여자애에게 형편없이 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응, 나 아파. 지오.”


“[……흠, 이상해. 가끔 키도 네가 꼭 내 말을 알아듣는 기분이라니까.]”


키도는 궁금했다.


너를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도 어쩌면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근심 없이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평탄하고, 평화롭게.


“너는 알파벳도 겨우 알아서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꿈에도 모르지. 키도Kiddo는 이름 따위가 아니야. 그냥 부르는 거지. 어이, 야, 꼬맹아.”


어이, 꼬마.


이봐, 쓰레기!


일인분도 못 하는 어린애일 때 그는 그저 그렇게 불렸다.


자국의 성자에게서 따온 ‘귀도 마라말디’라는 거창한 이름은 오솔리니 패밀리의 돈Don에게 거둬지면서 받은 이름이다.


단 한 번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름 없는 자였다.


“바다랑 가까운 오르티자는 걷는 곳이 다 마굴이야. 사람 살 곳이 못 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그곳을 ‘마굴가’라고 불러.”


던전에서 나온 쓰레기를 주워 연명하는 빈민들.


최하급 던전인 마굴은 각성자가 아니어도 입장이 가능하기에, 무자비한 어른들은 보호자 없는 마굴가 출신의 어린애들을 부품처럼 다뤘다.


키도는 그런 곳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거기서 태어난 건 아니었어. 마굴가 사람들이 나는 바다에서 주워 왔다더라. 어느 날, 익사한 임산부를 건졌는데 그 배 속에 내가 있었대.”


다들 필히 죽었을 거라 짐작하며 배를 갈랐다. 당연한 일이다.


부패한 시신의 배 속에서 나오지도 못한 아기 아닌가. 죽지 않았던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그럼 나도 엄마가 있긴 있었네?」


「낳아 준 어미 없는 사람도 있냐? 그래도 꿈 깨라. 시체가 워낙 상해 있어서 신원은 헌터가 와도 못 알아보겠던데 뭐.」



“헌터가 되면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매달리기도 했어. 외로웠거든. 다 소용없는 짓인 걸 알고 포기했지만.”


포기는 익숙했다.



희망이나, 꿈이나 그런 것은 굶주리지 않고 내일이 있는 자들이나 품는 것이다.


악착같이 오늘을 살아남기 바쁜 그에겐 사치에 가까운 욕심이었다. 키도는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현재에 안주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오, 자?”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키도는 누운 채 몸을 움직여 잠든 지오와 얼굴을 맞댔다. 물끄러미 감상했다.


그와 닮았으면서 다른 이방인.


처음 발 디딘 땅에서 초면의 부상자를 주워 와 추적을 피해 나흘이나 숨어 데리고 살아남는 조숙한 독기가 그와 닮았고.


불안과 고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삼키기만 하는 서투름이 또 그와 닮았지만…….


견지오는 타인을 품는 자다.


결정적으로 그 한 가지가 달라 그와 모든 것이 달랐다.


“…….”


키도는 손을 뻗었다. 규칙적이고 작은 숨결이 그의 손바닥에 묻어났다.


따뜻하다.


낯선 온정, 난생처음 제대로 느껴 보는 타인의 온기라서인지 멍하니 맛보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욕심이 문득 드는 것이다.


‘숙명이라면…….’


“네가 나의 운명이라면.”


이름도 못 가진 내가 처음으로 갖는 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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