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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특별 외전 2화 (344/352)

특별 외전 2화





“……!”


“[아…… 응! 안녕. 아이다호에서 왔어, 하하. 넌 여기 살-]”


“[닥치고 가만있어 봐.]”


“[응? 으응. 근데 너 영어 되게 잘한다…….]”


금발이 무안함을 감추고 넉살 좋게 말 붙여 왔지만, 대꾸해 줄 여유가 없었다.


키도는 눈앞에 선명히 떠오른 낯선 창을 아연해져 바라봤다.


이게 왜……?


‘나는…….’


나는, 각성자가 아닌데?





금발의 이름은 티모시 A 릴리와이트.


어디서 왔냐니까 아이다호에서 왔다고 당당히 대꾸하는 게 영락없는 우물 안 미국인이었다.


키도는 이 금발의 잘생긴 똥개를 길바닥에 버리는 대신 일단 주워 가기로 했다.


“안녕, 달링. 오늘도 신세 질게.”


“신세는 무슨- 꼬맹이! 야! 어딜 들어가! 여기가 무슨 하숙집인 줄 알아?”


“오…… 새해 복 많이 받아!”


“한여름에 무슨 새해 복을, 저 외국인 꼬맹이는 또 뭐야?!”


이사벨라가 등 뒤에서 욕설을 퍼부어 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방문이 닫히고, 키도가 툭 뱉었다.


“[너, 헌터지?]”


“……! [어, 어떻게 알았어?]”


티모시는 알기 쉬운 놈이었다.


이쪽에서 선수를 치자 일사천리.


키도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녀석의 신상 일체와 시라쿠사를 방문한 목적, 현재 심리 상태까지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호텔에서는 분명 다들 영어로 말했는데,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날도 어두워지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마침 귀도 네가-]”


쟤가 지 입으로 다 불었으니까.


키도는 모호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다 말해도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지만, 우리 티미 친구가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 싶네. 나의 뭘 믿고 이럴까?]”


그러자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티모시가 반문했다.


“[넌 그런 거 못 느꼈어?]”


“[뭘?]”


티모시 릴리와이트가 산뜻하게 웃었다.


“[운명…… 뭐 그런 거? 하하하. 난 널 보자마자 바로 알겠던데. 너랑 나는 친구가 될 거야. 아주 오래오래 갈.]”


‘……뭐 이런.’


키도는 경멸감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닳고 닳은 마피아 소년의 눈에 이 미국 촌놈은 불가해 그 자체였다.


세간에선 이런 놈을 두고 때 묻지 않은 순수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그리 표현해 주고 싶진 않다. 배알이 꼴려서.


‘이딴 게 S급 헌터?’


시칠리아에서 이딴 정신머리로 살았다간 일주일도 안 돼서 부위별로 해체당해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을 터다.


그런데 정말 ‘이런 게’ 그 괴물들의 꼭대기에 있다는 거야?


키도는 매사 거들먹거리던 헌터들을 떠올렸다. 단숨에 그네들이 우습게 여겨졌다.


이후로도 티모시의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땀으로 얼룩진 몸을 씻고 나와서, 이사벨라가 욕설로 차려 준 저녁을 먹고, 이부자리에 누울 때까지 계에속.



친구 하나 없이 자랐다더니.


그 비슷한 게 생기자 정도를 모른다. 그깟 친구가 뭐라고.


그런 건 밥을 주지도, 집을 주지도 않는데.


키도는 생각했다. 아방한 금발은 아메리카 미디어가 창조해 낸 편견이 아니라 진짜였나? 속으로만 중얼거리려던 말이 툭 튀어 나갔다.


“너 참 편하게 살아온 모양이구나.”


“[응? 뭐라고?]”


그 위대하신 별들께서 통역 기능은 안 주나 보지.


“[아니, 아냐. 달링. 그보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


“[응? 뭐라고? 못 들었어.]”


“[그러니까 ■■…….]”


‘……뭐야, 이게 왜 이러지?’


분명 똑바로 발음했는데, 중간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음성이 흩어졌다.


키도는 당혹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티모시를 제대로 응시하면서 다시 한번 [심판자]에 대해 물으려는데.


[ ― 오류 발생. 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느려졌다. 아니, 세상이.


피처럼 새빨간 경고 창과 함께 세상이 그대로 ‘정지’한다! 키도는 다급한 숨을 들이켰다.


[에러 코드: 접근 권한 부족]

[허용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규율에 따라 관리자 권한으로 임의 필터링합니다.]



‘착각이…… 아니었어!’


분명 읽을 수 있다.


그에게도 이 [창]이 보인다!


쿵, 쿵. 새파란 동공이 확장했다. 소년은 거세게 달음박질치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전율이었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스스로 자아를 인식한 순간부터다.


허공의 시야 한편에, 줄곧 자리해 있던 반투명한 창 하나.


사람들은 말했다.


선택받으면 [창]이 보인다고.


그 [창]이 황홀하고 비현실적인 힘을 주며, 또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고.


그리고 세상은 그 선택받은 자들을 ‘각성자’라고 부르며 우러러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키도 역시 한때 그런 삶을, 그런 희망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들뜨고 설렌 허영심으로 제게 주어진 기회를 거머쥐려 애썼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창]은 문자들이 전부 깨져 있는 탓에 읽을 길이 없었다.



「상태창의 문자들이 깨져 있다고?」


「그런 경우도 있나? 그럼 바벨이랑 어떻게 소통하지?」


「진짜예요! 반투명하고, 여기, 여기에 보이고. 당신들이 말한 거랑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해결 방법 없어요?」


「글쎄다. 그런 케이스는 우리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바벨탑에는 가 봤고?」


「타, 탑에 가지 않아도 각성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아, 그래. 확실히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 얘야, 그럼 별과 소통하고 있는 거니?」


「별……이요?」


「그것도 아닌가 보네. 흐음, 솔직히 네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힘든걸.」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당신들이 그러고도- 윽!」


「이놈이 뒷정리하라니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헌터님들! 요놈이 무례를 범한 것은 아닐는지.」


「이봐, 이런 어린애도 여기 소속인가? 자기가 각성했다고 하던데.」



「네에? 이 녀석이요? 아이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놈은 마굴가 출신입니다, 마굴가! 어디서 주워들어 행세를 하는 거겠지요. 허허!」


「아니야! 나도 보여, 보인-」


「씁! 닥치지 못해?!」



입 안이 마른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시간은 여전히 인지 범위를 넘어서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아주 굴욕적이겠지.


철모르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비참함에 젖을 게 분명했다.


그런 두려움이 자존심 강한 그를 사로잡았지만, 키도는 망설이다가 끝끝내 형편없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 내어 불렀다. 선택받은 자들의 신을.


“……바벨.”



띠링!


[당신은 세계가 선택한 ‘후보자’입니다.]

[바벨 네트워크의 공증을 받은 적법한 후보자로서 당신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양도받을 수 있습니다.]


『심판자審判者

『사명: 세계를 대리해 왕을 심판하라』

· 양도 조건:

1 - 선대 ‘심판자’의 부적격 증명

2 - 선대 ‘심판자’의 역할 포기

3 - 제1순위 후보자의 이의 신청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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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적: 견지오



약속한 것처럼 차르륵 나타나는 허공의 문자열에 쾌감과 전율을 맛볼 새 없었다.


키도는 덜컥 굳어 안내 창의 최하단, 낯설게 박힌 이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티모시가 그를 부르고 또 부를 때까지 계속 그렇게.


왜?


‘분명히 처음 보는 이름인데.’


어째서 이런 참담한 기분이 드는 걸까.


시궁창 출신의 마피아 소년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



시라쿠사는 여전히 시칠리아 마피아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가 터를 잡았던 오르티자 섬은 더욱더 불모지로 변했다.


“빌어먹을 마리아.”


“신성 모독입니다.”


“저게 눈물 흘리고 쇼만 벌이지 않았어도 이 땅은 제법 평탄했을걸. 내 말이 틀려, 자기?”


“틀린 건 아니지만 못 들은 걸로 하고 싶네요.”


부하가 툴툴거렸다. 멀리 자리한 성당을 흘긋하고는 부정 탈까 얼른 성호를 긋는다.


마피아에게 신앙이란 삶의 부표였다.


지옥에 떠내려갈 그들을 마지막의 마지막에 건져 내 줄.


독실한 신자들로 이뤄진 조직 내에서 냉담자라곤 오직 키도 한 명뿐이었다.


“평화로웠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뭘 먹고 산답니까. 마리아가 보우하사, 다 이렇게 먹고사는 거죠, 카포.”



고작 열여덟 살의 지부장Caporegime.


잔혹한 손속으로 지금 지위까지 오른 탓에 감히 만만히 여기는 자 없었지만, 그럼에도 워낙 어린 나이였다.


오래 봐 온 부하들은 이렇게 가끔 그를 동생 대하듯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성큼성큼 걸어간 키도가 시체 정수리에서 손도끼를 꺼내 드는 것을 보고는 금방 쏙 들어갔지만.


“장갑.”


“여기 있습니다.”


키도는 피에 젖은 가죽 장갑을 버리고 부하가 정중히 건네는 새것으로 갈아 꼈다.


“시신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자는 제르마노 패밀리의 장남입니다. 니콜라스가 물고 빠는 후계자였죠.”


“그래? 고맙네. 귀하게 보내 준 선물인데 잘 전시해 둬야지. 두오모 광장에 걸어 두자.”


“…….”


저 인간 제정신으로 하는 얘긴가?


그때, 피로 물든 폐허를 가로지르는 카포의 단발 위로 틈새의 서광이 내렸다.


빛이 오가는 각도에 따라 연록빛이었다가 청색이었다가…… 파도치는 듯한 신비로움에 항명하려던 수하들이 입을 닫는다.


저게 방금까지 적대 패밀리의 기습을 역으로 돌려 80여 구의 시신을 만들어 낸 자라니.


성모의 안방에서 신을 불경하게 만드는 작자였다.


“카포의 말은 진짜…… 거역하기가 힘듭니다. 왜 그런 얼굴로 이런 일을 하셔선.”


“고마워. 아차차, 또 깜빡할 뻔했네. 바티칸에서 뭘 보낸다며? 오늘이었지?”


“기억하시네요?”


“시라쿠사에서 마지막 임무잖아. 이것만 처리하고 나도 슬슬 팔레르모로 올라가야지. 어디야?”


“시라쿠사역, 2시 도착입니다.”


“기차? 배가 아니라?”


“배로도 옵니다. 일행을 나눠 온다는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알아볼까요?”


“됐어. 맡은 일만 하면 되지. 귀찮네.”


폐건물을 빠져나오자 얇은 셔츠만 걸친 어깨 위로 부하들이 바삐 코트를 얹는다.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키도는 대수롭잖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오는데?”


“한국. 근래 뜨고 있는 강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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