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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를 위한 바른 생활 안내서 특별 외전 1화 (345/352)

특별 외전 1화






/ 키도 외전


外. 지중해에서 가장 값진 것




“내 고향은 시칠리아로 대충 알려져 있지만, 사실 시라쿠사 안에 있는 더 작은 섬이야. 오르티자Ortigia라고 들어 봤어?”


“×나 안 궁금해.”


“궁금해해 주면 안 돼?”


“엥, 제가 왜요? 바빠 뒈지겠는데.”


“게임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나아아중? 님 그런 명언도 몰라? 오늘의 내 경험치가 내일 내 부모를 죽인 원수의 경험치가 된다.”


“처음 들어 봐. 정말 태어나서 처음.”


“히엑, ‘무지성과금황제’ 님께서 한 말인데 정녕 모른단 말임? 말세다, 쯧쯧.”


“누군데? 내가 모르는 신인 랭커인가?”


“나야.”


“…….”


“댓츠 미. 한국 섭의 지배자. 위대한 킹지오.”


“……달링, 제발 집중해 줄 수 없어?”


“아, 그니까 그 낡은 내 폴폴 풍기는 구닥다리 과거 스토리를 내가 왜 궁금해 해야 하냐구. 논리적으로 설득해 보든가.”


“그야…….”


모니터에만 집중한 채 이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정인을 보며 귀도 마라말디, 키도가 싱긋 웃었다.


“이번까지 세면 101번째 말하는 거라서.”





이탈리아, 시라쿠사Siracusa.


철학자 키케로가 일컬어 표현했다.


모든 그리스인의 도시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시칠리아섬 전체가 지중해 풍경으로 유명하긴 해도, 이곳은 해안과 직접 맞닿은 항구 도시.


푸른 지중해에 쌓인 역사만큼이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었으니, 휴양지로 명성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옛날에는 말이다.



“비켜!”


“부상자 지나갑니다! 비키세요!”


“성모상 버프가 벌써 끝났나?”


“쓰읍, 맞네. 곧 일몰이네. 다들 와인이나 한잔하러 갑시다.”


“이런 곳에도 와인을 파는 데가 있습니까? 와우… 포도밭이 남아 있긴 하대요?”


“이곳 사람들 자존심 아니겠냐. 한때 프랑스 와인이랑 투 톱이었는데. 식당도 괜찮은 곳 몇 개 남아 있더라.”


“프랑스는 그래도 성녀 나타났다고 나름 살 만해진 모양이던데, 같은 유럽이어도 이렇게 천지 차이라니. 쯧쯧.”


“외부인인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죠.”


“그렇긴 해. 우리야 뭐, 지금이 좋지. 이만큼 환경 좋고 짭짤한 사냥터가 또 어디 있겠어?”


<게이트 아웃브레이크>.


세상의 메커니즘을 한순간에 뒤집어 버린 그 청색 재앙은 이 아름다운 도시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듣기론 S급 각성자만 나타나면 살길이 트인다는데, 이 나라에는 도통 그런 행운이 찾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하늘에는 연신 구멍이 뚫리고, 땅에는 ‘마굴’이라 부르는 최하급 던전들이 들끓고.


곡소리 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시라쿠사 정도면 차라리 형편이 괜찮은 축에 속했다.


비록 도시가 무너지고, 생활권이 망가지고, 사람들이 떠나긴 했지만…… 다른 이들이 자리를 채웠으니까.


헌터.


새롭게 바뀐 세상의 주역들, 초인 각성자들이 이곳 시라쿠사에 모여드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대 유적의 도시답게 최하급 마굴조차도 부산물을 꽤 괜찮게 뱉어서.


둘째, [눈물의 성모상]이 하사하는 버프 타임 때문에.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다.


사람들 일부가 각성한 것처럼, 급변하는 세상과 함께 유형물들이 개화한 케이스.


그런 물건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쥐도 새도 모르게 시나리오 아이템으로 변해 누군가에게 기연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


대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보물들이 진화하는데, 종교와 관련된 성물일 경우엔 특히나 그 효과가 매우 드라마틱했다.


이곳 시라쿠사의 성모상처럼.


“성모상 버프, 직접 받아 보니까 차원이 다르긴 하네요. [지속 치유]에 [공포 차단], [적군 피해 증가]라니. 그것도 일출부터 일몰 시간까지. 사기 아니에요?”


“괜히 하급 헌터들이 목숨 걸고 이 먼 데까지 관광 오겠어? 우리 말고도 길드들 여기저기 깔린 거 봐라.”


“막말로 F급도 E급 행세할 수 있는 곳이 여기잖아.”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급 보물을 이렇게 작은 도시가 계속 지킬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바티칸에서 기사단 배치한다고는 하던데, 뉴스 보니까 국제 연맹도 헌터들 보낸다고 하고.”


“아, 역시.”


젊은 헌터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그럼 성모상도 계속 여기 있진 않겠-”


챙그랑!


레스토랑 안,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다.


일몰 지는 풍경의 창가 자리다. 와인 잔을 냅다 집어 던진 쪽은 풍채 좋은 중년의 남자.


“이,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젖도 못 뗀 걸 주워다가 먹여 주고 길러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고함이 터진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안색으로 수염을 푸들푸들 떨어 대는 것이 보통 성질머리가 아니어 보였다.


지켜보던 젊은 헌터는 당황해 두리번거렸다. 얻어맞은 상대 쪽의 이마에서 피가 나는데도…….


‘아무도 안 말린다고?’


“이봐-”


“쉿. 가만있어.”


곧바로 제지당한다. 영문을 몰라 돌아보자 그의 선배가 속삭였다.


“마피아들이다. 함부로 끼어들지 마.”


“마, 마피아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래서 애송이는 안 된다니까. 그 ‘시칠리아’라고.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의 본산.”


마피아의 기원은 본래 자경단이다.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던 마피아들은 땅에 혼란이 들끓자 잊었던 과거의 의무를 들먹이며 하나둘씩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 그들이 정부와 사회가 무너진 틈을 타 고향을 장악하고자 돌아왔음을 모르는 자 없었다.


“팔레르모처럼 큰 도시에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왜, 이런 작은 곳에…….”


“돈이 모이는 곳이니까 그렇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신사가 대신 답했다.


“시칠리아 전역이 마피아들 파벌 싸움으로 미어터지는데, 성모의 은혜가 내린 이 땅만 비어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소? 우습지만 저들 대부분이 독실한 신자인데.”


“…….”


“선배들 덕에 목숨을 구한 줄 아시오. 저들, 오솔로니 패밀리는 이 근방에서도 잔혹하기로 이름난 패밀리라오.”


그 말이 틀리지 않은지, 레스토랑 내 손님들이 언제 그쪽을 돌아봤냐는 듯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젊은 헌터는 말없이 착석했다.



“매니저님, 어떡하죠? 손님들이 나가겠다고 주문 취소해 달라는데.”


“있어 봐. 제기랄, 마라말디 저 자식은 왜 하필 오늘 여기서-!”



타아앙!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큰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렸던 매니저가 넋이 나간 채 상체를 일으켰다.


영겁 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드르륵, 정적 속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울렸다.


외양은 어림잡아 열넷, 열다섯 살쯤 됐을까?


이곳의 어떤 신사보다도 우아한 몸짓으로 일어난 미소년이 제 몸에 기대 쓰러진 중년인을 검지로 툭 밀쳤다.


그 가벼운 손짓에 몇 초 전까지 핏대 세우며 고래고래 악쓰고 있던 덩치가 바닥으로 힘없이 나동그라진다.


이마 정중앙에 구멍이 뚫린 채로.


“얼굴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오늘 잘 곳이 없어진다고. 길바닥에서 자면 얼마나 뼈가 시린 줄도 모르면서.”


비현실적인 장면 속의 소름 끼치도록 나긋한 미성이었다.


그저 얼어붙어서 그를 쳐다보는 얼굴들.


관객의 존재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양 소년이 몸을 돌려 그런 그들을 마주 본다.


지척의 지중해를 빼닮은 색.


창백하고 무성의한 손길로 이마를 훑자 눈부신 에메랄드빛 머리칼을 타고 붉은 와인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매캐한 화약내가 가시지 않은 소형 리볼버가.


“……꺄아아아아아악!”


“주, 죽였어! 사람을! 살인이야!”


화들짝 정신 차린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뛰쳐나갔다.


앞다투어 도망치는 그들에게서 음식값을 받을 생각도 못 했다. 매니저는 입구 쪽으로 걸어오는 소년을 경직된 얼굴로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의 인지가 늦은 데에는 저 매혹적인 외모 또한 한몫 두둑이 할 터.


비천하다는 말로도 모자란 놈의 출신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한 낯짝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악마와 천사가 불륜을 해서 낳은 자식이라 버려진 게 아닐까, 제법 정신 나간 의혹이 들기까지 하니.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패밀리 간부를 죽여?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정신이 나간 줄은 내 진작 알았지만!”


“참아 주려 했는데 뺨을 치려 하잖아.”


“그렇다고 헤드 샷을 날려? 맘마미아, 이런 또라이 자식! 총은 또 어디서 난 건데? 어제까지 근신이었다며!”


“어떤 누나가 안겨 주던데. 걱정 마. 값은 치렀거든.”


“값?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돈만이 재화는 아니지. 이런 세상에선.”


순진한 척 굴지 마라, 소년이 눈꼬리를 사르르 접어 웃었다.


그 낯짝이 여우 새끼와 다를 바 없고.


‘이 녀석 나이가…….’


아이고, 말세긴 말세다. 매니저가 뒷골을 잡고 어서 나가라 손짓했다.


“돈Don 오솔로니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당분간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배고프면 어떡해?”


“알 바야?! 돈도 안 내는 새끼가!”


“오르티자에서 음식다운 음식을 내오는 건 여기 주방장뿐인데.”


“꺼지라고! 당장!”


코사 노스트라의 파벌 중 하나 오솔로니 패밀리의 최연소 정회원 귀도 마라말디, 열세 살의 키도는 어깨를 으쓱이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세상인심 참 각박하다 생각하면서.





‘오늘은 어디에서 자지?’


판칼리 광장을 지나 다리를 건넜다.


오르티자를 벗어나 확 트인 시내로 들어서자 성모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시라쿠사 어디에서나 보이는 저 백색 바실리카가 바로 그 유명한 성모상이 안치된 성소聖所였다.


‘마리사, 줄리에타…… 아니지, 줄리는 안 되겠군.’


할머니의 유일한 유품이라던 금목걸이를 그가 훔쳐다 판 일을 아직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 키도는 혀를 찼다.


“이런, 결국 이사벨라밖에 없나.”


어릴 때가 차라리 좋았다 싶다.



그땐 별 노력 없이도 불쌍하고 귀엽다며 재워 주는 사람이 천지에 깔렸는데…….


더 이상 귀엽지 않아진 슬럼가의 고아, 그것도 마피아 조직원을 인심 좋게 재워 줄 사람이라곤 이제 호구와 변태, 그리고 빚쟁이뿐이었다.


‘빚쟁이보다는 호구가 편하긴 한데.’


이 구역 호구들은 모 파란 머리가 다 털어먹은 탓에 남아도는 호구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어디서 돈 많고 등신 같은 호구 하나 안 떨어지나?’


“[아뇨, 구걸하는 게 아니라! 잠깐 제 말을 들어 주시면, 저기요, 헤이! 가지 마세요!]”


“……?”


키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영어?’


뜯어먹을 것들이 깔린 시라쿠사에는 외국인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저 연령대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많이 쳐줘도 저의 동년배.


게다가…….


‘도망 나왔군.’


견적이 딱 그렇다.


잔뜩 땀에 젖어 흐트러진 금발 하며, 귀해 보이는 옷차림과 주인 잃은 개처럼 갈피 잃고 요동치는 두 눈.


결정적으로, 뒤가 불안한지 계속 사방을 두리번대는 태도까지.


“[하아, 대체 왜 아무도 못 알아듣는 거야…… 천사님들은 반응도 없고. 미워요!]”


울어? 혼자 허공에 삿대질하다가?


‘미친놈인가?’


물론 워낙 정신 나간 시대라 정신병은 별로 흠도 아니었다. 환청이나 환각을 보는 듯한데 어린 나이에 안 됐다.


‘값은 나가겠지만.’


귀해 보이는 도련님이니 잘 갖다주면 보상을 넉넉히 받겠지.


뭐, 안 주겠다면야 받아 낼 자신도 있고.


울먹이던 금발 미친놈은 오도 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더니 이제 거의 혼자서 탭 댄스를 추고 있었다.


좋아.


키도는 상냥한 낯을 가장하고 다가갔다.


작정하니 거의 성자처럼도 보이는 그의 미소는 호구한테라면 백이면 백 먹히는 전매특허 필살기였다.


“Americano?”


바로 그 순간.


[세계의 롤 플레이어, ‘심판자’와 접촉하였습니다!]

[숙명적인 만남으로 세계율의 안배를 받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일부 충족하였습니다.]

[접근 권한 미달로 인해 강제 잠금 처리되었던 선천 특성 ‘??의 저주’가 복구 단계에 들어갑니다.]

[숨겨진 타이틀 ‘???’가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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