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
“무리한 부탁일까요?”
클레이의 표정이 살짝 굳자 밀리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욕심이었다. 만약 클레이가 반대한다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묵하던 클레이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다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써도 괜찮을까?”
“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참석하게 해 주세요.”
그게 부모님을 향한 자신의 복수였다. 불행을 강요받으며 살았던 것에 대한. 그리고 비참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깨끗이 털어 버리고 싶었다. 태어난 것 자체를 저주했던 아들이, 짐승이 소중한 사람을 만나 기어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가 됐다.
밀리안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사실은 다시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게 싫다. 평생,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본다면 또 상처를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밀리안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만 있자, 클레이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제가 당신과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요.”
“…….”
“나는 짐승이 아니라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러니 괜찮다고 해 주세요.”
“물론이야. 내가 당신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잖아.”
그런 의도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강제로 데려다 놓고 보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돈이 미친 듯이 들어가는 결혼식을 위해 밀리안을 설득하려던 애초의 계획도 마치 운명처럼 맞아떨어졌다.
“괜찮아. 아무도, 그 누구도 당신을 상처 입힐 수 없어.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해.”
그런 인간이 있다면 자신이 혼내 주겠다며, 마치 연약한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하는 클레이의 다독임에 밀리안이 작게 웃었다. 다 자란 성인이었다, 자신은. 과하다고,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말려야 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이러다 버릇 나빠지겠어요.”
“나처럼은 아닐걸.”
“……클레이가, 어때서…….”
밀리안의 옹호에 클레이가 혀를 찼다.
“버릇이 나빠질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는 걸 걱정해야 할 것 같아.”
“…….”
“조금 전까지 내가 제멋대로 행동해서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었던 걸 벌써 잊어버린 거야?”
말문이 막혀 입을 뻐끔거리던 밀리안은 결국 웃어 버렸다. 그의 웃음에 클레이는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자꾸 그렇게 봐주니까 내가 점점 더 제멋대로가 되잖아.”
“당신은 원래 제멋대로였잖아요. 제 탓을 하는 건 부당합니다.”
“그래, 맞아. 그러니까 당신이 제대로 고삐를 잡고 있어 줘야 해.”
“왜 저만…….”
“내가 당신보다 제멋대로니까?”
클레이가 키스해 달라며 눈을 감았다. 고삐. 목줄의 대가. 밀리안은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맞댔다. 셀 수 없이 입을 맞췄음에도 항상 가슴이 떨렸다.
* * *
밀리안은 클레이가 제 품 안에서 곤히 잠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게 흘러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클레이가 제 부모를 어떻게 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걱정하던 그녀의 마음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불안에 떨며 괴로워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것이었다. 그걸 클레이에게 말하자 그녀는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주아주 보기 좋았다며, 다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그때 클레이의 표정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역시 클레이가 제게 집착하고 떠날까 봐, 혹은 실망할까 불안해하고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감금까지 했던 것을 달게 느꼈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마음이었다.
클레이는 자신의 과거를 안쓰러워했지만, 그녀의 과거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예전에 처음 별채의 서재에 갔을 때 어렴풋이 들었던 것이긴 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상대의 과거가 불행했던 것이 기쁘다니. 밀리안은 제 비열한 마음에 씁쓸해졌다. 클레이가 항상 웃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가 아팠던 과거가 있다는 게 안쓰러운 한편, 기뻤다. 이유가 뭘까. 기뻐할 이유가 없는데 기뻐하는 스스로가 경멸스럽다.
밀리안은 클레이의 볼을 가린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의 과거가 아파서, 좋아.”
“……나도.”
“-!”
깊게 잠든 줄 알았던 클레이가 반짝 눈을 뜨자 밀리안이 놀라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있던 손을 황급히 떼어 냈다. 클레이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아 제 입술에 붙였다.
“왜 안 자나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미안해서요.”
“그게 왜?”
당연한 거 아닌가? 클레이는 그의 손가락 곳곳에 입술을 비볐다. 그러고는 손가락 하나를 입 안에 넣고 길게 빨았다. 밀리안의 몸이 흠칫 떨렸다. 손가락 안쪽의 주름을 혀로 핥아 올리자 밀리안의 몸에서 힘이 풀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클레이가 그의 몸 위를 타고 올랐다.
매끄러운 살갗이 맞부딪쳤다. 클레이가 그의 허벅지 사이로 다리 한쪽을 가르고 집어넣자 밀리안은 간지러운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떨었다. 클레이가 이럴 때마다 몸이 단번에 달아올랐다. 곧추선 성기가 그녀의 허벅지에 딱 달라붙어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밀리안의 반응에 클레이가 착한 몸이라고 칭찬했다.
밀리안은 떨리는 눈으로 제 위를 덮은 클레이를 바라봤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조도가 낮은 조명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예쁘다. 너무 예뻐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자 클레이가 낮게 웃으며 살짝 입을 맞춰 왔다.
“당신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슬프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온전히 나뿐이라는 거잖아.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지.”
클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허벅지를 움직여 그의 고환부터 성기까지 은밀하게 자극했다. 밀리안의 몸이 자연스럽게 튀어 오르자 그의 양손에 손가락을 얽어 고정했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살은 손가락이 겹치는 것에도 쉽게 반응했다.
“읏, 그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면 안 돼?”
“……상식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상식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클레이는 상체를 내려 그의 가슴에 제 가슴을 뭉개고 비볐다. 꼿꼿하게 솟은 유두가 서로 겹쳐지며 자극하자 두 사람의 입에서 젖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 번 더 해도 돼? 여기, 괜찮아?”
클레이가 이미 애액을 줄줄 흘리고 있는 성기 끝을 잡고 요도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살짝 붉어졌던 좁은 구멍이 꿈틀거리며 제 위를 누른 손가락 표면을 빨았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낸 클레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잘 빠네?”
“아, 제발……, 그런 말 좀.”
“당신 구멍이 요즘 애교가 얼마나 늘었는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걸?”
안 그래도 좁은 구멍이 제 관에 착 달라붙어서 야살스럽게 조일 때마다 귀여워 미칠 것 같다며 클레이가 그의 입술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였다. 부드럽고 말랑한 살점이 말을 할 때마다 움직여서 그조차도 자극이 됐다. 밀리안이 머리를 침대에 대고 문지르며 몸을 떨었다.
“날 가여워해. 더 그래도 돼. 아니, 그렇게 해 줘.”
“클레이.”
“내게 실망할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가엽다는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망가고 싶어질 때마다 조금 더 망설여질 테고, 당신을 잡을 기회가 더 생기겠지. 클레이의 낮은 속삭임에 밀리안이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갈색 눈동자에 물기가 감도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조금 더 느끼면 눈동자를 덮고 있던 물기가 눈꼬리로 모여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럼 클레이는 그 눈물을 혀로 핥아 먹고는 했다. 보상처럼 맛본 눈물은 살짝 짜고, 매우 달콤했다.
그녀는 밀리안의 허리 양쪽에 무릎을 대고 섰다. 그 상태로 엉덩이를 내려 음부에 그의 성기를 문질렀다. 뿌리부터 타고 올라가 귀두에 음부가 닿자 그 축축하고 뜨거운 구멍에 성기가 살짝 들어왔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귀두만 잡아먹은 채로 배에 힘을 줬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던 밀리안이 짜릿한 신음을 터트렸다. 고작 그의 신음만으로도 허리가 바짝 곤두섰다. 쾌감이 전신을 타고 내달렸다. 더 울리고 싶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싶었다.
조금 더 깊이 성기를 삼키자 그의 요도 안으로 관이 밀고 들어갔다. 좁은 구멍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빨았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런 쾌감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클레이는 완전히 그의 성기를 잡아 삼킨 뒤 등을 휘며 신음했다.
상체를 자연스럽게 가리며 내려온 머리카락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출렁거렸다. 그때마다 단단하게 솟은 가슴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밀리안은 연신 울음과도 같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눈을 홀리는 클레이의 육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더듬거리며 손을 뻗어 가슴을 움켜쥐자 여자의 속살에 파묻힌 성기가 꽉 조였다. 성기의 감각만으로도 여자의 안이 어떤지 알 것만 같았다. 살짝 주름진, 그러면서도 축축하고, 또 뜨겁게 달라붙었다. 음탕하게 요동치며 성기를 강하게 빨았다. 성기가 조여지자 덩달아 요도 구멍까지 좁아져 안을 파고든 여자의 또 다른 성기가 은밀한 내부를 자극했다.
“흐아, 아, 아흣, 응…….”
“하아.”
그 상태만으로도 쾌락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여자는 또 하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전신이 성기가 된 기분이었다. 클레이에게 잡혀서 오도 가도 못 한 채로 아래가 빨리고 요도가 깊게 쑤셔졌다. 클레이가 움직일 때마다 밀리안의 몸이 덩달아 위로 튕겨 올랐다가 내려갔다. 끔찍할 정도의 쾌락에 벌벌 떨면서도 밀리안은 더 여자의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리고 여자에게 구멍이 쑤셔지고 싶어서 허리를 튕겼다.
하얀 피부가 열기로 붉어지고, 모공을 뚫고 나온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갔다. 쾌락과 함께 나온 부산물들은 모두 페로몬이 응축돼 있는 것처럼 짙은 향기를 뿜어냈다. 그건 클레이도 마찬가지였다. 각인한 뒤로 두 사람은 상대의 페로몬에 더욱 예민해졌다. 한 명이 조금만 성욕을 느껴도 상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됐다. 틈만 나면 불이 붙어 버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밀리안의 눈동자 전체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물기가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관자놀이를 타고 귓불 아래로 사라지기 직전, 클레이가 상체를 내려 그 눈물을 혀로 핥았다. 삽입은 조금 전보다 천천히, 하지만 더 깊어졌다. 하체를 뒤로 빼자 물기에 축축하게 젖은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밀리안의 성기는 길고 두꺼웠던 탓에 마음껏 허리를 흔들어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