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조금 전에 제 성기를 묻었던 곳에 얼굴이 뭉개졌다. 그것만으로도 밀리안 역시 자신의 체액으로 더러워졌다. 눈을 들어 클레이를 바라보자 오만한 얼굴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래, 이 여자는 이런 표정이 잘 어울렸다.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던 황당한 행동보다는 훨씬.
밀리안은 제 체액으로 범벅이 된 여자의 가슴을 혀로 핥았다. 그도 모자라 도톰한 살덩어리를 물고 빨았다. 비릿하고 역겨워야 마땅할 체액의 맛은 여자의 살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클레이의 가슴, 얼굴, 어깨, 손. 그의 체액으로 더러워진 부분을 모두 핥고 나서도 그는 부족하다는 듯 그녀의 온몸을 만지고 빨았다. 서슴없는 밀리안의 행동에 이번엔 클레이가 당황했다. 제 요구에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로 당황해하며 수치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즐겁게 감상할 의도였는데, 밀리안은 제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의 상체 위에 올라탔던 클레이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등을 돌려 엎드린 채로 밀리안에 의해 온몸이 빨렸다. 섹스의 전조 같은 애무가 아니었다. 정성스럽고 부드러웠지만, 탐욕스러웠다. 손가락의 마디, 심지어 발가락까지 입에 물고 빨아들이는 밀리안의 행동은 그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었다.
움푹 팬 등줄기에 입술을 대고 천천히 음미하듯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행동에 클레이는 나른한 한숨을 흘렸다. 제 몸을 탐하는 그의 모든 행위는 부드럽다 못해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와 자신은 이렇게나 다르다. 흑과 백의 가장 반대편의 서 있는 것 같다. 자신은 밑바닥의 가장 은밀한 날것을 끌어내 그를 탐하고 싶어 하고, 밀리안은 가장 고결한 것을 숭배하는 듯이 저를 탐했다.
날 망가트릴까 봐 겁이 난다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욕구가 이런 것이면서?
클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어린 양을 유혹했던 악마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새하얀 백지에 검은 물을 떨어트리고 싶다. 망가트리고 싶어. 정말 극에 치달아 절망한 얼굴로 저만을 붙들고 떠는 남자가 보고 싶다.
제 본성은 이렇게나 저열하다. 그를 제멋대로 탐하고 상처입혔던 그때 그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참고 또 참을 뿐이었다. 미움받기 싫어서. 자신을 거부하는 밀리안을 보면 무너져버릴까 두려워서.
클레이는 천천히 등을 돌려 밀리안을 바라봤다. 약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몽롱하게 젖은 눈동자가 찬란했다. 온전히 자신을 의지하는 순종적인 얼굴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저렇게 순결한 얼굴을 해놓고, 성기는 한계까지 세웠다. 그 간극이 어찌나 황홀한지 아직 제대로 자극을 받지도 않은 음부가 제멋대로 움찔거리며 안을 조였다. 흥건할 정도로 젖어버린 곳에서는 저를 꽉 채워줄 남자의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벌려 아직 그가 탐하지 않은 유일한 곳을 내보였다. 남자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클레이는 팔을 뻗어 그의 목에 감았다. 정결한 얼굴에 정욕이 흠뻑 스며드는 모습을 즐기며 그의 귓가에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서.”
“클레이.”
“안아주세요, 주인님.”
“……아직도 주인님입니까?”
마치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밀리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클레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귓불을 깨물었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내 주인님이야.”
아주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이 남자가 없으면 살 수 없을 테니 그는 제 인생의 주인이 맞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 제게로 바짝 밀착시키자 한껏 달아오른 음부에 성기가 닿았다. 그대로 허리를 들어 올려 제 안으로 이끌었다. 좁고 뜨거운 곳에 두툼한 성기가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오자 안이 한껏 벌어졌다. 예민한 속살이 사정없이 눌리고 긁히는 감각이 선연하다. 클레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삽입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절정이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흣. 너무, 좋아, 아, 미친…….”
“아, 클레이, 안이……으읏!”
성기의 앞부분을 잡아먹은 음부가 미친 듯이 달라붙었다. 정액을 쥐어짜는 듯한 음탕한 움직임에 밀리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뼈가 모두 녹아 말랑한 액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성기를 빠는 음탕한 속살에 밀리안은 바짝 세웠던 허리를 덜덜 떨며 사정했다.
“하, 진짜 끝내주네.”
먼저 절정에서 빠져나온 클레이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직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안이 진동하고 있었다. 밀리안은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클레이는 그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살이 손에 착 감겼다.
아래가 축축했다. 밀리안과 자신의 사정액으로 흠뻑 젖어서 고작 숨만 쉬고 있는데도 찌걱거리는 음탕한 소리가 났다. 배에 힘을 줘 살짝 숨이 죽은 성기를 바짝 조이자 밀리안의 몸이 다시 흠칫 튀었다. 당연히 성기도 힘을 받고 부피를 키웠다. 클레이는 기다렸다는 듯 성기를 듬뿍 빨아들였다.
“자, 잠깐만, 조금만 뒤에……. 아!”
“쉬이, 너무 빨리 가서 미안해. 이번엔 당신을 더 만족시켜줄 테니까. 응?”
“아니, 충분히 만족했, 아, 잠깐, 흐읏, 으응!”
결합이 깊어질수록 요도를 파고드는 여자의 관이 앞을 깊숙이 찔렀다. 예민하고 좁은 요도 안을 한껏 벌리며 끝도 없이 들어왔다. 허리에 여자의 다리가 단단히 감겨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
마침내, 한계까지 파고든 관이 전립선을 찍어 누르자 밀리안이 허리를 휘며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하나씩 차근차근 가르쳐주겠다던 클레이의 말과는 달리 결국 평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 * *
클레이는 온몸을 다해 뜨거운 밤을 지펴 준 밀리안을 위해 대니얼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벤틀로마저 막아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밀리안이 그동안 피임약을 먹고 있었다는 클레이의 스치는 말 한마디에 벤틀로가 당장 대니얼 크래포드를 찾아갔다. 서슬 퍼런 벤틀로의 얼굴에 사태를 직감한 대니얼이 바짝 얼어붙었다.
“베, 벤틀로, 저기, 그게…….”
“저희는 해야 할 말이 있죠?”
인자하게 웃는 얼굴이 더 살벌했다. 대니얼은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어요!”
“설마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렇게 멍청할 줄 몰랐는데 의외라며 벤틀로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니얼은 얼어붙은 얼굴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게, 밀리안이 부탁해서 어, 어쩔 수 없이…….”
“피임약처럼 중요한 약을요?”
“미, 밀리안의 몸에 맞게 처방한 거고, 거, 건강에도, 문제가 없,”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습니다.”
“무, 물론이죠. 제가 머, 멍청했어요. 그럼요. 모두 제 잘못이죠…….”
벤틀로와 클레이는 대니얼에게 밀리안을 누구보다 우위에 두라고 말했다. 디어 가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밀리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거였다. 들키게 될 만약의 사태를 위해 클레이로부터 지켜 주겠다고 약속까지 받았는데, 그의 건강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런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밀리안 님의 말은 모두 들어주셔야 합니다.”
“……네?”
황당한 벤틀로의 말에 대니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 그럼 내가 왜 이렇게 무릎까지 꿇어 가며 빌어야 하는 거지? 억울함이 철철 배어 나오는 그의 표정에 벤틀로가 혀를 내찼다.
“앞에서만 그러란 말입니다.”
“아니, 그건 기만…….”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분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데요.”
“…….”
“밀리안 님을 가장 우위에 두라고 했던 말의 뜻이 바로 이겁니다. 명심하세요.”
“네에. 하,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기만이 맞는 것 같은데……. 대니얼은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이번에는 밀리안 님께서 특별히 넘어가 달라고 하셔서 경고 선으로 끝나는 겁니다.”
“……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양호하게 일이 끝났는데 왜 눈에서 땀이 나는 것 같지? 돈이 원수였다.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대부분을 클레이가 투자하는 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대니얼은 자신의 현실을 한탄했지만, 그는 이미 클레이의 돈에 길든 상태였다. 돈과 체면은 저울질할 필요도 없었다. 돈은 세상 무엇보다 위대했고, 마약보다 중독적이기 때문이었다.
* * *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했다는 벤틀로의 보고에 클레이는 다소 놀란 얼굴을 했다.
“많이 약해졌네?”
“밀리안 님의 체면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흐응.”
“물론 경고는 확실히 하고 왔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돌려서 말하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맞아. 이제 적당히 알아들을 때도 됐는데 말이야.”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니얼의 단순함을 비난했다. 하나에 몰두하면 융통성도 없이 오로지 그것만 파기 때문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런 면 때문에 귀찮은 점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있는 현실성은 돈이었다.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연구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다.
어차피 밀리안의 애교도 봤고, 만족스러운 밤도 보냈다. 더불어 벤틀로의 말대로 밀리안의 체면도 중요하니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는 게 맞다. 클레이는 흥미가 떨어진 소재에서 화제를 돌렸다.
“결혼식 준비는?”
“아, 그것 때문에 상의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상의라고? 얼마나 일을 벌일 생각이길래?”
결혼식은 전적으로 벤틀로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꼼꼼히, 그리고 완벽하게 진행하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사소한 부분은 제외하고 간간이 보고만 받았다. 비용의 상한선도 없었다. 그저 밀리안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만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상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클레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혼식을 ‘그곳’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곳이라면, 설마…….”
“작년 크리스마스를 보낸 섬 말입니다.”
“그건 너무 티 나잖아.”
하객이 이동하는 데만 드는 비용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거다. 그걸 밀리안이 모를 리도 없고. 밀리안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는 것은 겉보기만 적당선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섬으로 장소를 정한다면 너무 노골적으로 돈을 쏟아붓는 게 티가 나니 문제였다.
“하지만 결혼식 장소로 그만한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두 분의 마음이 처음으로 이어졌던 상징성도 있고요.”
“그렇긴 해.”
클레이도 혹하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그곳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진작 생각을 못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자신도 이렇게 쉽게 설득됐는데, 밀리안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진행해.”
“현명하십니다.”
벤틀로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클레이가 기가 막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녀가 아는 벤틀로라면 이미 그곳을 꾸미고 있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밀리안을 설득할 일만 남았지만,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처음이 있던 곳을 예식장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도 인정할 테니까.
결혼.
이제 정말 결혼을 하는구나. 클레이는 새삼스러운 감회에 기분이 묘해졌다. 밀리안이 제 성을 가지고, 제 아이를 낳고, 부부라는 관계로 평생을 산다는 건 맹목적인 소유욕을 충족시켰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클레이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아직 날짜가 한참 남았음에도 가슴이 벌써 설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