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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자위하는 모습을 정면으로 들켜버린 밀리안은 황급히 막대를 빼려고 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손이 떨려 더 안쪽으로 밀어 넣는 꼴이 되었다. 당황한 밀리안은 어쩔 줄을 모르고 몸을 떨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겠다는 다급함에 입을 열었을 때였다. 당치않게도 그 순간 불쾌한 이물감만 느껴지던 성기 안쪽에서 짜릿한 쾌감이 튀었다.
“아, 아흣.”
“기가 막혀서.”
밀리안이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던 클레이가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놀라서 다시 빼려고 한 순간, 클레이가 당장 거기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다. 밀리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 와중에도 막대에 깊숙이 눌린 안쪽에서 끊임없이 쾌감이 터져 나왔다.
문가에 서 있던 클레이가 성큼 안으로 걸어왔다. 여유로운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빛은 마치 성마른 짐승 같았다. 밀리안은 자신의 바로 앞에 선 클레이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덫에 걸린 작고 연약한 짐승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지, 지금 왜 여기에…….”
“당신이 보고 싶어서 일찍 왔는데 예상치도 못한 걸 봤네? 내가 만지는 건 거부하더니, 이런 것으로 혼자 즐기고 있었어?”
“아, 아니요. 정말 그게 아니라,”
“실망이야, 밀리. 난 정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날 두고 이런 거로 자위하려고 그래? 클레이가 손을 뻗어 밀리안의 성기에 꽂혀 있는 막대를 거의 끝까지 뽑아냈다. 몸체를 드러낸 얇은 금속은 길었고, 살짝 끝이 휘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든 것을 살짝 흔들다 피식 웃었다.
“이건 나랑 재미 좀 보자고 산 거지, 혼자 가지고 놀라던 게 아니야.”
“아뇨, 클레이. 진짜 저는,”
“이거 잘못 쓰면 구멍이 망가질 수도 있어.”
클레이가 다른 손으로 밀리안의 묵직하게 올라온 하체를 꽉 쥐었다.
“흣!”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건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낮게 갈라진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욕망이 담겨있었다. 건드리지도 못하게 해놓고 이런 것으로 혼자 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화도 났지만, 그 이상으로 성감이 튀어 올랐다. 클레이가 성기를 세게 주무르자 밀리안이 벌벌 몸을 떨었다.
“아, 아아, 그게, 아니라, 흣, 으응……!”
짧은 절정이 연달아 터졌다. 밀리안이 차가운 타일에 몸을 기댄 채 울컥 짙은 액체를 토해냈다. 깨끗하던 손이 순식간에 끈적한 액체로 젖었다. 클레이는 세게 쥐었던 손을 떼 내고 여전히 사정 중인 성기의 끝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튕겼다. 약하게 흘러나오던 애액이 순간 울컥하고 뿜어져 나왔다.
“하읏!”
“이젠 아픈 것도 좋아?”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지만, 클레이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밀리안은 얼굴을 훅 붉혔다가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클레이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더 큰 자극을 요구했다.
“아, 클레이, 좀 더…….”
“야해 빠져서는.”
수줍어하는 밀리안도 귀여웠지만, 욕망에 솔직해져서 스스로 요구하는 밀리안은 더 좋았다. 클레이는 그대로 밀리안의 허리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숨이 막혀 헐떡일 때만 살짝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겹쳤다. 키스를 하는 건지 섹스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혀가 얽혀들었다. 클레이의 아랫배에 뭉개진 성기가 움찔움찔 떨며 다시 뿌연 액체를 흘렸다.
밀리안이 뿜어낸 액체로 옷이 더러워지자 클레이가 성급한 손길로 옷을 벗어 던졌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의 입술은 여전히 겹쳐져 있었다. 먼저 상의를 벗어 던지자 밀리안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타고 올라와 단단하게 뭉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입술이 떨어지고 뜨거운 숨이 두 사람의 입술을 통해 터져 나왔다.
“하아.”
“으응.”
클레이는 타액에 젖은 밀리안의 아랫입술을 혀로 핥고 살짝 깨물어 당겼다. 그러자 살짝 다물어졌던 입술이 벌어지고 붉게 달아오른 혀가 밖으로 나왔다. 빨아달라는 듯해 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떼고 혀를 살짝 깨물고 제 입 안으로 끌어들이자 밀리안은 애타는 신음을 흘리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혀를 잘근잘근 깨물고 혀로 문질렀다가 입 안을 조여 가득 빨았다. 살짝 눈을 뜨니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얼굴이 보였다. 클레이가 살짝 웃으며 밀리안의 성기를 놓아줌과 동시에 아직 성기 안쪽에 들어가 있던 플래그를 단숨에 빼냈다.
“아아아아아!”
만약 그녀가 그의 허리를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주저앉았으리라. 쾌감에 녹은 뇌가 느리게 움직였다. 내가 느끼는 모든 쾌감은 클레이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그녀에게 길든 상태니 섣부른 짓은 앞으로 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혼자 플래그를 넣었을 때는 전혀 좋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물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클레이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은 쾌감을 상기시켰다. 밀리안은 제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는 클레이의 행동에 몽롱하게 젖은 눈을 깜박였다.
“더 놀아주고 싶은데 내가 좀 급해.”
마지막으로 밀리안의 입술에 짧게 입술을 붙였다 뗀 클레이가 어설프게 걸치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어 던졌다. 창백한 조명 아래, 클레이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렸다. 부드러운 금발이 찰랑거리며 움직였다.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그와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들어 올리는 여자는 눈에 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모든 곳이 완벽해서 어디를 꼬집어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밀리안은 클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 숨을 헐떡였다.
찬탄을 그대로 담은 밀리안의 표정을, 클레이가 만족스럽게 받아 삼켰다. 지금 마음으로는 저 남자를 모조리 씹어 삼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또 정도를 넘어버릴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할까. 답지 않은 고민을 하던 클레이가 이내 화사하게 웃었다.
“오늘은 새로운 체위를 해볼까?”
“……무슨.”
몇 번을 사정하고도 부족하다는 듯 성기를 곧추세운 밀리안을 탐욕스럽게 훑은 클레이가 손을 뻗어 벽에 걸린 샤워기의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안개처럼 촘촘한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투명한 물줄기가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밀리안은 클레이의 얼굴에서 탐스러운 가슴을 타고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상체를 벽에 붙인 채 하체를 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쓸었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살결이 손에 그대로 감겼다. 아래에서 들어 올리듯 가슴을 움켜쥐자 클레이가 약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난처한 얼굴로 옅게 웃는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몰라 의아한 얼굴을 하자 그녀가 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유혹적인 선을 그리는 여자의 나신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상체는 벽에 붙이고 하체만 살짝 뒤로 뺀 여자는 그의 시선을 즐기며 매끄럽게 뻗은 다리를 천천히 벌렸다. 새하얀 살결 사이로 은밀한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 눈이 돌았다.
* * *
밀리안은 클레이의 뒤에 몸을 겹친 채 천천히 하체를 움직였다. 이미 성기가 삽입된 상태였고, 그녀의 관은 성기를 관통해 요도를 짓누르고 있었다.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여자의 안을 찌르고, 또 제 안이 짓눌리게 했다. 밀리안은 클레이의 등에 입술을 붙인 채 헐떡였다. 한번 성기를 밀어 넣을 때마다 시야가 점멸했다.
“아, 아, 클레이, 읏, 으응.”
“응, 그렇게. 조금 더 세게, 안쪽으로. 하. 잘하네?”
결합부는 이미 한번 사정한 뒤여서 뿌연 액체가 물과 함께 다리를 타고 바닥에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부러 가볍게 끝내려고 밀리안에게 주도권을 줬는데, 정작 밀리안이 정신을 못 차리고 성기를 세우고 흔들었다. 클레이는 허리를 안은 밀리안의 손을 잡고 제 가슴으로 끌어올렸다. 얼떨결에 따라온 손은 부드러운 살이 닿기 무섭게 그대로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짜릿한 쾌감에 클레이의 안이 조여들자 밀리안이 애타는 신음을 흘렸다.
“아, 제발, 클레이……, 안이 너무, 아.”
“나도 좋아.”
클레이는 밀리안의 하체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 뭉근하게 아래를 흔들었다. 예민한 관이 좁은 요도에 꽉 쥐여 짜였다. 야한 남자는 그녀의 관을 집어삼킨 채 좋다고 허리를 떨며 위아래의 모든 입으로 울었다.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았던 체위였지만, 상대가 밀리안이니 모두 용납이 됐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한쪽 손을 끌어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게 했다.
“여기, 당신 자지 때문에 배가 나온 거, 느껴져?”
“흣.”
“예쁜 게 크기도 크고 또 구멍은 내 관을 제대로 조이면서 빨아. 게다가 야해 빠져서 잘 울기까지 해.”
“아, 제발…….”
“칭찬하는 거야. 너무 좋아, 당신.”
그 순간 밀리안이 클레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억눌린 신음에 교태가 잔뜩 섞였다. 질 안을 가득 채운 성기가 부피를 키웠다. 그와 동시에 관을 감싸고 있는 요도의 점막이 꽉 조여졌다. 씨발, 안 되는데. 클레이는 욕설을 짓이기듯 뱉었다. 밀리안의 절정이 너무도 격렬해 성감이 미친 듯이 위로 치달았다.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밀리안의 요도 깊숙이 박힌 관의 끝이 순식간에 부피를 키웠다. 틈이 없을 정도로 안을 꽉 채워버리자 밀리안이 고통과 쾌감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아, 싫, 으, 으흣, 아, 그만, 제발.”
“미안해, 밀리. 네가 너무 조여서 참을 수가 없었어. 흣…….”
적당히 조절할 생각에 밀리안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건데, 결국 노팅을 해버렸다. 차라리 침대였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노팅이 가라앉을 때까지 불편한 욕실에서 버티도록 만들어 버렸다. 클레이는 고개를 돌려 밀리안의 입술을 찾았다.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밀리안은 고통과 쾌감에 버무려진 야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짝 내려간 눈꼬리에 걸린 동그란 물방울이 결국 아래로 흘러내렸다. 미안한데, 미안해야 하는데……, 남자는 눈물조차 야해서 오싹한 쾌감이 전신을 내달렸다.
당신은 힘든데, 난 당신이 그런 얼굴을 하는 게 너무 좋아서 미안해. 클레이는 미간을 온통 찌푸린 채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 떼고, 다시 붙이길 반복했다. 마음 같아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의 입 안을 모조리 탐하고 싶었지만, 그럼 밀리안이 너무 힘들 테니 나름대로 조절한 거였다.
클레이의 관이 전립선을 아예 망가트릴 기세로 둥글게 부풀었다. 망가질 것 같아. 밀리안은 클레이의 입맞춤을 받으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몇 번 경험해본 것임에도 노팅은 언제나 힘겨웠다. 게다가 처음 해본 체위여서 안을 누르는 관의 위치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매달리듯 클레이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파요.”
아픈데 좋아요. 밀리안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성기가 터질 것 같다. 안 그래도 벅찼던 관이 너무 커져서 요도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졌고, 클레이의 질 안의 점막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성기를 빨아들였다. 노팅을 하고 있으니 결합이 떨어질 리도 없지만, 떨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쾌감 안에 자리 잡은 고통 또한 클레이가 주는 거여서, 모두 좋았다.
밀리안이 도리어 하체를 바짝 붙여오자 클레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사나운 웃음이 맺혔다.
* * *
노팅이 끝날 때까지 괴롭혀진 밀리안은 침대에 힘없이 뻗었다. 클레이는 자신에 의해 퉁퉁 부어오른 밀리안의 성기를 세심하게 보며 혹시 모를 상처를 대비해 요도 안에 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표면까지 약을 바른 뒤 새어나가지 않도록 얇은 피막을 씌웠다. 그다음에는 억지로 버티느라 근육통으로 경련하고 있는 그의 허벅지를 공들여 마사지했다. 처음에는 아파서 찡그리고 있던 밀리안의 얼굴이 점차 나른하게 풀렸다.
“등 돌려봐.”
발끝까지 세심하게 근육을 푼 클레이가 종용하자 밀리안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클레이의 손길이 좋았다. 등을 보이며 반듯하게 눕자 이번엔 등부터 시작되었다.
“근육이 예쁘게 잡혔어. 어깨도 넓어지고.”
“아.”
“굉장히 멋있어.”
“…….”
진심으로 감탄하는 클레이의 목소리에 밀리안은 달아오르는 얼굴을 팔로 가렸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칭찬이 듣기 좋았다. 어떻게 노력한다 하더라도 클레이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조금이라도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사지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구석구석을 손으로 세심하게 훑었다. 아주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기까지 했다. 밀리안은 기분 좋은 얼굴로 그녀의 손길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두피까지 마사지한 클레이가 아쉽게 손을 떼자 밀리안은 다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클레이를 향해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 안겼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격렬했던 섹스도 좋았지만, 이렇게 안온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시간도 좋았다. 밀리안은 클레이의 등을 손으로 쓸었다. 매끄러운 피부에 손이 닿을 때마다 정신을 노곤하게 만드는 페로몬이 더 짙게 흘러나온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여자의 눈이 나붓이 감겨있었다. 예쁘다. 부드럽게 내려앉은 금빛의 실타래도, 어느 한 곳도 소홀하게 빗지 않은 유려한 육체도, 섬세하게 조각된 얼굴도. 밀리안이 한숨과 함께 감탄하자 클레이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예쁘다고 말해봐.”
“예뻐요, 정말. 모두, 빠짐없이. 다 예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는 게 좋아.”
클레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밀리안은 홀린 것처럼 그녀를 바라봤다. 사실 예쁘다는 말은 클레이를 수식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녀를 치장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찬사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혼자 그런 짓 하지 마. 그땐 지금처럼 봐주지 않을 거야.”
“오늘 그게……, 봐준 거였나요?”
“당연하지. 한 번밖에 안 했잖아.”
“…….”
클레이의 기준으로 한 번이지, 밀리안에게는 아니었다. 혼자만 너무 느끼는 것 같아 그가 어설픈 웃음을 짓자 클레이가 짓궂게 웃었다.
“괜찮아. 당신은 잘 싸기도 하지만, 그만큼 잘 세우니까.”
“…….”
“굉장한 정력이야.”
클레이의 칭찬은 그로 하여금 미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마치 다른 남자와 비교하는 듯한 칭찬. 밀리안의 표정이 가라앉자 그녀가 짧게 웃었다.
“내가 당신을 누구와 비교해. 당신을 만난 뒤엔 다른 남자는 눈에도 안 들어 온다고 말했잖아.”
“……생각도 하지 마세요.”
보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찰나라도 그녀의 머리에 다른 남자가 존재한다는 게 싫었다. 밀리안의 당부에 클레이가 웃었다.
“웃음으로 넘기지 마시고요.”
“알았어. 생각도 안 할게. 알잖아. 난 너뿐인 거.”
“……네.”
사랑스러워하는 눈빛이 좋아 밀리안은 눈을 아래로 내리고 양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세한 틈조차 주고 싶지 않아 자꾸 경계하게 된다.
“좋지 않았어요.”
“뭐가?”
“혼자 그걸, 넣는 거요.”
“…….”
“그런데 당신을 보자마자 좋아졌습니다.”
밀리안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꿋꿋이 말을 이었다. 시선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는 듯이 솔직하게 말한 뒤 눈을 꾹 감았다. 클레이는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일부러 기분 좋아지라고 빈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정도로 주변머리가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밀리안은. 자신의 남자는.
“내가 봐주니까 좋았다고?”
“……네.”
“내가 쑤셔주는 것 같아서?”
“…….”
웃음을 참기 힘들어 입꼬리를 들썩이며 짓궂게 확인하자 밀리안이 더는 참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무리겠지. 클레이는 조금 전에 약을 넣었던 밀리안의 성기를 생각하며 치밀어 오르는 욕망을 꾹 내리눌렀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솔직한 모습도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클레이가 낮게 쉰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속삭이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쳤다. 말간 갈색 눈동자는 언제나 물기가 스며든 것처럼 일렁이고 있어서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더 울게도 하고 싶고, 또 그 눈물을 핥아 먹으며 위로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예쁘게 웃었으면 했다. 제 곁에서 행복만 느끼게 하고 싶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왜 그걸 보겠다고 하는 걸까. 클레이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밀리안을 바라봤다.
“밀리,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거야. 정말 그걸 봐야겠어?”
“그렇게 감추려고 하니까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만 나빠질 텐데?”
“그래도요.”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해도?”
“…….”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후엔 그 전의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져.”
“클레이!”
밀리안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놀란 얼굴로 반박했지만, 클레이는 옅게 웃으며 더 들어달라며 속삭였다.
“후회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후회돼.”
그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의 욕망을 누군가를 통해 풀고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밀리안을 잡았을 때도 그랬다. 호기심. 가벼운 집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놓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을 꼽으라면 자신일 것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상처입히다니. 소중하게, 더없이 다정하게만 굴어도 부족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밀리안은 언제나 용감하고 상냥해서,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도 부족해 자신에게 집착하고 사랑하고 또 각인까지 해주었다. 감히 바라지도 못한 것인데. 그저 제 옆에 잡아둘 생각에만 급급해서 밀리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도망칠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음에도.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
“그리고 ‘그걸’ 보더라도 날 계속 사랑해줘. 날 더럽게 느끼지 말아줘.”
무슨 생각으로 ‘그걸’ 보겠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내 모든 것을 보여줄 각오가 되어 있다. 버리지 않겠다고, 이 마음이 사그라들 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클레이가 절박할 정도로 매달려오자 가만히 듣고 있던 밀리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계약서를 쓸까요?”
“무슨 계약서?”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무조건 결혼한다고. 그리고 이혼은 절대 없다고요.”
이미 각인을 한 이상 상대의 무슨 모습을 보더라도 헤어질 수 없다. 각인은 종잇장에 불과한 계약서 따위보다 더 확실한 구속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계약서를 말한 것은 불안해하는 클레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제 욕심을 채우고 싶기도 했고.
밀리안의 제안에 클레이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웃었다.
“그것도 좋고, 있던 계약서도 파기해야지.”
“아.”
섹스 파트너 계약서. 잊고 있었다. 밀리안이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눈을 깜박였다. 클레이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 불태워버리겠다며 다짐했지만, 밀리안이 반대했다.
“그건 우리 추억이니까 남겨뒀으면 좋겠습니다.”
“밀리.”
“우리의 시작을, 어긋났던 과정도, 그럼에도 우리가 결국 사랑하게 되었으니 모두 소중한 겁니다.”
세상이 우스웠던 클레이는 사랑을 하게 된 이후 겁이 많아진 반면, 세상을 두려워했던 밀리안은 도리어 용감해졌다. 클레이는 밀리안을 꽉 끌어안았다. 그가 너무 빛나서 기쁜 만큼 무서워졌다. 누군가가 탐내고 빼앗으려 들까 봐. 제 눈에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멀쩡히 눈이 박힌 사람이면 누구라도 탐낼 테니까.
제 품 안에 두고 감춰도 모자랄 판인데, 알파들이 득실거리는 자리에 그를 보일 자신이 없었다. 클레이는 한껏 가련한 얼굴을 하며 그를 바라봤다.
“계약서는 됐으니 다른 걸 들어줘.”
“네?”
“반드시 들어준다고 약속해.”
“……좋아요.”
클레이가 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밀리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울리지 않게 가련한 얼굴을 꾸며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탓이었다. 게다가 제 억지를 들어주는 클레이의 마음을 알아서, 그녀가 무슨 요구를 하든 모두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