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틱 섹슈얼-99화 (9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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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이 멈춘 곳은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별장이었다. 울창한 나무와 섬세하게 다듬은 토피어리(나무를 새·동물 모양 등으로 전정하는 기술 또는 정원)가 저택을 촘촘히 감싸고 있었다. 아름다운 저택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타인을 배척하는 느낌이 강했다.

저택에는 밀리안과 안면이 없는 경호원으로만 골라 배치하고,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밀리안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가두고 혼자만 독점할 수 있는 곳. 음습한 욕망을 토대로 설계한 저택은 아름다운 외양만큼이나 질척한 집념이 가득했다. 만들어 놓고도 결코 사용하지 않기를 바랐던 저택이었다.

단단하고 높은 철장이 올라가고 차는 정원 안쪽으로 들어가 멈춰섰다. 클레이는 수면제를 먹고 잠든 밀리안을 안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 계단은 없었다. 이동은 모두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창문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마저도 외부와 통할 수 있는 위치에는 모두 감시 카메라와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도망칠 수 있는 구석을 모두 막아 놓았다.

엘리베이터는 가장 높은 층에서 멈췄고, 클레이가 홍채 인식을 하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에서 일자로 이어진 복도를 지나 침실에 들어섰다.

클레이는 밀리안을 커다란 침대에 눕힌 뒤 그 옆에 앉아 방을 돌아봤다. 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한쪽 벽면에는 책장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고, 테라스를 막은 대신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갇혀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도록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넣었다. 창문조차 없는 방이었지만, 습도와 온도는 물론이고 공기 정화까지 완벽했다. 이 정도면 그리 힘들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밀리안은 조용한 성격이고, 밖에 나가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타입이어서 다행이었다.

새삼스레 웃음이 나왔다. 감금하는 주제에 배려하는 척이라니. 이곳은 위선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저를 가리키는 수식어였다. 이렇게 보니 자신은 밀리안을 탓할 자격이 없다. 단 한 순간도 밀리안을 믿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상체를 돌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곳이 아니었더라면, 평소 그들이 함께 지내던 디어 가에서 평온한 한때를 맞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그럴 리가 없잖아.

쓰디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달콤한 한때는 이미 끝났다. 이제 떠나려던 남자를 억지로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신만 남았을 뿐이다. 그토록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는데, 결국 이 꼴이 되었다. 제 오메가를 구속하고 억지로 잡아두는, 집착만 가득한 피는 결국 대를 이어 제게로 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끝도 그렇게 될까?

자신이 싫다고 끝까지 외면하는 밀리안의 모습이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 그려졌다. 최악이었다.

* * *

여기가 어디지? 밀리안은 흐릿한 시야에 눈을 찌푸렸다. 분명 공항으로 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기억을 되돌려 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클레이! 밀리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공항에 가기 전에 클레이를 만났다. 아니, 그녀에게 돌아가려고 했을 때…….

“만 하루가 돼서야 깼네. 약이 너무 잘 받아서 놀랐어.”

그렇게 독한 약이 아니었는데. 문틀에 기대 서 있던 여자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편한 일상복 위에 검은색 가운을 걸친 클레이는 마치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비비는 친밀한 행동에도 밀리안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한 채였다.

“여긴 어디…….”

“당분간 당신이 머무를 곳.”

“그게 무슨.”

“그리고 절대 나갈 수 없는 곳.”

“―!”

해사하게 웃던 여자가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의 왼쪽 발이 딸려 올라갔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밀리안은 제 발목에 채워진 족쇄에 훅, 숨을 멈췄다. 그런 밀리안을 만족스럽게 보며 클레이가 그의 발목에 입을 맞췄다. 정확하게는 그의 발목에 채운 족쇄 위에.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클레이, 이건, 이건…….”

“화장실이나 욕실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거기까지 통제할 생각은 없거든.”

물론 그러고는 싶었지만, 자신은 이곳에 한정 없이 머물 수는 없다. 자신이 없는 사이 생리현상은 해결해야 할 테니 행동반경을 늘려주는 쪽을 택했다. 클레이는 이곳에 창도 내지 않았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은 모두 자신의 지문과 홍채 인식을 통해서만 열리도록 설정해 놓았다. 예외는 단 한 명.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이곳을 청소하는 메이드뿐이었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은 벤틀로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밀리안과 관련하면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밀리안을 아픈 손가락처럼 아끼는 그에게 맡겨 놓으면 분명 바로 도망치게 해줄 테니까.

우습다. 그렇게 밀리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안달할 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는 사실이. 가슴 한구석에선 그의 사랑을 받길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만족이라는 표현보다는 인정하고 포기했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클레이는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자신의 손에 여전히 끼워진 반지가 처량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가운 주머니에서 밀리안이 침실에 버려두고 간 반지를 꺼냈다. 반지를 그에게 보여주자 밀리안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이것도 버리고 갈 줄은 몰랐어.”

“클레이…….”

“하긴,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데 반지를 가져갈 필요는 없겠지.”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니…….”

“그럼? 날 사랑해?”

차가운 물음에 밀리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왜 다시 입술에 각질이 일었나 했더니, 또 나쁜 버릇이 도진 모양이었다. 클레이는 들고 있던 반지를 그의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남들 눈에 띄는 게 무서워 목에 걸고 다녔던 반지는 이제 벗을 필요가 없으리라. 더는 남들 앞에 설 일이 없을 테니까.

“대답해야지, 밀리.”

“……사랑합니다.”

고개를 축 내리뜨리며 억지로 뱉어낸 말에도 심장이 떨린다, 그런 제 심장을 비웃듯 클레이가 짧게 웃었다.

“그래? 잘됐네. 여기서 얌전히 지내.”

“…….”

남자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남자는 언제나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가슴이 차갑게 식은 와중에도 그는 제 심장을 달궜다. 조금만 더 매달리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지도 모르겠어. 물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지 않겠지만. 그를 놓아준다니. 차라리 그와 함께 죽는 걸 선택했으면 했지. 클레이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 낮게 속삭였다.

“왜 그래? 날 사랑한다며?”

“클레이, 저는!”

“쉬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괜찮아.”

그녀가 다시 입을 막자 밀리안은 답답한 얼굴을 했다. 약해지는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사랑이라. 사랑하는데 왜 도망치려고 했어. 그런 차가운 사랑 따위,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클레이는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이제 나가봐야 한다. 밀리안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일정을 너무 많이 미뤘다.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있던 클레이가 몸을 일으키자, 밀리안이 황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클레이 제 말을 좀.”

“미안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다음에 들을 게. 쉬고 있어.”

“클레이!”

“쉬라니까. 도망칠 준비를 하느라 그동안 꽤 바빴나 본데, 피곤할 거 아니야.”

“…….”

“그래. 그렇게 입 다물고 얌전히 있어.”

그리 힘든 일을 하지 않았는데, 피곤했다. 밀리안이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떠나지 않던 두통이 뇌를 갉아먹는 것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의식적으로나마 지었던 미소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녀는 시계에서 시선을 떼고 밀리안의 몸 위로 올라갔다. 당황한 남자의 떨리는 눈동자는 여전히 달콤해 보였다. 빨아먹고 싶을 정도로.

눈동자 대신 그의 눈가를 핥아 올렸다. 클레이의 미간이 좁혀졌다. 입술에 생긴 각질뿐 아니라, 피부도 건조해졌다. 예민한 피부여서 그토록 공들여 가꿔놨더니 잠깐 떨어져 있는 사이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남자였다. 그녀는 밀리안의 얇은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숨을 쉬며 혀를 차자 손에 닿은 밀리안의 몸이 움찔 튀는 게 느껴졌다. 클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더 위로 올렸다. 남자의 유두가 바짝 서서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륜도 부풀어 있었고, 유두는 아예 만지라는 듯이 커졌다. 아니, 가슴 전체가 조금 더 커진 것 같은데……. 클레이는 밀리안의 상의를 끝까지 밀어 올려버렸다.

“―!”

“밀리, 당신…….”

그녀는 밀리안의 가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이를 갈았다. 한결 색이 짙어진 유두는 이제 젖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숨을 들이켠 탓에 흉곽이 부풀어 마치 빨아달라는 것처럼 야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밀리안의 가슴만 바라보고 있던 클레이가 한쪽 다리를 밀리안의 가랑이 사이로 밀어붙였다. 고작 가슴 조금 만지고 봤다고 성기가 있는 대로 부풀어 있었다. 가장 예민한 곳이 꾹꾹 눌리자 밀리안이 몸부림쳤다. 그 탓에 붉은 유두가 색이 번지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눈을 어지럽혔다.

이렇게, 야한 몸으로 어딜 가려고 한 건데? 다른 사람이 당신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 같냐고 묻고 싶었다. 이 몸을 길들이려고 온갖 공을 다 들였다. 물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쁜 몸이었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만족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욕망이 더 컸다. 나만 봐야 하고, 나만 만져야 하는 남자였다. 당연히 제 눈에서 벗어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각인하기 전에도 유별났던 독점욕은 각인한 이후에 더 심각해졌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억눌렀을 뿐인데, 그게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알게 해 줘야겠지. 클레이는 고개를 숙여 한결 통통해진 유두를 혀로 핥아 올렸다. 이전보다 커져 혀에 닿는 면적이 넓어졌다. 살짝 빨았다가 다시 혀로 꾹 누르고 이리저리 굴리니 허벅지에 닿는 남자의 성기가 바들바들 떨며 부피를 키웠다.

“흣, 으응, 아, 아흣!”

“흐응.”

밀리안의 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그의 예쁜 성기였지만, 이제 순위가 바뀔 것만 같았다. 빨기 좋게 커진 것도 그렇고 색도 모양도 환상적이었다. 클레이는 유륜과 함께 세게 빨아들였다. 그와 함께 허벅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고작 젖을 조금 빨았다고 사정해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짝 깨문 뒤 뱉어내자 타액에 젖은 유두가 힘껏 모양을 키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예뻤다. 유두도, 절정에 올라 붉어진 남자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보다 쾌락에 젖은 얼굴이 어울렸다. 클레이는 상체를 위로 올려 밀리안의 입술에 키스했다. 거친 숨을 흘리는 입술은 그녀의 침입에 힘없이 굴복했다. 아예 저항할 생각조차도 없는 것처럼 기꺼이 입술을 열고 자신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게 기분 좋으면서도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쾌락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제 말을 들으며 방심하게끔 일부러 고분고분하게 구는 것인지.

머리를 쓰고 있는 거라면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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