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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섹슈얼-83화 (8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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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던 욕망을 터트린 결과 밀리안이 정신을 못 차렸다. 클레이는 작게 혀를 차며 밀리안의 등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쾌락의 여운이 끝나지 않은 탓인지 섬세한 근육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십여 년간 몸에 쌓였던 독한 약과 억눌린 페로몬의 찌꺼기가 모두 사라진 이후, 밀리안의 몸은 날이 갈수록 더 아름다워졌다. 창백하던 피부는 생기가 돋았고, 투명할 정도로 맑은 갈색 눈동자는 빛이 날 정도였다. 그녀만 알고 있던 밀리안의 매력을 너무 많은 사람이 알아가고 있었다. 그를 보는 시선이 많아질 때마다 클레이는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끊임없이 억눌러야 했다.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어.’

밀리안이 아름다워지는 만큼, 음습한 욕망은 줄어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기만 했다. 클레이는 남자의 등에 입술을 댔다. 밀리안이 자신과의 성애에 너무 느끼다 못해 정신을 놓은 것이 만족스럽다면, 너무한 거겠지. 사실 지금도 그를 가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밀리안을 배려한다고 너무 많이 참아왔던 터라, 고작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섹스로는 욕망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대로 모두 잊고 이 남자의 육체만 탐닉하고 싶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몸을 핥고 빨기만 해도 허기가 가라앉을 것만 같다.

“씻고, 싶……, 크흠.”

“목이 너무 많이 쉬었어.”

“당신, 때문에. 아…….”

“응. 나 때문에 자기가 너무 많이 울었지. 반성하고 있어.”

클레이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목소리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구름 위를 밟는 것처럼 산뜻하기만 했다. 기분 좋다는 듯 생기가 넘쳐 밀리안은 결국 웃어버렸다. 그녀를 탓할 것도 없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만족한 사람은 자신일 테니까.

밀리안은 몸을 꾸물거리며 일어나려다 털썩 침대에 누웠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몸이 저렸다. 쾌락이 지나치면 통증이 된다는 걸, 밀리안은 클레이를 통해 절절히 느끼게 됐다. 시트에 몸이 밀리는 자극만으로도 힘겨웠지만, 그래도 여자와 마주 보고 싶어서 억지로 몸을 돌렸다.

“…….”

웃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클레이는 생경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표정이어서 노곤하게 풀어졌던 밀리안의 몸이 움찔 굳었다. 그 모습에 클레이가 눈을 깜박이다 이내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사랑해, 밀리안.”

“……클레이.”

“이상해. 왜 매일 매 순간 당신이 더 좋아지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에 밀리안을 쏟아붓는 것처럼 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을 할 때조차 그가 떠올라서 집중하기 어려워질 정도였다. 분명 같은 자리에 있는데도 그가 또 보고 싶었다. 그의 살에 파묻혀서 모든 걸 잊고 싶었다.

클레이의 질문에 밀리안의 눈이 커졌다. 그 어떤 후희보다도 달콤한 말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길었던 섹스로 인해 몸이 아플 정도였지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밀리안이 웃자 클레이가 짐짓 엄격한 얼굴로 경고했다.

“날 너무 받아주지 마. 버릇 나빠져.”

“그런가요?”

“난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야. 네가 내 머릿속을 본다면 당장 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보고 싶네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안 돼.”

“뭡니까? 한껏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좀 지나친 행동을 해도 널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 달라고 미리 변명하는 거지.”

클레이가 밀리안의 왼손을 잡고 반지에 입을 맞췄다. 왼쪽 유두에 끼웠던 클리퍼가 다시 반지가 되었다. 대체 언제 다시 손에 끼워 놓은 걸까. 밀리안은 살짝 집착하다시피 반지에 입을 맞추는 여자를 바라봤다.

‘당신보다 내 머릿속이 더 이상할 겁니다. 분명히.’

자신이 그녀에게 질리기 전에 그녀가 먼저 제게 질릴 게 분명했다. 이기적이고 어긋난 욕망이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다. 남들 눈을 의식하는 주제에 오롯이 제가 차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 마음은 분명 정상이 아닐 테니까.

여자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이어서, 그녀를 탐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녀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 평범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이렇게 몸을 내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안달이 났다. 가진 게 많은 여자라서 그가 뭘 준다고 해도 그다지 가치가 있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전부를 여자에게 바치고 싶었다.

마치 가난한 신도가 신에게 제물을 바치듯, 간절하고 비루한……. 그런 마음이었다.

* * *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조차 클레이는 밀리안의 마음을 돌리려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몸도 안 좋으면서 기어이 출근하겠다는 남자의 의지가 짜증이 날 정도로 단호했다.

“정말 출근할 거야?”

“대체 몇 번을 물어보실 생각입니까?”

“걱정돼서 이러지. 그냥 오늘은 쉬라니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그럼, 혼자 있어야 하잖아요.”

“……뭐?”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놀란 눈으로 그를 보는 클레이를 피해 밀리안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밀리안을 물끄러미 보던 클레이는 한참 뒤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밀리, 그런 말은 제발 침대에서만 해줘.”

특히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하는 건 반칙이었다. 사람의 속을 활활 태워놓고 만지지도 못하는 상황은 정말 피가 말랐다. 밀리안의 마음을 돌리려던 시도는 밀리안의 말로 인해 피식 꺼졌다. 몸이 안 좋아도 같이 있고 싶어서 출근하겠다는데 감히 그 어떤 말도 첨언 할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까지 귀여운 거지?’

대체 어디까지 빠지게 할 셈인 걸까. 이게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 더 문제였다.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밀리안의 뒷모습을 클레이는 난감하게 바라봤다. 이 남자를 정말 밖에 내돌려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밀리안의 손을 끌어 깍지를 꼈다. 그리고 반지를 낀 왼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힘들면 꼭 말해. 무리하지 말고.”

“그렇게 걱정하는 것치고는…….”

“응?”

살짝 고개를 돌렸던 밀리안은 도저히 제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벙긋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밀리안의 나쁜 버릇이었다. 자꾸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니 사람을 초조하게 했다.

‘정말 문제야. 이러다 벤틀로마저 경계하게 생겼어.’

이 남자는 사람을 꼬시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완전히 넘어가서 미치기 직전이지 않은가. 속으로 혀를 찬 클레이는 밀리안의 턱을 잡고 제게로 돌렸다.

“중간에 말을 하다 마는 건 나쁜 버릇이야. 끝까지 말해야지.”

“그, 속옷을 입힐 때, 너무 즐거워 보여서…….”

“음.”

“함께 출근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밀리안의 말에 이번에는 클레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녀는 짐짓 눈을 옆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리다 짐짓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싫었어? 다시 갈아입혀 줄까?”

“됐습니다. 이런 데서 어떻게 갈아입어요.”

“하지만 그걸 입히니까 당신 성기가 살짝 서서,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제발, 그런 저질스러운 말을 좀…….”

“당신은 아래가 더 솔직하단 말이야.”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벅지를 살짝 쓰다듬었다. 성기가 있는 부분과 아주 가까운 곳에 닿아 밀리안의 몸이 흠칫 튀었다.

“아, 안 되겠네. 이러다 당신 또 서겠어.”

어쩔 줄 모르는 밀리안의 얼굴을 본 클레이가 낮은 목소리로 쿡쿡 웃었다.

* * *

맥시가 사장실에서 나온 밀리안을 턱, 막았다. 그녀의 옆에는 레이가 핸드폰을 양손으로 꼭 쥔 채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밀리안, 잠깐 저 좀 보죠?”

“맥시?”

“잠깐이면 돼요.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네. 무슨 일입니까?”

밀리안의 허락에 맥시가 그를 사장실과 좀 떨어진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선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주변을 살폈다.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어 밀리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맥시,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오늘 사장님께서 반지를 끼고 오셨더라고요.”

“…….”

SNS에까지 모두 퍼졌다며 맥시가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높였다가 다시 침착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밀리안은 어설프게 웃었다. 새삼 클레이가 항상 대중의 시선을 받는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곁을 떠돌고 있는 파파라치의 존재도. 그저 그녀가 반지를 낀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지, 그로 인한 파급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마치 머리에 찬물을 들이붓는 것과 같은 깨달음이었다.

“사장님 연애 중이었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혹시나 하고 있던 맥시가 그의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레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말도 안 된다는 말만 연발하며.

“맙소사! 드디어 그 바람둥이가 정착했다니. 아니, 아니지. 얼마 안 갈 게 분명해요.”

“…….”

“그 상대만 불쌍하네요. 사장님이 남자에게 얼마나 빨리 질리는데, 그 상대는 그것도 모르고 완전히 빠져 있을 거 아니에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맥시의 동정 어린 표정에 밀리안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알고 있어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 찰나에 불과한 꿈일 뿐이란 것을. 평생이라는 말을 클레이 디어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보다 입사가 늦었던 맥시조차도 예상하는 이른 파국을 그가 모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순간을 더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기어이 출근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언제 꿈에서 깨어날지 모르는데, 마음 편하게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가봐도 될까요? 인사팀에 바로 가겠다고 말해놨거든요.”

“아, 네네. 그럼요. 잡아서 미안해요, 밀리안. 사장님에게 애인이 생긴 건 처음이라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밀리안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등을 돌렸다. 하지만 등 뒤에서 들리는 맥시와 레이의 대화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사장님이 다른 파트너를 안 만든 지 벌써 육 개월은 되지 않았어요?”

“맞아. 와, 설마 벌써 육 개월이나 사귄 건가?”

“그런 거면 지금까지 중에 최장시간 아니에요? 심지어 이제는 반지도 꼈잖아요. 사장님이 이런 적이 처음이라 어쩌면…….”

로맨틱하다며 감탄하는 레이를 향해 맥시가 찬물을 들이부었다.

“그래 봤자지. 바람둥이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서 한사람에게 평생 정착한다는 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환상이야. 사람의 본성이 바뀔 거 같아?”

“으음.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밖에선 안 만났나 봐요. 가십 같은 거 하나도 안 났잖아요. 완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 분, 이런 대화는 사내에서 자제해 주십시오. 저희의 임무는 사장님을 보좌하는 거지, 사장님의 사생활을 추측하며 떠드는 게 아닙니다.”

밀리안의 차가운 경고에 생각 없이 떠들던 맥시와 레이의 입이 황급히 다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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