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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는 자신 위에 쓰러진 남자의 등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근육이 붙어 날렵하고 단아한 등줄기를 훑어내리며 그의 목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등에 움푹 팬 선을 따라 내려온 손이 위로 올라붙은 남자의 엉덩이를 다시 한번 쳤다.
“아!”
“이제 알겠지? 이렇게 박는 거야, 밀리.”
클레이는 등에 베개를 대고 누운 채 밀리안을 채근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얼굴이 사랑스럽다. 밀리안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허리를 튕겨 올리자 또 좋은 소리를 낸다. 아래에서 남자를 올려다보는 느낌은 또 색달랐다. 이것도 나름 중독이 될 것 같다.
“네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박아도 돼.”
“하, 하지만…….”
“날 느끼게 만들어줘.”
네가 직접. 클레이의 유혹에 밀리안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그제야 의욕이 생긴 모양이었다. 클레이는 다리를 들어 밀리안의 허리에 감았다.
서툰 움직임이 시작됐다. 클레이는 설핏 흘러나올 것 같은 웃음을 꾹 참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움직이던 남자가 스스로 느끼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다디단 신음을 흘리며 열심히 허리를 흔드는 남자의 엉덩이를 때리자 허리를 세운 채 바들바들 떨며 성기를 부풀렸다.
“하읏!”
“더 빨리 움직여야지.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면 어떻게 느껴?”
“하지만, 너무…….”
안이 찔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며 밀리안이 눈가를 붉히며 토로했다. 그 야릇한 얼굴에 천천히 즐기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클레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밀리안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감질날 정도로 얕았던 삽입이 완전히 밀착되자 밀리안의 몸이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안 그래도 좁았던 요도가 그녀의 관을 꽉 조였다.
“아, 아흣! 아아!”
“하, 좋아. 당신 구멍 너무 좋아.”
클레이는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짐승이 입맛을 다시는 듯한 행동에 밀리안의 성기가 그녀의 질 안에서 움찔움찔 떨었다. 겁에 질린 것처럼, 하지만 노골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아래 깔리는 게 그렇게 좋아?”
“흣.”
“귀엽긴.”
클레이는 고개를 숙여 남자의 귓바퀴를 따라 혀를 내밀어 핥아 올렸다. 양껏 핥고 빤 뒤 붉어진 귀에 속삭였다.
“원하는 대로 박아줄게.”
* * *
밀리안은 완전히 기력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클레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밀리안을 안아 욕실로 옮긴 뒤 깨끗하게 씻겼다. 물기를 남김없이 닦은 뒤 보송보송한 가운을 입힌 밀리안을 다른 침실로 옮겨 뉘었다. 처음 섹스를 했던 침대는 이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신이 쏟아낸 정액과 밀리안의 애액, 그리고 그의 배 안에 있는 것을 빼내다 결국 소변까지 흘려 매트리스까지 모두 젖어버렸다.
밀리안은 거의 정신을 잃고 있어서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알았으면 다신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몸을 사릴 테니까. 클레이는 밀리안의 몸 위로 이불을 덮고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
크리스마스이브에 와서 사흘이 지나있었다. 암막 커튼을 쳐놓은 채 정신없이 뒹군 탓에 날짜 감각을 상실했다. 아무리 밀리안이 히트 사이클이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까지 정신을 못 차릴 줄이야. 클레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수십 통이 와 있는 메시지를 클릭했다. 모두 벤틀로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걱정이 짙게 배어있는 메시지를 모두 훑은 뒤, 클레이는 벤틀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한번 울리기 무섭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밀리안 님은 어떠십니까?]
“좋아. 지금은 자고 있고.”
[너무 무리하게 만드신 건 아니겠지요?]
“음. 그 정도까진 아니야.”
무리야 했지만, 히트 사이클에 이 정도는 가볍게 넘어간 축이라고 생각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잠든 얼굴을 힐끗 보고 방을 나섰다. 그 와중에도 벤틀로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조심조심 대하셔야 합니다.]
“정말 괜찮아. 날, 받아줬어.”
[……그럼 결혼식은 언제로 잡을까요?]
하하. 받아줬다는 말 하나에 저 앞까지 건너 뛰어버린 벤틀로의 설레발에 클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야 해.”
[아쉽군요.]
그래. 아쉽지. 클레이는 수없이 쏟아낸 자신의 고백에 밀리안이 조용히 웃기만 할 뿐, 똑같은 말을 되돌려주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섣부른 욕심은 그마저도 빨리 갖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클레이는 자신이 쏟아내는 고백을 밀리안이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것만으로도 밀리안이 얼마나 빨리 그녀를 받아들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괴롭게 하고 힘들게 했는데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밀리안의 용기에 감사하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야.”
[……다행, 입니다.]
“울지 마.”
[기뻐서 그렇습니다.]
“…….”
클레이는 벤틀로가 흐느끼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가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 말마저 한다면 벤틀로가 체통도 잊고 펑펑 울어버릴 걸 알기 때문에.
“내일 와.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가족끼리 함께 있어야지. 클레이의 말에 벤틀로가 날이 밝자마자 가겠다고 대답한다. 성급한 말에 클레이가 난색을 했다.
“안 돼. 프로펠러 소리가 너무 커서 밀리가 깰 거야. 일어나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 오도록 해.”
[배를 타고 가면 됩니다. 일어나시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려면 그것도 늦습니다.]
“……그래. 네 뜻대로 해.”
목소리만으로도 들뜬 기색이 느껴져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하긴, 벤틀로라면 자신이 연락할 때까지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을 테니 그것도 못 할 짓이긴 했다.
통화를 끝낸 뒤, 다시 밀리안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약간 피로한 기색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흘러나오는 그의 페로몬도 안정적이다. 이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얼굴인데 이미 자신의 눈은 객관성을 잃어 신뢰할 수 없다. 아마도 자신은 그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더라도 그저 예뻐 보이기만 할 테니까. 클레이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 앉아서 그의 얼굴을 살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바라봤다. 밀리안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이었다. 평생 단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이 순간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당신은 어떻게 날 받아들일 수가 있나. 클레이는 뒤늦은 후회와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그를 잔인하게 헤집었던 과거는 아마도 평생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붙을 것이다.
그때, 밀리안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침대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으며 불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클레이는 홀린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가 닿자 밀리안이 마치 안도했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맙소사.
클레이는 밀리안을 끌어안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에도 늘 하던 행동이다. 그는 항상 온기를 찾아 그녀의 품으로 안겨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전에는 그저 재밌다고만 생각했던 밀리안의 행동이 너무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목이 턱 막혔다.
* * *
일어날 수가 없다. 밀리안은 자신을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는 클레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대부분 그녀가 먼저 일어났었던 터라, 이렇게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조금 낯설었다. 밀리안은 살짝 몸을 틀어 자세를 좀 더 편하게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허리를 감은 여자의 팔에 힘이 더 세졌다. 결국 자세가 편해지기는커녕 더 갑갑해졌다.
“읏.”
살짝 허리가 삐끗해 작게 신음을 흘리는데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여겼던 여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파?”
“네? 아니,”
“거짓말하지 말고. 빨리 말해.”
방금 전까지 자던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밀리안은 이 대책 없는 과보호에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대체 자신을 어느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클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뇨,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팔을 풀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팔?”
무슨 팔? 클레이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그를 과할 정도로 세게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허무한 얼굴로 팔을 풀었다. 밀리안은 바로 몸을 빼고 상체를 일으켰다. 클레이는 옆으로 누운 채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하는 밀리안을 바라봤다. 그러다 장난기가 돌아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스윽 그었다.
“읏!”
“오, 예전보다 더 민감해졌네?”
“장난치지 마세요.”
“모닝 섹스도 좋은데, 난.”
클레이가 팔을 뻗어 밀리안을 잡아당겼다. 당황한 얼굴로 끌려온 밀리안의 코를 가볍게 깨물고 살짝 혀로 핥으니 그가 속았다는 얼굴을 한다. 클레이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밀리안.”
“……메리, 크리스마스.”
아주 쉬운 말이었고, 흔한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밀리안은 이 별거 아닌 말에 몸을 떨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같은 말을 되돌렸다. 이게 뭐라고. 고작 이런 사소한 말에도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가 얼마나 애정에 목말라 있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이 가련한 남자에게 한 행동도…….
“키스해줘.”
처음 키스는 오로지 당신의 몫. 그녀는 밀리안의 볼을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쓸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모르고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더니 곧 입술을 겹쳐왔다.
가벼웠던 입맞춤이 혀가 얽혀 깊어졌다. 클레이는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밀리안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인 후 그를 놓아주었다.
함께 욕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양치질까지 한 후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 나서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편한 옷을 입고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벤틀로를 발견했다.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습니다. 마침 식사 준비를 마쳤으니 식당으로 가시죠.”
벤틀로는 클레이를 향해 가볍게 대답한 후, 밀리안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식당으로 가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벤틀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밀리안의 전신을 훑었다. 가벼운 티셔츠와 슬랙스 차림을 한 밀리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걸었다. 사흘이나 지속된 성교로 혹여라도 몸이 상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여서 안심했다. 그런 벤틀로의 기색을 읽은 클레이가 짐짓 혀를 내찼다.
“괜찮다고 했잖아.”
“이제 밀리안 님과 관련된 주인님의 말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과보호는.”
“그래야 하는 분이니까요.”
“…….”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밀리안은 얼굴이 뜨끈해지는 걸 느꼈다. 고작 작은 신음 한 번에 벌떡 몸을 일으켜 추궁하던 클레이도 그렇고, 벤틀로도 그렇고 둘 다 너무 과했다. 이 두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도 확연히 알 수가 있어서, 밀리안은 열심히 운동해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