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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이었지만, 클레이는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한 번 더 쓰러지면 그땐 그냥 돌아가는 거야.”
“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거야? 난 당신 회사도 못 나가 게 할 거라고.”
“그건, 조금 곤란하군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
클레이는 짐짓 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지만,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어 그다지 무섭지도 위협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클레이 디어를 대하는 게 신기하고 낯설었다. 밀리안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클레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다 괜찮으니까…….”
“하, 진짜.”
클레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을 물었다. 참고 참았지만, 더는 불가능했다. 입을 맞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랫입술을 빨고, 신음을 흘리는 입술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녀는 점점 더 뒤로 쓰러지는 밀리안의 위를 점령하다시피 하며 단순한 키스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득하게 입 맞췄다.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상황이 이상해지자 대니얼의 표정이 썩었다. 그런 그를 벤틀로가 조용히 뒤로 끌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네? 정말 가도 돼요?”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벤틀로가 그를 끌고 헬기가 대기 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날은 아직 밝았지만, 밀리안과 클레이에게는 은밀한 밤이 찾아왔다.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건물을 울릴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상대를 탐하는 것에 여념이 없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서로의 숨소리와 은밀한 시선만 오고 갔을 뿐이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입술을 살짝 물은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남자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정말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밀리안과 마음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속 마음에 묻어두었던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클레이는 낮게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용서해줘.”
“……뭐를, 말입니까?”
“내가 네게 한 행동들.”
“…….”
밀리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놀란 표정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밀리안의 약한 마음을 자극했다. 스스로도 비열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그의 용서를 받아야 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나는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배우지 못했어.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
“…….”
“어머니는 아버지와 그를 똑같이 닮은 나를 싫어했고,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만 바라봤어.”
“…….”
“나는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방치당했고.”
“클레이.”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하게 될 줄도 몰랐지.”
클레이는 자신의 말에 남자의 눈이 떨리는 걸 똑바로 바라보며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당신의 마음이 약해서 다행이야. 그녀의 눈이 처연하게 흐려졌다.
“그저, 네가 내게서 도망가는 게 싫어서 그랬어. 멍청하지?”
“저는…….”
“다시 제대로 시작하자. 이제 당신이 싫어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거절하지 마. 당신이 싫어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지 않게 해줘. 아무리 달라지고 싶다 한들 본성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길 바랐다.
밀리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생 느껴본 적이 없던 겁이라는 것이 그녀를 휩쓸었다.
그때 밀리안의 손이 그녀의 배에 닿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은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수술 자국, 보고 싶습니다.”
“뭐?”
“벗어요. 당장.”
“밀리?”
아까 그녀가 했던 것처럼 밀리안이 클레이가 입고 있는 셔츠를 찢듯이 벗겨냈다. 성급한 손가락이 단추를 풀다 아예 뜯어버린 것도 있었다. 클레이는 밀리안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셔츠가 완전히 벗겨지자 밀리안은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날렵한 복근이 미려하게 새겨진 새하얀 피부에 절개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흠 없던 매끄러운 피부에 남은 유일한 오점. 왜 몰랐을까. 함께 씻고, 함께 잠을 잤지만, 그는 그녀의 몸에 상처가 났음을 몰랐다. 무심해도 이렇게 무심할 수가 없었다.
시작은 엉망이었다. 괴롭고,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벗어날 날만 하루하루 세어가며 버텼던 순간들. 용서해달라고? 용서할 수 있을까……. 잠시 스스로를 향해 물었지만, 아무것도 확답할 수 없다.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용서하겠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내려 클레이의 배에 새겨진 흔적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줬다는 증거였다. 이 완벽한 육체에 남은 흠이 안타깝고, 기쁘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길 바랐다. 밀리안은 상처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였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이었다.
“내 거예요, 이건.”
“…….”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겁니다.”
“밀리.”
“말해주세요. 제 것이, 맞습니까?”
밀리안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곧고 선명한 눈동자에 담긴 열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클레이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그래. 모두 네 거야. 제발 가져줘.”
클레이는 애원하듯 말하며 밀리안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불안정한 떨림이 오히려 안심됐다. 그가 자신을 소유하고 싶다는 말이 황홀했다. 세상을 가진 것만 같다. 밀리안을 알기 전에는 몰랐던 공허함이 그로 인해 완벽하게 채워졌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모른 채로 살았겠지. 클레이는 밀리안의 얼굴을 끌어 올려 시선을 맞췄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랑해. 정말, 사랑하고 있어.”
“―!”
“네가 달라고 한 거야. 절대 버리지 마. 평생.”
“클, 레이…….”
버리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겠다며 협박한다. 고백마저 클레이 디어다워서 밀리안은 웃어버렸다. 하지만 웃음은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떨리고 떨려서 웃음 끝에 울음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게로 다가오는 클레이를 보며 밀리안은 눈을 감았다. 젖은 입술이 살짝 맞붙고 떨어졌다.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데 심장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또다시 수줍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간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입맞춤이 멈추고, 클레이는 밀리안과 이마를 맞댄 채 떨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손으로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극도의 긴장감과 설레임이 심장을 충만하게 한다. 섣부른 말로 이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시선으로 나누는 은밀하고 달콤한 대화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성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경건한 얼굴로 밀리안이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단추를 하나 풀 때마다 밀리안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언의 확인이 단추를 모두 풀 때까지 이어졌지만, 밀리안은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드디어 셔츠가 모두 벗겨졌을 때, 밀리안은 흉곽이 위로 솟을 만큼 깊은숨을 들이켠 뒤 천천히 내쉬었다. 클레이는 그런 밀리안의 코를 살짝 깨물었다. 긴장이 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단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 없는 애송이처럼 몸이 떨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 순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수없이 보고 만지고 물고 빨았던 밀리안의 육체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리 양쪽에 무릎을 대고 섰다. 그리고 앞쪽에 있는 비키니의 고리를 풀었다. 달칵, 금속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부푼 가슴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녀는 밀리안의 손을 끌어 왼쪽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떨려.”
“…….”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야.”
이러다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라며 클레이가 속삭였다.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남자가 옅게 웃었다. 눈을 아래로 내린 채 조용히 웃는 모습이 예뻐서 이대로 씹어 삼켜 뱃속에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페로몬을 풀 거야. 당신은 히트 사이클이 올 거고, 나와 짐승처럼 뒹굴게 되겠지. 정말 괜찮겠어?”
“제발 그만 물어보세요.”
밀리안이 그녀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클레이는 짧게 웃으며 경고했다.
“정신 잃지 마. 죽을 거 같아도 나만 붙잡고 있어.”
그러면 죽고 싶을 만큼 느끼게 해주겠다며 여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밀리안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 클레이의 페로몬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동안 실수로라도 배출하지 않았던 페로몬이 막힌 댐이 열린 것처럼 밀리안을 향해 콸콸 쏟아졌다. 방 안에 산소가 모두 사라진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밀리안은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본 클레이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깍지를 껴 막았다.
여자의 페로몬이 호흡기뿐만 아니라 모공 안으로 침투하는 기분이었다. 묵직하게 내려앉는 페로몬은 그저 향기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꼭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며 파고드는 것 같다. 가시에 찔린 것처럼 몸이 따끔거렸다. 배 안쪽이 무언가로 부풀고 있었다. 밀리안은 완전히 초점이 풀어진 눈으로 숨을 헐떡거렸다.
클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부족했다. 더, 더, 더. 몸이 조각나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의 흰자위에 핏발이 섰다. 절대로 이성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밀리안에게 히트 사이클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하지만 자신의 페로몬에 이끌려 조금씩 새어 나오는 밀리안의 냄새가 정신을 흐트러트렸다. 자신의 아래에 누운 밀리안의 몸이 정신없이 요동쳤다. 발갛게 익은 몸이 이리저리 튈 때마다 클레이는 끊어지려는 이성을 안간힘을 다해 부여잡아야 했다. 악다문 이가 갈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허용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밀리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아아아아아아아!”
“읏.”
“흐, 흐아아! 아, 안 돼, 그만!”
“밀리, 밀리안. 제발, ……조금만, 더 참아.”
밀리안이 비명을 질렀다가, 애원했다가, 울고, 또 빌었다. 그가 바라는 대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을 정도로 가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클레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몰아치는 것뿐이었다.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약하게 흘러나오고 있던 밀리안의 페로몬이 팡- 터졌다. 그녀의 페로몬으로만 꽉 차 있던 공간에 밀리안의 냄새가 뒤섞였다.
이대로 정신을 놓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 클레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그의 향을 몸 안에 가득 담았다.
“하아.”
이제 다 됐다. 밀리안은 무사히 히트 사이클이 왔고, 이제 남은 것은 그와 정신없이 뒹구는 것뿐이었다. 클레이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살점이 찢겨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