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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위로 올라온 손가락이 등줄기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그 관능적인 자극에 밀리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밌는 거 하고 있었네?”
“―!”
“모처럼 얌전히 재워준 보람이 없잖아.”
“사, 사, 사장님…….”
클레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제게서 등을 돌린 채 자위하고 있는 밀리안의 몸에 밀착했다. 이제는 근육이 어느 정도 잡혀 탄탄한 등에 가슴을 눌러버리자 밀리안이 벌벌 떨었다.
자신이 자는 사이에 바로 옆에서 페로몬을 풀풀 풍겨가며 앙큼한 짓을 한 것은 알아주길 바라서겠지. 이 음란한 몸을 어쩌면 좋을까. 당분간 정도를 걸으며 그의 마음을 얻어야겠다는 다짐은 밀리안이 벌인 행동으로 인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내가 그냥 자서 서운했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자지가 통통해졌어.”
귀여워라. 허리를 타고 넘어온 손이 그의 바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매끄러운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성기 끝을 톡톡 건드렸다.
“아흣!”
“만져줄까? 네가 결정해, 밀리.”
“―!”
난 이제 네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클레이의 나른한 속삭임에 허리를 떨던 밀리안의 몸이 움찔 굳었다. 그녀는 만질 듯 말 듯 애매한 거리에서 손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체온이 높아 만지지 않아도 여자의 뜨거운 살결이 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원했던 자극이 왔는데, 기대감만 안겨준 채 멈춰 있다. 내가 결정하라고? 밀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 어떻게? 항상 클레이의 일방적인 행동에 휘둘려 왔던 자신에게 그건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밀리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의 바지 안으로 들어왔던 클레이의 손이 미련 없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킨다.
뒤에 붙어 있던 여자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밀리안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말뿐이 아닌지, 여자는 침대에서 반쯤 벗어난 상태였다.
“왜, 왜…….”
“응? 아아, 아무래도 계속 이곳에 있으면 못 참을 것 같거든.”
내겐 좀 가혹한 일이라 이해해줘. 클레이가 고개를 돌려 그의 볼에 입술을 살짝 비볐다. 욕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담백한 입맞춤에 밀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왜 저러지? 이건 정말 클레이 디어답지 않았다. 밀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여자의 팔을 잡았다. 여자가 의아한 얼굴로 다시 그를 바라보고서야 자신이 그녀를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으음. 착각할 것 같은데.”
네가 날 원한다고. 클레이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제 손목을 잡은 밀리안의 손이 떨리고 있어서, 그의 눈동자가 떨려서 착각하고 싶어진다.
“그럼 이것만 대답해.”
“……무슨.”
“내가 싫어? 내가 만지는 게 싫었어?”
“…….”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도 돼.”
싫다. 싫은 게 당연하지. 그렇게 강제로 잡고 만져댔는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 고민도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웃던 여자의 얼굴과 키스해 달라던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며칠 전 처연하던 여자의 표정이 떠올라 말문이 턱 막혔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던 조금 전과는 달리 여자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이라니. 이것도 클레이 디어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여자는 오늘따라 이상했다. 너무, 이상해서 그녀답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클레이의 입술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이것도 어려운 질문인가?”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괜한 것을 물었다고 작게 속삭인다. 마치 며칠 전의 그 기운 없던 모습으로. 그대로 나가 버릴 것처럼 손목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떼어내려고 한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밀리안은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강하게 줬다. 의식하지 않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여자는 그의 손을 밀어내지도, 다가오지도 않은 채 그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무슨 뜻이야?”
“…….”
“이것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어?”
여자가 차라리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길 바랐다. 저렇게 웃지도 말고, 그냥 예전처럼…….
밀리안은 여자의 팔을 제게로 끌어당겼다. 여자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가 당기는 대로 끌려왔다. 맞닿은 입술에 놀란 눈을 피해 밀리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여자의 눈이 새까맣게 어두워진 것을 보지 못했다.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건 착각을 해도 된다는 뜻임을 모를 수가 없다. 클레이는 입을 맞춘 상태 그대로 침대 위로 올라와 밀리안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마 그의 혀를 핥고 얽고 빨아들이는 중이 아니었더라면 웃음을 참지 못했으리라.
수치심인가, 부끄러움인가. 밀리안의 얼굴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열오른 밀리안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쥔 채 고개를 돌려 다시 입을 맞췄다. 얽은 혀를 풀고 싶지 않다. 이대로 삼켜버리고만 싶었다. 고작 싫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에, 키스해달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입을 맞춘 밀리안의 행동에 등줄기가 바짝 곤두섰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클레이는 자신의 배에 닿는 남자의 발기한 성기를 느끼고 간신히 입술을 떼어냈다.
“흐읏, 으읍, 아…….”
“하아.”
머리가 자글자글 끓었다. 저 몸을 샅샅이 핥아서 녹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쾌락으로 길들이고 싶다. 자신의 손길이 아니면 절대로 가지 못하도록. 음습한 욕망에 그녀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매일 내가 정성껏 빨아줬는데, 고작 손으로 몇 번 훑는다고 네 몸이 만족할 리가 없지.”
“아, 아, 아아!”
예쁜 소리로 우는 밀리안의 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클레이는 그의 목을 혀로 핥으며 성기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다른 한 손은 볼록 튀어나온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작은 유두가 제법 커졌다. 손가락으로 쥐고 문질러도 좋을 정도의 크기여서 흡족했다. 유두와 성기를 손으로 훑고 흔들었다. 클레이는 목을 뒤로 젖힌 채로 헐떡거리는 밀리안의 얼굴과 목, 귀를 핥았다.
“아, 아흣! 으응! 아! 싫, 아, 안 돼, 아, 아아! 아흣!”
“괜찮아, 느껴도 되니까. 이대로 싸버려.”
“아아아아아!”
밀리안이 큰소리로 비명 같은 신음을 쏟아내는 순간, 클레이는 혈관이 돋은 목을 아득 깨물었다.
* * *
사정을 한 사람은 밀리안이었지만, 클레이의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그녀는 밀리안이 쏟아낸 사정액을 모두 핥아먹은 것으로도 부족해 다시 한번 빨아서 새로운 점액질을 받아먹었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클레이에 의해 헐떡거리던 밀리안은 전신을 감싸는 미묘한 만족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이성이 돌아오자 자신이 한 행동을 믿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부끄러워?”
“…….”
“나는 좋았어.”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마치 소중한 어떤 것을 대하듯이 입술을 묻은 여자의 행동도 안정감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밀리안은 긴 숨을 한숨처럼 내쉬었다. 여자와 함께 있으면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잠깐 기다려.”
촉- 여자는 그의 목 뒤에 입을 맞춘 뒤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자의 체온이 사라지자 전신을 감싸고 있던 안정감도 덩달아 사라진 느낌이 든다. 밀리안은 상체를 일으켜 멍한 얼굴로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누워 있지, 왜 일어나 있었어?”
젖은 수건을 가지고 돌아온 클레이는 몽롱하게 풀어진 얼굴을 한 밀리안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계속 웃음이 나왔다. 이건 그녀가 참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그래.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들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된 것 같아 심장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바보처럼 계속 웃게 됐다. 이전까지는 밀리안과 몸을 겹쳐도 어딘가 허전했다. 그를 가진 것 같지 않아 더 조급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채워진 기분이 든다. 아마도 행복이라는 것이 아닐까.
클레이는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이 식기 전에 자신이 핥아 더러워진 밀리안의 몸을 닦았다.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밀리안의 반응도 달랐다. 포기하듯 쾌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에게 다시 자괴감을 느끼던 얼굴이 아니다. 입을 열면 지금의 평온함이 깨질 것 같아 클레이는 말없이 밀리안의 몸을 닦았다.
“옷.”
“응?”
“옷, 입고 있던 적이 처음인 것 같아서…….”
“그냥, 그러고 싶어서.”
복부에 수술 자국이 있어서 평소처럼 옷을 벗고 있을 수가 없다. 클레이는 의아한 얼굴을 한 밀리안의 볼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벗겨 놓았던 옷을 꼼꼼히 입힌 후 그를 끌어안고 누웠다. 밀리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순순히 그녀에게 안겨들었다.
돌아오길 잘했다. 배가 조금 불편했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였고 오늘 밀리안과 나눴던 관계를 떠올리면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미치겠네.’
클레이는 밀리안의 목에 얼굴을 묻고 분명 덜떨어진 모양새로 웃고 있을 얼굴을 숨겼다. 남자가 너무 예뻐서……, 귀엽고, 야하고, 아름다워서 그를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다. 소중히. 더 소중히 아껴줘야지. 당신이 도망치지 않도록. 날 좋아할 때까지. 스스로 날 선택할 때까지.
밀리안은 곧 잠들었다. 안정적인 숨소리와 축 늘어진 몸. 모두 자신의 품 안에서 녹아내렸다. 그녀는 그의 목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곤히 잠들어 있는 밀리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반듯한 이마, 살짝 쳐진 눈꼬리, 차분한 성격을 말하듯 반듯한 콧대, 살짝 풀어진 부드러운 입술까지 모두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이젠 더 이상 그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 어려웠다. 자신의 눈에 비친 남자는 눈이 부시도록 빛나서, 예전에는 왜 그를 평범하다고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밀리안은 날이 갈수록 예뻐진다. 실제로 그의 외모가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 자신의 눈이 이상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다. 심장이 조이는 기분에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리를 안고 한숨을 깊게 흘렸다.
내 거야. 절대 안 놔줄 거다. 그러니까 더 내게로 와, 밀리안. 이제 정말 잘해줄 테니까. 네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다시 제대로 시작하자. 이제 당신이 싫어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제발 그러지 않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