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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안은 사무실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몸이 나른하다. 자칫 정신을 놓았다가는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아 한걸음 걸을 때마다 신경을 써야 했다. 오늘만 대체 몇 번째 사정을 한 것일까. 성기가 빨리는 쾌감에 잠에서 깨는 것이 일상이었고, 출근하기 전 샤워를 할 때마다 아래의 털이 밀렸다. 음모가 아주 조금이라도 자라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번 제모를 하고 나니 계속 밀어야 했다.
여자의 앞에 다리를 활짝 벌린 상태로 성기에는 소변을 막는 막대가 꽂혀서…….
끊임없이 자극당한 성기 안쪽이 아직도 저렸다. 사정한 이후에도, 여자가 자신을 보기만 해도 숨이 흐트러졌다. 쾌감에 길든 몸이 끊임없이 자극을 바랐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여자가 자신을 휘두르는 대로 몸이 따라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쳤어.’
밀리안은 복도에 서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작 쾌감에 져서 헐떡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고 추해서 자괴감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러고도 또 여자의 앞에 서면 살갗이 예민하게 달아올랐다. 오히려 반응하지 않으려고 긴장을 해서 몸이 더 예민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밀리안은 끊임없이 자신을 혹독하게 질책하고 또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계속 이 상태가 지속 되면…….
잠시 복도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단단한 팔이 그의 어깨를 뒤로 확 끌었다.
“…!”
“밀리안, 마침 잘 만났다. 시간 되면 잠깐 얘기 좀.”
기획실장, 제이크 밀런이었다. 밀리안은 갑자기 몸이 꺾이면서 유난히 작은 속옷이 한쪽으로 밀려난 것을 느끼고 약한 신음을 흘렸다.
미친. 성기가 발기하고 있었다.
밀리안은 어떻게든 자세를 옮겨 이 이상한 자극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자신의 몸을 강제로 끌고 가는 제이크 밀런 때문에 그럴 틈조차 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오래 앉아 일하는 기획실장이 현장직보다 근육이 과다하게 많았다.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팔 근육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억눌린 신음을 흘리자 그제야 목에서 팔을 풀어주었다.
“미안. 아팠어?”
제이크가 소처럼 큰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지만, 밀리안은 목이 졸린 것보다 아래가 조이는 게 더 신경이 쓰여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자, 제이크의 표정도 덩달아 안 좋아졌다. 그제야 밀리안이 몸이 안 좋아 휴가를 오래 냈었다는 걸 기억해낸 듯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밀리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으로 목을 더듬었다.
“이제 운동은 적당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직 원하는 만큼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제이크는 팔을 안쪽으로 접으며 팔 근육을 과시했다. 밀리안이 보기에는 지금도 과했다. 사람의 몸이 풍선도 아닌데, 더 이상 몸을 키웠다가는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은 보는 사람만 느끼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의 취향이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불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밀리안은 옷을 정리하는 척하며 허벅지를 살짝 비벼 민감한 부위를 조이는 속옷에서 최대한 자극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그의 안색을 어둡게 했다. 제이크가 밀리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몸 아직도 안 좋아? 휴가 길게 받았길래 푹 쉬고 온 줄 알았는데.”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실 말이라는 게…….”
“아, 그게. 오늘 사장님 기분 어떠셔?”
커다란 덩치로 소심하게 몸을 구기고 목소리마저 한껏 낮춰 말하는 제이크는 매우 간절해 보였다. 그러나 밀리안은 고작 이런 질문을 위해 그렇게 무식하게 자신을 끌고 왔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났다. 예전이었다면 그가 원하는 대답을 쉽게 내주었을 텐데,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가시가 돋았다.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제발, 밀리안. 조금 있다가 회의라 정보가 필요해.”
“기획서를 잘 썼다면 오늘 사장님 기분이 어떠시든 상관없지 않을까요?”
“밀리안.”
“하아.”
인정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는 건 밀리안이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제이크 밀런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팀장의 자리까지 오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기획을 성공시켰는지 아는 밀리안은 제이크가 성격만 좀 더 담대했으면 지금보다 더 빨리 승진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최단 기간에 이사 자리까지 올라갔을지도.
하지만 그건 그거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가 바라는 대답을 해줘야 했다.
“오늘 사장님 기분은 괜찮으십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도. 사실 그도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그가 사장실에서 나온 이후 눈치 빠른 맥시가 한 말이니 맞을 것이다.
“정말이야?”
“네, 그러니 저 좀 놓아주십시오. 바쁩니다.”
“……많이 바빠?”
“네.”
아직 할 말이 남은 건지, 아니면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은 건지 제이크 밀런은 그를 더 붙잡아 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밀리안이 손목시계를 힐끔 보며 초조해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놓아주었다.
제이크 밀런이 밀리안을 끌고 온 구석은 다행히 화장실이 가까웠다. 이것만큼은 다행이었다. 밀리안은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잠그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치태가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이렇게 제대로 확인한 적이 처음이라 밀리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검은색 레이스가 화려한 꽃 모양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마치 속옷을 입은 게 아니라, 문신을 한 것처럼 살갗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가 옷을 입힐 때마다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시선을 피했었다. 막연히 이상한 것을 입었다고 생각만 했던 것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런 상태로 회사에 출근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했던 것이 생각나 밀리안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맙소사. 아까 느꼈던 아찔한 쾌감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자의 깊숙한 곳은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뜨겁고 좁았다. 그 좁고 뜨거운 입안에서 성기가 쥐어짜이고,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 정도로 끔찍한 쾌감.
저도 모르게 허리가 떨렸다. 밀리안은 떨리는 손으로 한쪽으로 쏠린 속옷을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펴 고환을 감싸도록 했다. 작은 속옷을 최대한 넓게 펴고 빠른 속도로 바지를 입은 밀리안은 좌변기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쳤다. 이건 미친 게 분명하다. 정욕에 무릎 꿇어버린 수치심이 끝을 모르고 쌓여갔다.
차라리 벗어놓고 회사 끝날 때쯤 입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클레이 디어가 어떻게 할지 몰라 섣부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자위했던 것이 조금 전인데 벌써 한계를 느꼈다. 그 여자를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아니, 감당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클레이 디어가 자신에게 질리기 전에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 이러다 그녀의 수많은 남자들처럼 그 우아한 다리에 매달리게 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잘게 떨리는 손바닥을 멍하게 내려다보던 밀리안은 탄식을 내뱉었다.
‘섹스 한 번 한다고 인생이 어떻게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그를 향해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섹스 따위에 인생이 뒤바뀌지 않겠지. 당신 같은 알파에게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당신이라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하지 마, 밀리안. 계약이 끝날 때까지, 그 여자에게서 벗어날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
밀리안은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를 휘두르는 여자의 행동에도, 그에 반응하는 자신의 몸에도. 생각하면 할수록 견디기 어려워진다. 다리를 움직이자 다시 아래가 옥죄어왔다. 한번 인식을 하고 나니 아래가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밀리안은 잠시 서서 한숨을 짙게 내쉬고 오래 자리를 비워둔 사무실로 돌아갔다.
외부 일정이 있는 줄리아는 레이를 끌고 자리를 비웠다. 맥시만 혼자 남아 곧 있을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밀리안 역시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려는데 맥시가 의아하다는 듯 그를 향해 물었다.
“사장님은요?”
“네?”
“조금 전에 사장님께서 밀리안을 찾으셨거든요. HR팀에 잠깐 갔다고 하니까 찾으러 가셨는데……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통화 마지막에 찾았다고 그랬는데…….”
“잘못 보신 게 아닐까요?”
“으음. 하긴, 사장님을 만났다면 밀리안이 혼자 왔을 리가 없긴 하네요.”
그럼 왜 안 오시지. 맥시의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서실 문이 열렸다. 자리에 앉은 밀리안과 백육십이 될까 싶은 작은 키의 맥시가 안으로 성큼 들어온 여자를 올려다봤다. 클레이 디어는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훑었다.
“회의 준비는?”
“네? 아, 네. 모두 마쳤습니다.”
“그럼 여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회의실로 이동해.”
“……네에.”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에 맥시가 어깨를 좁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프린트물을 챙겼다. 종이의 높이가 상당해 맥시의 콧잔등을 덮을 지경이었다. 밀리안이 일어나 맥시가 들고 있는 서류 대부분을 가져왔다.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밀리안.”
부려먹을 레이도 줄리아를 따라 외근을 나간 터라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밀리안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러다 떨어트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이라고 맥시가 속삭였다. 왠지 큰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눈치를 살피는 맥시의 동그란 눈에 밀리안이 말없이 옅게 웃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맥시가 밀리안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갑자기 왜 저러시죠?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 보이셨는데…….”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회의실로 가죠.”
“네에.”
괜히 이곳에 오래 남아 있다가 엉뚱하게 화를 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류뭉치 위에 태블릿과 핸드폰을 올린 뒤 대회의실로 향했다.
맥시는 자꾸 뒤처지는 밀리안을 돌아봤다.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걸음이 느렸다. 그녀는 살짝 뒷걸음질 쳐 밀리안에게 돌아갔다.
“무거워요? 제가 좀 더 들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신경 쓰지 마세요.”
“얼굴이 붉은데. 혹시 몸 다 안 나았는데 무리하는 건 아니죠?”
“그런 게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가요.”
걱정해주는 맥시에게 속옷이 불편해 저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진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을 턱이 없다.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밀리안은 원래의 보폭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래가 야릇하게 조여서 차라리 빨리 이동한 후 화장실을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앗! 같이 가요, 밀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