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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이 다할 때까지 속을 게워낸 밀리안이 기절하듯 잠들자 클레이가 방을 빠져나왔다. 응접실에는 에릭 드와이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쪽 반응은 어떻지?”
“당황한 것 같습니다. 이미 관리 당국과 합의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소환당했으니까요.”
에릭의 보고에 클레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좀 더 길게 잡고 있으라고 해.”
“차라리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안 돼. 좀 더 오래 괴롭혀 줘야지.”
밀리안이 그들에 의해 괴롭혀진 만큼. 순순히 편하게 해줄 마음은 없었다. 피가 마를 정도로 괴롭히고 괴롭혀 줄 테니까. 게다가 감히 밀리안에게 찾아올 생각을 했다는 것도 그런 클레이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혈연만큼 우스운 것도 없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끊어낼 수 있었다. 특히 미국에선 더더욱 쉬웠다. 그쪽에서 먼저 끊었으니 이제 바통은 이쪽으로 넘어왔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끊어줄 것이다. 그들이 밀리안에게 했던 그 이상으로.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밀리안이었다. 그가 전면에 나오면 안 되니까. 가능한 그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일을 너무 키워서도 축소 시켜서도 안 된다. 이 정도의 강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 일이라기보단 귀찮다는 쪽에 가깝지만.’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클레이는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동시에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 덕에 밀리안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불쾌한 벌레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다. 오래 시간을 끌수록 귀찮아지지만, 그만큼 상대는 괴로워질 것이다.
“밀리안에게는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합니까?”
“평생. 오늘처럼 그 여자가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시해. 아, 병원도 처리하고.”
밀리안이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모든 행동뿐 아니라, 그가 느끼는 감정조차도 통제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사해온 밀리안 디모시의 어린 시절입니다.”
“음.”
에릭이 서류가 든 가방을 그녀에게 넘겼다. 성인이 된 이후는 조사하기 쉬웠지만, 닥터 디모시가 은근히 지워버린 발현 전의 시절은 조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클레이는 마치 밀리안을 대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검은색 가방의 표면을 쓸었다. 잠금장치를 돌려 비밀번호를 맞춘 뒤 열어보니 서류가 가득 차 있었고, 가장 위에는 작은 메모리 카드가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메모리 카드만 뺀 뒤 다시 가방을 닫아 벤틀로에게 넘겼다.
“수고했어. 더 붙잡고 있으면 엘레나가 화내겠지?”
“……이미 화가 난 상태긴 합니다.”
에릭이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미간을 손으로 꾹 눌렀다. 드물게 당황한 남자의 모습에 클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빨리 가서 화를 풀어줘. 내일은 푹 쉬고.”
“감사합니다.”
평소라면 딱딱할 만큼 규칙을 내세우며 그녀의 호의를 거절했을 텐데 화가 난 아내가 무서운 모양인지 에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릭의 아내 엘레나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그녀가 먹고 있는 약도 떠올랐다. 그 약한 몸으로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그런 약을 달고 살까. 밀리안이 그렇게 행동했더라면 자신은 아마 모든 재산을 그에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에릭이 그때 밀리안에게 그 약을 선물했었지. 먹었을까? 그걸 먹고 괴로운 밤을 보냈을까? 대니얼이 자신이 처방한 약을 제외한 모든 것을 차단해서 지금은 먹일 수 없지만, 클레이는 밀리안이 건강해지면 한번 먹여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러워.”
“네?”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에 에릭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클레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내저었다.
“네게 한 말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돌아가.”
“……네.”
에릭이 돌아간 뒤 그녀는 바로 밀리안에게 돌아갔다. 그의 곁에 누워 그와 체온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문을 열려던 찰나, 무언가 그녀의 머리끝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무시해버리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은 섬뜩한 기분.
“…….”
클레이는 손에 쥐고 있던 메모리 카드를 내려봤다. 밀리안의 과거. 이 작은 칩 안에 들어있는, 자신이 모르는 그의 과거가 어쩌면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 * *
맹세컨대, 클레이는 더 이상 회사에서 밀리안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쾌감에 절은 야릇한 얼굴로 아무나 유혹하고 다니는 꼴을 그대로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밀리안을 그 꼴로 만들고 게빈 앞에 보였던 것을 후회했고, 그런 야한 모습은 자신만 보고 즐기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런데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분명 오전 일정을 브리핑하겠다고 밀리안이 사장실로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상태였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입술을 빨며 왜 자신이 밀리안을 밀쳐놓고 그 위에 올라타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자신의 혀에 감기는 밀리안의 야한 입술 때문에 불가능했다.
“으응.”
“하.”
아무리 쾌감에 익숙해지도록 공을 들이고 만져왔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홀려도 되는 건가. 클레이는 밀리안의 신음을 들으며 고개를 돌려 다시 입을 맞췄다. 밀리안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냈다. 살짝 혀를 얽고 가볍게 빨았을 뿐인데 허리가 지끈거리는 음탕한 소리를 흘려댄다.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여기서 또 일을 치를 것 같아 억지로 입술을 뗐는데, 남자는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인다.
“하, 하아, 아아…….”
“밀리안, 너.”
정말 싫은 거 맞아? 사실 날 유혹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무뚝뚝한 얼굴이 흐트러질 때마다 야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사람을 이렇게까지 무너트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을 두고 그의 몸을 제 취향대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 남자는 오히려 저를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야한 거야?”
“……네?”
“일부러 이러는 거지?”
“네?”
이것 봐. 혼자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눈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 클레이는 제 배를 누르고 있는 남자의 발기한 성기를 느꼈다. 몸은 또 왜 이렇게 예민해? 고작 키스 한 번에 벌떡벌떡 세우고, 허리를 떤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밀리안은 지금도 허리를 잘게 흔들고 있었다. 며칠 만에 쾌락을 습득해 본능적으로 더 큰 쾌락을 바란다.
정말 이대로 나돌아다니게 둬도 좋을까? 클레이는 밀리안이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는 대체 어떤 얼굴을 할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그 꼴을 다른 사람까지 볼 거라고 생각하니 짜증 나기도 했다.
망할 계약서. 클레이는 자신의 꾀에 자신이 걸려 넘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일 년간 집에만 두고 혼자만 독차지하는 것으로 작성했을 텐데.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를 심란한 눈으로 내려보고 있자, 밀리안이 정신이 돌아왔는지 몸을 슬슬 뒤로 밀고 있었다. 멋대로 제 아래에서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니 또 핀트가 나갔다. 저 예쁜 성기를 부풀린 채로 어딜 가려고? 한번 달아오르면 쉽게 식지도 않는 주제에.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리를 잡고 다시 제 쪽으로 끌어내렸다.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질질 끌려왔다. 그대로 바지의 버클을 풀자 검은색 레이스에 둘러싸인 예쁜 성기가 퉁- 튕겨 나왔다.
“무, 무, 무슨, 하지, 하지 마세요. 앗!”
“쉬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밖에서 들어.”
“흡!”
그제야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회사 사무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는다. 흔들리는 눈으로 활짝 드러난 자신의 성기를 봤다가 그녀를 봤다가 정신없이 눈동자가 움직였다. 참나. 클레이는 밀리안의 성기를 가볍게 흔들며 혀를 찼다. 벌써부터 곧 다가올 쾌감을 기대하고 있는지 잔뜩 애액을 흘리고 있는 주제에 누굴 그런 눈으로 보는 거람.
클레이는 상체를 내려 밀리안의 귀를 아프게 깨물었다. 어디가 딱 약한 곳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성감대인 남자가 흠칫흠칫 떨었다.
“그렇게 기대돼? 벌써 내 손을 다 적셨어. 이렇게 질질 흘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야한 냄새를 풍기고 다니려고 한 거야?”
“아, 아니, 아닙, 아흣! 아, 아아, 아으읏……!”
“이것 봐. 내가 뭘 했다고 또 그런 소리를.”
허리까지 들어 올린 채 바들바들 떠는 꼴을 보니 기대에 부응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레이는 몸을 뒤로 밀어 밀리안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좋은 냄새. 비리고 야하고 씁쓸한 맛이 입에 착 감겼다.
클레이는 제 입안에서 부피를 키우는 성기를 혀로 훑고 가볍게 빨아들였다. 남자의 허리가 요란하게 들썩였다. 이제는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제 입을 열심히 들락거리기까지 한다. 남자의 성기를 빨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입안에도 성감대가 있는 모양이었다. 목구멍을 치는 두꺼운 것에 클레이는 목을 울리며 신음했다.
시간을 끌며 천천히 즐기면 큰일 날 것 같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리를 꽉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뒤 본격적으로 남자의 성기를 빨았다. 조금 더 자극당했다가는 삽입까지 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정한 뒤 붉어진 얼굴이 가라앉을 때까지 멍하게 앉아있던 밀리안이 황급히 사무실을 나가자 웃고 있던 클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밀리안은 자신이 한 행동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도리어 그녀를 질책하는 듯한 눈빛이 황당하고 웃기고, ……귀여웠다.
그러니까 오늘 이 일은 밀리안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도, 그제도. 모두 밀리안의 탓이었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밀리안은 자신에게 걸린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른 질 나쁜 여자에게 걸렸으면 이렇게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으리라. 야해 빠져서는. 융통성은 전혀 없고, 정석 그대로의 남자는 위험할 정도로 심장에 나빴다.
아무래도 오늘은 자신조차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계속 남자의 아래가 신경 쓰여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클레이는 머리를 책상에 박은 채로 어깨를 떨었다. 아, 귀엽다. 귀여워 죽겠네. 미치게 귀여워서 빨리 잡아먹고 싶어 애가 탔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 그렇게 야한 눈으로 보는데, 그 기대에 부응해주는 것이 도리겠지. 어쩌라고? 정말 건들지 않길 바란다면 젖은 눈으로 자신을 보면 안 됐다. 클레이는 셔츠 위로 툭 튀어나온 자신의 유두를 내려보며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욕구를 참아가며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 저 남자는 그걸 모르겠지.
집이 아닌 곳에서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던 결심은 애초에 무리였다. 이건 자신이 결정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끝까지 가지 않고 참아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할 만큼 했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린 클레이는 밀리안이 들어오기 전까지 보고 있던 문서를 다시 열었다. 빼곡한 검은 글씨를 읽어나가자 열기가 남아 있던 머리가 다시 차갑게 식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