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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먼저 내려 문을 열었을 에릭 드와이스가 등을 돌린 채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이는 얼굴을 아래로 내린 채 덜덜 떨고 있는 밀리안을 이끌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제정신이었다면 평소와 다른 점을 깨달았을 텐데, 사정의 여운 탓인지 왜 벌써 집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밀리안에게 그런 정신이 남아 있었다면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귀엽겠어.’
클레이는 도망치듯 저택으로 들어가는 밀리안의 등을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수치심으로 붉어진 얼굴, 아래로 고개를 푹 숙여 덜덜 떠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딱 잡아먹어 달라는 듯한 가련한 남자의 행태를 생각하니 차 안에서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살짝 후회가 들었다.
저택 현관 문턱을 넘자마자 밀리안이 먼저 계단을 올랐다. 흡사 도망이라도 치듯.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가늘게 경련하는 게 눈에 보여 클레이는 따라가지 않고 멈춰 서서 그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몇 번 다리를 휘청이다 결국 계단을 무사히 올라갔다.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하게 보던 클레이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벤틀로가 그녀의 곁에 서서 코트를 받았다. 주름진 눈에 약한 비난이 섞여 있었다.
“너무 괴롭히지 마시라니까요.”
“귀엽잖아.”
특히 우는 게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클레이가 어깨를 흔들며 웃자 벤틀로가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방종한 주인에게 배필이 생기나 했더니 이제는 그 배필이 못 견디고 도망가지 않을까 감시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점까지 선대와 똑같이 닮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물려받은 피가 짙고 짙었다.
“그래도 조금은 참으십시오.”
“참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 섹스도 안 했다고.”
자신이 한 것은 밀리안을 즐겁게 해준 것뿐이었다. 꼭 제 욕심만 채운 것처럼 비난을 당하는 것이 억울해 짐짓 투덜거리자 벤틀로는 눈을 크게 떴다. 안색이 괜찮아 보여서 밀리안을 쉴새 없이 괴롭히고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괴롭힌 건 사실이었지만. 클레이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시트가 항상…… 아, 죄송합니다.”
“너무 티를 내지 마. 밀리안이 알면 부끄러워할 테니까. 그러다 네 얼굴도 못 볼걸?”
“……밀리안 님이라면 분명 그러시겠죠.”
사실 고작 그런 것으로 부끄러워하는 밀리안이 너무 소심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또 그런 점이 귀여웠다. 괴롭히는 맛도 있고. 이제는 너무 빨리 자신과의 성애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조금 전에도 차 안에서 제게 귀여움을 받느라 한껏 울던 밀리안이 떠올랐다. 으음. 심각하게 예뻤던 탓에 당장이라도 쫓아 올라가고 싶어졌다. 열기를 흩트리려 머리를 살짝 흔들었는데 갑자기 시야가 흔들렸다. 다행히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 벤클로가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주인님!”
“괜찮아. 조용히…….”
소란을 피우지 말라며 주의를 준 클레이가 미간을 손으로 문질렀다. 잠시 눈을 감고 있으니 이내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괜찮으십니까? 페로몬이 너무 오래 쌓이면 건강에 안 좋다고 닥터가…….”
괴롭히지 말라며 밀리안의 편을 들 때는 언제고, 이제는 왜 섹스를 하지 않냐고 그녀를 다그쳤다. 정말 팔불출도 이 정도면 병이다. 클레이는 여전히 저를 걱정스레 보고 있는 벤틀로를 뒤로 물렸다.
“괜찮아. 오히려 너무 상쾌해서 이상할 정도니까.”
몸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간혹 이렇게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중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밀리안의 구멍에 박고 싶어 미칠 지경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긴. 그러고 보면 그녀의 인생에서 이 정도까지 성욕을 참은 적이 없었다. 하필 순진한 남자에게 꽂혀서는. 지금까지 방종하게 살아왔던 것에 죗값이라도 받는 것 같았다.
짐짓 혀를 차던 클레이는 이걸 밀리안이 들었으면 어떤 얼굴을 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의 입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발정이 나서 그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자신이 많이, 아주 많이 인내하고 참아주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
벤틀로에게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아직까진 괜찮았다. 참을 만했다. 밀리안이 제게 반응해서 허리를 흔드는 모습만 봐도, 그의 몸을 샅샅이 핥아내는 정도만으로도 머리를 어지럽히는 욕망을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만족스러운데, 정말 제대로 섹스를 하면 어떻게 되려나. 클레이는 시선을 들어 밀리안이 들어갔을 자신의 침실을 바라봤다.
* * *
밀리안은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도무지 진정이 안 돼 정장을 모두 입은 채로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은 순식간에 쏟아져 머리는 물론 옷 안의 살갗까지 모두 적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을 달궜던 열기가 식지 않았다. 계속 뜨거웠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 살짝 닿는 손길에도 쉽게 달아올랐다. 이러다 잘못되는 게 아닐 정도로 그의 신경은 모두 클레이 디어에게 닿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밀리안은 욕실 벽, 차가운 타일에 머리를 기댔다. 얼마나 됐다고. 며칠도 되지 않아 벌써 이렇게 힘든데, 일 년을 버틸 수가 있을까. 그 전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매번 같은 고민이 지겹지도 않은지 수시로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만큼 불안하고 초조했다. 쾌락은 순식간에 그의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 그동안 오래 참았다는 듯 거세게 쫓아와 결국은 그를 길들여버렸다. 고통보다도 무서운 것이 육체의 쾌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두려울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밀리안은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클레이 디어의 저택에서는 이런 일이 당연하다는 듯 틈이 날 때마다 일어났지만, 언제든 타인이 알아챌 수 있는 공간에서 겪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혹시라도 자신의 소리가 들렸으면 어쩌지. 타인이 클레이 디어와 자신의 관계를 알아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세차게 휘몰아쳤던 쾌감과 잔열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얼마나 차디찬 물 아래에 있었을까.
“왜 이러고 있어?”
소리도 없이 욕실에 들어온 여자가 샤워기 레버를 반대쪽으로 틀어 온수로 바꿨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밀리안을 따라 무릎을 굽혀 바닥에 댔다. 뜨거운 체온이 물과 함께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쳤다.
“기껏 혼자 있을 시간을 주었더니 몸이 상할 짓만 해.”
“사장…….”
“클레이라고 불러야지. 이제 집이야, 밀리.”
“…….”
“기분 좋게 해줬더니 이러기야?”
기분 좋게. 밀리안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클레이가 잠시 후 입술을 들어 올렸다.
“그거 알고 있어? 사실 그렇게 오래 내기를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는 거.”
“……네?”
“일부러 당신이 이기라고 아래를 보는데 각서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막더라.”
“―!”
“벌써 구멍이 쑤셔지는 거에 맛 들인 줄 알고 놀랐잖아.”
“거, 거짓말을…….”
“그러니 오늘 일은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야, 밀리안.”
여자의 말에 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의 머리가 정신없이 앞으로 이동하다 멈췄다. 맙소사. 여자의 말 대로였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멍청한 짓을 했다. 그때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여자의 시선이 떠오르자 자신을 치고 싶었다.
그러다 쓰디쓴 웃음이 일그러지듯 그의 입술에 맺혔다. 이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여자의 장난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버틸 생각만 했기 때문에…….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감히 그녀의 장난을 끝낼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밀리안이 얌전해지자 클레이가 그를 안아 들었다.
“기왕 젖은 김에 약 먹자.”
“…….”
“대니얼이 검사해야 한다고 소변을 채취해 오라던데?”
“―!”
“아까 보니까 털도 조금 자랐더라. 더 자라면 간지러울 거야. 겸사겸사 정리도 해야겠어.”
“무, 무, 무슨”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넌 좀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며 클레이가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괴롭히고도 또 괴롭히겠다는 말에 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저항하기에는 여자의 힘이 너무 강했고, 그는 너무 약했다.
클레이의 손에 뚜껑이 막힌 투명한 용기가 흔들렸다. 그 안에 있는 진한 노란 액체도 함께 흔들렸다. 성기의 끝을 입구가 좁은 유리 용기에 맞추고 소변을 배출하게 했다. 용기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 흘러서 적당한 양으로 살짝 덜어내고 뚜껑을 닫아 겉면을 깨끗하게 닦아낸 뒤 빤히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약을 먹고 아래를 면도하고 또다시 깨끗하게 샤워한 뒤, 긴 시간을 들여 전신 마사지까지 받은 밀리안은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멍하게 있다가 클레이가 들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걸 왜 보고 있습니까?”
“아, 정신이 들었어?”
“더, 더럽게…….”
“하나도 안 더러운데? 네 몸속에 있던 거잖아.”
“…….”
“물론 이러다 네 소변까지 빨아 먹을까 봐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상상도 못 한 변태 같은 말에 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무, 무슨,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농담이야.”
클레이는 들고 있던 소변 용기를 탁자 위에 세워놓고 밀리안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비볐다. 먹으라고 하면 정말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까지 먹고 싶어 안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밀리안의 땀, 타액,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다디단 애액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밀리안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농담 한 번 했을 뿐인데 아주 사색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소변까지 핥아먹을 정도로 변태는 아닌데 정말 믿는 기색이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가 밀리안의 소변을 담은 용기를 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첫날과 비교했을 때 색이 정상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밀리안의 몸에서 노폐물이 거의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뜻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이걸로 변태 취급을 받을 줄이야.
“계속 이러면 정말 먹는 수가 있어.”
“우, 우욱!”
“……이게 구역질까지 하며 놀랄 정도야?”
그에게 먹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밀리안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헛구역질을 해댔다. 손으로 입을 막고도 부족했는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고 속을 게워내는 밀리안을 따라간 클레이는 기가 찬 얼굴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절대 먹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어처구니없는 맹세를 하면서.
“안 먹어. 농담이라고.”
“우욱, 윽. 하아, 하…….”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네 소변까지 먹겠어?”
어차피 질릴 만큼 네 체액을 마시고 있는데. 클레이의 쓸데없는 첨언에 밀리안은 다시 변기에 머리를 박았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억지로 속을 게워낸 탓에 노란 위액과 침만 조금 흘러나올 뿐이었다.
잘 씻겨 놨는데 다시 더러워졌다. 클레이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뒤 밀리안이 진정될 때까지 그의 등만 끊임없이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