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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빈 스튜어트는 클레이가 그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는 듯 푹 파인 옷을 입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짙은 초콜릿색의 가슴이 쏟아질 듯 도드라졌다.
“정말 밀리안을 내게 줄 생각 없어? 아주 소중하게 잘, 쓸게.”
어떤 용도로 잘 쓰겠다는 건지 게빈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의 어린 비서처럼 밤 상대로 가지고 놀겠다는 뜻이리라. 밀리안은 손에 턱을 괸 채 무심한 얼굴을 한 클레이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밀리안은 얼마 전에 나와 전속 계약을 했거든. 소중한 인재를 네게 보내서 망가트릴 수는 없지.”
“오, 저런. 얼마에 계약했는데?”
그 값의 두 배를 치르겠다며 게빈 스튜어트가 협상을 제시했다.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야. 그리고 난 너와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클레이가 밀리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밀리안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그녀에게 넘겼다. 살짝 스친 시선을 통해 밀리안은 그녀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화제가 사업으로 돌아가자 게빈 스튜어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난잡하기로는 뒤지지 않는 알파였지만, 일에서만큼은 철저한 것마저 비슷했다. 그래서 둘 다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래 봤자 밀리안에게는 동족 혐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빙자한 미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다. 사업에 관한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그들은 사적인 감정을 모두 배제한 채 치열하게 원하는 것을 교환하고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지었다. 둘 다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목적한 바를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클레이의 어깨에 코트를 올린 밀리안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게빈 스튜어트가 입술을 들어 올린 채 그를 향해 음흉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야해졌네? 혹시 누구한테 먹혔어?”
“……무슨.”
“분명히 버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지금은 누군가에게 박혀본 경험이 있는 남자의 얼굴이라며, 푸른 눈동자가 그의 몸을 훑었다. 순간 벌레가 온몸을 기어 올라오는 듯한 혐오감이 들었다. 밀리안이 창백하게 질려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게빈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피처럼 붉은색의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정욕으로 벌어졌다.
“클레이, 지금 많이 바빠? 난 넷이 하는 것도 좋은데.”
“넷? 설마 그 넷에 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비서와 내 비서를 포함한 말은 아니겠지?”
“우리 첸이 연약해 보여도 잘 버텨. 좆 크기도 나쁘지 않아.”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보여주겠다며 게빈 스튜어트가 덜덜 떨고 있는 비서의 허리를 손으로 감았다. 밀리안은 클레이 디어가 가련하게 떠는 어린 남자의 몸을 훑어내리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봤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앞으로 모은 손이 차갑게 식었다. 두 알파의 대화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장소와 상황에 개의치 않는 게빈의 제안에 클레이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미안하지만 네 비서는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럼 밀리안만 빌려주든가.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된다니. 언제 그렇게 조루가 됐어?”
클레이가 짐짓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시종일관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게빈 스튜어트의 얼굴이 잠시 경직됐다.
“그리고 난 너와 달리 비서를 건드릴 만큼 굶지 않아서.”
“아하, 건드리지 않는다고?”
게빈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사나운 눈이 클레이 뒤에 서 있는 밀리안에게 닿았다. 밀리안은 뒤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
클레이가 우아하게 등을 돌렸다. 조용히 서 있던 경호원이 문을 열었고, 밀리안은 클레이의 뒤를 따라 호텔을 나왔다. 등 뒤가 서늘했다. 다리가 떨렸다. 호텔에서 나와 차로 돌아가기까지, 밀리안은 최대한 평소처럼 걸으려고 노력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게빈 스튜어트가 그를 잡아챌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차 문이 닫히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세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려 무너져내렸다.
* * *
내기는 클레이 디어가 이겼다.
안 그래도 오래 발기해 성기가 아린 와중에 극도로 긴장했던 몸은 결국 버티지 못했다. 밀리안은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몸을 움츠린 채 결국 여자를 불렀다.
“사, 장님.”
“음?”
“풀어 주…….”
“벌써 포기야?”
그녀는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밀리안의 몸을 훑었다. 마치 평가를 하는 듯한 냉정한 눈동자에 몸이 떨렸다. 조금 전, 게빈 스튜어트의 비서를 훑을 때와 비슷한 눈빛이었다. 회사에서 그를 건드렸을 때와는 달리 흥미를 잃은 얼굴이 생소했다. 순간 섬뜩한 감각에 밀리안이 몸을 굳히자 여자의 입가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직접 빼봐.”
“네?”
“이제 내 손을 빌리지 않을 때도 되지 않았어?”
“―!”
밀리안의 몸이 바짝 굳었다. 그가 애원하면 클레이 디어가 들어줄 거라는 걸 당연한 전제로 깔고 있었다. 그게 절대 당연하지 않은 것인데도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에 정신이 멍했다. 직접 하라고? 어, 어떻게? 밀리안이 멍하게 눈만 깜박이자 클레이가 눈매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구멍에서 구슬만 빼내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하, 하지만.”
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붉어지길 반복했다. 도화지도 아니고 피부색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가 있나. 클레이는 도와주겠다며 밀리안의 바지 버클을 직접 풀어주었다. 밀리안이 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쳤다.
“아, 아뇨! 괘, 괜찮, 괜찮습니다. 이러지……!”
“괜찮아. 우리 사이에 내외할 필요 없어.”
반항하는 밀리안의 가슴을 밀어 쓰러트리고 다리를 벌려 그사이에 앉았다. 바지도 성기와 고환만 드러날 정도로 살짝 내렸다. 그것만 아니라면 완벽한 옷차림이라서 더 음탕한 부분이 도드라졌다.
바지를 열어보니 어떻게 이 상태로 참았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가관이었다. 아주 작은 붉은 색 속옷이 창백할 정도로 하얀 살결과 대비됐다. 속옷의 가느다란 천이 고환 가운데로 모여 성기를 당기고 있었다. 예민한 살갗에 붉은 선이 깊게 팼다. 누가 보면 가는 채찍으로 스팽킹이라도 한 줄 알겠다. 투명한 콘돔에 갇힌 성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고도 게빈 스튜어트 앞에서 멀쩡한 척을 했다니. 양심도 없이 치밀었던 화가 가라앉은 것도 모자라 안쓰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꽤 고통스러웠을 테니 그 보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겠다는, 밀리안의 의사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의지까지 불타올랐다.
클레이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게 빛나자 밀리안이 흡사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벌벌 떨었다. 저런 얼굴을 할 때 저 여자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밀리안이 무너지기 직전 클레이 디어가 그의 목을 잡아당겼다.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 드는 키스였다. 밀리안은 입을 벌린 채 클레이의 혀를 받고, 타액을 삼켰다. 삼키지 못한 것은 그의 턱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혀가 아릿했다. 클레이는 거의 그의 혀를 뽑아버릴 듯 깨물고 빨았다.
숨을 쉬는 게 어려울 정도로 난폭했고, 허리가 녹아들 정도로 음란한 키스였다. 도저히 밀어내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자극적이었다. 밀리안은 자신의 몸 위로 타고 오른 클레이에게 눌린 채 카시트에 완전히 눕혀졌다.
“하, 하아, 하읏, 허억, 흣!”
잠깐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데 클레이의 입술이 따라왔다. 대체, 왜. 그 선명하던 녹색 눈동자가 검은색처럼 보일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밀리안이 안간힘을 쓰며 그녀를 밀어내자 그제야 클레이가 상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팔 사이에 그를 가둔 채였다.
“기분이 더러워.”
“……네?”
“다른 여자 눈에도 네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는 게 짜증 나.”
“…….”
“적당히 예뻐야지.”
“……하아.”
전혀 공감이 안 되는 말이었다. 밀리안은 제 아랫입술을 잘근 깨무는 클레이의 행동에 짧은 신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 눈에 예뻐 보이라고 꾸며 놓은 게 아닌데.”
그냥 가둬버릴까. 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늘한 눈동자가 그 말이 진심이라고 알리고 있었다. 밀리안은 그 순간 클레이 디어를 사랑했던 이유로 진창으로 처박힌 케이 드렉스가 떠올랐다. 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무리 계약서를 썼다고 한들 한순간에 뒤엎어 버려도 상관없을 정도의 능력이.
사회에서 그 존재를 말소시켜버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두려워졌다. 조금 전 게빈 스튜어트와 클레이 디어가 나누었던 대화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들에게 오메가의 인권은 종이쪼가리보다 못하다.
이러지 말라고 밀어내려던 찰나, 두툼하게 부푼 성기가 잡혔다. 성기 안에 이상한 것이 박혀 있어 거칠게 주무르는 손길에 짜릿한 통증이 의식을 지배했다.
“아흣! 아! 아프…….”
“이걸 다른 여자에게 보여주기만 해봐.”
“아아아!”
클레이는 밀리안이 다리를 꼬며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다 집어치우고 이대로 저택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차에 연결된 벨이 울렸다. 하필 이 타이밍에. 클레이가 눈매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통화가 연결되는 버튼 두 개 중 붉은색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푸른빛이었다면 스피커로 연결했겠지만, 붉은색은 타인이 들어선 안 될 극비를 뜻했다. 그녀는 검은색 차 시트에 흐트러진 모습으로 누워 있는 밀리안을 한 번 바라본 뒤, 귀에 인 이어를 끼고 붉은빛이 반짝거리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지?”
[미세스 디모시가 회사로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클레이의 눈이 밀리안에게 닿았다. 닥터 디모시가 나름의 인맥을 이용해 빠져나온 것은 알고 있었다. 일부러 지켜보고 있었는데, 밀리안의 모친의 행동은 용납할 수 있는 수위를 넘겼다. 메시지와 전화만으로도 부족해 회사까지 찾아왔다는 말에 잔혹한 열기가 감돌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쪽을 터트려.”
[알겠습니다.]
다른 쪽은 닥터 디모시를 뜻했다. 다시 정신없게 만들어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라는 클레이의 숨은 뜻을 에릭 드와이스가 바로 이해했다.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클레이는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밀리안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갈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 게 보였다. 살짝 안도한 듯 경직된 몸이 풀어져 제게 안기는 것도 느껴졌다.
하여간 심술 부릴 시간도 주지 않는다. 클레이는 헛웃음을 삼키며 밀리안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감정적으로 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제어가 되지 않았다. 이건 모두 밀리안 디모시 때문이었다.
게빈이 밀리안과 은밀한 만남을 약속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밀리안이 여지를 줬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