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틱 섹슈얼-40화 (40/144)

-40-

“물론 변태라고 소문나는 것도 덤이겠지.”

“대체 당신은…….”

“너의 의복, 식사, 거주지까지 모두 내 소관으로 넘어온 것, 맞지?”

그렇게 계약했잖아. 클레이가 다시 계약 내용을 주지시켰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그의 모든 것에 일일이 간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제어할 정도로 클레이 디어는 강박적인 행동을 보였다.

밀리안이 약을 처방받은 그날, 고작 한 알을 먼저 먹었던 것 때문에 액상 약이 일주일 치가 더 처방되었다. 일주일 뒤에 보겠다던 닥터 크래포드가 다음날 찾아와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일주일 치의 약을 더 가지고 왔다. 매일 반드시 하루에 세 번을 지켜야 한다며, 의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전날과는 다르게 엄한 의사의 얼굴을 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한다며 페로몬을 막는 약까지 클레이 디어에게 빼앗겼다. 몸을 보호할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한 채로 밀리안은 일주일 내내 클레이 디어의 페로몬에 휩쓸렸다. 여자의 냄새는 강렬했고, 또 달콤했다. 그런 것을 그를 제정신으로 두지 않겠다는 듯 매 순간 퍼부어댔다.

발밑에 깊은 수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차근차근 그를 깊고 어두운 곳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은 아득한 감각이 무섭다.

밀리안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을 하자 클레이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 고분고분 안겨들었지만, 딱딱하게 경직된 몸이 안타까우면서도 흡족했다. 이렇게 품에 안고 천천히 그의 등을 쓸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곧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성욕을 담지 않은 손길은 느긋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옅게 흘려내는 알파의 향기와 맞춰져서 오메가인 밀리안에게 안정감을 줬다. 클레이는 긴장이 풀려 흐물거리는 남자의 허리를 더 강하게 잡았다. 그녀의 향기에 반응하는 것처럼 수줍게 흘러나오는 냄새를 찾아 클레이는 밀리안의 목덜미에 콧등을 비볐다.

“자, 이제 옷 입자.”

“……네.”

붉어진 눈가가 애가 탈 정도로 야하다. 매일 물고 빨면서도 늘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더, 더 강하게, 더 깊숙이 집어삼키고 싶은 욕망이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러다 다리라도 부러트려 제 곁에 주저앉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그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클레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밀리안의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손수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개입해 만든 옷을 꺼내 밀리안에게 입혔다. 그동안 어떻게 그런 거친 질감의 옷을 입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밀리안의 피부는 연약했다. 별로 힘도 주지 않고 살짝 만지고 빨아도 흔적이 오래 남았다. 밀리안의 몸은 그동안 학대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클레이는 양심도 없이 투덜거렸다.

새하얀 셔츠와 어두운 청색의 바지와 재킷은 밀리안의 몸에 완벽하게 어울렸다. 클레이는 밀리안을 전신 거울 앞에 세워두고 그의 뒤에서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잘 어울려.”

“……감사, 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런 입바른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입을 맞춰달라며 클레이가 속삭였다. 그녀가 입술을 열 때마다 흘러나오는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에 닿아 밀리안은 순간 몸을 진저리쳤다. 살갗에 소름이 돋고,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밀리안은 멍하게 바로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다 눈을 크게 떴다. 고간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고작, 여자의 입김만으로도 몸이 반응한 것이다.

밀리안은 여자가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재킷의 단추를 채웠다. 두 번째 단추를 채우려던 찰나, 여자의 손이 허리 안으로 들어와 그의 손등을 감쌌다.

“밀리, 네 좆이 발기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

“―!”

“건드릴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떨지 않아도 돼.”

“…….”

“그 큰 게 안 보이겠어? 나도 눈이 있는데.”

그렇게 말을 한 여자가 그의 손을 치우고 남은 단추를 손수 채웠다. 그리고 가볍게 그의 허리를 안은 채 뒷덜미에 짧게 입을 맞췄다.

“출근하기 싫다.”

“시간이…….”

“알아.”

눈치 없긴. 여자는 거울을 통해 밀리안에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그의 허리에서 손을 풀고 직접 옷을 꺼내 입었다. 창을 투과해 쏟아져 내리는 하얀 빛이 여자의 우아한 몸을 감쌌다. 밀리안은 눈을 돌릴 기회를 놓치고 여자를 멍하게 바라봤다.

장인이 공들여 세공을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우아한 라인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으로 감싸고도 남는 부피의 가슴은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만지면 하얀 가루가 묻어 나올 것처럼 뽀얗다. 살결이 투명할 정도로 하야면서도 건강해 보였다. 가슴 중앙에 붉은색의 유두가 톡 튀어나와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디 하나 모자라지도, 과하지 않았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와 탄력적으로 올라붙은 엉덩이, 관능적인 허벅지와 그 사이의 금색의 체모……. 멍하게 여자의 음부를 보던 밀리안은 황급히 눈을 깜박였다. 아까부터 여자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불안하게 시선을 올리니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열이 훅 올라 얼굴이 터질 것 같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귀까지 막지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여자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볼 정도로 내 몸이 마음에 들었어?”

“…….”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 젖어버렸잖아.”

“―!”

“할까?”

등을 돌린 밀리안의 뒤에 나체의 여자가 바짝 달라붙었다.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항상 흐트러진 것은 밀리안이었고, 여자는 대체로 옷을 모두 입은 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재킷까지 입어 완벽하게 외출을 하는 차림을 한 밀리안과 아무것도 입지 않은 클레이 디어.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흔들리는 것은 밀리안뿐이었다.

여자의 손이 허리를 타고 들어와 그의 상체를 부드럽게 훑으며 올라왔다. 재킷 안으로 들어온 손이 그의 가슴에서 멈췄다. 그녀의 손가락이 닿고 나서야 밀리안은 자신의 유두가 예민하게 곤두섰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또? 밀리안이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그의 유두를 꼬집은 여자의 손이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갔다.

“흣!”

“농담이야.”

안 건드린다니까? 여자가 웃음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뜨거운 체온이 사라지자 등이 서늘해졌다. 밀리안은 등을 돌리지 않은 채로 그녀가 옷을 입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더 이상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리고 밀리안은 그 소리에 안도감이 들기보다 이상한 초조감이 들었다. 힘주어 쥔 주먹이 축축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기분은 아무리 경험을 하더라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초조하게 여자가 옷을 모두 입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손에 뜨거운 체온이 닿았다.

“이제 다 입었는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 피부 상해. 힘 풀어.”

“아.”

“이것 봐. 손톱자국이 남았잖아.”

여자는 주먹 쥔 그의 손을 가볍게 풀고 눈살을 찌푸렸다. 밀리안은 긴 머리를 한쪽으로 몰아서 느슨하게 묶은 여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힐을 신었는지 시선이 훌쩍 올라와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여자의 얼굴에 미려한 그림자가 졌다. 미간에 진 주름조차도 섬세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봤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클레이 디어는 특별했다.

“밀리? 왜 그래?”

어디 아파? 긴 속눈썹이 올라와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안에 그를 향한 걱정이 담겼다. 밀리안은 급격히 뛰는 심장에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걱정이라고? 저 여자가, ……나를?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날 걱정한다고. 하물며 클레이 디어가 그럴 리가 없다. 그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상태가 이상해 보이니 확인을 하는 것뿐이겠지. 술렁거리던 심장이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묻는 여자의 질문에 밀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네, 갑자기 손을 잡으셔서 놀랐습니다.”

“……그래?”

여자의 눈이 날카롭게 그의 얼굴을 훑었다. 밀리안은 여자에게서 손을 빼내고 등 뒤로 물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피하려는데, 여자는 그의 턱을 손으로 밀어 올려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강제로 마주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이 났다.

“날 똑바로 봐. 정말 괜찮아?”

“읏.”

“안색이 창백해. 아까는 분명 이러지 않았는데……. 밀리, 몸이 안 좋으면 말을 해. 대니얼을 부를까?”

“아뇨! 아니에요. 정말, 괜찮으니까……, 놔 주십시오.”

괜찮아요. 밀리안이 자칫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막고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발기한 성기 끝이 바지에 문질러져서 곤란했다. 차라리 속옷이 평범한 남성용이었다면 나았겠지만, 클레이 디어가 입힌 속옷은 그의 성기를 노출 시킬 정도로 아주 작았다. 게다가 지금은 외부로 빠져나온 면적이 더 많아졌다. 이러다 바지를 적실까, 겁이 났다.

지금은 여자가 페로몬을 배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몸이 너무 쉽게 반응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떻게든 막았는데, 숨이 헐떡이며 흘러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거였어? 말을 하지. 한번 빼고 갈까? 응?”

“아뇨! 아뇨, 괜찮, 괜찮습니다……. 제발 그만해주세요.”

“불편할 텐데?”

“……약을 먹으면.”

약을 달라는 밀리안의 요구에 클레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설마 약을 주지 않으려는 걸까. 밀리안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클레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발버둥 쳐보는 것도 좋겠지.”

잡고 있던 그의 턱을 놔주고 그녀는 몸을 돌려 열쇠로 잠가 놓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약 한 알을 꺼내 밀리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걸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무시했다.

“아.”

“……사장님.”

“클레이라고 부르라니까. 아직 회사 아니잖아.”

집에서는 이름을 부르기로 했지만 밀리안은 여전히 제정신인 상태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가 꺼려졌다. 그가 고집스레 입술을 깨물자, 클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지만 직접 먹여주려는 의지는 꺾으려는 기미가 없었다.

“제가 먹겠습니다.”

“입 벌려, 밀리.”

착하지? 클레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이 이상 자존심을 세우는 게 더 미련한 짓이라는 걸, 일주일간 제대로 깨달았던 터라 밀리안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 입술을 벌렸다.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입술 가까이에 있던 약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타액과 닿자마자 녹아버린 약은 살짝 씁쓸하고, 또 미묘하게 달았다.

이전에 느꼈던 대로 약은 효과가 굉장히 좋았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잔향처럼 남아 있던 클레이 디어의 냄새가 씻은 듯 사라졌다. 밀리안은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눈을 크게 떴다. 신기해하는 밀리안과는 반대로 클레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음. 약이 너무 좋은데? 정말 베타 같아. 냄새가 전혀 안 나.”

“다행.”

“그런데 이것도 좋은데? 산뜻해.”

“…….”

그의 목덜미에, 손에, 귓가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던 클레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밀리안의 몸이 설핏 굳었다.

“이제 출발하자.”

“……네.”

팔이 드러나는 케이프 형태의 짙푸른 코트를 어깨에 걸친 클레이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에게 이끌려 정원 앞, 현관까지 내려가면서 밀리안은 여자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여자의 뒷모습조차도 완벽해서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밀리안은 그녀의 등에서 시선을 내려 손을 바라봤다. 여자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 깍지를 껴 옭아맨 상태였다. 가볍게 잡은 것 같으면서도 뿌리칠 수 없도록…….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밀리안은 계속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