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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섹슈얼-32화 (3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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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와. 씻어야지.”

클레이는 여전히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밀리안의 입술을 가볍게 빨고 몸을 일으켰다. 뻣뻣하게 몸을 굳힌 남자의 몸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남자는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저항은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욕조에 앉혀놓고 물을 틀었다. 욕조의 사방에 있는 구멍을 통해 따뜻한 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갈색 눈동자가 왜 이렇게 야해 보이는지. 여자의 붉은 혀가 마른 입술을 핥아 적셨다. 첫 섹스로 넋이 나가 있는 남자를 또 괴롭히면 안 되겠지. 그녀는 투명한 물이 차오르면서 생기는 물결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남자의 성기를 아쉽게 바라봤다.

성큼 밀리안이 앉은 욕조에 들어간 클레이는 마른 허리를 가볍게 당겨 안았다. 자신의 가슴이 짓뭉개질 정도로 맞닿자 흠칫 떠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덜덜 떨면서도 안겨있는 건 좋아한단 말이지. 단 하룻밤만으로 밀리안의 약점은 대충 꿰뚫었다.

잠을 자면서도 밀리안은 자꾸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따뜻한 체온을 찾아서. 오메가는 대체로 평균보다 체온이 낮은 편이다. 알파는 평균보다 체온이 높고. 하지만 밀리안은 그 평균보다도 체온이 낮은 편이었고, 클레이는 평균보다 체온이 높았다. 어쩜 이렇게 상성이 잘 맞는지.

클레이는 밀리안의 배를 손으로 진득하게 쓸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 것이다. 내 것이 드디어 나타났다. 완벽하게 그녀에게 맞춰진 몸을 가진 남자가 가엽고 사랑스러웠다.

비열한 협박을 하던 여자의 손길은 부드럽고 다정해서 더 혼란스러웠다. 따뜻한 물과 부드러운 여자의 살결이 바짝 오그라든 심장을 느슨하게 만들려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바짝 긴장하고 도망칠 구석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데. 십여 년 만에 타인과 나누는 체온이 따뜻해서 자꾸만 긴장이 풀어졌다.

밀리안은 여자가 말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넓은 욕실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어딘가로 사라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건지, 여자는 다시 말을 걸었다.

“약은 몇 년 동안 먹은 거지?”

“……이미 다 조사하신 거 아닙니까?”

“네게서 직접 듣고 싶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지.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넌 영원히 입을 열지 않을 기세여서 말이야. 그의 배를 쓸던 손길이 차츰 욕망을 띄며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다. 밀리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흣!”

“많이 아파? 응? 한 번 더 하면, 힘들려나?”

능숙한 손길이 그의 성기를 잡고 위아래로 쓸었다. 찌릿한 통증에 밀리안의 몸이 앞으로 휘었다.

“아, 안, 싫…… 싫어. 그만!”

“네 몸은 내가 좋다는데?”

그의 어깨에 턱을 괸 여자가 그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뜨거운 입김이 닿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섰어. 얼마나 만졌다고 벌써 이래?”

“아!”

“야한 몸이야.”

여자의 손가락이 그의 성기 끝에서 둥글게 원을 그렸다. 찌릿한 통증과 야릇한 쾌감에 밀리안의 몸이 파득 튀었다. 그와 동시에 축축한 여자의 혀가 귓불을 깨물었다.

“흐읏.”

“그만 인정해, 밀리안. 너도 내가 좋잖아. 응?”

“시, 싫, 싫……하흑!”

“좋다고 말을 할 때까지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이러는 거지? 응? 내가 만져주는 게 그렇게 좋아?”

성기가 아렸다. 성기뿐만이 아니었다. 여자에게 닿은 피부가 모두 아렸다. 하지만 그걸 통증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밀리안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입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을 들어 입을 막자 여자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물기가 가득한 욕실에서 여자의 웃음이 야릇하게 들렸다. 귀마저 이상해진 것 같다.

“제발, 하지, 하지 마세요. 제발…….”

“하지만 이것 봐. 좋아서 줄줄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만둬.”

여자는 성기를 만졌던 손을 밀리안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투명한 물과 함께 유백색의 액체가 섞여 있었다. 자신이 쏟은 흔적을 굳이 제게 확인시키는 여자의 짓궂은 행동에 밀리안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냥 솔직해져. 몸이 느끼는 대로.”

설핏 웃음을 흘리던 여자가 이내 목소리를 굳혔다.

“이것 봐. 내가 이렇게 자극하는데도 향이 이것밖에 나지 않아.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지.”

여자는 자못 언짢은 듯 혀를 찼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이제 내가 관여할 문제야. 내게 약점이 잡혔다는 걸 잊었어?”

“…….”

“너무 그렇게 굳지 마. 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 다 헤져 각질이 일어난 입술이 일그러졌다. 약점을 잡고, 강제로 관계를 가져 놓고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라니. 그 말을 한 주체가 클레이 디어라서 더 우스웠다.

비열한 여자.

밀리안은 떨리는 숨을 가늘게 흘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이 이상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 *

다시 조용해진 밀리안을 클레이는 더 자극하지 않았다. 그저 꼼꼼하게 그의 몸을 씻긴 뒤 물기를 닦고 다시 침대로 이끌었다.

인형처럼 감정을 잃은 눈을 한 남자가 자신의 침대에 길게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냄새는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클레이는 서랍에서 약을 꺼내 밀리안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오자 굳어 있던 몸이 움찔 떨렸다. 밀리안의 눈에 크게 뜨여 그녀를 향했다. 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싫든 좋든 그가 반응하는 게 낫다. 모든 걸 잃었다는 듯 인형처럼 굳은 것보다는.

밀리안의 몸은 생각보다 더 가관이었다. 클레이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밀리안의 몸을 보고 혀를 찼다. 온몸에 도배된 검붉은 멍과 이빨 자국, 손자국들이 정신없이 엉켜 누가 보면 피부병에 걸렸다고 오해할 정도였다.

가장 심한 부위는 하체였는데, 그 예쁘고 뽀얀 성기가 퉁퉁 부어 부풀어 있었다. 이러니 움직이지도 못하지.

클레이는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덜덜 경련하고 있는 밀리안의 다리를 손으로 쓸었다. 취미가 운동이다 보니 근육이 마비되었을 때 푸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어 그녀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아!”

“그런 소리를 내면 큰일 나.”

“아흣! 아프……”

“후우.”

너무 울어서 붉게 달아오른 눈과 도톰하게 부푼 입술, 엉망으로 쉬어버린 목소리까지 합쳐지니 이건 건드려 달라고 애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밀리안이 통증으로 신음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클레이의 귀에는 어젯밤 쾌락으로 울던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미치겠네.

참아야 하는데 자꾸 야한 목소리를 내니까 참기가 어려워졌다. 클레이의 눈이 밀리안의 성기에 닿았다. 한눈에 봐도 아파 보여서 살짝 달아올랐던 성욕이 죽었다.

“내가 이렇게 참아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밀리.”

다시 성기가 잡히자 밀리안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클레이는 혀를 내찼다.

“안 해. 약을 넣으려는 것뿐이야. 긴장하지 마.”

“제, 제가….”

“요도에다 넣는 건데, 직접 할 수 있겠어?”

“!”

요도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말에 밀리안이 바짝 굳어버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클레이가 피식 웃었다.

“얌전히 있어. 움직이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클레이는 말랑한 성기 끝에 긴 막대로 만들어진 고체형 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붉게 달아오른 요도 구멍은 그새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살짝 두껍다 싶을 정도로 굵은 막대를 깊숙이 받아먹었다.

예민한 곳을 뚫고 들어오는 약이 자극이라도 됐는지 밀리안의 몸이 파득 뛰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벅지에 앉아 그가 더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 손으로는 그의 납작한 복근을 내리누르고 한 손으로는 약을 더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아!”

“이런, 좋은 곳에 닿았어?”

“으읏. 아, 아, 아!”

“자꾸 그런 소리를 내니까….”

내가 미치는 거야. 클레이는 단순히 약만 집어넣으려던 애초의 생각을 철회했다. 약도 바르고 즐기기도 하면 일석이조지.

오메가를 위한 약은 참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 남자가 음란한 건가. 잠시 쓸데없는 거로 고민하던 클레이는 고체형의 약이 그새 체온에 녹아 뿌연 액체로 변하는 것을 보고 넋을 놓았다.

꼭 질질 싸는 거 같네.

혀가 간지러웠다. 요도에 맺혀 있다 성기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약이 꼭 밀리안의 애액 같아서 빨고 싶었다.

“아흑! 아, 아, 싫어! 읏!”

“아.”

미치겠네. 그새 자제력을 잃고 밀리안의 구멍을 헤집고 있었다. 클레이는 아예 더 건드리지 못하도록 고체형 약을 밀리안의 성기 안쪽으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구멍 안쪽으로 모습을 감춘 긴 막대가 조금 아쉬웠지만, 이러다가 다시 밀리안의 위에 올라탈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지. 그녀는 약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말랑한 실리콘 마개로 요도를 막았다. 그 뒤에서야 조금 마음을 놓고 밀리안의 성기 곳곳에 입을 맞췄다. 그새 반쯤 서서 흔들리는 게 퍽 귀여웠던 탓이었다. 그래, 이 모두가 밀리안이 야해서였다.

클레이는 그 뒤로도 밀리안의 굳은 몸을 마사지하고 그 옆에 누웠다. 덜덜 떨고 있는 다리 사이에 다리를 겹쳐 넣고 그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적당히 서늘한 체온이 딱 맞았다. 당장이라도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은 노곤한 기분에 마른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아까 이야기하다 만 것이 생각나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약을 먹지 말라고 했던 건 진심이야. 네 몸은 정말 위험해.”

“…!”

“닥터 디모시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지? 간단한 혈액 검사만으로도 위험하다고 내 주치의가 말하던데.”

“어떻, 게…….”

“혈압도, 페로몬 계도 엉망이야. 빈혈도 심각하고. 내일 대니얼이 와서 좀 더 정밀한 검진을 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아둬.”

어차피 약은 이미 버렸으니 먹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편이 좋을 테니 클레이는 대니얼의 진단을 간략하게 말했다. 품에 안겨있는 몸이 가늘게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무서운 걸까. 클레이의 손이 부드럽게 그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조금만 치료하면, 멀쩡해질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클레이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밀리안은 여전히 자신의 등을 감싸고 있는 여자의 손이 뜨겁다고 느꼈다. 뜨거운 것은 손뿐만이 아니었다. 맞닿은 가슴도, 살갗이 겹쳐진 다리도 모두 뜨거웠다.

그게 이상해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지러워서 밀리안은 완전히 잠이 든 여자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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