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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섹슈얼-31화 (3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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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했나?’

클레이는 이제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는 밀리안의 볼을 톡톡 쳤다. 애들이나 하는 섹스를 가볍게 했을 뿐인데.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허리를 들어 아직도 안을 가득 채운 성기를 빼냈다. 성기를 감싼 콘돔 안에 요도 마개를 뚫고 흘린 밀리안의 투명한 애액이 고여 있었다.

“귀엽네.”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구멍이 막힌 상태에서도 콘돔이 동그랗게 부풀 정도로 쌌을까. 손가락 끝으로 밀리안의 애액으로 부푼 콘돔 끝을 톡톡 쳤다. 꽤 묵직해서 그녀가 건드는 대로 이리저리 통통 흔들리는 게 웃기고 귀여웠다.

밀리안이 느끼는 게 꽤 보기 좋았다.

‘꽤…… 라고? 아주 좋았겠지.’

다른 상대였다면, 이런 섹스 따위에 절정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른 상대라. 클레이는 밀리안과의 섹스 후에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밀리안을 모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리안과 하는 섹스는 뭐랄까. 정신적인 쾌락이 육체의 쾌락을 압도했다. 그가 더 느꼈으면 좋겠고, 더 울었으면 좋겠다고, 섹스하는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타인의 쾌락을 우선시하게 될 줄이야.

클레이는 피식 웃으며 밀리안의 성기에서 조심스럽게 콘돔을 끌어 올렸다. 그조차도 자극이 됐는지 밀리안의 몸이 움찔 튀었다. 깨어났나?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정신을 놓은 채였다. 후희를 나누지도 못하겠네. 그의 처음을 가진 것은 좋았지만, 너무 성에 미숙해 아쉽기도 했다.

콘돔을 끼기 전에는 그녀가 채운 밴디지로 인해 긴 붉은 선이 죽죽 그어졌었는데, 이번에는 콘돔의 돌기 때문인지 성기에 동그란 흔적이 일정하게 패여 있었다.

꽤 아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없이 보기 좋은 모습이기도 했다. 클레이는 밀리안이 정신을 놓은 상황에서도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향해 혀를 차며 여전히 요도 구멍을 막고 있는 막대를 천천히 뽑아냈다. 그리고 한번 손으로 훑어 체액과 젤을 덜어내고 성기를 입에 물었다.

몇 번 빨지도 않았는데 꽤 오래 참았던 탓인지 사정액을 터져 나왔다. 클레이는 입을 가득 채우는 밀리안의 체액을 삼키며 뒤늦게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첫 섹스에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사정을 하는 데도 힘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양은 꽤 많았지만, 졸졸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속도가 약했다.

“흐으…….”

다 갈라진 가냘픈 신음도 클레이의 작은 양심을 콕콕 찌르는 데 일조했다. 체액을 모두 받아 마시고도 안쓰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클레이는 혀로 밀리안의 성기를 부드럽게 핥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핥고 쪽쪽 빠는데도 다시 발기하지도 못했다.

‘아쉬워라.’

다시 서면 그걸 핑계 삼아 한 번 더 하려고 했던 클레이는 진주의 자국이 짙게 남은 밀리안의 요도를 보고 흠, 헛기침했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을 혀로 샅샅이 핥아 준 뒤에 밀리안의 허리를 끌어안고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 깊고 느린 숨결이 가슴에 닿았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쓸어 넘겨주며 치밀어 오르는 성욕을 꾹 내리눌렀다. 이렇게 괴롭혔는데 또 하면 짐승이지 그게 사람이냐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밀리안이 빨리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고작 섹스 한번 했을 뿐인데, 혼자만 깨어있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서너 번을 하고 이렇게 기절했다면 뿌듯한 마음이라도 들었겠지만…….

클레이는 밀리안의 작은 엉덩이를 손에 꽉 쥐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만지고 쓰다듬다가 품 안에 있는 남자의 체온과 함께 녹아내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자는 것이 오랜만이었지만,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육체는 아직 채워지지 못한 욕망에 아쉬워했지만, 정신적 충족감이 그녀를 깊은 잠으로 인도했다.

* * *

피곤했다. 전신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고,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라도 움직여 보려고 몸에 힘을 줬더니 찌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왜 아픈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몸 상태에 밀리안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했다. 따뜻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날카롭던 그의 신경을 누그러트렸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강제로 밀어 올린 밀리안의 몸이 순간 바짝 굳었다.

클레이 디어.

순식간에 어제의 기억이 낱낱이 떠올랐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두 기억이 났다. 밀리안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었다.

그건 짐승이었다. 사람이 아닌, 도저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성욕에 정신이 나간 짐승.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밀리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이 든 여자에게서 몸을 떼어내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그대로 허물어졌다. 부드러운 카펫에 얼굴을 댄 채 밀리안은 눈만 깜박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손으로 바닥을 짚어 일어서려고 했는데 팔이 꺾여 다시 아래로 처박혔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밀리안의 등과 무릎 사이에 팔을 넣어 안아 든 여자가 그를 다시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뭘 하나 했더니.”

자는 척하면서 그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여자의 말에 밀리안은 입술을 아득 깨물었다.

“이제, 이제…… 호기심을 채웠으니 된 게 아닙니까?”

“호기심은 채웠지. 하지만 이걸로 끝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누구 마음대로 끝내? 여자는 가당치 않은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코웃음 쳤다. 밀리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여자 때문에.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 좌절은 분노가 되어, 절망은 눈물이 되어 차올랐고 막을 새도 없이 그대로 쏟아졌다.

“으, 으흑…….”

“밀리안? 당신 지금…….”

여자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밀리안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못 볼 꼴을 전부 보였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이 불뚝 솟아 이거라도 가리고 싶었다.

클레이는 그런 밀리안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여전히 허공을 헤매고 있는 손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고작 섹스 한번 일뿐인데 밀리안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섹스가 뭐라고. 물론 밀리안과의 섹스는 무척 끝내주긴 했다. 그 역시 그러리라 확신했다. 쾌락과 고통에 얼룩진 얼굴은 그녀의 눈에 완전히 새겨졌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절망을 할 만한 일이 아니다.

클레이는 살풋 웃으며 가려진 손 틈 사이로 드러난 그의 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은밀한 비밀을 이야기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메가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는 않잖아?”

“…!”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좋겠지.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굳는 남자의 몸을 보며 클레이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들어 밀리안의 몸을 쓸었다. 부드럽게. 위로하듯 섬세하게 만졌지만,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하지 못한다는 게 맞겠지.

클레이는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의 손을 떼어냈다. 힘없이 떨어진 손 틈 사이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드러났다. 비열한 말을 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원하는 건 가져야 한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눈물로 흠뻑 젖은 입술에 키스했다. 천천히, 몸부터 길들이면 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늪에 완전히 빠져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 * *

한동안 침묵하던 밀리안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침대 옆에 있는 윙 체어에 앉아 신문을 펼쳐 읽던 클레이가 당치도 않은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집에 간다고? 왜?”

“……제집이니까 당연히.”

“어차피 계약 끝났잖아. 한 달 뒤에는 나가야 할 집인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어?”

“……!”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먼저 날 긁은 건 그쪽이야, 밀리.”

클레이는 짐짓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름 부드럽게 말을 한다고 했는데, 허를 찔린 듯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은 파랗게 보일 정도로 창백하게 질렸다.

“어, 어떻게…….”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 도리어 신기했다. 자신에게 걸리지 않으려면 그날 바로 튀었어야지. 흔적이란 흔적은 다 남겨서 모른 척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바로 도망치지 않고 출근은 했기에 이 정도로 끝낸 거였다.

클레이는 넓게 펼쳤던 신문을 접어 사이드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밀리안을 바라보며 허벅지를 툭툭 쳤다.

“이리 와.”

“…….”

“거부할 때가 아닌 거 알고 있지?”

입술을 질끈 깨문 얼굴마저 예뻐 보이니 큰일이었다. 잠시 갈등하는 듯싶더니 밀리안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저 모습을 보니 조금 죄책감이 들긴 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아주 살살 한 거지만, 밀리안에게는 첫 경험치고 강도가 너무 셌던 것 같다.

그래도 새끼강아지처럼 아장거리며 제게로 오는 모습이 꽤 귀여워서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허리를 팔로 감아 제 쪽으로 바투 끌어당겼다. 엉겁결에 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붉어졌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벌어진 밀리안의 다리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이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혼자 집에 가려고?”

“읏.”

“첫 경험인데 내가 너무 몰아쳤지? 다음에는 더 부드럽게 할 테니 마음 풀어.”

“…….”

“그래도 좋았잖아. 잘 느끼더라.”

물론 나도 좋았고. 클레이는 빳빳하게 굳은 밀리안의 목덜미를 약하게 물었다. 너무 긴장해 있어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가늘게 떨리는 살갗의 진동이 선연해서 결국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클레이의 손이 마른 등줄기를 천천히 타고 올랐다. 제 무릎 위에 앉은 밀리안을 올려다보니 질끈 깨문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른한 한숨을 쉬며 밀리안의 입술에 입술을 비볐다. 그제야 가지런한 이에 짓눌려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자꾸 깨무니까 입술이 헤지잖아. 그래도 예쁘긴 한데, 상처 나는 건 좀 아까워.”

살짝 닿기만 했던 입술을 빨고 핥았다. 남자는 싫은 기색 사이로도 키스가 좋은지 잔뜩 풀어진 얼굴을 했다. 이렇게 약점을 다 보이면 싫다는 말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마른 등을 바짝 끌어안았다.

“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당신이 좋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 뻣뻣한 얼굴이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것도, 창백한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양도 색도 완벽한 성기도. 모두 취향이었다. 그리고 가장 그녀를 돋우는 것은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밀리안의 노력이 애처롭기 그지없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잡고 싶어졌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렇게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은 밀리안이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로 도망치기만 하면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오히려 더 달아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밀리안은 알파의 습성을 모르고 있다. 제 행동이 아직 잔잔하던 물을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기름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네 짐은 모두 이곳으로 옮겨놨으니까 돌아갈 생각은 접는 게 좋아.”

“뭐, 라고요?”

“이제 여기가 네 집이라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사장님…….”

“클레이라고 부르라니까, 밀리.”

달콤한 목소리가 제멋대로 애칭을 지어 불렀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새벽. 밀리안은 클레이의 품에 갇힌 채 속절없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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