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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안은 자신이 계속 한숨을 내쉬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도.
“읏.”
자세를 조금 바꿨는데 성기를 감싼 속옷이 꽉 조여왔다. 아릿한 통증마저 느껴질 정도여서 저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버티려고 해도 자꾸 자극이 가서 성기가 조금씩 발기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 이상한 속옷은 더 타이트해져 갔다. 그가 느낄수록 더 큰 자극이 온다. 이게 무슨 변태 같은……. 밀리안은 입술을 꽉 깨물고 맞은 편에 있는 사장실을 노려봤다.
“저기, 밀리안…….”
“……네?”
“그, 얼굴이 지금 너무 빨개서…….”
맥시는 어딘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밀리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혹시 아직도 열이 안 내려간 거라면,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휴가를 좀 더…….”
“아니요! 괜찮습니다. 잠깐, 좀, 더워서.”
밀리안은 벌떡 몸을 일으켜 에어컨 온도를 낮췄다. 적당히 서늘했던 사무실 온도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밀리안의 얼굴이 여전히 붉어서, 아침에 클레이 디어에게 정신을 잃은 채 안겨 나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사무실의 직원들은 뭐라고도 못하고 냉기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레이는 반팔을 입고 있어 팔에 소름이 돋았고, 맥시는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그나마 사무실에 가벼운 외투를 두고 있었던 줄리아는 상황이 좀 나았다.
“아니, 여기 왜 이렇게 추워?”
다들 밀리안의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 기획 실장이 보고서를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진저리를 쳤다. 추워? 여전히 몸에서 열이 나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밀리안은 그제야 사람들이 몸을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온도를 너무 내렸습니다.”
“이러다 얼어 죽겠어.”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나저나 밀리안, 무슨 일 있었어? 일주일 동안 안 보이던데.”
“몸이 좀 안 좋아서 휴가를 썼습니다.”
“퇴사하려는 건 아니지?”
“……네?”
“물론 오 년이나 버텨놓고 이제 와서 퇴사할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기획 실장이 두꺼운 손으로 밀리안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몸이 흔들리자 아래가 더 조여와서 밀리안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신음을 흘릴 뻔했다.
“퇴사는 안 돼.”
죽어도, 절대로 안 된다며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엄포를 놓았다. 어깨도 아프고 아래는 더 불편해서 밀리안의 눈이 일그러졌다.
“안 들어 오고 뭐해?”
클레이 디어가 사장실 문틀에 몸을 기댄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밀리안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기획 실장은 바짝 얼은 얼굴로 사장실로 끌려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전, 클레이와 밀리안의 눈이 아주 잠시 마주쳤다. 은밀한 시선이 그의 하반신에 살짝 스치더니 차가웠던 녹색 눈동자가 사르르 녹아 가벼운 미소를 흘리고 사라졌다.
탁, 가볍게 문이 닫힘과 동시에 밀리안은 자신의 아래가 더 타이트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 * *
차가운 물이 뜨거운 살갗에 닿아 미지근한 온도로 변했다. 밀리안은 다시 한번 찬물에 얼굴을 담갔다.
“하아.”
머리카락까지 젖어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밀리안은 손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이제는 귀와 목까지 붉어져 가릴 수도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한껏 발기한 성기는 이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다시 속옷을 벗으려고 해봤지만, 어디가 잘못된 건지 더 조여지기만 했다. 섬세한 문양으로 이어진 레이스가 성기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숨이 턱 막혔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수많은 끈이 교묘한 법칙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주 작은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가위로 자르려고도 해봤지만, 분명 날이 제대로 서 있는 가위에 천이 밀리기만 할 뿐, 그 얇은 천을 자르지 못했다. 몇 번의 시도로 얻어낸 것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속옷이 더 타이트하게 조여졌다는 것이다. 밀리안은 저도 모르게 손을 하체로 내렸다가 움찔 굳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심지어 회사에서 미친 짓을 할 뻔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발기한 채 있을 수가 없다. 이 괴상한 속옷을 입혀놓은 여자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지만, 밀리안은 차마 그녀에게 이 꼴을 보이며 풀어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밀리안은 빳빳한 티슈로 얼굴과 머리를 닦고 벽에 걸어 놓은 정장 재킷을 다시 입었다. 단추까지 꼼꼼하게 잠그고 나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하반신이 가려졌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좌절과 쾌락이 섞인 신음이 목구멍을 타고 울렸다. 이 미친 여자. 익히 알려진 소문으로 인해 그녀의 침대 매너가 다소 변태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짓을 자신이 겪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지.
클레이 디어의 파트너들은 모두 화려한 외모를 지닌 오메가들이었으니까. 밀리안은 거울에 비친 평범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다 숨을 멈췄다. 설마 지금 비교를 한 건가.
정신 차려, 밀리안 디모시.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강박적으로 다시 정돈했다. 찬물의 효과인지, 아니면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에 짙게 번졌던 열기는 다소 가신 상태였다.
화장실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니 클레이 디어와 기획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레이 디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부터 천천히 시선이 내려가 그의 하반신을 훑었다. 고작 시선일 뿐인데, 짜릿한 감각에 밀리안의 몸이 움찔 튀었다.
“무슨…….”
“밀리안, 외부 스케줄이 있어요.”
“그건 줄리아가 대신…….”
“사장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요.”
분명 오후 스케줄은 줄리아에게 대신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밀리안이 고개를 돌려 줄리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듣고 있던 클레이가 피식 웃었다.
“나에게 허락도 안 받고 수행비서를 바꿀 생각이었어? 건방지긴.”
뭐, 도망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해. 여자의 눈이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밀리안은 허가 찔린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따라와. 지금도 늦었으니까.”
“……네.”
먼저 앞장서서 나가는 클레이를 따라 밀리안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움직였다. 이미 대기해있던 엘리베이터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었다.
“뭐해? 안 탈 거야?”
클레이는 여유로운 얼굴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기다렸다. 좁은 공간.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테지만, 이렇게 좁은 공간에 단둘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밀리안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밀리안은 결국 가장 피하고 싶은 여자가 있는 밀폐된 공간 안으로 발을 디뎠다. 육중한 철문은 이내 굳게 닫히고 두 사람을 가뒀다.
* * *
“젖었어.”
“무슨……!”
길고 곧은 손가락이 물기가 남은 그의 머리카락에 스쳤다. 밀리안은 불시에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뒤로 물렸다. 클레이 디어는 허공에 손을 댄 채로 그런 밀리안을 바라봤다.
붉은 입술이 부드럽게 휘었다. 분명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소였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밀리안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다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내가 준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봐?”
“…!”
“당장 뛰쳐 들어와서 벗겨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버텨서 놀랐어.”
여자는 은밀한 미소를 지으며 구석에 처박힌 그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가엽게도.
클레이는 궁지에 몰려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얼굴을 심술궂게 바라봤다. 이 와중에도 아래가 조이는지 남자의 몸이 흠칫 튀었다. 이 정도면 굴복할만한데도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주 애가 타고, 또 즐거웠다. 예상보다 너무 잘 버티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페로몬으로 흠뻑 젖은 속옷은 속옷의 기능보다는 밴디지에 가까웠다. 잠금장치를 열어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 풀지 않으면 더 바짝 조인다. 저 남자라면 분명 벗으려고 했을 테니 자신이 입혀놓았을 때보다 더 조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답지 않게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물기가 배어있었다.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있었던 남자는 과연 거기서 세수만 했을까? 바짝 솟아오른 성기를 저 곧은 손가락으로 만지고 장난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불쾌해졌다. 자신외의 타인이 그 예쁜 좆을 만졌다는 게 싫다. 그게 육체의 주인인 밀리안 디모시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창백하던 살결은 은은히 붉어져서 핥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클레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남자가 달콤한 사탕처럼 느껴졌다.
빨고 싶어. 빨고 싶다.
그녀가 위험한 욕망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남자는 단내가 물씬 풍기는 신음을 약하게 흘렸다.
“흐읏.”
“……큰일 날 소리를 내네?”
일부러 저러는 걸까. 안 그래도 건드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앞에서 저렇게 예쁜 소리를 내는 건 스스로 유혹하는 것과 같았다. 클레이는 고개를 들어 위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봤다. 남자는 CCTV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우연일 뿐인데 클레이는 남자가 의도적으로 이런 위치로 물러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그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자신이 한심했다. 밀리안 디모시는 매우, 매우 예쁘고……, 귀엽고, 야했다.
“대답해야지, 밀리안.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들어? 그렇게, 계속 입고 있을 정도로?”
“…….”
아, 드디어 이쪽을 보네. 물기에 젖은 갈색 눈동자를 쪽쪽 빨고 싶다. 색욕에 젖은 상태에서도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것도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클레이는 차가운 벽에 댄 손바닥에 힘을 꽉 줬다. 자칫 잘못하면 이곳에서 그를 범할 것 같아서.
안 되지. 다정하게 굴기로 했잖아, 클레이 디어.
클레이는 조금 몰아붙였다고 정신을 놓았던 남자를 보며 다짐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고작 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그를 안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다정하게, 아무도 보지 않는 숨겨진 곳에서 소중하게 안고 싶었다. 그건 클레이 디어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적어도 파트너를 두세 명은 불러야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귀족들만 모이는 은밀한 파티에서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오메가를 범한 적도 있었다.
고작 섹스일 뿐이니까. 단 한 번도 섹스에 의미를 둬 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가 쾌락에 떠는 모습을 타인이 본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건 자신만이 독점해야 한다.
“자꾸 그렇게 보면 여기서 일을 치를 줄 알아.”
“읏.”
“그런 소리도 안 돼.”
클레이는 남자의 마른 턱을 손으로 살짝 쓰다듬고 몸을 뒤로 뺐다. 남자는 안도한 것 같기도 했고, 조금은 아쉬워하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게 바라봤다.
정말 몹쓸 남자라니까. 그녀는 작게 혀를 찼다. 자꾸 저런 눈을 하니 애가 닳지. 건드려 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제발 하나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완전히 아래로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기계음을 내며 문을 열었다. 클레이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밖으로 나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나와, 밀리안.”
“…….”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던 남자가 입술을 깨물고 벽에 기댔던 몸을 천천히 세웠다. 그리고 어딘가 불편한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꼭 제 품으로 오는 것 같아서, 짜릿한 전율에 등이 바짝 세워졌다.
입술이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것 같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사실은 제 입술 따위가 아니라 저 남자의 온몸을 샅샅이 핥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다정하게…….
자기 최면을 걸듯 여러 번 되뇌던 클레이는 미간을 바짝 조였다. 설마, 섹스도 다정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저 야한 몸을 어떻게 다정하게 안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