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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섹슈얼-22화 (2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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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안은 집 안에 가득 찬 클레이 디어의 냄새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창가에 주저앉아 바깥 공기를 헐떡이며 들이켰다. 클레이의 향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것 같다. 살갗이 예민하게 달아올라 따끔거릴 정도였다.

나가라고 한 것에 대한 보복처럼 클레이 디어는 폭발적으로 페로몬을 쏟아내고 갔다. 오만하고 관능적인 녹음의 눈은 꼭 그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없어야 했다. 밀리안은 끔찍한 가설을 벅벅 찢어버렸다. 아니다. 베타라고 알고 있으니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한 것이다. 베타는 알파의 영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니까. 그래야 했다.

오메가로 발현한 뒤, 그는 강박적으로 성적인 행위를 멀리했다. 자위조차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 쾌락을 알게 되면 걷잡을 수 없어질까 무서워서. 스스로는 제 성기에조차 손을 못 대던 그가 고작 몽정 따위에 위안을 얻게 된 것도 며칠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클레이 디어의 손길 한 번에 무너졌다. 허망할 정도로. 그가 필사적으로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던 벽이 사실은 부스러지기 쉬운 모래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꽉 쥐었다. 속옷은 이미 흠뻑 젖어 성기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잔뜩 발기한 성기를 잡고 흔들었다. 클레이 디어가 만졌던 방식대로. 그게 그가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쾌락이었기에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흐으……. 흣!”

쾌락은 순식간에 그를 휩쓸었다. 클레이 디어가 그를 만졌던 것을 떠올리자 그대로 성기가 요동쳤다. 그건 그가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절정은 아주 쉽게, 그리고 미친듯한 속도로 끝에 도달했다. 쾌락으로 헐떡이는 숨결에 자괴감과 절망감이 함께 묻어났다.

이게 바로 오메가였다. 알파에 의해 아주 손쉽게 발정하는 음란한 습성. 여자의 옷을 뜯어 발기고 싶었다. 수많은 오메가와 뒹굴었으니 자신도 그 안에 끼워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저열하다.

그는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창틀에 등을 기대고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정액으로 흠뻑 젖은 양손을 힘없이 바라봤다. 성기는 여전히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여자의 안에 들어가고 싶다. 그 클레이 디어의 질 안으로. 한번 쾌락을 습득하자 더한 것을 찾고 있었다.

“하.”

되먹지 못한 바람이었다. 그 여자를 끌어안고 싶어서 안달하는 몸이 싫다. 추잡한 성욕에 굴복한 자신이 싫었다. 그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경멸하던 오메가. 결코 자신은 짐승 같은 성욕에 굴복하지 않을 거라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베타와 자신이 다른 게 뭐냐고 강박적으로 증명하며 살았던 삶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고작 단 하루 만에.

바닥을 긁으며 잔열처럼 남은 성욕을 내리눌렀다. 집안을 꽉 채웠던 알파의 페로몬이 외부의 공기에 휩쓸려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헐떡거리던 숨이 조금씩 진정이 되어간다. 밀리안은 차가운 유리창에 얼굴을 문질렀다.

시간이 지나자 열기에 짓눌렸던 이성이 조금씩 돌아왔다. 클레이 디어가, 그 알파가 정말 모를까? 의사가 그를 진료했다는 말에 발작하듯 덜덜 떨었는데 눈치를 못 챘다고?

만약. 만약 그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다면? 베타라고 지금까지 속여왔다는 걸 눈치챘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설은 너무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멍청했다. 왜 그렇게 티가 나게 반응했을까. 지금까지 어떻게 비밀을 지켜왔는데…….

밀리안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 * *

여자의 몸은 완벽했다. 어디 하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철저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클레이 디어와 전속 계약한 에스테틱 관리사, 엔슈어는 이 몸을 자신이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의 육체를 보아왔지만, 이 정도로 아름다운 몸은 없었다. 게다가 클레이 디어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비싸서 손도 대보지 못했던 재료를 아낌없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만 이곳에 올 수 있었는데, 근래 클레이 디어는 매일 엔슈어를 오게 했다. 갑작스레 스케줄이 변경되어 당혹스러웠지만, 그녀로서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오히려 자주 불러줘서 고마울 정도였다.

엔슈어는 클레이 디어의 몸 위에 덮었던 순도 높은 금이 함유된 유액을 따뜻한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드러나자 같은 여자임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엔슈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이 여자는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끝?”

“네? 네.”

“수고했어.”

마사지 대에 누워 있던 클레이 디어가 일어나 가운을 걸쳤다. 그 아름다운 몸이 보잘것없는 하얀 천에 싸여 가려지자 엔슈어의 눈이 실망으로 흐려졌다. 그녀는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고 집사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섰다.

클레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원래도 매끄러웠던 피부는 온 정성을 다한 손길에 빛이 날 정도로 가꿔졌다. 역시 실력은 좋아.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냉정한 해고통보가 나왔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겠어.”

“…알겠습니다.”

벤틀러는 이유도 묻지 않고 수긍했다. 안 그래도 관리사의 눈에 점점 사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별날 정도로 아름다운 클레이 디어는 수많은 변태의 관심을 받았다. 클레이에게 미친 인간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게 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좀 길게 버티나 했는데.

벤틀러는 냉정하게 다른 대체자 목록을 떠올리며 클레이 디어의 잔에 홍차를 따랐다.

밀리안이 출근을 안 한 지 일주일. 클레이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벤틀로가 한 말은 그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밀리안 님께서 맨션 계약을 파기하셨습니다.”

“……도망갈 생각인가 보군.”

“부친인 닥터 디모시가 중국에 이민 절차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삼 개월 전에는 유학이었는데, 이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흐음.”

“밀리안 님의 이름으로 한 달 뒤 중국 베이징행 항공권이 발행되었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무사히 중국으로 가실 겁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벤틀로의 말에 클레이가 가볍게 웃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리가 없지.

“어떻게 할까요?”

“밀리안은 아직 맨션에서 나오지 않는 상태지?”

“네. 가끔 식료품을 사기 위해 근처 마트에 가기는 했지만, 구매목록을 보면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외견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럼 일단 기다려.”

만약 이대로 도망친다면 더 재밌는 일이 벌어질 테고, 밀리안이 단 한 번이라도 제게 모습을 보이면 벌을 차감해줘야지. 모두 밀리안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린 일이었다.

거칠게 굴고 싶지 않다. 벤틀로가 조사해온 밀리안의 과거는 꽤 비참한 편이었기에 클레이는 되도록 상냥하게 굴고 싶었다.

오메가로 발현한 이후 바로 집에서 쫓겨나 혼자 살아왔고, 십 년이나 약을 먹으며 베타인 척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허름한 맨션에 사나 했더니 약값을 내기 위해서였다. 정기적으로 부친의 계좌에 거액의 금액을 보낸다. 그건 모두 밀리안이 부친의 병원에 방문한 이후였다.

‘어린 아들을 쫓아내고 거액의 약값까지 받았다, 라…….’

보수적인 베타 중에는 여전히 오메가를 알파의 지배를 받는 짐승 취급하는 족속들이 있긴 했다. 밀리안의 가족이 그런 쪽일 것이다. 갓 발현했을 때부터 그런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면 밀리안이 왜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였는지 대충 이해가 간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손을 안 타고 내게 떨어지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제 것을 상처 낸 대가는 치러야겠지. 클레이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밀리안은 지금 겁에 질려 있을까. 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집에 처박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작 자신에게 오메가라는 것을 들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것이 기가 막혔다.

‘대체 어떻게 자란 거야?’

그를 알면 알수록 안타까웠다. 그와 동시에 도망갈 생각부터 하는 밀리안도 괘씸했다. 자신이 뭘 했다고. 고작 성기를 빤 것뿐이잖아. 협박한 것도 아니고, 강간한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는 제게 먼저 입을 맞춘 것도 그였다.

클레이는 문밖에 서 있는 자신을 끌어당겨 먼저 입을 맞춘 후, 예쁘게 웃었던 밀리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깜찍하게도 저를 몰래 짝사랑했던 건가,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 고지식한 남자가 제게 키스를 할 리가 없으니까.

‘순진하게 농락당한 건 오히려 나인 것 같은데.’

얌전히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제게서 도망칠 생각만 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를 가꾸고 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다시 피식하고 식었다. 밀리안의 그 예쁜 몸이 떠올랐던 탓이다.

분명히 그 몸에 닿았던 알파는 자신뿐이라. 아니, 자신뿐이어야 한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몸을, 그 예쁜 성기를 다른 사람이 봤다는 가정조차 기분이 더러웠다. 그를 탐한 인간의 눈알을 파내고 싶을 정도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클레이의 욕망을 더 갈급해져만 갔다. 새로운 약을 처방해 주겠다던 대니얼의 말도 거절한 탓에 그녀의 몸속에는 배출되지 않은 페로몬이 계속해서 쌓여만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웃냐며 벤틀러가 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별거 아니라니까.”

“범죄는 안됩니다.”

“물론이지.”

애도 아닌데 허술하게 남들에게 들킬 범죄를 저지를까. 클레이는 달콤하게 웃으며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쌉싸름한 향이 매혹적이었다. 적당히 떫으면서 향기로운. 꼭 밀리안 디모시 같군. 저도 모르게 또다시 밀리안을 떠올린 클레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표정으로 출근을 할까. 밀리안이 없던 일주일간 클레이는 참았다. 궁지에 몰려 예민해진 고양이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점점 인내심이 줄어들고 있었다.

빨리 와, 밀리안. 내가 쫓아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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