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장 사랑합니다 (4)
그녀는 공동에 숨어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지하에서는 바깥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호기심에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죽은 듯이 숨어있었다. 지하에서 내는 어지간한 소리가 위에서 들릴 리 없는데도 발걸음조차 숨죽였다.
밤낮이 바뀌는 시간의 흐름조차 알 수 없었다. 배고프면 마른 식량을 먹고 졸리면 잤다. 식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대충 시간을 가늠했다.
루시아는 어두운 공동에서 지독하게 홀로 견뎠다. 가장 끔찍한 건 식량 때문에 늘어나는 쥐떼였다. 구역질 나는 메튼 백작의 면상을 떠올리며 참았다. 그자에 비하면 쥐는 귀여웠다.
그래도 견디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찍찍거리는 쥐 소리를 들으며 움찔움찔 놀라 자다가 깨는 생활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루시아는 나갈 준비를 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햇빛을 보면 눈이 상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긴 통로를 따라 왕복 네 시간을 걸어 공동묘지로 나가는 입구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눈에 익히기를 일주일. 루시아는 드디어 밖으로 나갔다.
저녁의 묘지는 조용하고 스산했다. 두려워했던 추적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루시아는 가진 보석 중 몇 개만 챙기고 나머지는 통로 안쪽에 숨겼다. 준비해 두었던 낡은 옷가지로 갈아입고 후드를 깊이 뒤집어쓰고 묘지를 빠져나갔다.
사람의 눈을 피해 외진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올 무렵에 인적 없는 황량한 들에 홀로 서있는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했다.
루시아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밤새도록 걸어서 더는 발에 감각이 없고 주저앉으면 그냥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뒷일을 생각할 겨를 없이 집으로 다가갔다. 조심조심 기웃거리며 접근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노파가 나왔다. 노파는 당황하는 루시아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루시!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기어들어 오는 거여! 냉큼 가서 물부터 길어 와. 아침 먹게.’
루시아가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 노파는 계속해서 호통을 쳤다. 복잡한 생각하기가 귀찮았다. 노파가 밥 소리를 하니까 배도 고파서 시키는 대로 물통을 들어 올렸다.
‘물은 어디서 길어야 하나요?’
노파는 멍청한 계집애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샘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노파의 막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루시아는 물통을 들고 샘터로 갔다. 그리고 물을 뜨며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떨리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었다.
‘아아악!’
루시아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있었다. 한 달 넘도록 어둠 속에 떨면서 그녀의 몸이 극도의 공포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노파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아차렸다. 노파는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 못하고 과거의 말만 되풀이했다. 노파에게 루시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고, 오래전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루시아는 노파가 약 반년 후 죽을 때까지 딸 루시가 되어서 노파와 함께 살았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루시아는 귀가하는 마차 안에서 꿈속의 기억을 회상했다. 가끔 루시아는 생각했다.
‘내가 본 건 대체 뭐였을까. 나는 정말 미래를 예지하는 꿈을 꾼 걸까. 아니면 내가 미래를 한 번 살고 되돌아온 걸까.’
열두 살 때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루시아는 그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그 후 미래를 바꾸려고 앞뒤 생각 없이 달리기만 했다.
루시아는 한 번 삶을 살았던 경험이 아니라 꿈을 꾼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분명히 자신의 삶이었는데 동시에 구경하는 기분도 함께 느꼈다. 루시아의 꿈속 삶은 고되고 힘들었다. 고통과 슬픔은 겪은 것처럼 생생했다. 하지만 일종의 한계선을 넘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든 고통도 루시아의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자세하고 선명하지만 어떤 부분은 기억이 없어.’
루시아는 꿈속에서 자신의 노년기를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녀 일을 그만두고 한적하게 살던 나이 지긋한 시절까지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만약 미래를 살다가 되돌아왔다면 가장 최후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야 한다고 루시아는 생각했다.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가 없는 것과, 최후의 기억이 없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누구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루시아의 고민은 언제나 제자리였다.
“잠시 들르고 싶은 곳이 있구나.”
루시아는 하녀에게 마차를 돌리라고 했다. 놀만이 선물로 준 집에 가보고 싶었다.
루시아는 아담한 2층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놀만이 쓰던 가구가 모두 그대로 다 있어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정기적으로 관리해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으나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빨리 망가진다고 하던데. 세를 놓을까?’
얼마 전까지 이런 작은 집 한 채 장만이 평생의 꿈이었다. 불과 2년도 안 되어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조금 두려워도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더 컸다.
“앞으로 어찌 될지 안다면 얼마나 재미없니? 인생은 원래 예측할 수 없어야 살 만한 거야.”
귓가에 들릴 것 같은 놀만의 말을 떠올리며 루시아는 피식 웃었다. 놀만은 현자였다. 최소한 루시아가 보기에는 그랬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마차가 멈추었다. 길에 마차가 모두 서있었다. 상황을 살피러 다녀온 마부의 말을 하녀가 루시아에게 전했다.
“마차 전복 사고가 일어나서 길을 돌아서 가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마님.”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길을 보던 루시아는 길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릴 때 살던 동네야.’
아련한 기분으로 바라보다가 루시아는 마차를 세우게 했다. 마차는 길 한편에 멈추고 루시아는 마차에서 내려와서 낡은 간판의 전당포 앞에 섰다.
유리창 너머에 가격표를 붙여 잡다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루시아는 어머니와 손잡고 이 길을 지나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녀는 전당포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노인이 끼익 열리는 문소리에 깨어났다. 전당포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났다.
화려한 차림의 귀한 자태의 여인과 옆에 다소곳이 서있는 여자, 호위로 보이는 남자는 전형적인 귀부인과 수행인들이었다. 오래된 동네 전당포 주인으로서는 평생 맞이할 일 없는 손님이라 노인은 당황했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이곳의 주인으로 있은 지 오래되었나?”
“수십 년은 되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한때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물건의 행방을 찾으려 하네. 혹시 알 수 있겠는가.”
“어지간한 물건이면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 장부에 기재도 하고 있지요. 어떤 물건입니까?”
루시아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대략의 시기, 어머니가 펜던트를 가지고 전당포를 찾았을 때의 나이와 모습, 펜던트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전당포 주인은 기이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전에도 같은 물건을 찾는 분이 계셨지요.”
“내가 말한 펜던트를 찾았다는 말인가? 누가?”
“젊은 남자였는데. 누군지는 모릅니다.”
파비안의 수하가 펜던트를 찾으면서 돌아다니다가 들른 것이었으나 루시아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 찾아온 사람에게도 말했지만. 그런 펜던트를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가게에 들어온 적도 없고.”
“그럴 리가. 내가 분명히 이곳에 진열된 것을 보았는데.”
“보시다시피 여기는 동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가게입니다. 들어오는 물건이 다 빤하지요. 그런 귀물이 들어왔으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 기억력은 쓸 만합니다. 수십 년간 귀족분들이 착용하실 법한 펜던트 같은 물건을 맡아둔 적이 없습니다.”
전당포 주인의 표정에는 확신이 있었다. 루시아가 그럴 리 없다고 계속 말하자 아예 오래된 장부를 모두 내와서 보여주었다. 날짜별로 누가 어떤 물건을 맡기고, 얼마를 빌려갔으며 그 후 어떤 처리 과정이 있었는지 꼼꼼히 기록된 서류였다. 전당포 주인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루시아는 20년에 달하는 기록을 샅샅이 살폈다. 전당포 주인의 말대로 펜던트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숨기자고 일부러 장부 조작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봤어. 어머니가 이 가게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루시아는 혼란과 의구심을 안고 전당포를 나왔다. 호위하며 따라붙는 딘이 물었다.
“달리 들르실 곳이 더 있으십니까?”
“아니요. 집으로 갈 거예요.”
마차로 향하는 루시아와 하녀의 두어 걸음 뒤에서 딘은 손목을 입가로 가져다 대고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 출발하신다. 목적지는 저택.”
딘의 손목에는 단순한 형태의 은색 팔찌가 있었다. 은보다 견고해 보이고 광택이 났다. 한쪽 귀에도 특이한 장신구가 달려있었다. 귀걸이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기이한 갈고리 형태였다. 끝 일부가 귓속에 들어가 있고,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부분이 귀 뒤를 감쌌다. 머리카락으로 덮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루시아가 올라타는 마차에서 멀찍이 떨어진 네 방향에 각각 서있는 마차가 있었다. 꺾어진 모퉁이 너머라서 루시아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위치였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마차 위에 평범한 인상의 마부가 앉아있고, 마차 안에는 평복으로 위장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출발하신다. 1, 2조 출발. 3조 대기하라. 4조는 후방을 맡는다.”
지시를 내리는 기사의 손목과 귀에 딘이 한 것과 동일한 장신구가 있었다.
루시아는 자신을 호위하는 기사를 딘 한 명으로 알고 있었다. 저택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도구로 무장한 기사들로부터 얼마나 철통같은 경호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그들의 경호는 워낙 은밀해서 눈에 띄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루시아는 침실 소파에 기대앉아서 차분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어머니를 떠올리자 가슴속이 따뜻해졌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프기만 했는데 지금은 행복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현재 자신이 행복한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펜던트를 서랍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보시곤 했다. 때로는 루시아가 옆으로 오는 줄도 모르고 넋을 놓고 계셨다. 어머니가 펜던트를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펜던트를 보며 가족을 그리워하셨겠지. 돌아갈 수 없는 당신 처지를 슬퍼하시면서.’
어쩌면 어머니는 임신하지만 않았어도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은 비관하며 루시아를 탓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일해야 했다. 평소에는 동네 식료품점에서 일을 거들고 시간이 나면 뒷마당 작은 텃밭을 가꾸어 식비를 충당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웃고 있었다. 부드러운 품으로 루시아를 자주 안아주었다.
“사랑하는 내 딸, 네가 있어서 엄마는 행복하단다.”
어머니는 언제나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했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절망해서 죽고 싶었던 만큼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며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다쳤기 때문에 어머니가 펜던트를 맡길 정도로 급한 돈이 필요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머니는 펜던트를 전당포에 맡긴 적이 없었다. 전당포 주인의 말이 사실이면 루시아의 기억이 잘못되었다.
‘어릴 때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쳐도. 나중에 외삼촌과 펜던트 때문에 만날 수 있었어. 어쩌다가 펜던트가 경매장으로 가게 되었을까. 도둑맞았나?’
루시아에게 펜던트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게 해준 물건이었다.
‘여덟 살 때였지, 아마.’
루시아는 어릴 때 크게 다쳤던 사고를 떠올렸다.
동네 어귀에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제법 말괄량이였던 어린 루시아는 동네 아이들과 나무타기 내기를 했다. 무서운 줄 모르고 까마득한 위까지 가장 먼저 올라가서 의기양양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나무 꼭대기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위협을 느낀 어미 새가 공격을 가했고, 놀란 루시아는 중심이 흔들려서 추락했다.
‘그때 다쳤던 곳이 아마…….’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를 살피는 루시아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흉터가 없다. 아주 매끈했다. 워낙 어릴 적의 일이라 아물어서 다 사라졌다고 보기에는 상처가 컸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흔적조차 없었다.
‘원래 없었나? 아니면 사라진 건가?’
평소에 다리의 흉터를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하지 않았다. 펜던트 때문에 어릴 때 사고를 굳이 기억하지 않았으면 계속 잊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친 기억도 잘못되었나? 아니야. 그런 큰 사건을 그렇게 생생하고 자세히 잘못 기억할 리가 없잖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더니 머리가 아팠다. 루시아는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루시아는 꿈에서 어린 시절을 보았다. ‘내일 뭐 하고 놀까.’ 하는 생각만 하던 철없는 시절이 빠르게 지나갔다.
루시아는 차갑게 식어가는 어머니 곁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루시아의 등을 쓸어주며 위로했다. 어린 것을 두고 어찌 눈을 감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어머니와 친하게 지낸 근처 살던 아주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서러움이 북받쳐 울면서 루시아는 어머니의 분신인 것처럼 두 손에 펜던트를 꼭 쥐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왕실 근위대는 동네를 발칵 뒤집었다. 루시아를 데려가는 근위대 앞을 누구도 막아서지 못하고 멀찍이 보기만 했다. 텅 빈 눈의 어린 소녀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갔다.
화려한 궁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아버지라는 사람을 보면서 아무 감정이 없었다. 앞으로 지내게 될 곳이라는 별궁은 차갑고 쓸쓸했다.
황량하게 널찍한 침실에 누워서 엄마, 엄마 계속 중얼거리며 흐느껴 우는 소녀의 손에는 펜던트가 있었다.
루시아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제법 오래 잠들었던 것 같다. 루시아는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꿈이 아니야…….’
조금 전 꿈은 환상이 아니라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왜 잊고 있었을까.’
마치 얇은 막으로 덮여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펜던트는 내가 갖고 있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펜던트는 루시아가 계속 목에 걸고 있었다. 궁으로 들어갈 때도 가지고 있었다. 시녀들이 낡은 옷가지를 벗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와중에도 루시아는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보물을 누가 빼앗아갈까 봐 잠시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점점 새로운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모순이 있었다. 어릴 때 나무에서 떨어져 다친 일은 작은 동네에서 벌어진 큰 사고였다.
당시 루시아만 다치지 않았다. 루시아가 떨어지면서 부딪친 가지가 부러지며 다른 아이도 떨어졌다. 그 아이는 머리를 다쳐 죽고 말았다. 여자아이였다.
“…롯사.”
루시아의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이었다. 롯사가 죽고 롯사의 가족은 얼마 후 이사 가버렸다. 어머니가 친하게 지낸 동네 아주머니는 롯사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롯사의 어머니는 방에 함께 있었다. 멀리서 소식을 듣고 온 건가? 그런데 아주머니 곁에 루시아 또래의 여자아이가 함께 울고 있었다. 롯사였다.
‘루시아. 이거 먹어야 해. 응? 네가 아프면 돌아가신 아줌마도 슬퍼하실 거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루시아가 이틀 넘게 음식을 거부하자 롯사가 루시아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며 달랬다.
‘롯사는 어릴 때 죽었잖아.’
루시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둘이고 그 기억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당포 주인의 말을 사실이라고 하자. 어릴 때 난 사고를 당하지 않았고, 롯사는 죽지 않았어. 어머니는 펜던트를 전당포에 가져가지 않았고, 나는 펜던트를 가지고 궁에 들어왔지.’
펜던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궁에 들어온 첫날까지였다. 울고 잠든 날, 루시아는 꿈에서 미래를 보았고 펜던트가 사라졌다. 그리고 루시아의 기억이 혼동을 일으켰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일 수도 있고, 펜던트가 가진 능력일 수도 있었다.
‘마도구…….’
세상에는 기이하고 비상식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물건이 존재했다.
왕궁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딱 한 번 보았던 마도구. 그건 두 개의 술잔을 나란히 붙여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두 개의 술잔에 불순물 없는 깨끗한 물을 넣고 혈통을 증명하고 싶은 두 사람의 피를 떨어뜨린다. 혈연관계가 없으면 아무 변화가 없고, 혈연관계면 핏물처럼 붉게 변했다.
‘펜던트가 마도구였을까?’
외삼촌은 펜던트가 바덴 백작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라고 했다. 마도구는 굉장한 귀물이라서 대부분 국가 보물이었다. 바덴 백작가처럼 다 쓰러지는 가문이 지닐 물건이 아니었다. 마도구라면 엄청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데 외삼촌이 그걸 알았다면 진즉 팔아서 가문을 도모했을 것이다.
‘외삼촌도 몰랐던 거야. 할아버님도 모르시는 것 같았어.’
펜던트를 마도구로 전제하고 루시아는 새롭게 추리를 시작했다.
‘펜던트가 내게 보여준 건… 미래가 아니라 또 다른 내 삶이었어.’
또 다른 삶에서 루시아는 어릴 때 크게 다쳤고, 어머니는 펜던트를 팔았으며, 나중에 경매에 나온 펜던트를 통해 외삼촌을 만났다. 다른 삶이라고 해도 거의 미래를 본 것과 다름없었다. 루시아가 궁에서 얌전히 있다가 메튼 백작과 결혼했다면 같은 미래로 흘러갔을 테니까.
‘어릴 때 다친 일. 거기서부터 갈라졌구나. 그 사건이 또 다른 내 미래를 만들었어.’
현실에서 루시아는 다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펜던트를 팔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마도구의 이능은 루시아에게 작동해서 긴 꿈을 보여주었다.
‘알아봐야겠어. 롯사가 살아있는지.’
아마 롯사는 살아있을 것이다.
‘펜던트가 마도구라면 왜 어머니에게 발동하지 않았을까. 조건이 필요한가?’
“비비안.”
루시아는 흠칫 생각에서 깨어났다. 침대에 앉아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앉아있던 루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침실은 아까 잠에서 막 깨었을 때보다 더 어두웠다.
그가 언제 왔는지 바로 곁에 앉아있었다.
“휴, 언제 오셨어요?”
휴고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방금. 당신이 돌아와서 지금껏 잔다기에.”
어두운 침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온 휴고는 침대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무슨 생각이 그리 골똘한지 놀라지 않게 제법 기척을 내었는데도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파티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뇨.”
“두통이 있었다며. 이달 들어 두 번째군. 대체 왜 몸에 이상이 없는데 꼬박꼬박 아픈 거지?”
편두통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돌팔이의 말을 휴고는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이상이 있으니까 아픈 거 아닌가.
“지금은 괜찮아요. 생각할 일이 있었어요.”
어두운 침실에서 사람이 곁에 오는 줄도 모르고 깊이 빠져들 생각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휴고는 그녀의 생각이 알고 싶었다. 가능한 그녀의 모든 것을 갖고 싶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생각할 일인지 나는 알면 안 되는 건가?”
“조금… 황당한 생각이라서요. 듣고 웃으시면 안 돼요.”
“안 웃을게.”
“제가 할아버님께 말씀드렸던 펜던트 말이에요. 기억하세요?”
“물론.”
“그 펜던트가 마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왜?”
루시아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궁에 올 때 펜던트를 가지고 왔던 기억과 오늘 전당포에서 있었던 일, 집에 돌아와서 자는 동안에 꾸었던 꿈을 설명했다. 하지만 꿈으로 다른 미래를 보았다는 내용까지 털어놓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고, 비록 꿈속이지만 겪었던 고통스럽던 일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시아는 미래를 본 꿈속 경험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변했다.
“어머니가 펜던트를 팔았던 적이 없었어요. 펜던트가 뭔가 제 기억에 왜곡을 만들고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사라지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침실에 불을 밝혔다.
“기억 왜곡이란 부분이 심각해?”
“그렇지는 않아요. 단지 마도구라면 왜 외가에서는 그걸 몰랐을까요?”
“모를 수 있어. 마도구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도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으니까.”
휴고는 가문의 비밀 기록을 통해 마도구가 마도 제국 시절에는 흔한 물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마력 장치가 망가져서 대부분의 마도구가 본래 기능이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도 있나요?”
“어떤 마도구는 이능을 발하고 망가지거나 부서지기도 한다는군. 사라질 수도 있겠지.”
“마도구는 대부분 국가 보물이잖아요. 귀족 가문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요?”
“국보로 지정된 마도구가 널리 알려진 것뿐이지 마도구를 가진 가문들은 많아. 어떤 마도구를 가졌고 어떤 기능을 지녔는지는 가문의 비밀이지. 귀족 가문이 지닌 마도구 일부는 암암리에 알려졌기도 하고.”
마도구는 지닌 기능과 상관없이 엄청난 고가의 매매 대상이었다. 마도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수집광들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었다. 쓸모 있고 명확한 기능을 지닌 마도구의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그럼 타란 가문도 마도구를 가지고 있어요?”
“많아.”
가문 비밀의 방에 잡다한 것들이 많았다. 휴고는 공작위에 오르고 얼마 후 뭐가 있나 싶어서 방을 뒤져보았다. 대부분은 쓰레기. 서로 떨어진 사람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신 마도구가 그나마 쓸모가 있었다. 대화할 수 있는 거리는 탁 트인 벌판에서 서로의 모습을 간신히 식별할 수 있을 정도까지였다. 데미안을 호위하는 데 유용하게 썼고 지금도 쓰는 중이었다.
남아있는 같은 종류의 마도구를 수도로 올 때 가져왔다. 통신 마도구처럼 쓰임새가 있고 기능이 명확한 마도구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휴고는 별것 아닌 물건을 건네듯 그녀를 위한 호위대를 구성하고 마도구를 넘겼다. 아내의 안전을 위해서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사들이 목숨처럼 귀하게 모시고 있었다.
“로암에 돌아가면 보여줄게.”
“마도구는 정말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졌나요?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마도구도 있다던데요.”
휴고는 피식 웃었다.
“헛소문이지. 마도구는 대부분 다 쓸모없어. 신기하기만 할 뿐. 제논 왕실이 지닌 혈통 감별 마도구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만한 기능을 지닌 마도구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야. 어떤 나라의 국보는 봉의 형태인데 어둠 속에서 빛난다더군. 쓸 곳이야 찾아보면 있겠지만 국보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
루시아는 사라진 펜던트의 의미를 생각했다. 펜던트가 다른 삶을 보여주는 이능을 지녔다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귀물이었다.
“마도구에 관심 있어? 갖고 싶은 게 있나?”
“아니에요. 잠깐 혼란스러웠을 뿐이에요.”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마도구 수집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루시아의 대답으로 무산되었다.
펜던트가 자신에게 미래를 보여준 것이라면……. 루시아는 사라진 펜던트에 감사했다. 꿈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소한 사건만으로도 미래는 갈라질 수 있고, 선택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선택은 당신이에요. 당신의 선택도 나였으면 좋겠어요.’
휴고는 펜던트를 몰래 찾아다가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적잖이 실망했다.
“단지 사라지기만 했어? 기억 왜곡을 일으켰다면서 그 부분은 괜찮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둘이라서 혼란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하니까 정리되었어요.”
“정히 그 펜던트가 신경 쓰이면 당신 외조부님을 모셔와서 이야기를 들어봐. 백작가의 가보라니까 그분이 뭔가를 아실지도 모르지.”
루시아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안 그래도 외조부와의 만남이 짧아서 서운함이 남아있었다. 펜던트가 일으킨 현상도 궁금했다. 그의 말대로 조부께서는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네, 그러고 싶어요.”
“모셔오도록 조치할게.”
그의 손이 부드럽게 루시아의 볼을 쓸었다. 다정한 그의 손길에 루시아는 어쩐지 울컥했다.
‘그는 내 선택에 휘말린 것은 아닐까?’
루시아는 그를 선택해서 새로운 자신의 미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건 반칙이었다. 세상 사람 누구도 불행한 미래를 알고 피하는 선택을 하지 못한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그의 미래가 자신 때문에 어그러질까 봐 루시아는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루시아의 선택에 말려든 그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이기적이라고 세상 전부가 날 비난해도 좋아. 그를 사랑해. 그도 날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이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날 얼마큼 좋아할까.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도망갈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 바뀌었을 텐데.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있어요?”
“해봤자 무슨 소용이지? 어차피 지난 일인데.”
“내 손 떠난 건 미련 두지 않아.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있는 건 쓸데없으니까.”
결혼한 다음 날 루시아가 ‘후회한 적 없느냐.’라는 질문에 했던 대답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루시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남자였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 무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관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마음이 달라졌다.
지금은 그가 무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다정했다. 그의 다정함은 언제나 루시아의 마음에 거센 풍랑을 일으켰다.
행복이 더해지는 만큼 고뇌도 커졌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자꾸 기대는 커지고 이러다 그를 원망할까 봐 겁났다.
“저는 해요. 만약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전 아직 별궁에 있었을 거예요. 얼마 후에 왕실에 지참금을 낸 누군가와 결혼했을 테지요.”
휴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가끔은요. 제가 너무 과분한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해.”
“경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와 결혼한 것.”
말없이 루시아를 바라보던 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뭘 또 잘못했어?”
“…네?”
“그냥 말해. 그런 식으로 말 돌려서 철렁하게 하지 말고.”
루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남자가 한풀 꺾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자기도 모르는 잘못을 했을까 봐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뭐든 양보하고 모두 해줄 것처럼 굴었다. 그의 사랑을 흠뻑 받는 기분이 들 때마다 루시아는 누가 그녀의 심장을 잡아 꽉 꽉 누르는 것 같았다.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나운 맹수 같은 남자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루시아는 코끝이 시큰해서 주먹을 꼭 쥐었다.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요. 제 자격지심이에요.”
“자격지심이라니?”
“우리는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결혼을 했잖아요. 저는 사생아나 다름없는 이름 모를 공주. 당신은 국내외로 유명세 자자한 공작 전하. 당신은 정말 손해나는 결혼을 한 거예요.”
휴고는 살짝 인상을 썼다. 그녀가 스스로 사생아라고 말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손해나는 결혼. 휴고는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 몰랐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곁에 있기 꺼리는 이유는 무엇이든 싫었다. 자신과 그녀의 관계에 손해나 이득 따위의 개념을 넣을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는 한 손으로 루시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부드럽게 그녀를 눕히면서 위로 올라갔다.
“파티에서 정말 아무 일 없었어?”
“없었어요.”
“그러면 왜 그래.”
“제가 좀 못난이 같은 말을 했죠?”
휴고는 멋쩍게 웃는 그녀의 눈가에 입술을 붙였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비비안. 당신은 못난이가 아니고, 나는 손해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어.”
루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말은 부드럽게 그녀의 심장을 감싸는 것 같았다.
“말했지만. 힘들면 참지 마. 애쓸 필요 없어. 당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해.”
루시아는 한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그녀는 녹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것도 아닌데 그가 하는 말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제가 당신에게 그다지 미덥지 못한가 봐요.”
“미덥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치지 말라는 소리야.”
“누가 절 해치겠어요.”
“몸에만 상처를 입는 건 아니니까.”
말로 사람을 죽이는 곳이 사교계였다. 어디에나 애먼 소리를 해대는 작자는 꼭 있었다. 공작 가문이라는 배경이 완벽히 아내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휴고는 남이 뭐라 지껄이든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작고 약했다. 휴고는 늘 그녀가 걱정이었다.
루시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마음을 다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끔 느끼는 그의 섬세함은 정말 놀라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이런 애정을 받아본 적 있던가. 아내를 대하는 남편으로서 의무적인 마음 씀씀이로 보기에는 차고 넘쳤다.
‘어쩌면 그도 날…….’
가슴 뛰는 예감에 설다. 아슬아슬하게 뭔가 잡힐 듯 말 듯했다. 루시아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마주 안아주는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