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데미안 (7)
“혼적에 올리는 절차 때문에 데미안을 불렀어.”
“아직 처리 안 하셨어요? 혹시 제가 해야 할 일이 더 있어요?”
“당신이 더 할 일은 없어. 명색이 당신 아들인데 얼굴은 알아야 하잖아. 그리고 아무리 당신이 이미 동의한 일이라도 말없이 처리하지는 않아.”
루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휴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할지 알겠군. 물어보지 않고 처리할 줄 알았다고 말하려는 거지?”
루시아가 멋쩍게 웃었다. 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악당이라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알아.”
루시아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가 왠지 안되어 보이고, 편견으로 그를 오해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정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굉장히 유능한 영주님이에요. 전 북부에 와보기 전에는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기 좋은 곳인 줄 몰랐어요.”
“그런가.”
휴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칭찬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 유능한 영주님? 그녀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입적 절차는 복잡하지 않으니까 하루 이틀 내면 될 거야.”
“네…….”
정말 데미안이 그녀의 아들이 된다. 루시아는 마음이 설다. 그녀의 혼적에 입적한 이상 이제 데미안은 그녀의 가족이었다. 입양이 아니라 친자로 입적하는 것이라서 파양도 할 수 없다. 남편과는 이혼하면 남이 되어도 입적한 아들은 영원히 그녀의 아들이었다.
그에게 이미 친권 포기서를 주었기 때문에 데미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지만, 권리 여부가 모자 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제 아들이군요.”
“그래. 당신 아들이니까 좋을 대로 해. 괴롭혀도 되고.”
“…네? 이런 나쁜 아버지 같으니라고.”
루시아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비난했다.
“뭐가?”
“지금 계모한테 구박하라고 종용하는 거예요?”
그녀의 단어 선택이 그를 웃게 했다.
“구박할 깜냥이나 되나?”
“무슨 뜻이에요?”
“도리어 그 녀석에게 괴롭힘당하지나 말라는 뜻이야.”
“데미안이 절 괴롭힐 일 없을 거예요. 당신은 아직도 데미안을 몰라요. 그 아이가 얼마나 착한데요.”
휴고는 피식 웃었다. 순해 보여도 타란의 핏줄이었다. 그보다 착한 사람은 없을 것 같던 그의 형제도 친부를 살해하는 독기를 보였다.
“그리고 당신 아들이잖아요.”
루시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자 실제로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누구에 대한 신뢰지?”
“당신…을 닮은 데미안?”
그가 고개를 루시아의 얼굴 가까이 바싹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마치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말했다.
“날 닮았으면 더 조심해야지. 나에 대한 소문을 모르나?”
“…피를 마신다는 소문?”
“…뭐?”
루시아는 당황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 저기. 그러니까. 당신 소문… 중에…….”
“피를 마신다고?”
루시아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그렇고 이번의 말실수도 그렇고. 이래서는 그를 계속 나쁜 사람으로 생각해 왔다고 오해를 주기에 충분했다.
휴고는 고개를 그녀의 어깨 옆에 묻으면서 웃기 시작했다. 파비안의 충실한 보고 덕에 자신을 둘러싼 온갖 소문을 잘 알고 있지만, 대놓고 그의 앞에서 ‘피를 마신다며?’라는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가 불쾌해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리자 루시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문일 뿐이라는 거 알아요.”
루시아는 무안해서 변명했다.
“아예 거짓말은 아니지. 전쟁하다 보면 얼마간 먹을 수밖에 없거든.”
“아, 네…….”
“그게 궁금했나?”
“아뇨! …어쩌면 조금은……. 근데 옛날에 그랬어요. 지금은 절대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다른 소문은?”
“…몰라요.”
“당신 정말 대담한 여자로군. 피를 마시는 괴물한테 무슨 생각으로 결혼하자는 말을 한 거야?”
놀려대는 그의 말을 들으며 루시아는 잠자코 얼굴만 붉혔다. 말실수를 먼저 했으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제가 데미안 일에 이것저것 간섭해도 괜찮아요?”
“새삼스레.”
“지난번에 그러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귀여워하는 건 좋지만,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고.”
“그러니까 내가 언제.”
루시아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어리둥절한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정말 전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눈치였다. 루시아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가 ‘주제넘게’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말을 했다.
‘그냥… 대놓고 물어보면 어떨까. 그의 말을 추측하지 말고.’
“혹시 데미안 미워하세요?”
“안 미워해.”
루시아는 마음먹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한 질문을 그는 매우 쉽게 대답했다.
“그럼 왜 데미안을 기숙학교에 보내셨어요?”
“말했잖아. 내가 살필 수 없으니 보냈다고.”
“그래도 공작가 후계를 기숙학교에 보내는 경우는 못 들었어요.”
“남들이 어쩌건 무슨 상관이야.”
“…당신은 그걸 최선이라고 판단하셨다는 거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는 막혔던 속이 갑자기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어둠 속을 한참 더듬던 손끝에 뭔가가 잡힌 것 같다.
‘조금 알 것 같아. 이 남자…….’
생각해 보면 그는 루시아가 질문하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진 않아도 대답은 꼬박꼬박 해주었다.
“왜 데미안을 기숙학교에 보내놓고 한 번도 만나러 가지 않으셨어요?”
“녀석이 뭘 하는지 일주일 단위로 내 책상에 올라와. 잘 있는 거 알면 된 거지.”
신기했다. 이해할 수 없던 그의 행동은 다 이유가 있었고, 물어보니까 다 말해 준다. 루시아는 머리를 굴렸다. 어느 선까지 대답해 줄까. 좀 더 곤란한 질문을 해도 괜찮은가.
“그럼…….”
그가 고개를 숙여 목덜미를 깨물자 루시아는 아얏, 작게 비명을 질렀다.
“딴 남자 얘기는 그만하지?”
“뭐에요. 당신 아들이거든요. 이제 여덟 살 아이예요. 남자가 아니라고요!”
“잔인하군. 남자가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녀석의 자존심을 뭉개는 줄 알고는 있어?”
“아……. 제가 경솔했어요.”
어리다 해도 남자아이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어린 소녀에게 ‘넌 어리니까 절대 숙녀는 아니지.’라고 말하면 몹시 기분이 상할 것이다. 의도치 않은 말이지만 데미안이 얼마나 불쾌했을까.
‘애도 참. 싫으면 싫다고 솔직히 말해 주지.’
루시아는 의아했다. 데미안은 그런 것을 시시콜콜 말할 아이가 아니었다. 설마 그에게 그걸 말했을까? 부자 사이가 그렇게나 가까워졌나?
“데미안이 그래요?”
“아니.”
“근데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럴 거라는 소리야.”
루시아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남자니까 남자 마음을 더 잘 알 것이다. 루시아는 혹시 자신이 데미안에게 뭔가 또 실수한 건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손은 몸을 더듬으며 치근덕거렸다. 슬금슬금 내려온 손이 허리를 만지고 목에서 귓가로 가볍게 입술만 닿았다 떨어지는 키스가 끈질겼다.
“일하러 가셔야죠.”
휴고는 잔뜩 표정을 구겼다. 나름대로 열심히 유혹하는 중인데 그녀가 단번에 산통을 깼다.
“급한 일로 나갔다가 오시면 더 바쁘시잖아요.”
“비비안.”
루시아는 은근슬쩍 허리를 감는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경을 많이 썼더니 머리가 무거워요. 산책을 좀 해야겠어요.”
휴고는 몇 번 더 시도했으나 거절당하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일이 즐거운 적 없지만, 오늘따라 정말 하기 싫었다.
보상을 바라고 그녀를 위로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르고 달래준 수고를 이런 식으로 되갚아서는 올바른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그는 집무실로 들어갈 때까지 투덜거렸다.
그날 밤, 목욕을 마치고 침실로 들어오는 그에게 루시아가 말했다.
“당신 침실로 가서 주무세요.”
“또 왜!”
루시아는 버럭 언성을 높이는 그를 흘겨보았다.
“기운이 없어요. 오늘은 당신 감당 못 하겠어요. 즐겁지도 않을 것 같고요.”
기운이 없다. 즐겁지 않을 거다. 그녀는 연속해서 무자비하게 그를 강타했다.
“…알았어. 오늘도 얌전히 옆에서 잘게.”
그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망할 여편네들. 정말 이것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정말요?”
“어제도 약속 지켰잖아.”
그래서 더 못 믿겠는데. 그녀는 그를 영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휴고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아 침대로 몸을 던졌다.
“휴!”
그는 버둥거리는 그녀를 더 꽉 안았다.
“이대로 잔다고. 어허, 가만히 있어. 자꾸 움직이면 나 흥분해.”
“어딜 만져요!”
엎치락뒤치락하며 한참을 그러다가 조용해졌다. 등 뒤에서 그에게 꽉 잡혀서 루시아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아주 당당하게 잠옷 안에 들어와 가슴을 쥐었다. 손 빼라고 해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루시아는 그냥 포기했다.
“비비안.”
그가 귓가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루시아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네.”
“비비안.”
“네.”
그가 또 ‘비비안.’ 하고 부르자 루시아는 ‘네.’라고 대답하며 대체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처음에 당신 이름을 불렀을 때 불편해했었지.”
“음……. 네. 그랬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군.”
“네. 자꾸 들어서 익숙해졌어요.”
이제 루시아는 이전처럼 비비안이란 이름이 싫지 않았다. 타란 공작의 아내 이름은 루시아가 아니라 비비안이었다. 비비안의 삶은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고통스러웠던 비비안의 삶은 꿈속에서 끝났다.
그가 비비안이라고 불러주면 루시아는 그에게 하나뿐인 ‘비비안’이 된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녀를 비비안으로 불러줄 남자는 그가 유일했다.
“…그래?”
왜 내게는 당신의 아명을 알려주지 않는 거지? 휴고는 묻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봤다가 ‘그러기 싫었어요.’라고 하거나 ‘당신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라는 대답을 들으면 어쩌나. 그는 두려워서 물을 수가 없었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니지? 결혼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한 침대를 쓰는 상황을 묵인하는 건가? 날 절대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나? 묻고 싶은 말들이 불쑥불쑥 목에서 튀어나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속에 말을 담아 두고 참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몹시 생소하고 괴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당신만은 절대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번 더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나가버릴 것 같았다. 정신이 나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다치게 할까 봐, 꾹 눌러놓은 자신의 본성이 미쳐 날뛸까 봐 두려웠다.
“비비안.”
휴고는 좀 더 힘주어 그녀를 끌어안고 뒷목에 코를 댔다. 항상 그를 취하게 하는 그녀의 내음은 지독히 향기로웠다. 그는 더욱 코를 그녀의 살결에 더 밀착했다.
“네…….”
잠이 드는지 그녀는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이상했다. 그녀를 안고 있는데도 마치 그녀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상실감이 밀려왔다.
심장이 너무 아파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가슴을 뚫고 파고든 미증유의 힘이 그의 심장을 콱 잡아 짓이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파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없었다. 어릴 때 용병 노예로 끌려다니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지만, 아프다는 감각보다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잠든 그녀를 안고 그는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휴고는 봉신들을 불러 모아 데미안을 정식 아들로 입적했음을 알렸다.
“나는 이미 데미안을 내 후계로 하겠다고 공표했다. 그간 그대들이 적잖이 내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도 내버려둔 것은 어차피 내 결정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작이 데미안을 후계로 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소공자를 공식 석상에서 거론하는 일이 처음이라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입적한 소공자는 이제 법적인 내 아들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찾아오라. 나는 대화를 나눌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으니까.”
공작의 입에서 나온 대화라는 단어는 죽이겠다는 협박보다 무시무시했다.
휴고는 그들 앞에 서류를 던졌다.
루시아가 절대 나서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래도 아예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원 파티 참석자 명단을 가져오라고 제롬에게 명했다. 제롬은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마님을 거론했다가 쓰읍, 혀를 한 번 차자 냉큼 가져왔다. 휴고는 개중에서 봉신 명단만 골라냈다.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자는 집안 단속에 힘쓰는 것이 장차 이로울 것이다.”
이 정도면 휴고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충고조차도 되지 못했다. 나서지 말라는 아내의 청을 이만하면 충실히 지켰다고 그는 만족했다.
공작이 자리를 뜨자 사색이 된 사람들이 명단에 달려들었다. 그들의 귀에는 ‘그 명단에 이름 있는 놈은 다 죽었다고 생각해라.’라는 말로 들렸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 아내를 다그칠 것이고, 곧 사건을 파악할 것이다. 남편에게 혼쭐 난 귀부인들의 입을 통해 당시 정원 파티에 참석한 다른 귀부인들에게도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공작부인을 건드리면 뒤에 버틴 타란 공작이 불 뿜는 용처럼 나선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정원 파티 이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로암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루시아는 승마하러 가지 않고 일주일 내내 내성 안에만 있었지만, 원래 외출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일부러 틀어박혀 지낸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 루시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자 고용인들도 금방 그 사건을 잊었다.
데미안은 책을 읽다가 발치를 툭 건드리는 느낌을 받아 고개를 돌렸다. 꼬리잡기하며 혼자 놀다가 아샤가 데미안의 발치까지 굴러 와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데미안은 미소를 지었다. 유난히 데미안을 따르는 새끼 여우는 요즘 거의 온종일 소년과 함께 있었다.
일주일 동안 데미안은 많은 생각을 했다. 정원 파티 사건은 소년에게 상처보다는 충격을 안겼다. 그렇게 자신의 미약함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내내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비하면 먼지만큼 형편없는 자신의 존재를 되새김질했다.
하필 그날 공작은 출타했다. 로암에 있었어도 어차피 여자들의 사교계 일에 공작이 끼어들기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데미안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과 같은 아버지의 부재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때는 소년이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어렸다. 데미안도 알고 있었다. 학술원에서 데미안은 또래 학년 사이에서 가장 어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 소년보다 어른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소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어도 힘을 키우는 건 의지로 가능했다.
학술원에는 데미안이 어리다는 이유로, 알려진 신분 내역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습게 보며 시시한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런 허접한 놈들은 상대하지 않고 무시하면 무시하는 대로 더 난리였다. 그래도 데미안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데미안의 뛰어난 성적 때문이었다.
실력은 힘이다. 학술원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쓸모 있는 깨달음이었다.
데미안은 아샤를 안고 일어났다. 하인에게 여우를 건네 제집에 데려다 놓으라 하고 제롬을 통해 아버지를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넣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도련님.”
제롬은 집무실 앞까지 데미안을 안내했다. 소년은 커다란 문 앞에서 심호흡 한 번 하고 무거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학교로 떠나기 전, 딱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기숙학교로 가라는 말을 꺼내며 공작은 소년에게 말했다.
“널 공작가 후계로 선언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 나머지는 네가 할 탓이다. 졸업만 해. 그럼 이 자리는 네 거다.”
그날부터 데미안은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작 위를 물려받는 일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무엇을 위해 공작이 되고, 된 후에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작이 되겠다는 목표는 소년이 존재하는 의미였다. 소년이 살아가는 가치였다.
이제 데미안에게 진정한 목표가 생겼다. 공작이 되는 것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힘. 강해지고 싶다. 강한 힘이 있어야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있다. 아버지가 힘이 있어서 어머니를 지킬 수 있듯이 자신도 힘을 갖고 싶었다.
데미안은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는 위대한 기사였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될 자신이 없었다. 소년은 소년이 가능한 방식으로 강해지는 법을 찾아야 했다. 소년의 능력만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학술원에서의 배움으로 얻는 실력이었다.
집무실 안의 공기는 조금 서늘했다. 가구에서 풍기는 특유의 옅은 나무 향이 떠돌았다. 입구에서 사선 방향으로 놓인 널찍한 책상 위에는 문서가 겹겹이 쌓였다. 조용한 집무실 안에 이따금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울렸다.
데미안은 책상의 정면 앞에서 몇 걸음 떨어져 섰다. 휴고는 슥 고개를 들어 데미안을 한 번 확인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긴 이야기냐?”
“아닙니다. 그만 학술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어차피 이번 학기 수업을 따라가기는 틀렸을 텐데.”
“네.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계절 학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걸로 놓친 학기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한 학기 수료하지 못해도 졸업은 할 수 있다.”
“저는 최고 성적을 받고 싶습니다.”
“난 네게 졸업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제가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왜?”
“실력을 키워서 힘을 갖고 싶습니다.”
휴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눈빛을 받으며 데미안은 긴장했다. 그는 찬찬히 데미안을 살폈다. 소년은 곧은 자세로 서서 시선을 살짝 내리고 있으나 주눅이 든 기색은 없었다.
휴고는 데미안을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필립이 데려온 데미안의 붉은 눈동자는 맑고 순수했다. 형제의 아들이라는 필립의 말을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타란의 피를 이은 녀석이 형제의 핏줄이 아니고서야 그런 눈을 가질 수 없었다.
“힘이라.”
그는 피식 웃으며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서명을 마친 서류를 옆으로 넘겼다.
“학자는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 넌 학술원에서 배워서 키운 실력이 힘이 된다고 어찌 증명할 것이냐.”
데미안은 생각지 못한 문제 제기에 당황했다.
“네 성적과 무관하게 졸업만 하면 이 자리는 네 것이다. 공작 정도면 훌륭한 힘이지.”
최소한의 성적만 유지해 졸업장을 따든, 최고의 성적을 받아 졸업하든 어쨌든 공작 위는 소년의 것. 데미안은 고민했다. 그래서는 아무리 노력해 봤자 결과는 똑같았다.
데미안은 아버지가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싶었다. 학술원을 다니는 학생이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
고민하는 데미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데미안이 다니고 있는 학술원 ‘익시움’에는 학생으로만 구성하는 ‘회’라는 조직이 있었다. 익시움 내에서 회의 권력은 상당했다. 회의 수장을 ‘시타’라고 불렀다.
데미안은 아직 어린 나이라 직접 그들과 부딪칠 일이 없었다. 회의 구성원은 고학년들이었다. 가끔 교정을 지날 때마다 그들이 지나가면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학생들이 길을 트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았다.
그걸 보면서도 데미안은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소년의 목표는 그냥 졸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관심이 생겼다.
“시타가 되겠습니다.”
휴고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소년을 보았다.
“시타는 학술원의…….”
“뭔지 안다.”
휴고는 학술원을 나오지 않았으나 꾸준한 관심으로 학술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학술원을 둘러싼 흐름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의 귀족들이 갈수록 익시움에 자식을 유학 보내는 수가 늘고 있었다. 인맥 때문이다. 10년만 지나면 익시움 과정의 수료는 귀족들의 필수 과정이 될 거라고 휴고는 예측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했다. 학술원에도 권력과 계급이 있었다. 그래 봤자 학술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졸업하면 그만인 제약 있는 권력이 뭐가 대수일까 하겠지만, 원래 폐쇄된 공간일수록 권력은 더 절대적이다. 휴고가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소국의 왕 노릇보다 나았다.
학술원 시타의 권력은 전쟁을 치르면서 부쩍 강력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데미안이 졸업할 즈음이면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될 것이다.
학술원 시타 출신이라는 경력은 혼외자라는 출생 신분의 한계를 상당히 상쇄할 것이다. 아이가 그런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휴고는 데미안이 내린 결론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데미안의 학술원 생활에 관련한 보고서를 받아보면 공부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왜 갑자기 권력이 갖고 싶어졌을까. 과연 이 녀석이 얼마큼이나 해낼 수 있을까. 휴고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공부만 들이판다고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예.”
“명심해라. 어설픈 힘은 없느니만 못하다. 최고가 되고 싶으면 감히 곁눈질도 하지 못하게 올라서야 한다.”
“예.”
“네 어머니에게 입적된 건 알고 있느냐?”
“예.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술원으로 돌아간다고 네가 말씀드려라.”
“예.”
“학술원에서 사람은 죽이지 마라. 그건 좀 수습하기 까다로우니까. 혹시 그런 일 있으면 학술원 측에 알리기 전에 이쪽에 먼저 연락하고.”
역시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데미안은 그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예.”
데미안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갔다. 소년이 나가고 잠시 후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네 녀석보다 네 아들놈이 수십 배는 야무지구나.”
형제를 떠올리면 아프기만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만 좋았다.
데미안이 루시아를 찾아간 시각은 때마침 오후 티타임 때였다. 차를 마시러 2층에서 내려오던 루시아는 데미안과 마주치자 반색하며 응접실로 데려갔다. 모자는 응접실에 앉아서 제롬이 솜씨 좋게 내린 차를 마셨다.
“내게 용무가 있어 오는 길이었지? 무슨 일이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학술원으로 그만 돌아가려고 합니다.”
입으로 가져간 찻잔이 멈추고 루시아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혹시 정원 파티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어?”
“아닙니다. 수업을 따라가려면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데미안은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며 드러눕는 쪽이 여덟 살 아이다운 행동이었다. 루시아는 평범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느라 일찍 철이 든 데미안의 의젓함이 안타까웠었다.
그러나 데미안과 지내는 동안 아이를 겪으면서 그런 우려는 씻어낼 수 있었다.
데미안의 사고력은 어른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이른바 천재였다. 머리가 지나치게 좋기 때문에 보통 아이의 어린 시절은 데미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루시아는 꿈속에서 데미안과 비슷한 아이를 알았다. 남편이었던 메튼 백작의 셋째 아들 브루노였다. 브루노를 잠깐이라도 가르쳤던 가정교사는 그가 천재라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데미안보다 한 살이 더 많겠구나.’
루시아가 브루노를 처음 만났을 때 소년은 열두 살이었다. 브루노는 정말 메튼 백작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머리도, 외모도 닮지 않았다.
그는 부친에 대한 반항심이 커서 보란 듯이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켰다. 교묘한 악질 장난으로 가정교사를 툭하면 쫓아내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메튼 백작은 브루노를 학술원으로 유학을 가장해서 쫓아냈다.
매사 냉소적이고 반항적이던 브루노는 굉장히 조숙했다. 그래서 루시아는 천재 소년의 어른스러움이 뭔지 알고 있었다.
‘천재라는 점만 빼면 두 아이는 전혀 달라. 데미안이 훨씬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걸.’
“그래. 공부하러 가겠다는데 마땅히 기쁘게 보내줘야지. 언제 출발하려고?”
“준비는 금방 될 테니 내일 아침에 가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 그렇게 금방?”
데미안은 루시아에게 아들이면서 친구였다. 데미안이 루시아에게 정을 배운 것처럼 루시아 역시 데미안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를 똑 닮은 소년을 보며 그가 없는 동안의 그리움을 견뎠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만큼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더 깊이 깨달았다.
“그럼…….”
내년에 또 오는 거니? 물으려다가 루시아는 멈칫했다. 내년이면 왕이 죽고 수도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데미안을 수도로 불러야 할 텐데 타란 공작가 영지인 북부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하는 데미안이 수도에서는 얼마나 눈총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차마 수도에서 보자고 할 수 없었다.
데미안이 나이가 들어서 사교계에 데뷔해도 될 즈음까지는 지금처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기숙학교에 있는 편이 낫다.
‘시간이 지나면 뭔가 달라지겠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데미안을 후계로 삼았을 것 같지 않다. 그도 뭔가 나름대로 계산해 둔 바가 있을 것이다.
“내일 출발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니?”
“책만 챙기면 됩니다.”
“그럼 나와 이야기 더 할래? 학술원 생활이 어떤지 얘기해 줘.”
“예.”
오후 몇 시간에 걸쳐 모자는 응접실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출발 준비를 마친 마차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마차를 몰 마부와 가는 여정 동안 시중을 들 하인이 대기해 있고, 고용인들이 도련님의 배웅을 위해 모두 나왔다.
휴고까지 나와있었다. 떠난다는 인사말 들었으면 되었지 무슨 배웅이냐, 했다가 루시아에게 원망의 말을 듣고 끌려 나왔다.
열린 마차 문 앞에서 데미안과 루시아는 마주 서서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 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예.”
“밥도 잘 먹고. 아프지 말고. 아……. 건강 얘기는 했지.”
루시아는 아쉬워 자꾸 할 말을 찾았다. 그녀를 보는 데미안의 가슴 안쪽이 따뜻해져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님.”
하인이 바구니를 들고 곁으로 왔다. 루시아가 바구니를 받아 데미안에게 내밀었다. 덮개가 반 열려있는 바구니 안에는 아샤가 들어있었다.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커다란 귀가 쫑긋거리며 움직였다.
“아샤는 이미 널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러니 네가 데려가렴.”
“여우 사냥을 위해 키우시는 거잖아요.”
“괜찮아. 난 구경만 해도 되니까.”
“하지만 학술원에서 동물을…….”
“그건 걱정하지 마. 네 아버지가 조치해 주신대.”
그렇죠? 묻는 것처럼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일거양득이었다. 짐승 새끼를 알아서 치우겠다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학술원 교칙은 바꾸면 그만이었다.
휴고는 익시움에 데미안을 입학시킬 때 상당한 장학금을 쾌척하고 이사진에 합류했다. 의결정족수에 다다르는 이사진의 상당수를 매수해 두었기 때문에 휴고는 어지간한 교칙은 입맛대로 바꿀 수 있었다. 사람들은 타란 공작을 힘을 추구하는 기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실제로 꽤 치밀한 사람이었다.
“학술원 생활에 아샤가 조금이라도 네 마음의 벗이 되었으면 해.”
“예, 고맙습니다.”
바구니를 받은 하인이 마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 보겠습니다.”
“아……. 그래. 가야지. 데미안. 마지막 인사로 한 번 안아도 되겠니?”
“…네.”
루시아가 팔을 뻗어 데미안을 끌어안았다. 좋은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품이었다. 아마 오늘의 이 느낌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잠시 허공에 떠있던 데미안의 손도 루시아의 등을 감싸 안았다.
공작 부부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필요 때문에 결혼했을 거라는 생각은 진즉 버렸다. 그리고 사이좋은 부부 사이에는 언젠가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공작부인이 아들을 낳으면 데미안의 자리는 모래성이었다. 입적되었다지만 사생아. 진짜 적실로 태어날 아이를 데미안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동생이 태어나서 자신이 누리는 후계의 자리를 가져간다고 해도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데미안은 단지 지키고 싶었다. 로암을 감싸는 이 따뜻한 온기를 지키고 싶었다. 어머니의 웃음을 지킬 힘을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포옹을 마치고 두 사람이 떨어졌다.
“어머니.”
루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미안을 멍하게 보았다. 갑자기 소년이 성큼 한 발 앞으로 다가오자 루시아는 살짝 흠칫했다.
데미안이 루시아의 손을 잡아들고 몸을 숙이며 정중하게 그녀의 손등―예법에 따라서 손등에 직접 입술을 댄 것을 아니지만―에 입을 맞추었다.
“언제 다시 뵐지 모르지만 평안하시길.”
대답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는 루시아를 향해 데미안은 눈이 반달처럼 보이도록 웃었다. 씩 올라가는 입매는 처음 보는 짓궂은 미소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휴고는 삐딱하게 헛웃음 치다가 피식 웃었다. 봐줬다. 딴 놈이 저런 짓했으면 오체분시였다.
데미안이 올라탄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루시아는 넋을 놓고 서있었다. 그 곁으로 휴고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뭐 해?”
“…어머니래요.”
“어머니가 아니면?”
“하…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라.”
‘애도 참. 떠날 때 되어서 겨우 한 번 불러주고.’ 하는 서운한 마음과 ‘나보고 어머니라고 했어.’ 하는 감격이 교차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붉어진 눈시울로 루시아는 그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보셨지요?”
“뭘.”
“역시 당신 아들이었어요. 벌써 바람둥이 짓을 하고 있다고요.”
“…….”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로 크면 안 된다는 둥, 그런 아들로 키우지는 않겠다는 둥 루시아는 아쉬움에 발을 떼지 못하고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종알거렸다. 휴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