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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14화 (15/77)

14장 공작 부부 (2)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꽃잎들을 보며 루시아의 얼굴도 꽃잎처럼 붉게 물들었다. 하녀들이 그릇으로 물을 담아 루시아의 어깨 위로 끼얹을 때마다 향료를 탄 물에서 은은한 향이 퍼져 나왔다.

루시아는 결코 목욕물에 이런 짓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다 잔망스런 하녀들 짓이었다. 무슨 의도로 목욕을 하는지 빤히 보이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더구나 정말로 그런 의도가 있으니까 더더욱.

“어쩜. 마님께서는 이렇게 피부가 고우셔요.”

“오일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매끄러울까.”

“아기 피부도 마님보다 곱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따라 하녀들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로암에서 처음 맞이하는 주인 부부의 합방에 그네들이 더 들떠있었다. 루시아는 하녀들의 아부 섞인 찬사를 잠자코 들었다. 그녀 자신도 피부가 곱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자부심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래봤자 남자들을 유혹하는 건 예쁜 얼굴과 글래머 몸매이지 피부가 아닌걸. 그도… 그렇겠지.’

꿈에서 타란 공작은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다. 간혹 파티에서 볼 때마다 여자가 달랐다. 그리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컸다.

흘끔 제 가슴을 내려다본 루시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크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슴이었다. 그나마 허리가 조금 가늘고 골반이 있는 편이라 볼륨이 있기는 하지만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눈길을 확 끌 정도로 미녀도 아니고.

미녀라면 소피아 로렌스 정도는 되어야 그의 눈에 들 것이다. 루시아는 잠시 승전 기념 파티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런 미녀도 가차 없이 버려져 그에게 매달렸다.

꿈속에서 봤던 그의 여자들은 모두 화려한 장미꽃 같았다. 그렇게 여자들을 바꾸며 끼고 다닌 것 치고는 그를 둘러싼 추문은 별로 없었다. 안 보이는 뒤로는 무슨 짓을 하는지 알 바 없지만 결혼한 후에는 결코 아내 외의 여자를 공식적인 자리에 대동하지 않았다.

꿈속의 그는 아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다. 그래서 그 점은 안심이었다. 루시아에게도 그 정도 예의는 지켜줄 테니까.

목욕을 마치고 가운 차림으로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루시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테이블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이다가 들어오는 루시아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시중을 들러 함께 들어왔던 하녀들은 공작부부를 번갈아 보며 얼굴을 붉히더니 재빨리 물러갔다. 공작께서 목욕하는 것도 기다리지 못해서 이미 침실에 들어와 계시더라, 내일이면 아마 성에 쫙 소문이 퍼질 것이다.

루시아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욕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얼떨결에 휩쓸리다시피 치른 초야는 지독히 강렬했다. 딱 잘라 싫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아프고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희미해진 줄 알았던 초야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눈앞에서 그려졌다. 홀린 것처럼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와인을 한 잔 따르더니 마실 거냐고 묻는 것처럼 잔을 들어 올렸다. 그 정도만으로 얇은 리넨 셔츠 한 장으로 감추어진 그의 유려한 근육의 움직임이 드러났다. 루시아는 꼴깍 목울대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는 그가 주는 와인을 한 모금 맛보았다. 시큼하고 썼다.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한 잔을 말끔히 비우고 빈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더?”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삐딱하게 웃으면서 잔을 채워주었다. 그마저도 다 마시자 배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금세 붉어지는 하얀 볼을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입술에 묻은 와인을 할짝거리는 그녀의 작고 붉은 혀를 응시했다. 그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는 예고 없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뒷목을 받쳐 자신 쪽으로 당기며 붉은 입술을 삼켰다. 허공에서 배회하는 그녀의 손에 들린 잔을 받아 테이블로 내려놓으면서 그는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경직된 그녀를 살살 달래는 것처럼 입술에 가볍게 몇 번 입을 맞추고 입안으로 혀를 넣었다. 달콤 쌉싸름한 와인의 잔향이 느껴졌다. 잇몸을 한 번 훑으며 짧은 입맞춤을 끝내고 입술을 떼어내며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눈이 우는 걸 보고 싶다.

“술. 즐기는 편인가?”

“…특별한 날에는요.”

그는 어쩐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과 혀가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감각에 빠져들어 루시아는 그에게 기대 흐느적거렸다.

흐트러진 가운 안으로 들어온 그의 손이 날개 뼈를 감싸고 다른 손이 허리를 쓰다듬으며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아찔한 느낌에 몸이 소스라쳤다. 그의 다리가 그녀의 두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허벅지 안쪽에 밀착했다. 입술이 목덜미를 문지르며 그는 낮게 말했다.

“떨고 있군.”

그의 말에 루시아는 비로소 자신이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른하던 술기운이 확 날아갔다.

“겁먹지 마. 이번에는 아프지 않을 거야.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당신은 즐겁지 않을 거고 다칠지도 몰라.”

그녀의 떨림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휴고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가 아는 그녀는 작고 약하지만 당차고 씩씩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면 극악한 나쁜 놈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이 어리고 처음인 그녀를 상대로 초야의 그날 상당히 거칠었다는 걸 그도 자각은 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해도 모자랄 판에 닳고 닳은 여자를 상대하듯 그렇게 해댔으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를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리스트에 분명히 한 줄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좋은 말은 아니겠지. 빌어먹을. 그날 자제 좀 할 걸. 뒤늦은 후회였다.

겁먹어 벌벌 떠는 그녀를 겁간하듯 안고 싶지 않았다. 함께 즐기고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 그동안 그와 침대를 공유했던 여자들은 밤을 즐길 줄 알았다. 그녀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달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즐길 줄 모르는 여자를 달래 함께 즐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휴고는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지만 손바닥에 닿는 팔다리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역시 침대 위로 올라가 옆에 누웠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품으로 당겼다. 그의 손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루시아는 긴장이 가라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아무래도 그는 초야를 반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늘 그녀의 침실에 든 것은 공작부부가 잘 지내고 있다고 외부에 보이기 위한 행동인 것 같다. 아마 자신을 배려해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다.

집안에서 안주인의 입지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수록 확고해진다. 그러면 서재에서의 그의 친밀한 접촉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때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온갖 복잡한 상념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자는 건가?”

“…….”

“이봐. 정말 자? 당신 재우려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그가 몸을 뒹굴 돌려 순식간에 루시아 위로 올라갔다. 루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타고 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난처한 얼굴로 어쩐지 곤란해하고 있었다.

“피곤해?”

“저는 괜찮지만… 당신이야말로 피곤하실 것 같은데요. 돌아오시자마자 회의에…….”

“난 괜찮아. 그런 건 아무 문제……. 아무튼, 난 전혀 피곤하지 않아.”

“…네. 음……. 그러시군요.”

‘체력이 참 좋으시네요’ 하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남자가 제 몸에 올라타 있는데 멀뚱히 바라보는 그녀를 보자니 속이 터졌다. 이미 초야도 치렀겠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이 여자는.

“당신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

“…네?”

루시아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하고 싶다고. 당신은 싫어?”

“…….”

“당신이 싫으면 억지로는 손 안 대.”

그의 말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루시아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루시아의 침묵을 거부라고 생각했는지 그가 괴로운 표정으로 푹 한숨을 쉬었다.

“정정해야겠군. 당신이 싫어도 난 지금 당신을 원해. 초야가 그렇게 끔찍했나?”

“…저는.”

목이 탁 막혀왔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원한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귀를 의심했다. 그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이 남자가 이런 눈빛도 하는구나.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새침하게 그를 밀어내고 싶었다.

“…당신이 즐겁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절 놀리고 비웃으셨잖아요.”

“비웃어? 내가? 당신을 놀린 건 인정해. 귀여웠으니까. 하지만 침대에서 여자를 비웃을 만큼 형편없는 놈은 아니야.”

그의 단호한 변명은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귀엽다는 말에 루시아 얼굴에 살짝 홍조가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에… 하다가 그만두셨고…….”

그날 오히려 그만두기를 바란 것은 자신 쪽이었으면서 루시아는 앙큼하게 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이상함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다급했다.

“이 여자야. 더 했으면 당신은 한동안 걷지도 못했어. 기껏 생각해서 참았더니만.”

“…아팠단 말이에요.”

루시아는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휴고도 할 말이 없었다.

“하혈해서… 이틀 더 수도 저택에 머물러야 했어요.”

안나는 분명히 별로 심각한 증상은 아니라고 진단했지만 ‘하혈’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강했다. 사내와 첫 밤을 보낸 여자가 피를 흘리는 건 대부분 남자들은 알아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를 괜히 떠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하는 투정이었다.

효과는 좋았다. 으으음, 무거운 신음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지금껏 그와 불타는 밤을 보낸 모든 여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구애하며 그의 아랫도리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와 보낸 밤의 감상을 표현했다. 그녀 같은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때 어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몸이 굉장히 약하니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

“…네.”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힘들게 성벽을 넘었더니 그 너머에 또 다른 성벽을 발견한 병사의 표정이었다.

“그래서. 싫은가?”

이 남자는 자신을 원한다. 루시아는 조금 멍해졌다. 그는 얼마든지 다른 미녀를 침대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여자가 필요할 뿐이라면 이렇게 구구절절 구차한 설명을 하며 안달할 필요가 없었다. 또는 강압적으로 그녀를 눌러 힘으로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그녀가 거부하면 물러날 것처럼 말했다.

“비비안. 초야에 말했던 약속 지켜줄게. 처음 아니면 황홀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했지.”

휴고는 이제 살살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영민한 두뇌는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안을 수 있을까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며 돌아가고 있었다.

“못 믿어요. 지난번에 거짓말하셨잖아요.”

그녀가 자꾸 튕겨대니 그는 정말 속이 타들어갔다.

“거짓말이라니. 난 분명히 처음이면 아플 거라고 했어.”

“좀 아플 거라 하셨죠. 엄청 많이 아팠거든요.”

“그러니까 만회할 기회를 달라니까. 다시는 안 할 작정이야?”

비록 단순한 육체적 욕구 그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루시아는 이 순간만큼은 구애를 받는 매력적인 미녀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마 조금은 기뻤다. 그를 향해 웃고 말았다.

“오늘 하는 거 봐서요.”

휴고는 얼마간 간격을 두고 쿡, 낮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농담은 그와 상성이 꽤 맞는 것 같다. 가끔 툭 던지는 그녀의 말에 그는 늘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지금은 그녀의 허락이 즐겁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지간히도 애를 태우는군.”

정말 그의 인생 처음이었다. 여자한테 하자고 매달린 건.

그는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두 다리를 잡아 벌려 자리 잡고 앉았다. 단단히 성난 그의 하복부가 다리 안쪽으로 밀착하자 루시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목욕을 마치고 바로 욕실에서 나온 터라 루시아는 가운 안에 아무것도 입지 못했다. 은밀한 맨살에 바싹 닿은 그의 성기는 그의 바지 안에서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셔츠를 벗어 침대 아래 내던지는 그의 움직임이 다급했다. 그는 곧바로 그녀의 허리에 묶인 끈을 풀어 가운을 열었다. 뽀얀 나신이 드러났다. 줄곧 잔상처럼 나타나 그를 괴롭히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얀 목덜미에 도드라진 쇄골, 보드라운 생크림 같은 가슴과 늘씬한 허리선.

그가 샅샅이 눈에 담아 살피는 동안 루시아 역시 그의 상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야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벌어진 어깨와 널찍한 가슴, 족히 그녀의 팔뚝 굵기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그의 팔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빈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의 몸은 마치 전신(戰神) 같았다. 태생적으로 여성을 압도하는 남성의 강함이 느껴졌다.

그의 두 손을 루시아의 납작한 복부에 대더니 천천히 위로 쓸어 올리며 가슴을 쥐었다. 조금 강한 힘이었지만 거칠지는 않았다. 그는 마사지하듯 손아귀 가득 가슴을 쥐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휩쓸었다. 다리 안쪽에 맞닿은 그의 것이 계속 꿈틀거리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루시아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뒤틀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가슴 하나를 삼켜 빨기 시작했다.

“아!”

유륜 끝을 깨무는 약간의 통증, 그리고 돌기를 빨아들이는 아찔한 쾌감에 루시아는 눈을 감았다.

그는 부드럽게, 그리고 자극적인 애무로 루시아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완전히 젖어 준비된 몸 안으로 그가 느릿하게 들어왔을 때 루시아는 탄성을 질렀다.

“아프지… 않지?”

루시아는 숨을 몰아쉬며 네, 짧게 대답했다. 조금 묵직한 둔통은 있었지만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야의 고통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였다. 어째서 여자는 처음에 몸을 열 때 그렇게 고통을 느껴야 하는 걸까, 루시아는 진지하게 의문을 가졌다.

“천천히 움직일 테니까, 힘들면 말해.”

그는 천천히, 그리고 얕게 그녀의 안을 드나들었다. 낯선 이물감이 안을 스치는 감각이 기묘했다. 손끝부터 저릿하면서 몸이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던 기둥이 단번에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왔다.

“아!”

온몸이 저릿하게 울렸다.

“아파?”

“아…니요…….”

아픈 건 아니었다. 분명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괴로웠다. 빠져나간 그가 다시 깊이 밀고 들어왔다.

“잠깐……. 흑…….”

“아픈가?”

“네……. 조금 뭔가…….”

그가 움직이지 말고 잠시 기다려주길 바랐으나 그는 흐응, 중얼거리며 씨익 웃었다.

“그럴 리가.”

단번에 묵직한 뜨거움이 몸을 가르며 들어왔다.

“으흑!”

“안이 이렇게 난리인데… 아플 리가 없지. 안 그래?”

그가 귓가에 짓궂게 속삭이며 단번에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짧은 통증 끝으로 아릿한 느낌이 이어졌다. 동시에 가볍게 절정을 느꼈다. 괴로우면서 달콤한 감각이었다. 루시아는 자신의 내부가 그를 삼키며 열렬히 좋아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낮게 신음하는 소리를 듣자 아래가 짜릿하게 죄어들었다.

그가 귓가에서 으르렁거렸다. 그의 거친 숨소리에 그 역시 자신만큼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루시아는 흥분했다. 그 흥분에 맞춰 내부가 맥박 치면서 꽉 움츠러들었다.

“욱…….”

휴고는 아프도록 죄었다가 푸는 것을 반복하는 그녀의 내벽에 눈앞이 핑 돌아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사정한 것도 아닌데 그에 근접할 정도의 쾌감이 정수리를 타고 올라온다. 고통으로 경직되어 있던 처음과 달랐다.

충분히 맛보지 못해 아쉬워한 것이 아니었다. 순진한 표정과 투명한 눈빛을 지닌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지독한 쾌락의 늪이 숨어있었다. 그는 더 큰 쾌감을 갈망하며 허리를 빼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

빠져나가는 것이 싫은 것처럼 그녀의 질은 단단히 그의 것을 붙잡았다. 그는 지그시 어금니를 사려 물고 몸을 뺐다가 진입했다. 뜨겁게 조이는 내부를 느낄 때마다 그는 방사의 욕구를 참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더 그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는 정사의 쾌감에는 비교적 담백한 편이었다. 처음 여자를 알고 하룻밤 여자 서넛이 다 늘어지도록 밤새 즐기며 놀던 한창 십대 때에도 늘 견고한 이성은 무너진 적 없었다. 그 수많은 여자들 중 누구도 그를 이렇게 흥분시키지 못했다.

“아! 아응! 잠깐… 잠깐 잠시…….”

뇌를 잡아 주무르는 것 같은 아득하면서 기이한 감각에 루시아는 두려움을 느껴 그의 가슴을 짚어 두 손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두 손을 깍지로 잡아 침대 위로 누르며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이 맞부딪치며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박아 넣었다. 헐떡이는 호흡과 섞이는 교성을 들으며 그는 등허리에서 올라오는 뻐근한 쾌감에 전율했다. 정말 미치도록 좋았다.

“하아아악!”

루시아는 고개를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동공이 확장되고 저절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격하게 교접한 하체와 가장 먼 뇌에서 시작되는 쾌감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으로 퍼져갔다.

숨이 차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득하게 어디론가 떨어지는 기분에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날아오르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도망치고 싶지만 절대 이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모순이 함께했다.

거대한 해일처럼 온몸을 쓸고 지나가는 쾌감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루시아는 그의 어깨를 꽉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이 빠져 그대로 침대로 늘어뜨렸다. 아예 온몸이 축 늘어졌다.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오감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새카맣게 점멸하던 시야가 환하게 트이고 나서야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는 거친 그의 호흡을 들을 수 있었다.

‘맙소사.’

휴고는 탄식했다. 죽는 줄 알았다. 경련하는 내벽이 그의 것을 물고 잡아 비트는 감각에는 그저 헉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파정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그야말로 완전히 잡아먹히는 기분으로 사정했다. 정수리 끝에서 발끝까지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복상사라는 단어의 정의를 그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의 것을 잡고 있는 그녀 내부의 경련은 상당히 길었다. 제멋대로 날뛰던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느려지긴 했어도 가만히 안에 넣고만 있는데도 꽉 물었다 푸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숨을 겨우겨우 가다듬었다. 어지간한 쾌감에는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다. 남자 서넛을 죽였다는 명기도 안아봤지만 그때도 별거 아니군, 생각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는 팔로 딛고 상체를 살짝 일으켰다. 내려다본 시선 아래 그녀가 완전히 흐트러진 표정으로 헐떡이고 있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쾌락에 약한 남자였다. 제 아래 누워있는 여자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샘솟았다.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젖은 눈시울에도, 코끝에,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깊이 들어간 곳에도 키스했다.

흐려져 있던 루시아의 눈에 조금씩 초점이 돌아왔다. 쾌락의 정점이 지나고 상대적으로 느끼는 무기력함에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지만 그것도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가벼운 입맞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는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를 오가며 가릴 것 없이 자잘한 키스를 쏟았다.

루시아는 부끄러우면서도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가벼운 키스는 어쩐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꿈에서 결혼생활을 했으나 부부간 성에는 무지한 루시아였다. 그러나 조금 전 자신이 만족한 만큼 그 역시 만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시아는 기교를 부리며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같은 건 알지 못했다. 관계에서도 소극적인 편 정도에 더해서 거의 목석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미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이만큼 느끼고 반응하는 타고난 몸이었다.

최고의 명기로 꼽히는 창부들 중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는 그런 건 몰랐다. 그냥 그가 지금 대단히 만족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느꼈다.

그가 늘어뜨린 루시아 팔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손목 안쪽부터 겨드랑이까지 쪽쪽 소리 나도록 애무했다. 왠지 부끄러워져서 루시아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얌전히 그에게 몸을 맡겼다.

알아서 잡아먹으라는 것처럼 몸을 내맡기는 반응은 그를 더 자극했다. 그녀 안에 묻고 있는 그의 중심은 뿌듯하게 힘을 받아 부피를 키워갔다.

그는 상체를 일으키고 그녀 다리 하나를 잡아 어깨로 올렸다. 땀으로 촉촉한 그녀 종아리에 입을 맞추면서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흠칫 놀라 눈이 동그랗게 커진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내리자 그는 아랫배가 꽉 죄어드는 것 같았다.

그가 쏟아낸 정액을 머금은 그녀의 질은 아까보다 훨씬 미끈거리며 부드럽게 그의 성기를 품었다. 성기 대부분을 그녀의 안에 넣은 채 기둥 부분을 조금씩 꺼냈다가 넣으면서 그는 뜨겁고 습한 그녀의 안에서 마찰하는 기분 좋은 쾌감을 즐겼다.

“응……. 아아…….”

미약한 신음이 루시아 입에서 흘러나왔다. 단단한 기둥이 내부를 헤집는 느낌이 적나라했다. 느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이 좋았다. 그가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을 때마다 루시아의 몸이 아래위로 조금씩 흔들렸다.

몸이 깊은 물에 잠긴 것만 같았다. 무겁게 늘어지면서도 부유하는 것 같았다. 절정을 느끼고 한껏 예민해진 속살을 그의 성기가 스쳐갈 때마다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요란한 교성을 지르는 것도, 보란 듯 교태로운 몸짓을 보이는 것도 아닌데 휴고는 그녀의 흐려진 눈빛과 젖어드는 눈시울에 손끝까지 저릿할 정도로 흥분했다. 미미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꾸며내는 거짓 반응이 아니라, 정말 느껴서 몸부림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뜨겁게 죄는 그녀의 속살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빼냈다가 밀어 넣어 자극도 느끼고 싶었다. 허리를 둥글게 움직이며 안을 자극하자 바로 반응이 왔다.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내벽의 움직임은 그의 성기를 마구 주물럭거렸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분출하고 싶은 욕망을 내리눌렀다. 정말 요물이 따로 없었다. 벌어진 붉은 입술과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혀를 보자 맛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몸을 숙여 두 팔로 그녀 어깨와 허리를 감싸 들어 올렸다.

마주 앉게 된 자세로 그는 그녀의 뒤통수를 품으로 당기며 입술을 삼키고 살짝 나온 혀를 빨아들였다. 말랑거리는 혀가 쉽게 그에게 잡혀주지 않았다. 끈질기게 쫓아가며 휘감고 살짝 물었다.

파득 놀란 혀가 얌전해졌다가 다시 도망쳤다. 쫓고 쫓기며 그는 앙큼한 그녀의 작은 입속을 정복하는 데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그녀 엉덩이를 움켜잡고 허리는 계속 움직였다.

그녀 입안에 흐르는 맑은 타액을 삼켰다. 치열을 샅샅이 훑으면서 볼 안쪽 구석구석 건드리지 않는 곳 없이 애무했다. 루시아가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급하게 두드리고 나서야 그는 입술을 뗐다.

“하아. 하아.”

도톰하게 부푼 입술을 벌리고 루시아는 마구 가쁘게 호흡했다. 그가 키득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뗐다.

“코로 숨을 쉬어야지.”

질식시킬 것처럼 몰아가던 그를 원망스레 바라보던 루시아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알몸으로 남자와 뒤엉켜있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자마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누워서 그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라,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근육이 움직이는 그의 맨 가슴을 바라보고 있자니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루시아가 시선을 피하자 그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일부러 쫓아가 시선을 마주하자 또 피한다. 집요하게 몇 번 그러다가 그녀가 수줍어 그런다는 것을 알고는 피식 웃었다.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할 것 같은 음란한 몸을 지녔으면서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음란함은 그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쩐지 그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휴고는 다시 그녀를 눕혔다.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돌아눕게 해서 다리를 옆으로 겹쳐 놓이게 하고 허벅지 사이를 뚫고 질 깊숙이 진입했다.

“앗……. 으응…….”

바뀐 자세는 이전과 다른 곳을 건드리며 자극했다. 얕게 건드렸다가 때로는 깊게 들어왔다. 아픈 걸 참기에만 급급했던 초야와 달리 루시아는 정사가 주는 쾌감에 빠져들었다.

의식이 돌아온 루시아는 지금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건지 기절했다 깨어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이 멍하고 온몸이 나른했다. 그리고 좀 더 의식이 또렷해지자 귓가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에 닿는 탄탄한 그의 가슴이 느껴졌다. 그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 손이 허리를 감고 다른 한 손은 가슴을 쥐고 있고, 그에게서 나오는 호흡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의 다리 하나가 뒤에서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그녀는 마치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듯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더구나 엉덩이에 닿는 그것은…….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열이 올랐다.

내려있는 커튼 사이로 환하게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봐서 분명히 한참 전에 날이 밝은 것이 분명했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된 걸까.

늘 해 뜰 무렵에는 일어나는 습관이라 이렇게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상체를 조금 빼내자마자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확 뒤로 당겨졌다. 뒷목에 축축한 입술이 닿았다.

“저… 전하…?”

“…이름.”

“…휴. 저……. 놔주세요.”

“싫은데.”

그의 입술이 목과 등 부근에 자잘하게 입을 맞췄다. 키스는 점차 짙어지며 따끔거리는 흔적을 만들었다.

“전……. 휴. 아침이에요.”

루시아의 작은 반항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밀부에 허벅지를 바짝 밀착해 문지르듯 움직이면서 움찔거리는 그녀의 반응을 즐겼다.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든 그녀를 보고 있으니 더 짓궂게 건드리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안에 자신의 분신을 넣고 박아 올리듯 허벅지를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읏…….”

그녀의 몸이 흔들리면서 숨죽인 짤막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허리를 잡아 올려 엉덩이를 들게 하고 단단히 일어난 중심을 그녀의 붉은 속살 안으로 찔러 넣었다.

“흐읏…….”

그녀의 손이 시트를 쥐었다.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온 뜨거운 것이 쑥 빠져나갔다가 다시 파고들었다. 그가 밀고 들어올 때마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탁한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짐승이 교미하는 것 같은 자세에, 살이 맞부딪치며 나는 물 튀기는 소리가 수치심을 더했다. 그것이 쾌감이 되었다.

완전히 기절하는 것처럼 잠든 루시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는 보송보송하고 하얀 그녀의 볼을 깨물고 입술을 맛보고 목덜미를 핥았다. 부족했다. 맛보고 또 맛봐도 더해가는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녀의 긴 목덜미를 깨물어 그녀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붉은 피라도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이 갈증이 조금이라도 해소가 될까.

‘미쳤군.’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상큼한 풋과일 향을 풍기는 그녀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이 여자의 몸은 마약이었다. 아니, 마약도 이보다는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정말 미친 것 같다고. 휴고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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