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시아-8화 (9/77)

8장 초야 (2)

처분만 기다린다는 것처럼 눈을 꽉 감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겁 없는 이 작은 토끼를 확 눌러 잡아먹어 버릴까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입맛만 버릴 것 같다.

순진한 공주님한테 적당히 기분 좋은 서비스나 해주고 남자가 뭔지 조금 가르쳐 줘야겠다.

“이름.”

꼭 눈을 감고 있던 루시아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네?”

“침대 위에서까지 전하 소리 듣고 싶지 않군. 이름으로 불러.”

“이름……?”

“설마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할 셈은 아니겠지?”

“아뇨. 알아요. 음……. 휴……?”

그가 아무 말이 없자 루시아는 덧붙였다.

“아니면 휴고……?”

이상하게 그의 침묵이 좀 길었다. 설마 이름이 틀렸나? 그의 이름이 휴고가 아니었단 말이야? 혼인 증서에 서명하는 것을 분명히 봤는데. 혼란에 빠지기 직전 그가 어쩐지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의 것으로.”

“전의 것이면……. 휴……?”

짧은 순간 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붉은 유리구슬 같은 그의 눈동자가 조금 일렁이는 것 같았다. 루시아는 어쩐지 그가 ‘휴’라고 불리는 일을 조금 특별하게 여긴다고 느꼈다. 애칭일까? 누가 불러준? 어머니? 아니면… 사랑한 여자……?

그에게 사랑한 여자가 있었을까? 그에게는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을 낳아준 여자는 누구였을까. 그 여자를 사랑했을까.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고, 왜 헤어졌을까.

“비비안.”

그에게 물어봐도 될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자신의 낯선 이름에 루시아는 흠칫 놀랐다. 과민하게 놀라는 자신을 그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 변명처럼 말했다.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없어서…….”

“이제부턴 많아지겠군. 비비안.”

“…….”

낮은 목소리가 그윽하게 귓가에 감겼다. 몹시 낯선 자신의 이름이 그의 입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가리키며 정의했다.

“비비안.”

“…….”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그녀를 보며 휴고는 웃음처럼 한숨을 흘렸다.

“당신 은근히 고집 센 거 알아?”

“…제가 언제요.”

“방금도.”

“…당신은 억지 부리기 잘하는 거 아세요?”

“난 억지 같은 거 안 부려. 내가 하는 말은 다 옳으니까.”

그의 무지막지한 자신감과 오만함에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얕은 숨이 입가에 닿고 그의 입술이 내려앉자 루시아는 눈을 감았다. 꽉 다물고 있는 그녀의 입술 위를 그가 가볍게 몇 번 입을 맞추고 살짝 아랫입술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입술이 떨어졌다.

“입 열어.”

그가 낮은 음성으로 명령했다. 긴장한 숨을 꿀꺽 삼키자 목구멍 안쪽이 탈 것처럼 아팠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조그맣게 아, 하고 벌렸다. 그의 눈이 살짝 휘어지더니 이내 그가 그녀의 입술을 한입에 삼키면서 입안으로 말캉한 살덩이가 들어왔다.

‘아…….’

그의 혀가 부드럽게 그녀의 입안을 더듬고 지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치열을 확인하고 볼 안쪽과 입천장을 스쳤다. 그와 혀가 서로 맞닿는 순간은 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했다. 두 사람의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상태로 그가 말했다.

“와인 맛이 나는군.”

루시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방향을 바꾸며 루시아의 입술을 다시 덮었다. 그의 말대로 키스에서는 와인 맛이 나서 취할 것 같은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혀가 얽히고 타액이 섞였다. 그는 키스로 입안을 애무하고 있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휘감고 빨아들였다 놓는 것을 반복했다.

“흐…….”

목 깊은 곳에서 작게 신음이 나왔다. 차분하게 시작했던 입맞춤은 조금씩 격해져갔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그의 혀가 느닷없이 목 안쪽을 건드리면서 길게 훑어 지나갈 때는 자신도 모르게 시트를 꽉 쥐었다. 그는 루시아가 호흡이 벅차기 직전까지 키스하다가 입술을 떼고 몇 호흡 하게 한 후에 다시 시작했다.

몇 번이고 그렇게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루시아의 딱딱하게 긴장했던 어깨 근육이 느슨하게 풀렸다. 그의 키스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길고 긴 키스가 끝났을 때 루시아는 작게 숨을 할딱거렸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충분히 한 것 같았다.

“부… 불을. 너무 환해서…….”

“잘 보이는 게 좋아.”

“그치만…….”

울 것 같은 그녀의 눈시울에 휴고는 입을 맞추었다.

“예쁜 몸이야. 보게 해줘.”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무는 그녀는 귀여웠다. 괜한 발림소리가 아니라 그녀 몸은 예뻤다. 적당한 크기의 둥근 가슴의 정점은 꽃물을 살짝 들인 것처럼 연분홍빛이고 가늘고 쏙 들어간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아름다웠다. 육감적이지는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몸이었다.

그의 입술은 루시아의 입술 위를 몇 번 누르더니 입술 옆에서 뺨으로, 뺨에서 귓가로 이어졌다. 귀 뒤쪽에 축축한 입술이 닿고 목을 타고 천천히 키스가 이어 내려온다. 루시아는 흐릿해진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며 그의 입술이 피부를 스치는 묘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와인 향인가……?’

그녀의 몸에서 향이 났다. 코를 찌르는 향수가 아니라 살 내음이었다. 처음에는 와인을 마셔서 그 잔향이 풍기는 건가 했다. 그런데 와인 향과는 달랐다. 날 듯 말 듯하면서 때때로 코에 스치는 상큼하면서 달콤한 향은 마치.

‘풋과일……. 과일 향…….’

체향이었다. 이 여자의 냄새였다. 체향이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휴고는 쉼 없이 그녀의 살결에 코를 묻고 입술을 대고 혀로 핥았다. 그를 취하게 하는 이 향기가 후각인지 미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보들보들한 살결은 마치 기름을 먹인 실크 같았다. 혀로 핥아 올리면 거칠 것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이렇게 달래는 것처럼 부드러운 애무는 절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즐거웠다. 그는 입술이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반응이 사랑스러워서 가는 손목을 잡아들어 팔 안쪽에 입술을 대고 쪽 빨아들였다.

따끔한지 잡힌 손이 흠칫했다. 하얀 팔 안쪽에 붉은 흔적이 남은 걸 보며 그는 이번에는 반대쪽 팔 안쪽에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살짝 인상을 쓰고 대체 지금 뭐 하냐는 것처럼 보는 여자의 시선에 그는 싱긋 웃었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를 따라 가슴 부근까지 내려왔다.

“아!”

가슴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루시아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가 그녀의 가슴 하나를 입안 가득히 삼켜 빨아들였다. 마치 아이가 엄마 젖을 무는 것처럼 그는 입술을 움직이다가 자극으로 솟아오른 유두를 혀끝으로 파고들었다.

“학!!”

그는 유두 끝을 살짝 물고 혀로 간질였다. 루시아가 숨넘어갈 것처럼 신음을 흘리자 그는 혀끝으로 유륜을 따라 핥다가 다시 삼켰다.

그녀의 가슴은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했다. 생크림 덩어리를 입안에 무는 것 같아서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녹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얌전히 누워 여전히 시트만 쥐고 있지만 몸부림치며 허리를 들썩이는 모습이 서서히 그를 자극해 하복부에 열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는 타액으로 축축해진 한쪽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그 옆의 다른 가슴으로 옮겨 애무해 나갔다. 핥고 살짝 깨물었다가 삼키고 우물거리고 때로는 아프도록 강한 흡입으로 빨아들였다. 그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등 아래에서부터 짜릿짜릿한 감각이 타고 올라와서 루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야한 신음을 흘렸다.

가슴을 실컷 희롱한 그는 가슴골을 따라 키스를 이어 복부로 내려갔다. 대체 그의 입술이 어디까지 가는가 싶어 루시아는 두려움과 기대로 덜덜 떨렸다. 손끝이 하얗도록 시트를 움켜잡았다.

“흣…….”

그의 입술은 복부 아래까지 닿았다가 그다음에는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췄다.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던 허벅지 안쪽 깊은 곳까지 입술을 붙이고 살을 빨아들이자 따끔한 느낌이 났다.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쪽 쪽 가볍게 소리가 나면서 그가 키스하자 루시아는 얼굴에서 열이 날 것 같았다. 발등을 마지막으로 입술이 떨어지고 다소 멍해진 정신이 돌아왔을 때 다시 올라온 그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아있었다.

그의 손이 가슴을 쥐고 주무르다가 복부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복부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 허벅지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루시아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찰나에 마주친 그의 붉은 눈이 기이한 열기를 품고 가늘어졌다.

반응을 관찰하는 것처럼 그는 시선을 붙들어놓고 손가락으로 은밀한 숲을 헤치며 살짝 눌렀다. 흐읍, 숨을 들이마시며 흔들리는 호박색 눈동자의 변화는 그를 충동질했다.

“아!”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천천히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아파서가 아니라 놀라서였다. 살짝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안도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그리고 좀 더 깊이 안으로 들어왔다.

“읏…….”

손가락이 들어왔다 나가는 움직임을 계속했지만 아플 정도로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지금껏 누구의 침입도 허락지 않던 곳이라 이물감이 낯설었다. 비부에서 흐르는 액체가 그의 손가락과 마찰하며 젖은 소리를 냈다. 몸에서 열이 나고 등줄기가 오싹거렸다. 손가락 몇 개가 그녀의 음부를 누르며 문질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올 때마다 몸이 흠칫거렸다. 뭔가 간질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기분이 나쁜 것도 같고 좋은 것도 같고 아픈 것도 같았다. 새된 호흡만 가쁘게 내쉬며 그녀는 올 듯 말 듯하는 감각에 집중했다.

“아…….”

갑자기 뭔가 훅 하고 밀려와 몇 초간 저릿한 감각이 잔상을 남기며 빠져나가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위로 꺾었다. 짧은 절정이 지나가고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몸이 늘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헤집는 느낌이 나른하게 좋았다.

“어땠나? 순진한 공주님.”

“…끝난 거 아니잖아요.”

남녀의 성관계가 남자의 성기를 여자 몸 안으로 넣는 행위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비록 꿈속이지만 아무리 엉망진창이었어도 루시아는 결혼을 했고 제대로는 한 번도 못했지만 그래도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머리카락 안을 흩트리던 손이 멈칫했다.

“아는군.”

“저 바보 아니거든요.”

“어려서 궁에 들어가 시녀도 없이 지냈으면서 누구에게 배웠지?”

“아……. 그건 채… 책에서…….”

“책이라……. 지루한 활자로 얻은 지식이군. 책에서는 뭐라고 해?”

“울고 소리 지르고 하던데……. 아무래도 거짓말이었나 봐요.”

빙글거리며 루시아를 놀리던 휴고의 표정이 단박에 굳어졌다. 하아 숨을 내쉬며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이 여자 완전히 천연 원석이구나. 순진한데다 솔직하기까지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능수능란한 여자보다 위험했다. 그는 사실 시작할 때는 이 이상 더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기대에 부응해야겠군.”

어느 정도는 다행이었다. 아까부터 단단히 일어난 그의 중심이 뻐근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꽉 죄는 그녀의 속살에 그는 완전히 흥분해 버렸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하얀 허벅지 안쪽이 그의 손가락에 눌려 금방 붉어졌다. 빌어먹을. 그가 욕설을 삼켰다. 쩌릿하게 아랫배가 저렸다. 이 여자의 피부는 왜 이렇게 말랑거리는 걸까. 새하얀 피부 안쪽에 틈도 없이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치밀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를 곧장 마주치지 않도록 살짝 시선을 비꼈다. 당혹해 흔들리는 눈을 보면 숨죽인 욕구가 터질 것 같아서였다. 그는 한손에 잡히는 그녀의 종아리를 쥐고 그의 허리를 감도록 둘렀다.

“다리는 이렇게.”

그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았다. 그녀의 가늘고 긴 다리가 그의 허리를 어설프게 감으며 더듬는 느낌에 그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체온이 바짝 맞닿고 피부가 스치는 느낌에 하체가 욱신거렸다. 그의 육체가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그의 취향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너무 길었어.’

금욕 기간이 너무 길었다. 결혼 말이 오가고 한 달 넘도록 여자를 안지 않았다. 욕구 불만이 될 만하다. 그는 대단히 신체 건강한 남성이었다. 여자, 또는 살육 없이 열흘을 넘겨본 적 없다. 이번 한 달은 기록이었다.

딱히 아내 될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영지에 내려갈 준비로 바쁘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늘어진 팔을 잡아 그의 어깨를 잡도록 했다.

“팔은 날 잡고. 긴장은 풀고 힘을 빼.”

루시아는 마치 닿으면 안 될 것을 만지는 것처럼 몇 번 손을 떼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근육으로 덮인 그의 어깨는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졌다. 잘했다는 듯 그가 웃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당신이 처음이 아니라면 황홀한 밤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약속하지.”

루시아는 귀를 의심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금껏 들어본 중에 가장 부드러웠지만 어쩐지 놀림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이라면요?”

휴고는 그녀를 놀리려는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순진한 반응이 대단히 신선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재미있었다.

“아마. 좀 아플지도 모르겠군.”

그는 사납게 일어난 중심을 쥐고 그녀의 좁은 입구에 맞추어 천천히 무게를 실었다.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아린 통증과 이물감에 루시아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 루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힘 빼. 시작도 안 했어.”

반의반도 안 들어갔다. 겨우 머리 부분만 밀어 넣었는데 좁은 내벽이 틈도 없이 수축했다. 통증에 가까운 쾌감을 느끼며 그는 무작정 밀어 넣지 않기 위해 인내했다.

“으……. 어떻게 하는…….”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작은 입술을 빨아들이고 말캉한 혀를 희롱하면서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부드럽게 애무했다. 굳은 몸이 풀리고 바싹 긴장한 복부가 느슨해졌다. 움직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자 그는 깊이 안으로 전진했다. 날카로운 통증에 그의 어깨를 꽉 붙든 루시아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하아… 하아…….”

루시아는 과호흡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멈출 생각 없이 그는 계속 움직였다. 서서히 안을 채우던 불덩이가 깊은 곳의 은밀한 막을 찢으며 단번에 들어왔다.

“……!!”

격통. 몸이 둘로 쪼개질 것 같았다. 좀 아픈 것이 아니잖아! 하복부에서 시작된 고통이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눈앞이 어지럽고 턱이 덜덜 떨렸다. 너무 아프면 비명도 안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아래를 꽉 채우는 압박과 동반한 끔찍한 통증이었다. 하체가 꽉 맞물리고 그의 상체가 위에서 밀착하며 눌러왔다.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해도 꽉 잡힌 몸은 미동도 없었다. 고통을 덜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고개 옆으로 디딘 그의 팔이 닿자 그대로 콱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팔의 통증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온전히 그녀에게 몸무게를 다 실어 누르지 않기 위해 디딘 팔을 그녀가 야무지게 깨물고 있었다. 근육으로 덮여 두꺼운 팔을 한입 가득 문 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를 원망스레 노려본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입으로는 웃었다. 가소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여자가 제 몸을 깨무는 짓 따위를 용납할 그가 아니지만 내버려 두었다. 통증이 오히려 그를 짜릿하게 자극했다. 그의 정신은 지금 딴 데 팔려있었다.

‘끝내주는군…….’

여자의 안쪽은 환상적으로 좋았다. 단지 좁은 것만이 아니었다. 아주 쫀득하게 그의 것을 눌러온다.

‘처녀라서 그런가……?’

그러나 일전에 처녀를 안아봤을 때 딱히 좋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서 하던 중에 기분이 식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왜 다를까. 기분이 식기는커녕 그는 날뛰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를 만지고 애무하며 느낀 최소의 감상은 ‘작다.’라는 것이었다. 체구는 작고 뼈대는 가늘었다. 한 손에 쉬 잡힐 것 같은 여자의 목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것 같았다.

유리 세공을 하듯 조심스러운 마음과 흰 피부에 사나운 흔적은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맹렬하게 싸웠다. 적당히 그녀와 더불어 기분 좋은 것만 하겠다는 처음 의도와 달리 키스는 너무 길어졌고, 그녀의 온몸을 핥으며 오히려 그가 심취해 버렸으며 손가락을 죄는 그녀의 속살에 그는 흥분해 버렸다.

내 탓이 아니라고, 휴고는 생각했다. 어린 아내가 겁 모르고 그를 충동질한 탓이었다.

무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그녀는 깨물던 팔을 놓고 훌쩍거렸다. 칭얼대는 것처럼 우는 것이 제법 귀여웠다. 근데 그 모습이 그를 직격으로 자극했다. 그는 지금껏 믿어왔던 자신의 취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물고 낮게 숨을 골랐다. 이렇게 흥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단단히 선 중심이 한계까지 부풀며 그녀의 안쪽 살이 밀착해서 꽉 눌러왔다.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자 두 사람의 사타구니가 완전히 맞닿고 그의 것이 뿌리 끝까지 들어갔다.

“흑…….”

새로운 충격으로 루시아 몸이 작게 경련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빼내 성기에 묻어나는 붉은 혈흔을 확인했다. 항상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동자에 열기가 어렸다. 다시 안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아윽!”

비명이 터졌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표정과 그를 받아들인 몸의 반응이 괴리를 보였다. 빠져나갈 때 마치 잡아 뜯듯이 딸려오는 내벽이 다시 들어가자 쭉 빨아들인다. 질벽의 주름이 도돌도돌한 돌기가 되어 그를 감싸 쥐면서 자극해 댔다. 당장에라도 분출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쾌감이 뒷목을 서늘하게 했다.

“아! 아파요! 움직이지 마요! 제발!”

루시아가 울며 애원하자 그는 그녀 안에 끝까지 자신을 묻은 채 멈추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도 멈출 수 있을 만큼 인내심이 강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그 사실에 조금도 감탄할 것 같지 않았다.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간다고 했을 텐데.”

힘을 준 그의 팔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아파요. 죽을 것 같다고요.”

울먹거리는 그녀에게 그는 태연함을 가장하여 냉정하게 대꾸했다.

“안 죽어. 그랬다면 당신은 태어나지도 못했겠지.”

몹시 억울한 눈을 하는 그녀를 더 놀려주고 싶었다.

“당신의 판타지는 충족된 것 아닌가? 소리 지르며 울게 해줬잖아.”

그가 다시 허리를 움직이자 루시아는 그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항의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루시아는 몇 번이고 애원했지만 이번에는 그는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속도가 붙었다.

“악! 아악!”

사내를 모르는 루시아의 몸이 받아들이기에 그는 거대했고 능란했다. 농염한 여인이라면 자지러졌을 강한 힘은 지금의 루시아에겐 벅찬 고통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부드럽게 온몸에 입을 맞추던 애무가 거짓인 것처럼 그는 잔인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가 꽉 채우며 강하게 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아윽! 좀 천…천히잇!”

“천천히… 하고 있어.”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다. 아니었으면 진즉 그녀는 기절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럴 의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거칠게 초야를 치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몸이 통제되지 않았다. 젠장. 대체 이 여자 안쪽은 뭐로 만들어진 거지? 정말 빌어먹을 정도로 좋았다.

결합한 부위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시트를 적셨다. 예민한 그의 코에 비릿한 피 냄새가 스쳤다. 그의 이성은 이미 반쯤은 날아간 상태였다. 퍽퍽, 그는 강하게 진퇴를 반복했다.

“아앙! 악! 흐윽!”

귀가 따갑도록 죽어라 비명을 지으며 울어댄다. 엄살이라기에는 안색이 질려 흔들리는 눈동자가 상당히 아파 보였다.

매달리듯이 어깨를 붙드는 작은 손끝이 그의 어깨를 파고들어 따끔한 생채기를 만들었다. 등에 손톱자국을 내는 것은 그가 정말 싫어하는 짓이다. 본래의 그라면 이미 짜증이 나서 여자를 내팽개치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붉어진 눈시울을 타고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보며 그는 기이한 고양감을 느꼈다. 오직 세상에 그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려오는 작고 보드라운 몸을 물고, 핥고,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파…….’

뜨거운 불이 하체를 지지는 것 같았다. 그의 강한 움직임에 따라 몸이 위아래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삽입하고 몇 번 움직이다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스럽고 뜨거우며 긴 과정이었다.

아픈 것보다도, 고통이 너무도 은밀하고 깊은 곳에서 일어나면서 실제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더 힘들었다. 살덩이가 치닫고 올라왔다 빠져나가는 과정이 반복되자 죽을 것 같았던 하체의 통증은 점점 둔해졌다.

“하아… 하아…….”

루시아의 입에서 비명은 잦아들고 학학대는 거친 호흡만 쏟아졌다. 여전히 눈은 젖었지만 발갛게 눈가가 달아오르고 고통이 아닌 뭔가 다른 이유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팠다. 여전히 아프지만…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발끝부터 시작해서 정수리까지 순식간에 찌릿한 느낌이 확 타고 올라갔다. 하악, 비명을 삼킨 순간 그가 낮게 신음했다.

“안이… 요동을 치는군.”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누르면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작은 꽃샘에서 흐르는 핏물 섞인 애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 허벅지를 적셨다. 그가 진입할 때마다 살이 맞부딪치면서 철썩거리는 소리를 냈다. 맞닿은 그들의 허벅지 안쪽이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아, 흣…….”

그녀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아닌 교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며 안쪽을 찔러댔다. 그녀의 신음이 커지는 부분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아! 아앗…….”

속살이 경련하면서 죄어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울 것처럼 일렁거리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단번에 안쪽 깊은 곳을 건드렸다.

“흐으윽!”

그녀가 한순간 몸을 경직하면서 흐느낌을 터뜨렸다. 그녀의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아직 만족하기에는 한참을 멀었지만 더 했다가는 그녀가 기절할 것 같았다. 기절한 이를 붙들고 박아대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는 목 깊은 곳에서 신음을 토해내며 그녀의 자궁 안쪽에 파정했다.

이런,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인상을 썼다. 여자 몸 안에 쏟은 건 처음이었다.

뜨거운 것이 몸 안 깊은 곳으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루시아의 몸이 늘어졌다. 울음과 섞인 호흡이 멈추지 않아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한다.

‘끝…난 건가…….’

긴 생각은 이어갈 수 없었다. 커다란 손이 다정하게 이마를 쓸어 올리는 것을 꿈처럼 느끼면서 루시아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몸이 이불 안으로 푹 꺼져 들어가는 것처럼 피곤했다. 눈을 뜨니 어둠을 막 몰아내는 어스름한 빛이 떠도는 새벽이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옅은 숨소리는 루시아의 기분을 기이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 결혼했지…….’

목이 말라서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으…….”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온몸에서 둥둥 북이 울렸다. 낑낑대며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딛는 순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휘청하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행히 아래에 러그가 깔려있어서 무릎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전신 근육이 다 뭉친 것 같은 지독한 근육통이었다. 다리 사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통증과 아직도 뭔가 들어있는 것 같은 이물감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온몸이 겉으로 속으로 다 아팠다.

손으로 조물조물 어깨와 팔을 주무르다가 루시아는 팔 안쪽에 이상한 자국이 난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있는 붉은 멍 자국이었다.

‘왜 이런 곳에 멍이 났지? 언제 부딪혔었나.’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니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른 쪽 팔 안쪽에도 비슷한 자국이 또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루시아의 기억 속에 지난밤 가슴이 아프도록 빨리던 감각이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허리끈을 푸르고 가슴 앞섶을 열어보았다. 가슴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라 다시 가슴을 여몄다. 얼굴로 열기가 올라 두 손으로 감쌌다.

‘아아아. 못 살아, 못 살아. 난 몰라. 어떡해.’

부끄러움이 밀물처럼 그녀를 삼켰다. 키스 한 번에 콩닥거리던 그녀는 한심한 애송이었다.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일들이 고작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

‘이런 거야? 이런 거였어?’

진짜 정사를 처음 경험했다. 꿈속에서 남편이었던 메튼 백작은 발기부전이었다. 무작정 루시아 하초에 문지르며 저 혼자 헐떡이며 몇 번 흔들다가 끝냈다. 소름이 끼쳤다. 도무지 왜 이 짓을 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루한 활자로 얻은 지식이라던 그의 비웃음을 이해했다. 어젯밤과 같은 경험은 절대 책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단지 아이를 갖기 위한 것도, 쾌감을 위한 것도 아닌 훨씬 은밀하고 서로의 깊은 살이 맞닿는 행위였다.

‘어떻게 이런 걸 하고… 헤어질 수가 있지? 이혼 같은 걸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대화였다. 오직 함께한 두 사람만 나눌 수 있는 진한 대화.

신기하게도 그전까지 딴세상의 사람 같던 그가 오늘 아침에는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조금……. 아니, 정말 아팠지만…….’

또 그걸 하자고 하면 싫다고 못 할 것 같다. 분명히 무지무지 아팠는데 근데 또 아프기만 한 것만도 아니었다. 커다란 몸 아래 눌리는 감각, 손이 피부를 어루만지고 입 맞추던 느낌, 그의 호흡 소리와 붉은 눈동자에 흔들리던 열기. 해일처럼 온몸으로 밀려들어 오던 그건… 그걸 쾌감이라고 하는 건가……? 간밤 기억을 떠올리자 오싹하면서 허벅지 안쪽이 열이 났다.

‘그만!! 그만 생각해! 다른 생각, 다른 생각, 다른 생각…….’

루시아는 머리를 마구 좌우로 흔들며 생각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내가 잠옷을 찾아 입었던가……?’

그런 기억은 없었다. 그가 입혀준 걸까, 하녀를 시켰을까. 땀을 꽤 흘린 것 같은데 몸이 보송보송했다.

루시아는 멍하게 저 멀리 보이는 침실 출입문을 응시했다. 정말 넓고 사치스러운 침실이었다. 높은 천장, 대리석 기둥, 고풍스러운 내부 장식.

‘난 어쩌면…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몰라.’

공작가의 일원이 되어 공작부인으로 살아갈 자격이, 능력이 과연 자신에게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탐낸 대가를 언젠가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후회는… 안 해.’

안 할 거라고 결심했다.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감당하겠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치르겠다. 우는소리하지 않겠다. 떠밀려 한 결혼이 아니었다. 그녀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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