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열여덟 살 (1)
아침에 눈 뜨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아……. 또 망할 두통. 이런 미래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
루시아는 쑤시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꿈속에서와 똑같이 초경을 시작한 열다섯 살 무렵 편두통이 발병했다. 드물면 한 달에 한 번, 잦을 때는 서너 번 정도로 중병은 아니지만, 평생 달고 가야 하는 고질병이었다.
열여덟 살이 되는 새해 첫 아침을 맞이하던 날, 루시아는 세상을 얕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녀는 분명히 열심히 노력했다. 꿈속에서 봤던 미래와 확실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미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령 열세 살 여름에 전례 없는 폭우로 별궁 1층 바닥이 찰랑거릴 정도로 침수되었다. 그해 겨울은 한파가 불어닥쳤는데 여름의 폭우 때문에 저장해 둔 땔감이 부족해서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보내야 했다.
열다섯 살에는 초경을 시작했고 편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이렇듯 루시아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는 미래는 아무리 알고 있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면 왕이 죽을 것이고, 루시아는 탐욕스런 메튼 백작에게 팔려갈 것이다. 이건 루시아가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절망했다. 차라리 보여주지 말 것이지, 왜 내 운명에 이런 장난질을 하느냐 하늘을 원망했다.
좌절에 빠져 며칠 두문불출했지만, 며칠 만에 털어냈다. ‘여기서 굶어 죽어도 한참 만에 발견되겠지.’ 하고 생각하니까 맥이 풀려서 방구석에 처박혀있을 마음이 사라졌다.
루시아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바람처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틀에 기대어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마치 자신이 처한 운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겨우 고개를 내밀 수 있었던 창틀에 이제는 손을 딛고 기댈 수 있을 만큼 루시아는 훌쩍 자랐다. 어머니를 닮아서 그녀는 체격이 가늘었다. 약간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은 당장 거리를 나가면 여기저기 눈에 띌 만큼 흔했지만, 금빛으로 보이는 호박색 눈동자는 상당히 독특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 그녀의 외모는 평범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피부가 맑고 하얘서 꾸며놓으면 청초하거나 매혹적일 수도 있는 팔색조의 미모가 잠재되어 있었다. 코르셋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는 허리의 가냘픈 몸매는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장점은 그녀가 고귀한 아가씨로 사교계에서 활동해야 빛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장작이 다 떨어졌고, 감자와 달걀도 얼마 안 남았고.”
그녀는 현재 삐걱대는 낡은 테이블에 앉아 바닥을 보이는 생필품을 확인해야 하는 처지였다. 등을 덮는 풍성한 머리카락은 하나로 대충 묶었고, 입고 있는 밋밋한 무늬의 포플린 드레스는 시녀의 의상에 가까웠다. 누구도 지금 루시아를 보고 그녀가 공주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늘은 물품 신청을 해야겠네.”
공주인 루시아가 직접 할 일이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현재 별궁에는 상주하는 시녀가 한 명도 없었다. 다행히 혼자 관리하기 벅차지는 않았다. 2층짜리 낡은 별궁은 관리상 이유로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2층을 폐쇄한 상태였다. 현재는 1층 일부까지 폐쇄하여 루시아에게 주어진 공간은 침실을 제외하면 방 몇 개뿐이었다.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는 루시아를 전담하는 시녀 다섯 명이 있었다. 그러나 전부 여관조차 되지 못한 시녀들이었다.
시녀에도 급이 있다. 왕족 곁에 붙어 다니며 말벗을 하는 팔자 좋은 수석 시녀는 대개 귀족 영애들로 ‘시녀’라는 호칭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격이 달랐다.
직접 일을 하는 시녀는 관리로 인정받는 ‘여관’과 잡일 담당의 고용 노동자 ‘시녀’가 있다. 원칙대로면 왕족인 루시아 곁에는 수석 시녀와 여관, 노동 시녀, 세 유형의 시중인들이 있어야 했다.
문제는 궁에 왕족이 너무 많고, 루시아는 그중에서 가장 격이 떨어지는 공주라는 것이었다. 곁에 있어봤자 득 볼 기대를 전혀 할 수 없는 루시아의 수석 시녀를 자원할 사람이 있을 리 없고, 부가 수입조차 얻을 가능성이 없으니 여관들도 기피했다. 적당히 나이 들면 그만두는 고용 시녀들이 하나씩 출궁하자 어느덧 루시아 곁에는 한 명의 시녀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그만두는 만큼 시녀가 보충되어야 한다. 그러나 추가 소득을 한 푼도 기대할 수 없는 이곳을 기피하는 건 여관이나 시녀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여관은 왕실에서 지급하는 봉급으로 생활에 부족함이 없지만, 고용 시녀는 봉급만으로는 생활 유지가 힘들었다.
루시아에게 배정되는 시녀는 며칠 일하다 그만두거나 뒷돈으로 다른 곳을 배정받았다. 언제부터인가는 며칠 일하는 시녀조차도 오지 않았다. 명부에 이름만 올려 일은 하러 오지 않고 관리처에서 돈만 받아갔다.
루시아가 항의하면 어긋난 일은 제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아무리 가진 것 없어도 그녀는 공주였으니까. 꿈속에서는 직접 여관장을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에도 문제를 제기하려고 여관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마주친 여관이 루시아를 시녀로 착각해서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는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루시아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두말없이 심부름을 했다. 여관장을 찾아가려던 발길을 돌려 별궁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시녀 행세를 하면 자연스럽게 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다섯 살에는 마지막으로 남았던 시녀마저 그만두었고 루시아는 시녀와 공주라는 두 가지의 신분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시녀 행세를 하며 생필품을 신청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외출의 자유를 얻었다.
루시아는 벌써 이곳에서 3년 가까이 혼자 생활 중이었다. 아마 서류에는 여전히 별궁에 다섯 명의 시녀가 일하고 있다고 나와있을 것이다.
문서와 실질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건 명백한 행정 처리 공백이었다. 그러나 수십이 넘는 왕의 자식들은 단지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요구해 늘 궁내 재정 관리처를 골치 아프게 했다.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루시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루시아는 물품을 신청하면서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수고비를 쥐여주고 물건들을 별궁 앞뜰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궁이건 더러운 뒷골목이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했다. 적당한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 윤활유였다.
시녀가 출궁하는 문은 따로 있었다. 궁을 나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섰다. 조금씩 줄이 짧아져 마침내 루시아 차례가 되었다. 루시아는 품에서 외출패를 꺼내 경비병에게 보였다. 공주 비비안 이름으로 발급한 외출패였다. 하지만 외출패를 내보이지 않아도 어차피 경비병은 루시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눈으로 대충 패를 확인한 경비병은 눈인사를 하며 아는 척했다.
“가지고 나가는 물건은?”
루시아의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경비병은 재차 확인했다.
“없어요.”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는 것을 허용했다.
루시아는 궁을 빠져나오자마자 숨이 트이는 것처럼 크게 호흡했다. 흘끗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장벽처럼 성벽이 높게 솟아있었다.
저 안은 안전했다. 어디를 가도 루시아 나이의 어린 여자가 아무 위험 없이 혼자 지내기는 힘들었다. 멍에로 여겼던 공주라는 신분은 사실 그녀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꿈속에서와 달리 현재의 루시아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궁은 그녀에게 숨이 막히는 공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저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사람이 많은걸.’
거리에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인파를 헤치며 겨우 몇 걸음 걷다가 이리저리 휩쓸려 제자리만 맴돌기를 여러 번이었다.
간신히 목적했던 2층짜리 작은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풍만한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약간 부루퉁한 표정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중년 부인은 언제나 그런 표정이었다.
“어서 오시구려.”
“안녕하세요, 필 부인. 마담 놀만은 안에 계시지요?”
“매일 집에만 박혀있는 인사인데 뭘. 어젯밤에는 밤새 술 퍼먹어서 아직도 늘어지게 잔다우. 잠시 기다리면 내 차 한잔 내오리다.”
“감사합니다, 필 부인.”
은은한 차향이 떠도는 아늑한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 루시아의 표정이 평화로웠다. 간혹 주방 쪽에서 필 부인이 만드는 작은 소음이 들려왔지만, 그마저도 음악 같았다. 언제고 이런 아담한 자신만의 집을 마련하는 것이 루시아의 꿈이었다. 일하는 사람 한두 명 고용해서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맡겨두고 자신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고요한 삶을 즐길 것이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루시아의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떠올랐다. 2층 계단을 타고 깡마른 여자가 비틀거리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가누는 듯 위태위태하게 계단을 내려오며 주방을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필 부인, 나 무울~!”
놀만은 루시아 앞자리 소파에 몸을 던져 앉으며 반쯤 늘어졌다. 마른 체구만큼 마른 얼굴 때문인지 그녀의 인상은 강퍅해 보였다. 나이는 서른이 훨씬 넘어 보이지만, 실제는 그보다 어렸다. 놀만은 필 부인이 가져다주는 물 한 잔을 단번에 다 들이켜고 죽겠다는 신음을 질렀다.
“아아아아, 속 아파.”
“거 적당히 좀 퍼마시지, 쯧쯧.”
필 부인이 특유의 불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말과 태도는 퉁명스럽지만, 놀만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한 해장 음식을 만들러 가는 필 부인의 친절함을 루시아는 알고 있었다.
“뭘 그리 많이 마셨어요.”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한 줄이라도 써질까 해서 마시다가 주체를 못 하겠더라고. 미안해. 내가 이 꼴이라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하겠네. 여기까지 오는 수고 했는데.”
“손님은 무슨. 수고 아니에요. 이 일 아니었어도 어차피 바람 쐬러 나왔을 테니까요.”
“그 앞에 테이블 서랍 있잖아. 거기 열어봐. 이번에 나온 책 있어.”
마담 놀만은 작가였다, 그것도 유명한 로맨스 소설 작가. 놀만의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다루어도 내용이 고급스럽다는 평을 받았다. 지적 허영심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놀만의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근 몇 년간 낸 작품 덕에 놀만은 수십 년은 족히 놀고먹을 재물을 벌었다.
서랍 안에 든 책을 꺼내며 루시아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나왔군요! 진짜 많이 기다렸어요.”
루시아는 얼른 책의 맨 뒷장부터 펴보았다.
“끝? 왜요? 이 시리즈 인기 많잖아요.”
“더 늘어지면 재미없고 그 정도가 깔끔하게 딱 좋아. 안 그래도 편집자가 두세 권 더 늘리자고 방방 뛰더라. 크크큭.”
“그래도 아쉽네요. 편집자 말대로 두세 권 더 나와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책 안에도 봐.”
루시아는 페이지를 넘기다가 중간에 꽂힌 봉투를 찾아냈다. 봉투 안을 열자 입금 확인증이 들어있었다. 거금을 확인한 루시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만, 이건 너무…….”
“받아. 그 정도 받아도 돼.”
“하지만 그동안에도 적지 않게…….”
“완결 기념이야. 뭐하면 아이디어 값으로 쳐. 이번 작품 아이디어를 준 건 너니까.”
놀만은 과거에는 이처럼 잘나가던 작가가 아니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작가였다. 놀만이 쓰던 이야기는 주로 가난한 평민 여성과 귀족 남자의 로맨스였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해서 더 꿈꾸게 되는 전형적인 환상소설.
그러나 독자가 원하는 여주인공은 가난한 평민이 아니라 우아한 귀부인이었다. 평민은 책을 통해서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엿보기를 원하고 귀족은 귀부인이 주인공이 아닌 소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놀만이 여주인공을 귀족으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귀족의 생활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사교 파티라고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가난한 평민 출신 놀만이 귀족 생활을 아는 것에는 간접 체험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다른 작가의 작품을 다독하거나 귀족 세계를 잘 아는 하녀나 시녀 출신을 수소문해서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으니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책이 팔리지 않아서 방세조차 낼 돈이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글 쓰는 재주뿐인 자기 인생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광장 공터에 멍하게 앉아있는 놀만에게 루시아가 빵 하나 건네주면서 인사를 텄다. 놀만은 루시아와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놀만은 몰랐지만, 루시아는 그전부터 놀만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거지 같지는 않은데 굶주린 표정으로 하릴없이 앉아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구걸도 하지 않는 놀만이 자주 눈에 띄자 어느 날은 일부러 말을 걸었다.
그게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루시아, 네 덕분이야.”
루시아는 놀만에게 사교계를 알려주었다. 루시아는 꿈속에서 직접 귀부인으로 파티에 참석했다. 심부름꾼에 불과한 하녀나 시녀의 경험은 비할 것이 못 되었다. 루시아가 말해 주는 화려하되 추악한 사교계 이야기를 기반으로 놀만은 생생한 귀부인의 삶을 소설 속에서 그려낼 수 있었다.
“놀만의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에요.”
“네가 아니었으면 한 줄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네 덕 맞아. 난 앞으로도 더 벌 수 있어.”
루시아는 일주일에 한 번 놀만을 방문했다.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로 놀만은 꽤 많은 수고비를 주었다. 물론 초반에는 오히려 루시아가 빵을 가져가 나누어야 했지만, 책이 팔리기 시작하자 놀만은 상당한 돈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야깃거리는 화수분이 아니다.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놀만은 이제 루시아가 없어도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놀만은 어려울 때 얻은 은혜를 잊을 배은망덕한 인간이 아니었다.
놀만은 지금 당장 주는 거금에 더해서 앞으로도 쭉 루시아를 지원하고 싶었고, 결혼까지도 시켜주고 싶었다. 그녀는 루시아와 단지 돈으로만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었다. 놀만은 루시아를 여동생처럼 여겼다.
“고마워요, 놀만. 놀만을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내가 할 말이야.”
금액을 확인하는 루시아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까지 모은 돈과 이 돈이면 지금이라도 도망쳐 기반을 잡고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아니야. 위험부담이 커.’
아무리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루시아는 공주였다. 사라지면 당연히 병사들을 총동원해 자취를 쫓을 것이다. 루시아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왕실의 위신 문제였다. 그러면 루시아의 행적은 놀만으로 이어질 테고 죄 없는 놀만이 무슨 곤욕을 치를지 알 수 없다.
무사히 도망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도망치려면 아예 수도를 떠나 멀리 가야 할 텐데 어린 여자 혼잣몸으로 먼 길을 가다가는 십중팔구는 사고가 날 것이다. 호위를 고용한다고 해도 믿을 만한 호위인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가던 중 호위에게 뒤통수 맞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도망을 치려면 차라리 메튼 백작과 결혼 후에 하는 것이 낫다. 결혼해서 왕실 일원에서 빠져나갔으니 실종되어도 이전보다 관심이 덜할 테고 1년 정도만 백작부인 노릇을 하며 믿을 만한 측근을 두고 철저하게 준비해 숨으면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싫어, 그자는…….’
그자의 얼굴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그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루시아, 너 남자는 없니?”
“네… 네?”
“뭘 그리 놀라. 만나는 남자 없느냐고. 없으면 내가 아주 좋은 사람 알아서 말이야. 소개해 주려고 하는데.”
“내 나이가 몇인데요. 아우, 됐어요.”
“열여덟 살이면 뭐. 당장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여러 남자 알아봐야 적당히 스물두세 살쯤에 그중에서 골라 결혼하는 거지. 시녀로 일한 아가씨들 인기 좋다? 조신할 거라고 생각하거든. 농사나 바깥 노동하는 여자들과 달리 피부도 하얗고. 말 나온 김에 말해 봐. 어떤 남자 타입이 좋아? 나이 많고 듬직한 사람? 어리고 귀여운 남자? 원하는 대로 내가 골라올 수 있다니까.”
“그러는 놀만이야말로 왜 혼자인 건데요?”
눈을 반짝이던 놀만은 화제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지루함을 표현했다.
“난 뭐. 이젠 나이도 많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놀만이 그럴 생각이 없는 거지. 놀만은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다고요.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로맨스 소설을 쓰다니.”
“어허, 기만이라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소설로 이루어 주잖아. 내 소설을 보며 독자들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거라고.”
“그러면서 왜 나보고는 결혼하래요?”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어도 부부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거든. 난 네가 혼자니까 평생 함께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왜 혼자예요. 놀만이 있잖아요. 놀만은 내 친구이고 가족인걸요.”
감동한 눈으로 루시아를 바라보던 놀만이 두 팔을 그녀를 향해 쫙 벌렸다. 어서 와서 이 언니 품에 안기렴. 그렇게 눈을 반짝거리는 놀만을 보며 루시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술 냄새 나서 싫어요.”
“엥, 지금 이 감동의 순간에 그렇게 초 치기야?”
“가볼게요. 놀만은 더 자요. 지금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이라고요.”
놀만의 얼굴은 눈 밑이 꺼멓게 죽어 반은 시체 같았다.
“아후, 정말 나는 더 자야겠어. 누가 내 내장을 쥐어짜는 것 같아. 급한 거 아니면 넌 좀 더 여기서 노닥거리다가 천천히 들어가. 어차피 지금 나가봐야 사람들에게 치이기만 할걸.”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오다 보니 사람이 무척 많던데요.”
“무슨 일이냐니.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보다 어째 더 몰라. 오늘 기사단이 모두 수도 귀환해서 사열식을 하잖아.”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보기 드문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던 일 제쳐놓고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아마 이때 이런 일이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별궁에만 있었지.’
현재의 루시아가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이것이었다. 루시아는 시녀 행세를 하며 외출하고 사람을 만나며 제법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가고 있었다. 놀만 덕분에 돈도 꽤 모았다.
‘전쟁이 끝났구나…….’
루시아가 별궁이라는 좁은 한정적 공간에서 굴곡 없이 살아갔던 것과 별개로 바깥세상은 상당히 시끄러웠다. 루시아의 나이 여덟 살부터 시작된 전쟁은 처음엔 소국끼리의 국지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규모를 더해서 세상이 둘로 갈라져 싸웠다.
훗날 이 전쟁은 1차 대륙 전쟁으로 불렸다. 루시아가 열한 살 무렵에 그녀의 조국, 제논이 참전을 결정해 북동 연합국의 주축이 되었다. 이후 5년은 전쟁의 절정기였다. 북동 연합국이 승기를 잡기 시작하면서 점차 소강상태가 길어지고 그렇게 2년 정도 대치만 하다가 그녀가 열여덟 살 되던 해에 휴전에 가까운 종전협상이 끝났다. 그 전쟁에서 제논은 승전국의 위치에 있었다.
사람들 북적이는 건 질색인 데다가 몸도 안 좋은 놀만은 모처럼의 구경거리를 포기했고 루시아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경꾼들 틈에 끼어들었다. 다시 할 수 없는 구경을 놓치기 아까웠다.
“와아!!”
갑옷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기사단의 행진을 보며 사람들이 질러대는 함성과 휘파람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제논은 참전국이었으나 영토가 직접 전쟁터로 이용된 것은 아니라서 전쟁 중에도 백성이 전쟁을 피부로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승전의 기쁨과 전쟁이 끝났다는 해방감이 뒤섞여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동화된 것인지 루시아도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갑옷은 속한 가문에 따라 그 형태가 달랐고, 가슴이나 등에 그려진 문양에도 차이가 있었다. 어떤 기사단은 굉장히 화려한 갑옷에 붉은 망토까지 걸쳤지만, 어떤 기사단은 투박한 갑옷을 입었다. 그것만 봐도 대충 그 가문이 지닌 작위와 권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우와아!! 타란!!”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함성이 터졌다. 남자들은 발을 구르며 환호하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타란, 타란! 구호를 외쳤다. 그 어마어마한 함성을 가르며 한 무리의 기사단이 당당하게 행진했다. 기사들은 모두 갑주의 가슴 한복판에 포효하는 흑사자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귀족이 아닌 일반 백성이 귀족 가문의 문양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제논 백성 치고 흑사자 문양을 사용하는 가문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타란…….’
루시아의 귀에서 시끄러운 함성이 멀어지고 배경이 흐릿해지며 오직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기사단 맨 앞에서 백마를 타고 새카만 갑옷을 입은 선두의 한 사람. 루시아는 투구로 감추어진 그의 외모를 눈에 그릴 수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안다. 휴고 타란. 왕족 혈통이 아닌데도 왕족 대우를 받으며 형식적이지만 왕위 계승권도 지닌 유일한 공작 가문. 타란 공작가의 젊은 공작이었다.
전쟁의 흑사자.
그는 무력과 지략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장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북동 연합국이 승리한 것은 그의 활약 덕분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제논은 늦게 참전했음에도 마지막 종전협상을 주도했다. 가장 적게 잃고 가장 많은 것을 가져갔다. 정확히 말하면 타란 공작이 이끈 군대는 항상 승리했고 그건 북동 연합국이 승리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사실 원래의 그녀라면 타란이 공작가인지, 공작의 이름이 뭔지, 그가 전쟁에서 뭘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시기였다. 그녀의 지금 지식은 모두 꿈을 기반으로 했다.
그녀가 결혼했던 메튼 백작은 제법 교활한 인물이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이곳저곳에 모두 발을 담가 언제든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 두었다. 덕분에 전쟁 후 승승장구한, 태자를 지지하는 파벌에 빌붙어 재미를 보았다.
그래서 루시아는 상당히 많은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 남편과 부부동반으로든, 혼자로든. 마치 업무처럼 꼬박꼬박 파티에 참석하다 보니 타란 공작을 보게 될 일이 꽤 많았다.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마치 고기에 몰려든 하이에나 떼 같았다.
메튼 백작이 어떻게 해서든 타란 공작에게 줄을 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빤히 보였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타란 공작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대단한 기사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실제 그에 대해 쓸데없는 것까지 꽤 자세히 알게 된 건 그 후로 무척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루시아가 결혼하고 약 2년 후, 타란 공작이 결혼했다. 그의 결혼은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공작의 결혼 상대는 가문도 재력도 모두 보잘것없는 가문의 아가씨로 그저 발랄해 보이는 귀여운 여인이었다. 딱 봐도 미인은 아니라서 모두 대체 왜 공작이 그녀와 결혼했는지, 궁금해서 견디지 못했다. 딱히 타란 공작이 어떤 의문에도 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소문이 양산되었다.
그중 가장 신빙성 있게 나돌던 설은 타란 공작이 그녀를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다들 ‘설마, 저 타란 공작이…….’라고 고개를 내저으며 믿고 싶지 않아 했다.
그가 왜 그녀와 결혼했는지 루시아는 아주 오랜 후에 알게 되었다. 정보 통로는 사교계 뒷소문이었지만, 꽤나 신빙성 있었다.
소문처럼 타란 공작이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건 아니었다. 또한 그녀의 가문이 대단히 부유했던 것도, 두 가문 사이에 뭔가 대단한 거래가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녀가 가문도 재력도 없는 별거 아닌 가문의 아가씨였기 때문이었다. 타란 공작은 공작가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이름뿐인 아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와 결혼했다. 사교계를 강타한 소문에 타란 공작은 침묵했고, 소문은 사실로 굳어졌다.
‘그럼 그렇지.’
‘아니면 타란 공작이 왜 그런 결혼을 했겠어요.’
귀부인들은 천 년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가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별 볼 일 없는 가문 출신 주제에 남편을 등에 업고 사교계의 중심에 있는 공작부인에게서 느꼈던 박탈감이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는 겉모습만 우아한 그들의 천박한 웃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게 어때서. 당신들도 다 그런 결혼을 한 거 아닌가.’
남자는 지참금으로 후계를 낳아줄 혈통 좋은 여자와 여자의 배경을 사 오고, 여자는 후계를 낳아주고 어떻게 해서든 결혼 생활 동안 남자로부터 재물을 얻으려 한다. 철저한 정략혼에 기초한 귀족의 결혼은 가문의 결합이며 계약이었다.
조금 형태가 달라도 타란 공작부부의 결혼 역시 보통의 귀족과 다를 바 없었다. 더구나 어쨌든 공작부인이었다. 이름뿐인 아내건 뭐건 대외적으로 그녀는 공작가 안주인이었다. 타란 공작은 첩을 들이지 않았고 애인도 만들지 않았다. 누구도 모르는 숨겨둔 애인이 있을지는 몰라도 소문에는 없었다. 적어도 타란 공작은 루시아의 남편이었던 메튼 백작보다 개새끼는 아니었을 것이다.
멍하게 생각에 빠진 동안에 타란의 기사단은 모두 지나가고 다른 가문의 기사단이 뒤를 이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타란의 기사단을 보며 루시아는 아프도록 뭔가를 꽉 쥐고 있던 손을 보았다. 놀만이 준 소설책이었다.
‘계약결혼이었지…….’
이번에 대박을 친 놀만의 시리즈 소설 모티브는 계약결혼이었다. 그건 루시아가 별생각 없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아마 무의식중에 타란 공작의 결혼 비사를 떠올렸던 것 같다.
‘계약결혼…….’
루시아의 눈동자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름뿐인 아내.’
갈구하던 진리를 발견한 학자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 싸늘하게 체온이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공작가 안주인…….’
루시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을 후려치는 생각 하나가 어쩌면 지금까지 고민하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열쇠인지 모른다.
‘…해볼까?’
우선 타란 공작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만나자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왕조차도 마구 오라 가라 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그래……. 파티! 오늘 밤부터 승전 기념 파티가 열리겠지.’
적어도 3일에서 5일은 계속될 것이다. 타란 공작이라면 최소한 그중 하루 이상은 참석할 테고 그건 첫날인 오늘일 가능성이 컸다. 기념, 혹은 축하를 위해 여는 무도회는 규모가 크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서 참석자의 신분 확인에 너그러웠다. 공주라서 다행이었다. 신분만큼은 확실하니 참석에 아무 제한이 없을 것이다.
오늘 밤 파티에 나가려면 준비할 것이 많았다. 우선은 드레스. 드디어 계좌에 모아둔 상당한 돈을 유용하게 이용할 순간이 왔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다음은 움직일 차례였다.
“…없다…고요?”
의상실 여주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루시아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쉴 새 없이 발품을 팔아가며 도달한 마지막 희망마저 절망을 안겨주었다.
루시아가 감당할 수 있을 가격, 그리고 왕궁에서 열리는 파티의 격을 욕보이지 않는 품질.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드레스를 제작하는 의상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평소라면 재고가 남아돌겠지만, 오늘은 특별했다.
오랜만에 대대적으로 열리는 무도회였다. 수도의 모든 귀족 아가씨는 물론이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마차가 줄을 이었다. 귀족이라도 돈이 많은 쪽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많다. 루시아가 원하는 드레스는 치열한 경쟁 대상이었다.
당장 오늘 밤에 입을 드레스를 그날 오후에 찾아다니는 루시아가 어리석었다. 한 달 전에는 주문했어야 했다. 적어도 일주일 전이라면 취소되거나 제작이 좀 잘못된 것이라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인데 어쩔 수 없잖아!’
“그……. 한 벌이 있긴 한데…….”
절망으로 허우적대는 루시아가 몹시 안돼 보였는지 여주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루시아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있어요?”
“음. 근데 몇 년 된 것이라 스타일이 좀……. 뭐, 조금 수선하면 입을 만은 하겠지만…….”
“괜찮아요! 살게요. 무조건 사요!”
“아니, 근데 이게 좀 작아요.”
“작아요?”
“아가씨 체구 정도면 맞긴 하겠지만, 아가씨가 입을 건 아니잖수?”
“제가!”
루시아는 얼른 말을 고쳤다.
“아니, 입을 분이 저랑 똑같아요. 저랑 아주 똑같은 치수니까 그건 문제없어요.”
“그래요? 그럼 와서 한 번 입어봐요. 수선이 필요한지 봐줄 테니까.”
여주인은 창고 깊이 걸어둔 드레스를 가지고 나왔다. 루시아의 안색이 환해졌다. 연한 푸른색 드레스는 예상보다 훨씬 색이나 스타일이 무난해 보였다. 기본 스타일이라 유행을 크게 타지 않아서 몇 년 전 것이라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드레스를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코르셋이나 파니에(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안에 몇 겹으로 겹쳐 입는 속치마)를 갖추어 입지 않아 영 볼품이 없었다. 화장은 물론 머리도 대충 묶어서 따로 놀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목적은 차려입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맞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주인이 뒤에서 돌면서 이곳저곳 만졌다.
“어쩜 아가씨. 허리가 이렇게 가늘대. 맞는 코르셋도 없겠네. 드레스도 허리를 좀 줄여야겠는걸. 기장은 좀 짧은데……. 아무래도 밑에 좀 덧대야 할 것 같고. 레이스가 망가진 부분이 있어서 뜯어내고 새로 붙여야겠고……. 좀 수선할 곳이 있겠는데요.”
“여기서 수선할 수 있겠죠?”
“음……. 좀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곤란해요. 당장 수선할 것이 밀려 있거든요.”
“수선 안 하고 그냥 입으면…….”
여주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건 안 돼요. 망신만 당할 거예요.”
산 넘어 산이라더니. 루시아가 끙끙거리자 여주인이 다시 그녀를 구원해 주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은 은퇴하셨는데… 꽤 오래 수선 일을 하셨거든요. 그래도 괜찮으면…….”
“괜찮고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