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58화 (158/218)

에코의 어느 하루(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출근시간은 9시 30분. 날씨가 맑았지만 일이니까 당당하게 유하에게 목걸이를 달래서 일찍 출발했다.

수리점을 떠나기 전 문 앞에서 유하는 핸드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내주며 딴 데 가지 말고 곧장 카페로 가라든지 걸으면서 한 눈 팔지 말라고 당부했다.

넌 도대체 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냐…라는 불평이 있었으나, 실제로 밖에 나가니 버스 타기 전에 한 번 딴 길로 샜다가 돌아오고, 내릴 곳을 지나쳐 한 번 더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카페로 가는 길에 잠시 딴 짓 하다 결국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유하는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카페에서 선영은 기분 상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잔소리를 들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말을 참더니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라며 나를 라커룸으로 보냈다.

“옷은 간이 옷장에 걸려 있으니 아무 거나 입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선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라커룸에 들어갔지만

“뭐야, 이건…”

옷장을 보고 나자 그 말이 진심인지 궁금해졌다. 여자 옷, 여자 옷, 여자 옷, 큰 남자 옷, 큰 남자 옷, 매우 큰 남자 옷이 옷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카페 종업원의 복장이라기보다 어쩐지 입고 나면 삼국시대 영화에 단역 알바 하러 가야 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 중에서 뭘 입으라는 거지.

별 수 없이 큰 남자 옷을 입고 헐렁한 소매를 추키며 나가자 선영이 아까보다 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 꼴은 뭡니까?”

큰 치수의 종업원 복장을 입은 꼴인데요. 뭐 맞는 사이즈가 있어야 제대로 입을 거 아냐. 내 말에 선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옷이 크면 몸을 그만큼 늘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드려야 합니까?”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니까 “아, 맞다. 그럼 되는구나.”라고 대답할 뻔했다. 아니 아니. 저기요, 묘두사 요괴님? 보통 인간은 옷에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 옷을 맞추는데요.

난 인간이라 그런 거 못한다는 대답에 선영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는 커피콩 씹은 표정을 하고 있더니 테이블에 꽃을 장식하던 종업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10대 후반으로 봐도 좋을 정도로 앳된 얼굴의 청년이 일하다 말고 재빨리 달려왔다.

“영화야, 네 약초 중에 몸을 바꾸는 효능을 가진 것도 있느냐? 입은 옷에 맞게 도령의 몸을 바꾸어야 하겠다만.”

선영의 말에 영화라 불린 청년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론가 휭 하니 달려갔다. 잠시 후 영화는 붉고 동그란 열매가 닥지닥지 붙은 가지 하나를 들고 왔다. 그는 내 위아래를 훑어본 다음

“음…도령의 몸무게는 백이십 근 정도 되겠지요? 그럼 열매를 열두 개만 드시면 됩니다.”

라며 가지를 내밀었다. 사람 몸무게를 근수로 따지지 마. 그리고 백이십 근이라니까 왠지 무거워 보이잖아.

영화의 말대로 열매 열두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 한 게 맛은 좋은데…어어…?

갑자기 몸이 뒤로 휘어졌다. 웬일인지 힘이 없었다. 영화가 능숙하니 휘어지는 내 몸을 받더니 그대로 들어서 바로 옆의 테이블에 눕혔다. 그리고 묘하게 번쩍거리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이봐. 너 지금 굉장히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얼굴 하고 있는 거 알아? 어쩐지 티 테이블이 수술대로 바뀐 기분이 든다.

“그럼 몸을 늘리겠습니다.”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며 영화가 말했다. 예? 뭘 늘려요?

내가 대꾸할 틈도 없이 그는 한 팔을 잡더니 그대로 쭉, 마치 밀가루 반죽을 당기듯 잡아당겼다.

“이봐, 잠깐…”

그렇게 막무가내로 당기면 팔이 빠지…는 게 아니라 늘어나고 있어? 길어졌어? 소매 끝에 손목이 딱 맞아떨어져?

내가 멍하니 길어진 팔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영화는 다른 쪽 팔도 늘리고 다음으로 다리까지 쭉쭉 잡아당겨 놓았다.

“완전히 굳을 때까지 10분 정도 움직이지 말고 이대로 계셔야 합니다. 이 상태에서 심하게 움직이면 더 늘어나 버리거나 몸이 눌린 상태로 정착될 수도 있어요. 늘리거나 누르는 건 가능해도 줄이거나 부풀릴 수는 없으니까 조심해주세요.”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봐, 설마 이렇게 늘려놓은 몸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응?

“아쉽겠지만 약효는 하루 정도예요. 혹시 몸에 이상증상이 있거나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두드러기나 마비증상이나 신체부위가 변형되는 사소한 거라도 괜찮아요.”

마비나 신체변형이 사소한 거냐? 너, 자격증은 가지고 있는 거야? 아무 약초나 막 쓴 거 아니야?

그러나 내가 묻기도 전에 영화는 다른 테이블로 달려가서 아까 하던 일을 계속했다. 탁자 위의 화병에 꽃을 꽂아 장식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보고 있으려니 녀석이 꽂아놓는 꽃들은 하나같이 시들었거나 벌레 먹었거나 변색된 것들이다.

모든 테이블에 꽃을 세팅한 다음 영화는 주머니에서 하얀 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병을 꽃병에 기울여 뭔지 모를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시든 꽃들이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윤기를 되찾더니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벌레 먹은 꽃잎이 순식간에 메워지고 일그러지거나 변색된 잎이 파랗게 펴졌다. 생물학자들이 봤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어 할 약이었으나…문제는 확률인 것 같다.

열두 개의 테이블 중에서 꽃이 생생하게 살아난 곳은 딱 여섯 곳. 나머지 여섯 테이블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더니 이윽고 테이블 위로 떨어져 부서졌다. 영화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에이, 또 실패네.”라면서 태연히 그것들을 치웠다.

이봐, 사이비. 너 대체 무슨 약을 쓴 거냐. 확률 50%? 그거 설마 나한테도 적용되는 거 아니겠지?

“언제까지 누워계실 겁니까. 곧 개장입니다.”

선영이 내 옆을 지나가며 차갑게 말했다. 쟤는 수리점에 있을 땐 민폐였는데 여기선 홈그라운드라고 날 막 괄시해.

조심히 움직여 테이블에서 일어나니 몸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음, 평소보다 시야가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가.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힐끗 보자 겉보기에 이상한 곳은 없었다. 어딘가 너무 늘어났다든가 눌렸다든가…어쨌든 다행이다.

일하러 온지 15분 만에 생물학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한 번 넘기고, 다음으로 나는 문희라는 아가씨를 따라가서 주방 구경을 했다. 널찍한 주방은 벽을 따라 개수대 두 개와 여러 개의 가스레인지, 오븐, 냉장고 같은 것이 이어져 있었다.

“오늘이 처음이니까 주로 설거지하고 청소를 맡으실 거예요. 여기에서 차를 끓이는 것도 같이 하니까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면 정신없어요. 우리 카페는 메뉴마다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거든요. 그래서 주문이 복잡하면 주방도 같이 복잡해져요.”

뭐야, 그런 비효율적인 방식은.

“아, 창고에서 말린 대추하고 생강 좀 갖다 주실래요? 한 봉지씩요.”

냉장고와 창문 사이에 난 문을 가리키며 문희가 부탁했다. 그녀는 커다란 주전자를 꺼내놓고 차를 우릴 준비를 했고 나는 창고로 들어가 말린 대추와 생강을 찾아냈다. 대추와 생강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으나,

“어라?”

문 밖의 풍경을 보고 잠시 멍하니 굳었다. 눈앞에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꽃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새가 울고 하늘에 오색 구름이…

카페 주방이 아니잖아. 여긴 어디지?

“해명씨, 아직 못 찾았어요?”

등 뒤에서 문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머리를 내민 문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뒤로 옮겨가더니 후다닥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녀가 재빨리 문을 쾅 닫았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진 것이 보였다.

“서천 꽃밭으로 가는 문을 열다니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세상에. 누가 본 거 아니죠? 큰일 날 뻔했네. 어떻게 열었어요? 거기는 사장님도 마음대로 못 가는 곳인데.”

아니 그냥 문이 있길래 문을 열었는데요. 여기가 나가는 문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서천 꽃밭은 또 어디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문희는 약간 얼이 빠져있는 내 팔을 잡고 창고에서 나갔다.

“창고에는 들어가지 말고 설거지만 해요. 그리고 손님 나가고 나면 테이블 치우는 것하고요. 알았죠?”

내가 또 이상한 데로 통하는 문을 열까봐 겁먹은 얼굴로 그녀가 열심히 다짐했다. 아니 그런데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창고가 이상한 거잖아. 창고라는 게 보통 물건을 보관하지 이상한 나라로 가는 용도가 아니란 말이지.

뭔가 억울하지만 얌전히 그녀가 알려주는 대로 청소하는 법과 쓰레기 분리하는 법 도구 정리하는 법등을 배웠다.

그리고 잠시 후 카페 문이 열렸다.

오늘은 평일. 이 카페가 있는 곳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국립공원 산자락 밑의 한적한 길가니까 오전부터 손님이 오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문 열고 10분도 안 되어서 한 무리의 등산객이 몰려들어왔다.

일찍 산에 올랐다가 하산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은퇴하고 나자 시간이 많아진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대추차나 오미자차 같은 걸 시켜놓고 담소를 나누다가 점심이 가까워지자 식당으로 떠났다.

이른 등산객 손님이 뜸해지자 다음으로는 여자 손님들이 몰려왔다. 20대에서 6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는데 이 손님들이 좀 이상했다. 대부분 신요차라는 것을 주문하는데 열이면 열, 테이크 아웃이었다.

신요차가 뭔지, 냄새로는 한약 같은 게 들어간 모양인데 가격은 또 다른 차의 몇 배다.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와 비교하면 거의 열 배였다. 그런 비싼 것을 플라스틱 컵에 담아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으나, 돈이 아깝지 않은 얼굴로 몇 잔씩이나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환상적인 맛인가 하고 주방을 기웃거리자 영화가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물었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그러고 보니…

“신요차인가 그거, 네가 담당이었냐?”

“예. 이때하고 문 닫기 전의 밤 시간에 주로 손님들이 오세요. 피부에 좋은 차라서 그런지 주로 여성분들이 찾으세요. 오늘은 벌써 반이나 팔렸네요. 미리 좀 더 끓여놔야겠다.”

중얼거리며 영화는 뭔가 불그스름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에 물을 좀 더 부었다. 무슨 약초를 넣나 지켜보고 있으려니 녀석이 소매를 걷은 다음 팔팔 끓는 주전자 안에 팔 하나를 쑥 집어넣었다. 뭐?!

“야!”

놀란 내가 달려가서 영화의 손을 꺼내자 녀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요?”

왜요가 아니잖아, 왜요가! 끓는 물에 손을 왜 집어넣어? 이 카페에서는 물 온도를 그렇게 재냐? 손으로…어라…얘 손이…손가락이 사라졌어. 아니, 손이 꼭 도라지처럼 변했어. 커다란 도라지…

“영화는 동자삼이니까요. 해명 도령, 소리 지르는 바람에 손님들이 놀라셨습니다. 조심해 주십시오.”

어느새 주방 입구에 나타난 선영이 찌푸린 얼굴로 말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동자삼? 그…오래 묵은 산삼이 변했다는 요괴?

나는 멍하니, 자신의 팔을 주전자 안에 넣고 우려내는 동자삼 요괴를 쳐다보았다.

이 카페 좀 이상해. 아니 많이 이상해.

설거지나 손님들이 나간 자리를 치우는 일쯤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시간 날 때마다 바닥 청소라든가 잔심부름 같은 것도 쉬웠다.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손님이나 일이 아니라 이 요상한 카페 자체와 카페의 요괴 종업원들이었다.

주문이 정신없이 밀리자 커피를 담당하고 있는 선영이 어서 잔을 데워오라며 채근하는데 이 카페에는 건조기가 없어! 어떻게 잔을 데워? 그러자 선영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입에서 불을 뿜어 잔을 데운다.

문희란 아가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통 안에서 뱀 한 마리를 꺼내더니 독니 사이에 컵을 대고 투명한 독을 뽑아내 물을 타서 마신다. “문희 누나는 뱀을 잡아먹는 거미거든요. 여기 온 후로는 살생을 안 하려고 독만 마시지만요.”라는 게 영화의 설명이었다. 선영은 묘두사인데…천적과 함께 일하는 거냐?

영화는 서빙하다 말고 가끔 차에 뭔가를 똑똑 떨어뜨리는데 아직까지 두드러기가 나거나 마비되거나 신체가 변형된 손님은 없지만 갑자기 원주율표를 소수점 아래 523번째까지 외우는 손님이나 찻잔과 사랑에 빠지는 손님은 있었다. 손님에게 찻잔도 팔 수 있었으니까 매상에는 도움이 되는 건가.

이런 요괴 종업원에다, 카운터를 보는 사장이란 자는 가만 보면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손님에게 인사도 잘 하고 계산도 잘 하는 것 같지만 어쩐지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때가 많았다.

“산군께서는 바쁜 분이십니다. 산은 물론 산이 내려다보는 인세까지 두루 살피셔야 하니까요.”

선영이 설명했다. 그러니까 카운터 보다 말고 허깨비만 남겨둔 채 어디론가 가서 땡땡이치다 온다는 소리잖아.

게다가 저녁 이후에는 선영을 보러 온 여자 손님들이 카페에 가득 차서 “오빠”라느니 전번 좀 달라느니 팬 카페 정모에 와달라느니 하는 광경을 보고 있어야 했다. 너희들 그 미남이 고양이 머리에 뱀 몸뚱이인 요괴라는 거 알고 있냐? 물론 모르겠지.

가끔 선영의 시야에서 밀려난 여자들이 영화나 내게 말을 걸기는 했다. “선영 오빠는 언제 퇴근해요?”라든가 “선영씨는 여자 친구 있어요?”라든가. 알 게 뭐야!

대충 이런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이 되었다.

아…살았다. 힘든 하루였어. 이런 일을 시급 6300원 받고 했다니. 혹시 또 부탁해도 다음에는 절대로 안 해.

문 닫은 뒤의 청소나 뒷정리 같은 것은 기쁜 마음으로 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집에 가려는데

“그럼 여러분, 이제 옷을 갈아입고 밤손님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하지요.”

라는 선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무슨 손님요?

잠깐, 그 밤손님이라는 게 혹시 도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그 말인가요? 아니면 밤에 오는 손님이라는 뜻인가요.

“물론 밤에 오시는 손님들입니다.”

선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이 카페는 24시간 영업하는 거였어?

항의해 봤으나 선영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제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루’동안이라고요.”

저기…하루가 24시간인 건 저도 아는데요. 아는데…그런데…그치만…그치만…

“한 시간 후면 자정입니다. 그 전까지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빠듯합니다.”

선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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