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57화 (157/218)

에코의 어느 하루(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저 사람들 오늘도 있네. 매일 나오나 봐?”

“아유, 못 본 체 해. 괜히 시비 걸면 어떡해.”

“난 저 사람들만 보면 기분이 오싹한 게…진짜 이상하지 않아? 표정도 그렇고.”

“그러니까. 남자는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던데. 이 시간에 일 안 하고 여기 나와 있는 거 보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등 뒤로 50미터쯤 거리에서 들린다. 거리도 멀고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몰라도 하여간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실 수다 떠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수리점 안에 갇혀 지낼 때만 해도 벽 너머에서 들리는 바깥의 소리는 사소한 것 하나도 귀를 바짝 세우고 들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매일 길거리에서 마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남자의 목소리는 아침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다.

조금씩 기운을 구별할 수 있게 된 후로는 그 두 남자가 사실 수리점 앞 이팝나무에 깃든 목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대화가 싫어진 것은 아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남의 집의 소소한 사정이라든가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그들로부터 내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수다도 수다 나름이지.

지금 내 뒤에서 속닥거리는 세 명은 매일 이 시각이면 천변의 산책로에 나와 운동기구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두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부인들이었다.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시간은 잠깐이었고 그 옆의 벤치에 앉아 두세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 무렵이 되면 돌아가곤 했다. 운동을 하려고 왔다기보다 수다를 떨러 온 셈이었다.

내가 유하에게 졸라 목걸이를 얻어서 이곳에 산책을 하러 나온 지는 일주일 되었는데, 매일같이 마주치는 걸 보면 그들에게 이곳의 모임은 하루일과인 것 같았다.

수다 내용은 매일 달랐지만 주제는 거의 비슷했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런대?”로 누군가 한 명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은 다음 메스 같은 혀로 낱낱이 해부해 펼쳐놓는 것이다. 듣고 있으면 직업, 나이, 사는 곳, 가족과 인간관계는 물론 몇 달 전에 있었던 사소한 일까지 하나하나 다 끄집어져서 자서전이라도 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이야기들 중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른다. 만일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동네에는 절대 상종하면 안 될 사람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21명이 존재하고 있다. 아, 방금 두 명이 늘었으니까 23명.

세 부인들의 수술대에 막 오른 두 명은 나도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다. 그들은 모자(母子) 같았다. 한 명은 여자, 한 명은 남자인데 길쭉하고 마른 얼굴이나 째진 눈매, 긴 인중이 서로 닮았고 여자 쪽이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렇다고 남자가 젊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반백의 머리 때문에 더 나이 들어 보이지만 적어도 50대 후반쯤일 것이다. 여자는 분명 80대 이상이었고 노환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지만 늘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가 탄 휠체어를 천천히 밀면서 산책로를 따라 가거나 둘 다 함께 냇물을 바라보며 말없이 있거나 했다.

이것뿐이라면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는 효성스러운 아들이라든가 사이좋은 모자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쩐지 보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표정일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없었다. 그것도 단순한 무표정은 아니었다. 좀 더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쓴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무표정이다. 마주칠 때마다 매번 그랬다. 그런데다 둘은 외모도 닮았고,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똑같았다.

뱅 헤어라고 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통상 ‘바가지 머리’라고 부르는 바로 그 모양이었다. 이마 위에서 자로 대고 자른 것 같은 직선의 앞머리에 귀 아래쪽에서 싹둑 잘라진 단발이다. 어머니 쪽이라면 그런 단발이 나름대로 어울렸지만 아들까지 같은 헤어였다.

사실 50대 후반의 남성이 희끗한 머리를 여자 같은 단발로 자르고 다니는 일은 결코 흔치 않잖아.

그런데 그런 찍어놓은 것 같은 두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보면 어딘지 히치콕의 사이코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부인들이 저렇게 속닥이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들의 수다는 느낌을 나누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근처의 임대 아파트라든가 가끔 마트에서 마주치는데 이런 저런 것을 샀다든가 하는 일상에 이어 이런 소문이 있다든지 저런 풍문이 있다든지, 나는 이럴 것 같다느니, 저런 게 아닐까라느니 소문과 추측이 보태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을 비밀스럽고 어두운 과거를 가진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수상한 모자로 결론지었다.

저걸 끝까지 듣고 있는 내가 한심한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싫은 기색을 보이는 유하에게 애교까지 부리며 열심히 졸라 겨우 하루에 두 시간만 목걸이를 빌릴 수 있게 되었는데 아까운 한 시간을 저런 수다에 날려버리다니.

서둘러 그곳을 떠나려는데 재잘재잘 수다를 떨던 부인들이 “어머.”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봐. 또 왔어. 또 왔어.”

“차암,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새 우리 동네에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보여? 무서워서 밖에 나오질 못하겠네.”

이번에는 또 무슨 흉악한 사람을 발견했나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

“혀…”

안 돼. 부르면 나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갈 거야.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기른 머리에 꽃 꽂고 초여름에 롱코트 자락을 날리며 걷는 남자와 아는 사이라는 걸 절대로 들킬 수는 없어.

입을 꽉 다물었으나 시선을 돌리는 것이 늦고 말았다. 원래는 양이천의 천왕이신데 지금은 하급 사신이나 하는 일을 잠시 맡고 있다는 내 형이라는 분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거기 있었구나. 찾는 중이었다.”

그가 손을 번쩍 들어서 흔들기까지 하며 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부인들의 시선이 그의 눈길을 따라 내게 날아왔다. 양이천왕을 보던 표정 그대로 혐오와 경계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 저분들한테 얼굴이 팔렸으니 남은 두 시간은 내 이야기로 때우시겠네.

“웬 요괴 하나가 너를 찾아왔더구나. 선영이라는 묘두사인데 산신이 보냈다고 한다.”

양이천왕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아주 그냥 확성기를 가져와서 방송을 하시지 그래요?

요괴니 산신이니 하는 말을 듣고 부인들이 더욱 열을 올리며 소곤거렸다. 이제 나는 이 마을의 상종 못할 인간 25인에 끼게 되는 건가.

그리고 어차피 두 시간 후면 저절로 들어갈 텐데 뭘 찾으러 나오고 그래요? 순력 사신이라면서 그렇게 한가해요? 일 안 하세요? 공무원이 이렇겐 놀아도 되는 거야? 철밥통이라 그런가.

투덜거리며 물으려고 했으나 양이천왕의 한 손에 들린 와플 조각을 보고 알게 되었다. 또 뭐 받아 드셨구나. 이분은 천왕이라면서 저쪽 세상에서 굶다가 오셨나. 뭐 이렇게 먹을 것에 약해?

불평은 한 가득이었지만 말해봐야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안 그래도 이미 그의 관심은 나를 떠나 리트리버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웬 아저씨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정확히는 아저씨 손에 들린 개 껌에.

이번에는 개 껌을 사달라고 할지도 몰라. 식탐 많은 사신과 더 얽히기 전에 나는 서둘러 수리점으로 돌아갔다.

작업장에서는 선영이 차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꼿꼿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내게 인사하더니 몇 마디 사교적인 대화를 나눈 다음 용건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용건이라는 것이 묘했다. 뭔가를 수리해달라는 것도, 요괴가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

“…알바?”

“예. 하루면 됩니다. 성실하게 잘 나오던 종업원이 갑자기 하루 빠지게 되어서 말입니다.”

“그…에코라는 카페의?”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서빙을 하라고?”

“예.”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투로 선영이 태연히 대답했다.

저기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내가 이래 뵈도 꽤 고급인력이거든요? 요괴나 유령 같은 것도 볼 수 있고 건물 몇 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무사하고 대금도 잘 불고 힘도 세고 몸도 튼튼하고…음…생각해 보니 대부분 별로 쓸 데 없는 능력인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명색이 수리점 사장인 내가 왜 카페 서빙 알바를 해야 하는데요? 아무리 거기 사장이 산신이래도 그렇지 사람을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유하낭자께 여쭈어 보니 마침 내일은 일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선영이 유하를 팔아 나를 압박했다. 내일만 일이 없는 게 아니고요. 오늘도 없었고 어제도 없었고 그제도 없었고 그그저께도 없었거든요. 예. 수리점이 많이 한가합니다. 쳇.

유하가 그렇게 말했다니 거절할 수도 없고. 그래. 수리점에 일도 없는데 알바나 뛰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가 가져온 일을 승낙했다.

기껏해야 주문 받고 쟁반 나르고 설거지 하고 그 정도겠지.

이런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카페 에코에 갔을 때, 내 가벼운 마음가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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