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31화 (131/218)

리코더의 요정(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리코더를 확인한 순간 나는 선반을 돌아 그 ‘사람 같은 것’과 ‘사람 아닌 것’이 섞여 즐기는 자리로 달려갔다. 내 발소리를 듣고 그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하던 것을 계속했다.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반기는 것도 아니다. 눈앞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본 사람의 반응과 비슷했다. 잠시 눈길을 줬으나 곧 잊어버린 것처럼 자신들의 일에 열중했다.

나에게서 떨어져나가는 시선에 약간 서운했지만 방해하지 않는 것만도 어디야 싶은 게, 어쨌든 저쪽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요괴들의 무리다. 기억을 잃기 전에 어떤 관계였는지 몰라도 나를 대하는 걸 보면 영감 도깨비 말고는 별로 친했던 것 같지 않고.

내가 다가가도 둘의 연주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를 쳐다보지 않은 유일한 ‘것’들이었다. 둘의 시선은 서로에게 향해 있었다. 단순히 향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눈길과 눈길이 손을 맞잡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를 더듬어 읽고 대화하고 상대방의 숨에 자신의 숨을 섞어 함께 쉬었다. 그 결과물이 그들의 연주였다.

리코더를 보고 다가간 나조차 어느새 그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귀와 마음을 빼앗겼을 정도다.

대금과 리코더. 한쪽은 대나무를 잘라 만들었으나 어째서인지 푸른빛이 사라지지 않은 기묘한 대금이고, 다른 한쪽은 공장에서 대량생산 되었을 플라스틱 조합체다. 대금을 연주하는 남자는 아직 애티가 사라지지 않은 젊은이로 삼국시대에서나 입었을 것 같은 옷차림에 두건 같은 모자를 썼고, 리코더를 연주하는 여자는 자그마한 체구에 빈틈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입고 있는 원피스도 길거리에서 만오천원 쯤에 팔고 있을 것 같은 기성복.

어느 모로 보나 하나도 안 어울리는 한 쌍인데 둘이 만들어내는 음률의 조합은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둘로 쪼개었다 도로 붙인 것처럼 들어맞았다.

그들은 한동안 높고 낮은 음으로 함께 물결치듯 가락을 뽑아내다가 다음에는 주고받는 것처럼 밀고 당기더니 이윽고 점점 빨라진 속도를 몰아쳐서 혼을 쏙 뽑아낼 정도로 끌어올려 벼락 치듯 끝을 냈다. 그 절정의 순간에는 웃고 떠들던 다른 도깨비들마저 입을 다물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잠시 숨소리 하나 없는 정적이 창고 안에 가득했다. 남자가 대금에서 입을 떼고 가만히 숨을 내쉬자 여자도 리코더를 내려놓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그림의 배경처럼 꼼짝 않고 있던 도깨비들도 단번에 왁자해졌다.

“아이고야, 숨이 다 턱 막히는 줄 알았네.”

“이게 얼마 만에 듣는 건가. 낭자, 왜 이리 격조하셨소?”

“그러게 말일세. 낭자가 오지 않으니 저놈이 어디 피리 소리를 낼 수가 있어야지. 해명 도령이 불어주지 않으면 먼지만 뿜고 있다니까.”

대빗자루의 말에 도깨비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가만, 방금 내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대빗자루 도깨비의 말에 쑥스러운 얼굴로 웃던 옥색옷의 남자가 나를 보며 손짓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손짓뿐이다. 내가 조금 더 다가가자 그가 대금을 내게 내밀었다. 구경하라고 주는 건가요? 가지라는 건 아니지? 물론 연주하라는 건 절대로 아닐…

“뭘 하오? 도령의 곡조도 오래 듣지 못했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오.”

갓과 두루마리 아래 스란치마라는 괴악한 옷차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여자가 도깨비들 사이에서 내게 말했다. 뭘 기다린 건데? 내 곡조는 또 뭔데?

“저…”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내가 쓸데없이 대금도 연주할 줄 아는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리코더도 리코더지만 처음 보는 저 여자가 누구인지 어째서 리코더를 가져갔는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알아야 하는데…

여자가 리코더의 취구로 입을 가져가더니 맑은 음을 길게 뽑아냈다.

‘어어…?’

그 소리를 듣자 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말 그대로 저절로였다. 남자에게서 대금을 받아들더니 양손으로 그것을 잡았다. 손가락으로 지공을 짚고 팔을 옆으로 들고 취구에 입술을 대는 동작은 스스로 한 것도 아니고 몸이 기억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가 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하니 가벼운 곡조가 플라스틱 관을 통해 울려나오자 그것에 반응하여 내 손가락도 움직였다. 움직이기는 했지만 손가락뿐이다. 손가락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무언가의 지시대로 움직이고는 있으나 피리란 숨을 불어넣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다.

몸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도 숨은 마음대로 쉴 수 있어서,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들이쉰 숨을 코로 내쉬었다. 남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다니 기분이 나빴다.

대금에서 소리가 나지 않자 리코더를 불던 여자도 연주를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지만 뭐라고 묻지는 않는다. 남자도 그렇고, 이 커플은 둘 다 말을 할 줄 모르나?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 나는 아차 싶었다. 혹시 정말로 말을 할 줄 모르는 건 아닐까.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모으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여자의 시선을 받자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대금과 나를 번갈아 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뭐야, 사람 난처하게.

게다가 도깨비들은 이 와중에 놀지도 않고 이야기도 않고 술 마시던 것도 잠시 멈추고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침묵의 시위에 기분 같은 건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 소원이라면 불어주지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도깨비…소원쯤이야.

나는 대금을, 이번에는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잡고 취구에 입술을 댔다. 어쩐지 달큰한 대나무의 향기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대숲의 시원한 그늘과 바삭거리는 댓잎과 바람이 불 때 비 오는 소리를 내며 쏴아아 밀리는 댓가지의 시원스러운 물결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늘은 남청색, 별은 모래알처럼 뿌려져 반짝이고. 어둠을 밝히는 노란 불꽃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반딧불이가 날고, 파르스름한 도깨비불이 휙 휙 지나가고, 그리고…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흥겨우면서도 요사한 피리소리였다. 사람 아닌 것들이 모여서 노는 이 자리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며, 듣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 수상한 연회에 끼어들어 웃고 마시고 춤추게 될 것 같은 소리.

이곳에서 즐기는 동안에는 눈이 세 개이건 다리가 하나건 하늘을 날아다니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술잔이 돌고, 웃으며 서로 희롱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음률이 잦아들다 흩어지듯 사라지자, 그제야 나는 괴이한 한밤의 연회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은 피리소리가 내 연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춘야연.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전에도 자주 이 곡을 연주했었다. 내 주위로 모여들어 연주를 듣던 도깨비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니 그보다 더 자주,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 곡을 연주해주고는 했다. 누구더라. 흐릿한 기억이 물그림자처럼 흔들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멍하니 흐린 기억에 잠겨있는 내 손을 누군가 잡아당겼다. 리코더를 든 여자다. 그녀가 뭔가를 바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한 손으로는 내 대금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리코더를 들어보였다.

아 맞다. 그녀는 합주를 하고 싶어 했지. 나 혼자서 멋대로 취해서 연주해버렸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대금을 잡자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리코더의 맑은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것을 달래듯이 당겨 지공을 짚자 내 숨을 타고 흘러나간 피리소리가 리코더의 높은 음과 섞여 회오리치듯 휘돌았다.

소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잡히는 것 같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니,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 이 아이는 물에 넣어두면 스스로 자랍니다. 바다에서 떠온 깨끗한 물을 쓰시고 햇빛을 자주 쐬어 주세요.

야무지게 생긴 여자아이가 말하고 있었다. 소녀는 품안에 커다란 대야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대야 안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렸고 그 물속에서 뭔가 물고기 같은 것이 돌아다녔다.

- 그러나 도령이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며 그들의 욕심은 하찮은 몸에 날개를 달아주니 그들이 도령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이 아이를 빼앗을까 걱정됩니다. 그러니…

소녀는 돌처럼 단단하고도 차가운 얼굴로 내게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분명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 그러니…이 아이가 자라거든, 그래서 말을 하고 스스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거든 부디 이 아이의 목소리를 빼앗아주세요. 목소리를 버려서 평온하게 살 수 있다면 저로서는 그편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녀는 단호하게 내게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얼굴이 바로 지금 내 앞에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소녀가 처녀가 되었을 뿐 자그마한 몸집이며 강단 있어 뵈는 야무진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어느새 연주가 끝났지만 나는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그녀와, 그리고 그녀가 말없이 바라보는 옥색 옷의 남자를 번갈아보았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무슨 짓을 한 걸까.

정말로 그녀의 부탁대로 그 아이의 목소리를 빼앗은 걸까? 그 아이가 자라서 저 옥색옷의 남자가 된 걸까? 하지만 소녀가 ‘이 아이’라며 내려다보던 것은 대야 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어떤 것이었다.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고기, 혹은 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것이 자라서 사람으로 둔갑하는 요괴가 되었다고 해도 설마 나는 정말로 그런 짓을 한 걸까.

궁금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째서 목소리를 빼앗는 것이 그가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인지도 나는 몰랐다. 정확히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다시 도깨비들과 어울리는 그들을 두고 창고에서 나온 다음, 머리를 싸매며 기억을 돌이켜 보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는 분명 어렴풋이 뭔가 떠오를 것 같았는데….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수영이란 녀석, 하교하면서 들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학교 하교시간이라야 오후 4시 정도일 텐데.

유하에게 연락처를 물어봐서 전화하자 녀석은 한참 후에야 받았다.

“아 진짜, 아저씨. 카톡하는데 전화하면 어떡해요. 예? 리코더요? 무슨 리코더요? 제가 언제요? 아 맞다. 그랬었지. 잊어버렸어요. 근데 내 방에도 리코더 하나 있는데요? 리코더가 하나 더 있었나? 내가 왜 그걸 가져갔지?”

리코더를 언제 찾아갈 생각이냐고 묻자 녀석이 엉뚱한 대답을 했다. 리코더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느니 왜 귀중한 점심시간에 그걸 고치려고 여기까지 왔다 갔는지 모르겠다느니 투덜거리더니 수리비 없으니까 리코더는 그냥 아저씨 가지세요 라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공짜로 리코더가 생겼어…가 아니라 이 녀석, 아무래도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리코더 든 여자에게 당한 것 같다.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라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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