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13화 (113/218)

발광충(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저 개는 내가 키우는 건가?”

이름을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스스로 크는 거겠지요.”

그리고 그녀로부터 묘한 대답을 들었다. 내 개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질문이 더 없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하. 유하. 방금 불렀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아까 대화중에 이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었던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개인 것 같은데 소년으로 보이고 말까지 할 줄 아는 달님이란 녀석에게 처음으로 들은 이름이다.

어쩌면 무의식에 남아있던 그녀의 기억이 환청으로 드러난 건지도 몰라. 내 입장에서는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다른 것을 모두 잊어버렸더라도 이름만은 기억하는 게 아닐까.

그렇더라도 강아지가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순순히 떠난 것은 이상하잖아. 그냥 눈치 빠른 개라고 하기에는…

그러고 보니 녀석이 한 말이 하나 더 있다.

- 석 달이나 잤으면서! 심심했어! 놀아줘!

말도 안 돼. 개가 말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내가 석 달씩이나 잠들어 있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어. 유하에게 들은 터무니없는 말이 환청이 된 걸 거야. 나는 무슨 정신병 같은 것에 걸린 미친놈일 테고. 그녀는 어쩌면 내 병력을 알고 있어서…

나는 자신을 향해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유를 대서 자신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웃기는 일이다. 내가 정말로 미쳤다면 자신이 미친 것을 어떻게 알지.

그런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동안 시간은 손님과 약속한 오후 2시가 되었다.

그때쯤 나는 고민하다 지쳐서 다시 멍하니 유리 등롱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 무리도 한동안 몰려다니며 놀던 것에 질렸는지 뿌려놓은 것처럼 흩어져서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빛 무리가 움직였다.

흩어져있던 것들이 확 뭉쳐 등롱의 유리면 한 쪽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그래서 등은 한 면만 더욱 하얗게 빛을 냈다. 느닷없이 왜 이런담.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도 약간 놀라서 몸을 일으키는데 그때 출입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계세요…?”

등롱 안의 빛을 보려고 다른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서 작업장 안은 어두웠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던 사람은 금세 나를 발견하고 이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연락 받고 왔습니다. 등을 맡긴 조영천입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 셔츠에 네이비 면바지를 단정하게 입었는데 옷차림뿐이 아니다. 로션 대신 성실과 근면을 바른 것 같은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물건 수리를 맡기면서 이름까지 밝히나? 나도 이름을 대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계단에서 유하가 내려왔다. 손에는 시원한 음료가 놓인 쟁반을 들고 있었다. 3층에 방이 있으면서 어떻게 손님이 온 걸 알고 때맞춰 음료수를 가져오는 거지. 그러나 마침 난처하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작업 선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음료를 권하며 대화를 트고 나자 자연스럽게 유리 등롱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옮길 수 있었다.

“이것은 제가 할아버지께 받은 물건입니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저더러 관리하라는 것에 가깝긴 합니다만.”

푸르스름하게 빛을 발하는 등롱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이 등은 할아버지가 몹시 아끼시는 것입니다. 젊을 때부터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방안 깊숙이 숨겨두고 가족들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으셨지요. 하긴 저도 볼 때마다 신기하니. 이 안에 든 것이 뭐냐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요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햇빛을 받으면 죽게 되니 절대로 낮에는 내놓지 말라고 하셨지요. 밤에만 꺼내놓고 낮에는 늘 상자에 넣어두셨습니다.”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조영천이 말했다. 요괴? 갑자기 무슨 만화 같은 이야기야.

“물론 저는 안 믿었지요. 반딧불이 같은 것을 잡아서 넣어놓고 저를 놀리시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할아버지께 받은 뒤로,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빛무리가 요괴라는 걸 믿게 되었다고?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보고 아셨겠지만 이 등은 열리지 않습니다. 갓 부분에 아예 땜질을 해서 공기도 통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런데 등을 받은 뒤로 거의 3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 안에서 빛을 내는 것들은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반딧불이 같은 벌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갓이 열리지 않는다는 건 몰랐는데. 뭔지 모를 벌레들이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아예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은 낮에 짐을 정리하며 잠시 등을 상자에서 꺼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뛰어 들어오시더니 등을 왜 꺼내놓았느냐며 화를 내시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분명 집에서 차로 두 시간은 걸리는 병원에 누워계셨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셨지요. 깜짝 놀라 돌아보는 순간 할아버지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등을 봤더니 마침 창이 열려서 햇빛이 조금 들어와 있었는데 짐정리를 하는 동안 햇빛이 점점 옮겨와 등의 가장자리에 닿았던 겁니다.”

조영천은 그때를 떠올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금 몸을 떨었다.

“그때 본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 등 안에서 빛나는 것들이 한데 뭉쳐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해골 같았습니다. 빛나는 해골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지요. 그날로부터 열흘 정도 저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그 후로는 정말 조심해서 등을 다뤘습니다.”

조영천이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주고 싶지만 그래도 되나 싶었다. 지금 수리점에 물건을 고쳐달라고 온 사람이 자신이 겪은 괴담 이야기를 해주고 있잖아. 그런 사람처럼 안 보였는데 사회생활에 문제라도 있나? 아니면 뭐지. 내 수리점 전화번호가 정신병동 대표전화 번호와 비슷한가.

“조심하기도 했지만 그 일 외에는 딱히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매일 밤 자정쯤에 등을 꺼내놓았다가 한두 시간 후에 도로 넣으면 될 뿐이어서 귀찮을 뿐 어려울 것도 없었고요.”

어렵지 않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사회생활 하는데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어쩌고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는 일 정도 흔하잖아? 그런데 이 등 때문에 매일 자정 전에 귀가해야 했다는 거 아냐? 친구 없나? 애인은? 직장 상사는?

묻고 싶었지만 고객의 사생활을 캐내는 건 실례겠지. 나는 정신과 상담의가 된 기분으로 그의 이야기를 느긋이 흘려들었다. 기다리다 보면 뭐가 문제인지 나오겠지.

“그런데 한 달 전부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가 말했다.

“제가 할아버지에게 등을 받은 후로 3년 가까이, 단 한 번 빼고는 별 움직임이 없던 저 빛들이 한 달 전부터 갑자기 활발해진 겁니다.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가 하면 뭉쳤다 흩어졌다 하고, 가끔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 그거 아까 하던 짓들인데. 처음 창고에서 등롱을 가지고 나왔을 때. 그럼 원래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네.

“상자에서 꺼내놓을 때마다 계속 그러는 겁니다. 이러다 또 그때처럼 이상한 것을 보게 되거나 두통을 일으키거나 할지도 몰라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뿐 아니라…”

조영천은 말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테 굵은 안경 아래에서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착각이거나 우연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한밤중에 누군가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어쩐지 제가 아는 사람 같아서…”

아는 사람 누구요?

조영천은 입을 떼었다 다물었다 하며 잠시 더 망설이다가 이윽고 말했다.

“아무래도 제…여자 친구 같은데, 물론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사실 여자 친구 집이 가깝기도 하고 또 부모님께 인사도 드린 뒤라 저희 집에 자주 드나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왔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한데…”

여자 친구가 있었단 말이야? 아, 이 대목에서 놀라면 안 되는 건가.

그래. 여자 친구가 한밤중에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더란 말이지? 그게 뭐? 부러워하라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또 제가 발견해서 쫓아가 보면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해서…정말 그때 일만 아니면 여기가 아니라 정신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때 일이란 등롱을 내놓았다가 환상을 보고 두통을 겪었던 그 일일까.

어, 잠깐. 그럼 지금 요괴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해결해 달라고 나에게 찾아왔다는 말인가? 수리점에? 여기 수리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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