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08화 (108/218)

의운(9)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 건물 안은 여러 가지로 불리했다. 마음껏 움직일 수 없게 제한된 공간인 것도 그랬고, 기운이 거의 읽히지 않는 것도, 평범하게 보이는 물건들이 목심에 의해 도술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그랬다.

“베어라, 석.”

목심의 말에 깨진 다구의 파편들이 날아왔다. 한두 개도 아니고 산산이 부서져 무수한 파편들이 비 오듯 쏟아지니 등을 돌리고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깨져서 날카로운 모서리가 몇 번이나 내 몸을 스쳤다. 살아있는 것 같이 날아다니며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찻잔의 무늬라고 생각했던 붉은 것은 한자를 닮은 묘한 문자를 깨알 같은 크기로 써놓은 것이었다. 이런 도술, 수호 녀석이 쓰는 걸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그때는 달님이가 끼어들어서 도술이 풀렸었다. 아 그래. 백은호도 그렇게 가르쳐줬었지. 술사를 공격하면 도술은 풀린다.

파편의 공격 속에서 위를 힐끗 올려다보니 목심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차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 평화롭고 단정한 모습은 다구 파편과 드잡이질을 벌이는 나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짜증나.

내 목을 찌르려고 날아오는 파편 하나를 낚아채 거꾸로 붙어있는 목심에게 날렸다. 파편은 그의 평화로운 모습 대신 노란색 부적 한 장을 꿰뚫으며 천장에 박혔다.

“날이 좀 추운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아주 좋지요.”

어느새 간이침대로 옮겨간 목심이 말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눈앞까지 들어 올리더니 사뭇 우아하게 기울였다. 잔에서 황금빛 차가 쏟아졌다. 쏟아진 차는 훈김을 풍기며 바닥에 퍼졌다. 퍼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방안에 차오른다. 수면이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 물속으로 푹 꺼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회복되고 굳은 근육이 풀립니다. 이 차는 피부에도 좋지요.”

목심의 한가로운 목소리는 거기까지였다. 찻물이 목을 넘어 머리 위까지 차오른 것이다.

치료소 안은 따뜻하고 향기로운 찻물로 가득 찼다. 노란색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시야가 노르스름해졌다. 그것뿐이면 좋겠지만 물속에 있는 셈이라 숨이 막히고,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이 조금 뜬 채로 기울어졌다. 수영 따윈 못하는 것 같은데, 나….

목심을 보니 물속에서도 유유히 찻잔을 입에 대고 있었다. 저 찻잔 안에 있던 차가 지금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잖아. 그럼 찻잔은 텅 비어 있는 건가. 아니면 방안에 찻물이 가득하니 잔에도 차가 가득한 건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 순간에도 목심의 명령을 받은 파편들이 여전히 나를 노리고고 있었다. 물속이니까 저항 때문에 속도가 느려져야 할 것 같은데 날아오는 파편들의 공격은 변함없다. 숨을 쉬지 못해 멍해진 머리로 생각해 봐도 역시 찻잔 속의 차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는 건 웃기는 상상이었다.

“이런 거보다 창의적인 도술은 없냐?”

벌레를 쫓듯 손을 털어 눈앞을 훑어버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치료소를 채우고 있던 물이 단숨에 사라졌다. 본래부터 없었으니까 당연하지. 목심이 빈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이제 좀 몸이 풀리신 것 같군요.”

아아 그래. 찻물 잠수 고마웠어. 굳어있던 머리가 좀 풀리는 것 같네.

여우인 여화를 만났을 때도, 기완을 만났을 때도, 나는 같은 실수를 했었다. 상대의 적의를 두려워한 것 말이다. 나를 싫어하고 위험에 빠뜨릴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래서 내게 호의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 두려워 몸이 굳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여화가, 기완이, 그리고 목심의 하는 짓이 싫다. 그렇다면 내가 미워하는 만큼 미움 받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너는 두렵지 않으냐? 미움 받는 것 말이다.”

말하는 내 발밑으로 다구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놀이는 이제 그만. 그렇게 생각하자 생긴 일이었다. 놀이에 흥미를 잃은 아이가 내던진 장난감처럼, 파편들은 주인의 손을 떠나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목심의 시선이 파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미움이란 약한 자의 어리석은 질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리한 자라면 그런 것에 감정을 소비하지 않지요.”

차분히 말하며 그가 간이침대의 베개를 붙잡고 부욱 찢었다. 찢어진 천 안에서 베개속의 재료인 녹두가 좌르르 쏟아졌다. 다음 순간 바닥에 흩어진 녹두 알갱이 하나 하나가 옥색 옷을 입은 소녀로 변해 내게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인형처럼 예쁜데 별로 기쁘지는 않네. 말 그대로 인형처럼 생명 없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너무나 뻔히 보여서겠지. 소녀들은 저마다 양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었다. 고운 손에 어울리는 맵시 좋은 단검이었다. 그것을 나를 향해 휘두른다.

“난 무섭더라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싫어하는 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래는 녹두. 책상 위의 진료 차트를 들고 부채질하듯 흔들자 따닥따닥 녹두알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소녀들이 튕겨나갔다.

“이기적이군요.”

목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신의 도술이 간단히 파훼되었어도 당황한 기색은 없다. 그가 이번에는 간이침대에 씌워진 시트를 확 끌어당겼다. 흰 천이 펄럭 목심을 가렸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떨어진 천의 뒤에서 목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 미움받을만하면 미움 받는 게 당연한데 말이야.”

작년 이맘때 쯤, 나는 그것을 알았을까? 깨닫고 나서 또 다시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수십 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겨우 배우게 된 걸까.

“어째서 당신 같은 분이 한낱 미물의 마음에 연연하십니까. 하찮은 감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목심이 말했다. 목소리와 함께 치료소 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전등은 하얗게 빛을 쏟아내고 있는데 시야가 점점 까맣게 변했다. 멀리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 가까이 있던 것들도, 그리고 전등까지 점점 어둠에 가려지다가 이윽고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천왕인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어둠 속에서 목심이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소름끼치는 감사는 진심이 분명했다. 정말로 목심은 내가 만든 어리석은 예외에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연연해야 하는 건 네 마음이 아니야, 목심. 네가 하찮다고 말하는 미물들의 감정이지. 그들이 고통 속에서 너를 미워하고 있었다면, 그 미움은 사실 내게 오는 것이 마땅했을 테니까. 그러니 네가 그것에 연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본래 내 것이었다. 나를 향한 미움이어야 했다.

사각사각…어둠 속에서 목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사각사각…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얇고 가볍고 매끄럽고 서늘한, 그리고 특유의 톡 쏘는 향기를 가진 타원형의 푸른 이파리가 흔들리며 서로 부대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목심은 여기까지 왔구나.

어둠 속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사방이 새카만데 그의 모습만 푸르스름하니 드러났다. 그는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몸에서 돋아난 잔가지마다 푸른 잎을 가득 매달고 있었다. 다리에서 뻗어 나온 긴 뿌리가 꿈틀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환에게 두두을이 내렸을 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지만 근본적인 면에서 달랐다. 목심은 신이 깃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신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너는 내가 잘못 택한 길을 따라, 너무 멀리 갔구나.”

시작은 내 잘못이어서, 두려움을 모르는 그가 나는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그는 둘째 형과 같았다. 어째서 길이 있는지 이해하지 않았다. 그 길을 벗어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잘못이라니요. 도령이여, 나는 당신에게 근접하였습니다. 옛 선인들조차 가지 못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미 늙지 않는 몸을 얻었습니다. 인간이면서 선인을 넘어 천인에 이를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 덕분입니다.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그 늙지 않은 몸을 얻는 대가가 뭔지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두꺼운 결계 속에 숨어있는 거겠지. 공원에서 그를 보았을 때 유독 그의 기운만을 구별하여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을 이제 알겠다. 나는 그의 기운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부적을 감지한 것이다. 원강이 10년의 수명을 깎아 만들어준 부적과 같은, 그리고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그것을.

덜컹! 덜컹! 치료소 안의 물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벽이 흔들리고 있었다. 벽뿐만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십니까, 도령.”

목심이 물었다. 내가 건물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더는 놀아주지 않겠다. 이 장난감은, 네가 고통의 값으로 산 흉한 것이니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하겠다. 그리하여 혐오하며 미워하는 내 감정을 느끼고 건물이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 떨림은 점점 심해져서 이미 지붕의 기와가 우두두 날아가고 벽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령!”

목심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건물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닿은 곳을 나는 알아보았다. 거기였구나. 부적이 있는 곳.

콰드득!

거대한 손으로 콱 움켜쥐어버린 것처럼 건물 한쪽이 압축되었다. 함몰된 그곳을 향해 건물에서 떨어져나간 파편들이 날아가 쌓이기 시작했다. 무너져라. 막아라. 쌓여서 굳어라. 내 명령을 받은 파편들이 탑을 쌓듯 뭉치기 시작했다.

“그만 하십시오!”

목심이 외쳤다. 치료소 지붕이 날아가고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그는 발악하듯 가지를 떨쳤다. 나를 공격하고 한편으로 떨어져 나가려는 천장을 붙잡으려는 것이지만 소용없었다. 가지는 내 몸에 닿기도 전에 시들었다.

“그만! 그만! 도령!”

목심이 포효하듯 외쳤다. 와드득 소리를 내며 천장이 날아갔다. 검푸른 하늘이 보인다. 모래알 같은 별이 하얗게 뿌려져 있었다. 맑은 하늘이다.

“잘못된 길을 아무리 따라가도 네가 바라는 하늘에는 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말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고 괴로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엄정한 남자가 있거든.

“도려엉!”

목심이 울부짖으며 건물의 잔해 속으로 파고들었다. 필사적이었으나 그의 몸이 채 숨기도 전에, 이목천왕의 엄정한 시선이 거기 닿았다. 삿된 것을 용서하지 않으며 어그러진 것을 바로 펴는 천왕의 규칙으로 목심의 몸, 신을 흉내내어 만들어진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몸은 한 순간에 먼지로 화했다.

나는 저 모습을 피하려고 수십 년 동안 하늘로부터 숨어있었다. 이목천왕의 눈과 귀인 태양과 달과 별을 두려워하며, 구름이 그것을 가릴 때에만 겨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런 삶을 원했을까, 목심은.

속이 울렁거리고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나는 방금 눈앞에서 천왕의 분노를 본 것이다. 내게 내려져야 마땅한 것을. 내가 오랫동안 숨어서 피하던 것을.

그런 주제에, 목심을 하늘 아래로 끌어낼 권리가 있었던가.

나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멍하니 목심이었던 먼지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모양을 내려다보았다. 가까운 곳에서 당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는 화급히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지만 거기에까지 나눠줄 마음의 여유는 지금 없었다.

나는 슬프고, 부끄러웠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