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07화 (107/218)

의운(8)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아이들의 공격은 본능적이었다. 여러 명이지만 조직적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이빨을 세우는 것이 전부다. 오래 굶주렸다가 먹을 것을 본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짐승처럼 돋아난 손톱으로 할퀴거나 물린 곳에서 고통을 느끼면 피하기 바빠졌다.

잠깐 사이에 내 팔과 다리의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드러난 피부에도 붉은 자국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라서 이 정도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갈기갈기 찢겨져 형체도 구분 못할 지경이 되지 않았을까. 과연 요괴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어서 이런가. 아니면…

“적당히 좀 해라, 이놈들아.”

달라붙은 녀석들을 끌고 안효정이 갇혀있던 방으로 갔다. 열세 명이 모두 눈을 번득이며 나를 쫓아왔다. 눈앞에 있는 나를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방 한가운데에서 매달린 놈들은 떼어내고 공격하는 것을 이리저리 피하며 녀석들을 한데 몰리도록 해놓았다. 맹목적인 욕구로 움직이는 녀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단순해서 내가 방안을 빙글빙글 돌며 빠져나갈 기회만 노리는 것도 모르는듯했다. 그리고 기회가 온 순간, 나는 재빨리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걸쇠를 거는 것과 함께 문이 쿵 울렸다. 안에서 아이들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본래 저런 아이들을 가둘 용도로 만들어서인지 두꺼운 벽과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 아이들을 가뒀으니 여기에서 나가야 하는데 비밀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밖에서 들어올 때 철문을 옆으로 밀어젖혔던 것 같은데 안에는 손잡이도 없고 문에 손을 대고 밀어봤지만 조금 흔들리기만 할 뿐이다.

아예 밖에서 잠근 거야? 아니면 문을 여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그냥 벽을 부숴버리면 나갈 수는 있겠지만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깨어나겠지. 아이들 때문에 지하실에서 한동안 시끄러웠던 것도 걱정되는데 여기에서 더 소리를 내면…

열리지 않는 문 아래에서 고민하는데, 그 고민스러운 문이 덜컹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옆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며 생긴 틈으로 형광등의 하얀빛이 쏟아졌다. 빛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얼핏 보이는 사람만 네 명, 건물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로는 열 명을 넘지 싶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해명 도령.”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십대로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맑은 목소리다. 내민 손은 섬세하니 마르고 손가락이 길었다. 험한 일 한 번 해본 적 없이, 무거운 거라야 책이나 들어봤을까 싶은 고운 모양인데도 어쩐지 닿기 싫은 손이었다.

나는 손을 잡는 대신 그늘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테 없는 안경 안에서 가늘게 휘어진 눈으로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다.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현미경의 렌즈처럼 차갑게 동그란 눈알이 가는 눈매 안에서 굴렀다.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는 눈이었다.

“비켜주면 내가 알아서 나갈 수 있겠는데.”

내 퉁명스러운 대꾸에 그가 빙긋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함께 치료소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몇 발짝씩 물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 문을 빠져나가서 치료소 안을 보니 공원에서 봤던 그 사람들이 대부분 있었다. 안경을 쓴, 손을 내밀었던 남자가 내 시선을 보고 한 번 더 소리 없이 웃었다.

그가 손짓하자 치료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문이 열릴 때 얼핏 보니 밖에서 대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건물 안에서는 도무지 기운이 제대로 읽히지 않으니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기완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괘씸한 놈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안효정까지 같이 위험해지면 곤란한데. 하지만 곧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서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야했다.

“저는 목심이라고 합니다. 기완이에게 도령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렇게 직접 뵙게 될 줄이야. 미리 연락이라도 주셨다면 불편 없이 모실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남자, 목심은 정말로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깥의 아이들은 개의치 마십시오. 조금 전 저의 불초한 제자 하나가 문제를 일으켜 그것 때문에 소란이 생긴 것뿐입니다.”

그가 말한 불초한 제자란 기완일까 안효정일까. 목심은 마치 그들이 일으킨 일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천연스럽게 말했다.

“늦은 시각이기는 하나 모처럼 와주셨으니 차도 한 잔 대접하지 못하면 결례가 되겠지요. 부디 집주인인 제 체면을 봐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권한다. 그 모습은 다정하고도 점잖았다. 과연 기완의 표현대로 선비 같다고 나도 생각했다.

“바쁘니 싫다고 하면 가도 되는 건가?”

내가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심은 한 번 더 웃었다.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조금 숙이며 공손히 말한다. 예의바르고 공손하나 가도 좋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를 뚫고 나간들 윤문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 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언덕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뭐 이왕 호랑이 굴에 들어왔는데 차 한 잔쯤 대접받도록 할까.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에 털썩 앉았다.

목심이 마루 한편에 마련된 책상 아래에서 다구와 차가 든 상자를 꺼냈다. 책상 위에서는 전기 포트가 금세 물을 끓인다. 목심은 벽에 기대어 세워진 다반을 내 앞에 놓더니 그 위에  다구를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유하가 가끔 백은호에게 차를 내올 때처럼 격을 갖춘 찻상이었다. 자사호라고도 하는 적갈색 다호에 뜨거운 물을 채우며 목심이 무심히 입을 열었다.

“이미 아이들을 보셨겠지요. 도령에게는 가소로울 정도이겠으나, 저는 짧은 생을 누릴 한낱 인간이라 이만한 성취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지하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래 전 성장이 멈춰버린 채로, 인간도 요괴도 아닌 존재로 변한 아이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스로 한 일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런 일을 한 것처럼.

“도령의 덕분이지요.”

다호의 물을 찻잔으로 옮겨 부으며 그가 말했다. 목심의 낯 두꺼운 말에 뭐라고 쏘아붙일지 생각하고 있던 나는 얻어맞은 것처럼 놀랐다. 내 덕분이다.

“도령의 선례가 없었다면 어찌 그런 생각을 해내겠습니까. 한낱 인간이 천왕의 규칙에서 벗어나고, 요괴와 같은 능력을 가지며,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지다니. 그것을 최초로 해내서 세계의 규칙에 틈을 만들고 예외를 허용한 도령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겨났겠는가. 라고. 우아한 손끝으로 예열한 다구를 기울여 물을 버리면서 목심이 말한다.

눈앞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끈지끈 짓누르는 것 같은 감각이 머리에서 목을 타고  심장까지 내려갔다. 그랬었지, 참. 내가 했었지. 한낱 인간을 천왕의 규칙에서…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그녀는 한낱 인간이어서…내가 견딜 수 없이 초조해 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그녀가 한낱 인간이어서였다. 내 눈앞에서 들풀보다 빨리 시들어버리고 마른 풀에 붙은 불처럼 금세 꺼져버릴 한낱 인간이어서, 나는 느긋할 수가 없었다.

떠나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천왕의 규칙은 지엄했다. 인간은 천수를 누리고 나면 그 생을 심판받고 인과의 법칙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도 이미 그녀는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생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나를 잊어버린다. 내가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그녀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잘못을 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외면, 그것뿐이었다.

“도령이 열어준 작은 틈으로 우리는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 세계의 규칙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목심의 고요한 목소리가 얼음송곳처럼 심장에 파고들었다. 나는 그런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인간인 그녀를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게,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 나는 단 한 번, 허락해서는 안 되는 잘못을 외면했다.

- 평범한 인간조차도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드는 선단이지. 큰형님이 허락할 리 없겠지만, 다섯째와 일곱째가 도와주기만 하면 빼낼 수 있다. 어떠냐. 가져다주랴?

둘째 형은 바람 같았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았다. 그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규칙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화를 내야 옳았다. 천왕으로서 지엄한 규칙을 어기고 사욕을 위해 선단을 훔치다니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둘째 형이 가져다준다면, 속이는 것도 훔치는 것도 내가 아닌 둘째형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나는 단 한 번 외면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외면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 그러나 명아, 정말로 저 아이를 믿어도 되겠느냐? 그녀는 인간이니 말이다.

인간이라면 나도 무수히 겪어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약한지 가벼운지 짧고 위태로운지 나도 알았다.

- 영원한 젊음과 무한한 생명을 가진 다음, 저 아이가 네 곁에 계속 남아 있으려 할까? 변함없이 너를 사랑해 줄까?

둘째 형의 질문은 내게 새로운 두려움을 안겼다. 나는 분명 수없이 보고 또 봤었다.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고 뒤흔들었다.

- 걱정 마라, 명아. 막내야. 형이 알아서 해주마. 나를 믿어라.

둘째 형이 말했을 때 나는 그가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영리하고 대담했다. 열두 남매 가운데 큰 형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형제였다. 큰 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뭔가를 할 거야.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할 거야. 나는 그의 방법이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리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 번 더 외면했다. 그가 무엇을 할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때 나는 두려움 속에서 잠시 잊어버린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내가 보아온 약하고 위태로운 인간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하고 변치 않으며 순전한 인간들도 있었다는 것을.

“차가 식겠습니다.”

목심이 말하며 찻잔을 조금 내 앞으로 밀었다. 하얀 찻잔에 황금빛의 차가 보기 좋게 담겨있었다. 하얀 훈김이 찻잔 가장자리를 타고 올랐다.

‘그녀는 변하지 않았어.’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야겠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뿌린 것을 거둬야겠다.

앉은 자세를 바꾸는 체하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 손으로 몸을 버티고 앉은채로 발을 날렸다. 다반 위로 날아간 내 발이 목심의 가슴을 후려쳤다. 발밑에서 단단한 것이 부서지는 감각이 있었다. 목심은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이 산산조각? 아니다. 그것은 목심이 아니라 앉은 사람 크기의 비석이었다.

“차가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맞은편에 앉아있던 목심은 어느새 내 왼편에 있었다. 조금 전 차를 우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 그래. 쉬울 거라고는 나도 생각 안 했어.

내밀었던 발을 그대로 당겨 다반을 걷어찼다. 다호며 숙우며 찻잔들이 허공을 날아 벽에서 깨졌다. 내 왼쪽에 앉아있던 목심이 천장에 거꾸로 앉아서 맑게 웃었다. 손에 든 찻잔이 뒤집힌 채로도 금빛의 찻물을 찰랑찰랑 담고 있었다.

도사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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