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06화 (106/218)

의운(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기완은 건물을 꿰뚫어버릴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 분노와 혐오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모두 마지막에 본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나이도 먹지 않고…둘째 사부는 거기에서 무슨…”

기완이 말을 맺지 못하고 턱을 움찔거렸다.

목심이 그의 이름이다. 안효정과 기완이 둘째 사부라고 부르는 사람. 노앵설의 편지에 적혀있던 이름이기도 하며 짐작컨대 공원에서부터 내가 따라온 사람 역시 그일 것이다. 기완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목심은 묘란이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이곳에서 오랫동안 해온 셈이었다.

- 하지만 나는 해냈어요. 섭이여…

죽기 전에 백은호에게 속삭이던 묘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 내 언니들이 한 것처럼 나도 해냈어요. 천왕의 규칙에서 벗어난 인간을 내 손으로 만드…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천왕의 규칙에서 벗어난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세계의 규칙을 비틀고 살아있는 것들을 희생했었다.

“둘째 사부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는 아이들이 옛날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기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무서웠던 것 같다. 둘째 사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그 아이들을 보고 다시 느꼈었다. 내가 모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를 본 그런 느낌이었다. 둘째 사부에게 따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모란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아, 기완이 모란을 내보내 준 거였구나.

“그럼 모란은…?”

규한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것도 기완이 한 일일까? 그러나 기완은 고개를 저었다.

“모란은 기차에 태워 보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착하면 그 도시를 벗어나지 말라고 말했고, 윤문에서 아직 못 찾고 있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고 있는 거겠지.”

그 도시가 어디인데? 내 질문에 그가 나를 힐끗 보았다.

“윤문은 전국의 산신에게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이지. 그러니 윤문이 건드릴 수 없는 데가 있다면 단 한 곳뿐이지 않겠나.”

어…? 그런 거였어? 내가 사는 곳으로 보낸 거였잖아. 저번에 수호 녀석의 일로 윤문은 그쪽의 산군에게 단단히 미움을 받고 있으니까. 그럼 규한이라는 사람도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뜻이고.

모란이라는 아이가 윤문의 추적에서 안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백은호가 의외로 빨리 내 사정을 알아차리고 이리 오게 된 것은 정말로 모란이나 규한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백은호와 잠시 통화했을 때 정보를 교환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백은호 녀석, 지금쯤 엄청 화내고 있겠지. 그렇다고 설마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도사나 사냥꾼과는 상성이 안 좋으니까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었고. 기완의 말대로라면 들어오고 싶어도 마음대로 들어올 수도 없을 테고.

결계의 바깥 어디쯤에선가 짜증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백은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란을 보내놓고 주의를 돌려보려고 쇼를 좀 했지만, 그것도 며칠밖에는 안 통했다. 들키자마자 곧장 둘째 사부에게 끌려갔지.”

지하실에서 기완이 보았다던 아이들에 대해 더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 순간 건물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였다. 그 다음에는 조용했지만 기완은 귀를 쫑긋거리며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호랑이는 야행성이니까 기완도 밤눈이 밝을까? 여우인 백은호처럼 냄새를 맡거나 귀로 듣는 것도 인간보다 뛰어날지 모른다. 부러워하며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가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나 숨소리도 안 내고 있다고. 설마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심장을 멈추게 할 수는 없잖냐.

기완은 한참동안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눈에 정말로 뭐가 보이는 건지, 아니면 집중하느라 꼼짝 않고 있는 건지 모르는 채로 시간이 흘렀다. 거의 한 시간쯤은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도 죽이고 있느라 온몸이 저렸다.

기완은 건물 쪽을 노려보던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잠시 후 눈을 뜨더니 말했다.

“숨소리로 보아 잠든 것 같다.”

정말 그런 것까지 들려? 집안에서 잠자는 사람의 숨소리가? 나는 어디로 봐도 인간의 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기완의 귀를 힐끔거렸다. 저런 모양의 귀를 하고서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거야?

기완이 몸을 일으켰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넘게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으면서 나무 사이로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고양이처럼 가볍고 날렵했다. 발소리조차 없다. 뒤따라가는 내가 풀잎을 밟으며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자 그가 힐끗 돌아보았다.

나는 인간이라서 말입니다. 뭘 밟으면 소리가 나거든요. 어쩌라고. 캄캄해서 발밑이 보이지도 않는데. 게다가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해서 지금 걸을 때마다 발이 막 저리고 관절이 아프고 그러거든요?

기완은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 얼굴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포기한 것 같다.

우리는 산비탈을 내려가 건물 오른쪽 벽에 바짝 붙었다. 시간이 늦어서 이제 불이 켜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멀리 있는 가로등만 달처럼 빛났다. 기완이 손짓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우리가 들어갈 건물은 ㄱ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한옥 양식이었다. 대청마루 안쪽으로 여러 개의 문이 있고 옛날이라면 부엌이 있을 법한 자리에 유리가 달린 미닫이문이 있었다. 기완이 그 문을 가리켰다. 거기가 치료소였다.

레일이 달린 미닫이문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입구 쪽에 소파 하나와 간이침대 네 개가 있었고 안쪽에는 마루가 있었다. 서랍이 백 개는 될 것 같은 약장과 여러 가지 도구들을 얹어놓은 선반 등, 겉보기만으로는 오래된 한의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 줄곧 느끼고 있던 결계의 기운이, 건물 안에 들어서자 더욱 조밀하고 무겁게 나를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물을 이중으로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기완은 마루 위로 올라가더니 서랍 많은 약장 앞에서 뭔가를 찾았다. 그러더니 어느새 삐죽이 길어진 손톱을 서랍 사이로 찔러 넣었다. 약장이 약간 흔들렸다가 천천히 반으로 쪼개졌다. 정확히는 본래 두 개였던 약장 중 하나가 옆으로 밀려가는 것이지만.

밀려난 약장 뒤에서 차가운 철문이 드러났다. 그것을 다시 밀어젖히자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나타난다. 아래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기완의 등이 단단하게 굳었다.

“효정이만 찾으면 바로 나간다.”

계단을 내려다보며 기완이 말했다. 다짐하는듯한 말투였다. 물론 안효정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적진 한가운데라고 생각되는 이런 곳에서 그 이상 뭘 하려는 생각은 나도 없었다.

기완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움직일 때는 고양이과 맹수처럼 유연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그였지만, 어쩐지 앞서 걷는 그의 뒷모습이 지금까지와 달리 딱딱해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기완에게 여기 갇혔을 때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완의 행색을 봐서는, 일단 들어가면 곱게 나갈 수는 없지 싶다.

계단 아래쪽에서는 약하지만 불빛이 보였다. 내려가자 치료소와 비슷한 넓이의 공간이 나타났다. 거기에 기분 나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로 짠 사각형의 널판 위에 비쩍 마른 아이들이 누워있다. 모두 열세 명. 염목도의 별장에서 본 것과 같은 미라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 여윈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주변에는 별장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들이 널렸고 머리맡에 하나씩 촛불이 켜져 노란 불꽃이 너울거렸다.

공기는 눅눅했다. 기름 타는 냄새와 향냄새가 섞여 풍겨온다. 바닥은 흙과 검은 얼룩과 뭔지 모를 파편들로 지저분했다.

기완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아이들에게 손대지 말라는 뜻이다.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이 아이들을 깨울 생각은 나도 없지만, 비쩍 마른 몸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가엾기는 했다.

기완은 조용히 방을 가로질러 계단 반대편에 있는 문으로 갔다. 약간 녹이 슨 두꺼운 철문이었다. 얼굴 높이에 작은 유리창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완은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더니 손잡이를 잡고 조심히 돌렸다.

거기에는 다시 방이 하나. 아이들이 누워있던 장소의 절반쯤 되는 넓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눅눅한 공기가 땀 냄새와 함께 훅 풍겼다. 기완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밤눈이 밝은 그에게는 방의 구석에 구겨지듯 쓰러져 있는 안효정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나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뒤늦게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냐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여기 없다. 안효정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기완보다도 엉망이었다. 부어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얼굴이나, 몸 여기저기의 상처와 핏자국으로 험상궂었다.

“정신을 약화시키려면 먼저 몸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지.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기완이 안효정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나도 여기에서 나흘쯤 당하고 나니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빌고 싶어지더군. 효정이는 괜찮다. 뼈나 내장을 상하게 하지는 않으니까.”

기완이 말했지만 전혀 괜찮게 안 보였다. 여자를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아냐. 붓고 멍들고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안효정이 아니었다. 기완은 재빨리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멨다. 말한 대로 안효정을 찾았으니 나가야 했다.

그런데 걱정한 것 치고는 너무 쉽지 않나. 장소가 비밀스럽다고 해도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면서 지키는 사람도 하나 없고. 문도 잠겨있지 않고. 그야 태령 윤문의 본가에 숨어들어 오는 사람이 흔할 리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서려는데 앞서 가던 기완이 우뚝 선다.

입이 방정이라는 말이 있었지. 이 경우에는 생각이 방정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쉽다고 괜히 생각했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갈걸. 과연 이래서 지키는 사람이 없었던 거로구만.

문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올 때 조용히 자고 있던 그 아이들이었다. 촛불의 불빛 속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노랗게 번들거렸다. 표정 없는 얼굴이 묘란의 품에 안겨 있던 별장 노인의 아들을 연상시켰다.

‘그는 이제 안전하다’고 들었던 것 같지만, 정말일까? 이 아이들을 보니 의심스러웠다. 우리를 발견한 아이들의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있었다.

본능적이고 단순한 욕구였다. 그것을 담은 표정이 이글거리며 번졌다. 나를, 기완을, 안효정을 바라보며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원하고 있었다. 먹고 싶어. 라고.

“길을 뚫어!”

기완이 나직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으로 변해있었다. 목소리뿐이 아니다. 우드득 늘어나는 몸을 보며 아이들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배고파. 배고파. 목을 통해 나오지 않은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가장 앞에 있던 아이들이 달려들 기색을 보이는 순간 내가 먼저 움직였다. 아이를 때릴 수 없으니 밀어붙였다. 설마 보통 인간과는 다르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상당히 힘을 뺀 채 부딪쳤지만 되받아친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마터면 뒤로 밀려날 뻔하며 쓸어 담듯이 밀어낸 순간 기완이 잠시 생긴 틈을 타고 포위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한 명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도약하여 우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간신히 따라잡아 녀석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그 틈에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몇 명은 내게 달라붙어 팔과 다리에 이빨을 세우고 나머지는 기완에게 달려들었다.

“크헝!”

뱃속까지 울릴 것 같은 포효와 함께 기완이 아이들을 확 떨쳐냈다. 나도 이빨이 박히지 않아 당황하는 아이들을 떨쳐내고 뒤따라 계단으로 뛰어갔다. 막 첫 번째 계단을 밟은 순간 머리 위에서 쾅 하고 무거운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어?

계단위로 뛰어올라가서야 그것이 비밀문이 닫히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을 닫아버렸어? 기완의 행동에 어이없어할 시간도 없이 아이들이 다시 달라붙었다. 아이들이라지만 열세 명이었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다시 계단 아래로 끌려내려가 버렸다.

아이들이 굶주린 얼굴로 나를 물어뜯으려 들었지만 그런 것보다 여기에 갇혀버렸다는 것이 더 문제다. 기완 이자식! 나를 미끼로 사용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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