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96화 (96/218)

신데렐라(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신발이 한 짝만 사라진다?

“자기 전에 문단속을 하니까 집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찾아보면 별 곳에서 다 나와요. 서랍 속이나 장롱 위는 예사고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거나 심지어는 컴퓨터 본체 안에서 나온 적도 있어요.”

거긴 쥐도 들어가기 힘들 텐데요…

오히려 쥐가 다섯 마리쯤 살아도 넉넉할 것 같은 크기의 운동화가 컴퓨터 본체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지.

“잃어버린 줄 알고 새로 산 게 몇 번인지 몰라요. 나중에는 아예 이렇게 운동화 끈으로 서로 묶어 놓았거든요. 그랬더니 다른 한 쪽을 매달고 돌아다녀서, 자정마다 이놈의 신발들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쿵쿵거리는 바람에 놀란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아…그건 정말 곤란하겠다. 밤중에 신발 한 짝이 폴짝폴짝, 매달린 신발 한 짝은 쿵쿵…. 음, 웃기기는 한데.

그런데 사실 운동화가 멋대로 돌아다닌다거나 하면 나야 우습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일 아닌가? 그런데 설명을 하는 수영이 엄마는 무섭다기보다 짜증이 나는 표정이었다.

새삼 확인해 봤지만 특별한 구석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같은 수준의 기운을 가진 아니, 오히려 좀 약한가. 기운의 흐르는 모양이라든가 그 빛이 탁한 것을 보면 어머니,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시고 운동 좀 하셔야겠어요. 게다가 마른 비만이신 것 같은데요.

“듣고 계시는 거죠?”

잠시 기운을 읽으며 한 눈 팔고 있던 나에게 수영이 엄마가 날카롭게 물었다.

“예!”

어쩐지 이 분 무서워.

내 대답에 수영이 엄마가 생긋 웃었다. 조금 전의 날카로웠던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화사한 표정이 된다. 그러니까 더 무서워.

“그래서 아예 자정이 되기 전에 못 움직이게 묶어 놓으면 또 얼마나 발버둥을 치는지. 달래도 보고, 때려도 보고, 앞에 놓고 한 시간 동안 잔소리도 해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저기, 보통 그런 건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는 거 아닌가요? 이건 아이들이 아니고 아이의 신발들인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사장님께 가져온 거예요.”

마치 말 안 듣는 강아지 좀 훈련시켜달라고 찾아온 것 같다. 뭐, 겁먹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수영이 녀석도 도깨비를 쫓아다닐 정도로 겁이 없더니 그건 엄마에게 물려받은 기질인가.

“그러셨군요. 저는 이걸 좀 살펴볼게요.”

자정만 되면 한 짝이 도망간다는 신발들을 확인하는 게 먼저겠지. 내가 운동화들을 확인하는 동안 유하가 음료를 가지고 와서 작업 선반에 내려놓았다.

유하가 드물게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다른 손님들과 달리 금세 3층으로 가지 않고 잠시 머물러서 수영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을 얼핏 들으니 평소에도 이따금 마주치곤 하는 사이 같았다. 근처 마켓의 세일하는 품목이나 요 앞 천변에서 무료로 가르치는 에어로빅 강습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저러고 있으니까 유하도 평범한 여자처럼 보이잖아. 도깨비나 여우요괴 같은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삶을 살면서. 그러고 보니 수영이 엄마는 유하를 ‘새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같은 건물에서 젊은 남녀가 몇 년씩이나 함께 살고 있으면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유하도 굳이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는다.

나중에 이상한 소문나서 애인에게 오해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먹을 것이 나오자 어디선가 수영이 녀석이 귀신같이 나타나서 음료수 컵을 덥석 잡았다. 혹시 너한테는 음식을 감지하는 능력 같은 게 있는 거냐?

수영이 엄마는 딸을 보자 수다를 떨다 말고 단추를 목 위까지 모두 채우지 말라든가 머리를 묶으라든가 하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수영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익숙한지 대충 대꾸하며 먹는데 열중한다.

“머리는 언제 감았어? 너는 땀도 많이 나잖아. 자주 감아줘야 한다고.”

“아아, 귀찮아. 내일 감을래요.”

“정말? 그래도 괜찮아? 수영이 머리카락 속에서 자라고 있는 세균들이 점점 번식해서 우글우글 해질 거야. 그리고 부족국가를 건설하겠지. 살모넬라균 부족이라든가, 리스테리아균 부족이라든가, 포도상규군 부족이라든가. 그리고 부족끼리 서로 싸우다 하나로 통일 되어서 살모넬라균이 왕이 되는 거야. 오오, 그거 괜찮은데. 그럼 왕국의 병균들이 대지모신(大地母神)인 수영이를 숭배하겠지. 신전도 세우고 제물도 바치고…”

“엄마, 판타지 소설을 끊으세요.”

수영이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어머니, 저도 그런 식으로 설득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운동화는 어때 보여요?”

한 눈 팔고 있을 때만 날카로워지는 수영이 엄마의 질문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예! 뭐…별로 이상한 건 없는데요.”

재빨리 대답했다. 대충 살펴보기는 했지만 이상한 게 없는 건 사실이다. 운동화들은 그냥 평범한 신발에 불과했다. 뭐가 깃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고.

“자정에 사라지는 신발은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이었어요?”

“글쎄요. 일정한 것 같지 않아요. 처음에는 사라지는 쪽 신발이 정해진 줄 알고 하나만 묶어놓았는데 그랬더니 다른 쪽 신발이 도망가더라고요. 그래서 두 개를 모두 붙잡으니까 다른 신발이 도망가고….”

그럼 신발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발을 움직이는 어떤 녀석이 따로 있다는 거겠지?

“도망가는 신발은 항상 하나뿐이라는 거네요?”

내 물음에 수영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이의 신발만 사라지는 건가요?”

“그렇죠.”

특정한 사람의 신발만을 탐내는 요괴가 있던가? 음, 앙괭이가 신발을 신고 간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녀석은 일 년에 하루뿐이잖아. 그것도 정월에나 하는 짓이고.

야광귀라고도 불리는 앙괭이는 정월이면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제 발에 맞는 신이 있으면 그것을 신고 가버린다고 한다. 앙괭이에게 신발을 뺏긴 사람은 일 년 내내 운수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날은 밤이 되면 신발을 모두 방안에 감추거나 뒤집어서 놓고, 밖에는 체를 걸어두었다.

앙괭이는 구멍을 보면 세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체를 보면 날이 밝도록 구멍을 세다 신발 신는 걸 잊어버린다나.

하지만 지금은 10월이고 음력으로도 9월 중순이다. 정월에 나돌아 다니는 앙괭이가 아직까지 있을 리는 없고….

“수영이의 신발은 이게 전부인가요?”

“슬리퍼가 한 켤레 있는데 아직 사라진 짝을 못 찾았어요.”

“그럼 그것도 가져와 주시겠어요? 일단 여기에 신발들을 모두 두고 오늘밤 지켜보기로 하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수영이 엄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녀는 머리 감는 문제로 옥신각신 하며 수리점을 나갔다. 주거니 받거니 실랑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래 모녀는 다 저런 건가? 아니면 저들이 특이한 걸까. 문밖으로 멀어지는 목소리를 듣다 문득 보니 유하도 같은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모녀의 모습을 보니 어머니가 생각나는 걸까. 그녀에게도 어머니가 있겠지. 부모나 형제가. 당연한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아아, 그녀도 가족이 있겠구나.

내게는 없는…아니, 있었을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어쩐지 서운하다. 그녀에게 가족이 있어서 서운하다니 이기적이네. 내 한심한 마음을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끔 나는, 그녀가 사실은 다정한 성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보통은 무심하고 이따금 차갑지만 그건 내가 한심한 짓을 하고 있을 때고. 다른 사람이나 혹은, 아주 가끔 내게 그녀는 놀랄 만큼 부드러운 얼굴을 하곤 한다.

두근두근 설렐 정도로.

그래서 조금 넋이 나간 것 같다. 아니면 잠이 부족해서 정신줄을 놓친 건가.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뻗어서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입을 맞췄다.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눌렸다가 도로 부풀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달콤한 숨결이 뺨을 간질였다. 모든 감각이 촉각과 후각에만 집중된 것 같았다. 입술에서, 닿을락 말락 가까운 볼에서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아저씨, 슬리퍼요!”

언제나의 습관대로 문을 쾅 열면서 수영이가 뛰어들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번개같이 구석으로 몸을 숨겼고 유하는 아무렇지 않게 빈 잔을 챙겨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저씨 거기서 뭐해요? 꼭 나 올 때마다 구석에 계시더라.”

너 말고 누가 올 때나 여기 있거든.

슬리퍼를 선반에 휙 던진 수영이 녀석이 나를 보더니 눈을 깜박였다.

“아저씨, 얼굴이 완전 빨개요. 어디 아파요? 음…아니면…”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하더니 녀석이 알았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핸드폰으로 야한 거 보고 있었구나.”

아니거든! 네 오빠랑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란 말이다!

“괜찮아요. 엄마가 그러는데 성장기 남성의 정상적인 과정이래요.”

난 이미 다 컸어요. 그리고 볼일 끝났으면 좀 가줄래? 여중생에게 남성의 성장과정 같은 거 배울 생각 없거든?

수영이 녀석은 이야깃거리를 얻어 뿌듯한 얼굴로 작업장에서 나갔다. 녀석이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갑자기 현실로 돌아왔다.

아아…망했다.

‘미친 거야.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 나갔지? 왜…’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모두 기억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닿는 순간 조금 뭉개졌다가 따뜻한 숨을 내쉬던 입술이 선연했다.

왜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을까. 놀라서 당황한 걸까. 그렇더라도 지금쯤은 화가 나 있겠지? 아니면 혹시 무서워하는 걸까?

종횡으로 날뛰던 생각이 멈칫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무서워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에 비하면 분명히 요괴에 가까울 정도로 비정상이니까 평범치 않은 그녀라도 두려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한심해 하거나 나무라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나와 감정이 상할 정도로 다툰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럴만한 일이 생겨도 피하는 게 아닐까.

어째서 저런 여자가 나와 함께 있는 걸까 수없이 궁금했었다.

실은 싫지만 같이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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