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1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붉고 길고 얇으며 끝이 둘로 갈라진 모양. 말할 것도 없이 뱀의 것인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묘란이 몸을 일으켰다. 인간과 같은 상체는 전체에 비하면 고작 10분의 1 정도일 뿐이다. 그 길고 위험한 몸을 둥글게 도사려 버티며 인간인 상체는 우리보다 훨씬 위에서 흔들흔들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상체만으로 보면 공중을 날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천장까지는 적어도 5미터. 부잣집답게 크게도 지어놨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상황이 되자 뱀의 몸인 그녀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스으읏 - 스읏 -
듣기만 해도 오싹한 소리로 위협하며 묘란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다. 느린 속도였지만 구불구불 움직이는 그 모습은 독 오른 뱀처럼 위협적인 데가 있었다.
묘란이 다가오는데도 안효정은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스스로 무기는 소용이 없다고 말했으면서 팔을 당겨 올린다. 칼로 찌르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였다. 묘란을 노려보며 굳은 얼굴이 긴장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가오던 묘란이 상체를 조금 뒤로 당겼다. 공격 직전이었다.
팡 - !
작은 북을 두드린 것 같은 소리가 안효정의 코앞에서 울렸다. 조금 전까지 3미터는 떨어져 있던 묘란이 그녀의 코앞에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을 속도다. 번개처럼 들이닥쳤다가 팔로 얼굴을 가리며 멈춰 있었다.
‘빨라. 백은호 이상일지도 몰라.’
뱀의 공격을 연상시키는 날카롭고 매서운 속도였다. 그 공격을 막아낸 것은 추기영의 주먹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먹으로 쏘듯이 내보낸 기운이라고 해야겠지. 별장 밖에서 원강을 데리고 들어올 때 짐승을 닮은 요괴를 밀어냈던 때와 같았다. 몇 걸음이나 떨어진 채로 닿을 리 없는 공간을 공격한 것이다.
“이쪽은 상관없구만. 어차피 가진 거라고는 맨주먹뿐이니.”
씩 웃으며 그가 묘란에게 말했다. 추기영의 공격을 팔로 막아낸 묘란이 엇갈린 팔목 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독 오른 눈이다. 그 눈으로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고작 설익은 선객(仙客) 나부랭이. 주제에 나를 상대하겠다고?]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번뜩, 묘란이 움직였다. 긴 몸을 화살처럼 날려 추기영을 향하는 것을 보고 안효정이 칼 든 손을 휘둘렀다. 무기로 공격하면 더 강해진다며?!
하얀 칼날이 묘란의 허리에 푹 꽂혔다. 칼을 꽂는 안효정의 동작도 빨랐지만 묘란은 더욱 빨랐다.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안효정이 칼을 놓쳤다. 추기영이 한 번 더 아까와 같은 공격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감탄스러운 속도로 몸을 틀어 묘란이 피해버린 것이다.
묘란은 허리에 칼을 꽂은 채로 추기영을 휘감았다. 그 긴 몸통은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욱 굵어진 것 같다. 휘감은 몸통이 추기영을 조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단번에 온몸의 뼈를 부수고 어긋나게 만들었을 힘이었다. 추기영이 팔을 벌려 조여드는 몸통을 버텼지만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을 겨우 막고 있을 뿐이다.
[고작 몇 십 년을 산 인간 따위가!]
달콤했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그 목소리가 나오는 입은 위아래로 쩍 벌어져 유독 뾰족하게 튀어나온 독니와 붉은 입천장을 드러내보였다. 그 흉악한 입을 노리고 안효정이 던진 의자가 날아갔으나 묘란의 손짓 한 번에 산산이 부서졌다.
그 순간 나는 묘란의 뒤에 있었다. 벽을 한 차례 밟고 돌려 찬 발이 묘란의 뒤통수에 확실히 닿았다. 기운을 실은 발등이 묘란의 요기와 충돌했다. 충돌의 충격이 발을 타고 골반까지 쩡 울렸다.
내 공격에 요란의 몸통이 잠깐 풀어진 사이, 추기영은 빠져나가는 대신 그녀의 복부로 공격을 가했다. 귀목에게서 빠져나갈 때 한 번 경험했던 기운의 파도가 묘란의 몸통을 뚫고 내게까지 전해졌다.
긴 뱀의 몸이 풀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효정이 달려들었으나 밧줄처럼 땅에 흩어졌던 묘란의 긴 몸이 순식간에 다시 그녀를 휘감았다. 아니 휘감으려고 했다.
둥근 몸통이 감아 도는 순간 안효정은 요가와 같은 동작으로 몸을 휘어 빠져나갔다. 어느새 꺼냈는지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이 한 번 더 번득였다. 칼날은 비늘 사이를 파고들어 얕은 상처를 냈다.
묘란이 몸통을 흔들어 단번에 안효정을 칼과 함께 튕겨냈다. 요사한 웃음이 쩍 벌린 입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소용없다고, 네 입으로 말했으렷다. 오히려 나를 더욱 크고 강하게 만들고 있지 않으냐!]
말하는 묘란은 정말로 조금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그 긴 몸통은 이제 거의 한 아름이나 되어 보였다. 5미터나 되는 천장이 낮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안효정을 쳐다보았다.
수일이참대. 무기로 공격해서는 안 되는 요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 번이나 칼질을 한 것은 실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긴장하고 있는지 몰라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거 말도 많구만!”
추기영이 커진 몸통에 달려들어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빠르고 정교하지만 기운도 별로 실려 있지 않고, 요괴에게는 안마나 다름없을 것 같은 주먹질이었다. 어…?
묘란이 귀찮은 듯 몸을 틀어 그를 튕겨냈으나 추기영은 재빠르게 피했다. 호오. 피했다는 말이지. 아니 사실은 묘란 쪽이 느려졌다는 거겠지만.
그것을 묘란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자신만만하던 얼굴이 차갑게 굳고 있었다. 그녀가 꿈틀거리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이…이…]
사람의 모양을 아직 유지하고 있던 묘란의 상체에까지 짙푸른 비늘이 우둘우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허리와 가슴, 팔은 물론 얼굴에까지. 붉은 입술이 자줏빛으로 짙어지고 눈자위가 노랗게 물들었다. 그 안에서 까만 홍채가 세로로 곤두섰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푸르스름해진 얼굴로 묘란이 외쳤다. 대답한 사람은 안효정이었다.
“밖으로부터 공격할 수 없다면 안에서.”
그녀의 시선이, 아직 묘란의 허리에 꽂혀있는 단검에 닿았다. 묘란이 제 몸에서 칼을 확 뽑았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요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독니로군…]
묘란의 피로 얼룩진 칼날의 끝은 뾰족했으나,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피가 묻자 그 구멍이 선명하게 보였다.
“너와 같은 독이다.”
대답하는 안효정의 목소리가 약간 떨고 있었다.
[묘영의 피로군. 과연 묘영의 피로다.]
꿈틀꿈틀 묘란이 점점 뒤로 물러났다. 파르스름한 얼굴에 분노와 당황과 비웃음이 섞여 복잡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러나던 그녀의 몸이 갑자기 침대 위의 남자를 휘감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천장으로 치솟았다. 쾅 소리를 내며 천장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뚫렸다. 천장을 이루는 나무 합판과 석고 따위의 조각을 우수수 떨어뜨리며 묘란은 빨려 들어가듯 구멍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녀의 큰 몸이 올라가자 천장이 묵직하니 휘었다가 한 번 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더 단단한 재질의 조각들이 쏟아졌다.
“도망친 건가?”
추기영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다행이에요. 제 독은 아직 약해서 효과가 얼마 안 갔을 거예요.”
그녀는 묘란이 떨어뜨린 자신의 칼을 회수해서 재빨리 허리춤에 챙겨 넣었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듯했다.
“그 사람은 누굴까요?”
묘란이 달아나자며 데려간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말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화제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우리가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인형처럼 멍하니 있었다. 다른 희생자들과 달랐다. 눈을 깜박거리는 걸 보면 깨어있는데,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묘란의 요기와 닮은 기운이 그 안에서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모르겠는걸. 그뿐 아니라 아래층에도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닐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요괴들이 물러 가는구만.”
추기영의 말이 아니라도 우리 역시 느끼고 있었다. 저택을 에워싸고 있던 수많은 요괴들이 하나둘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면 이쪽으로 다가오는 요기도 있었다.
“묘란을 놓치신 겁니까?”
서늘한 요기를 흩뿌리며 다가온 백은호가 우리를 훑어보며 물었다. 물었다기보다 나무란 거지만.
저 잘난체하는 백은호도 꽤 고전했는지 단정했던 청록색 슈트가 흐트러지고 찢기거나 구겨진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다.
“너도 별로 쉬웠던 것 같지는 않은데.”
“뜻밖의 방해꾼이 있어서 말입니다.”
백은호가 투덜거렸다.
“미안하게 되었군. 아무래도 요괴는 다 똑같이 보여서 말이야.”
그의 뒤에서 다가온 원강이 별로 미안한 것 같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보아하니 둘은 호흡이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이 방에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묘란이 그를 데리고 도망갔어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묘란에게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 남자에 관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1층에 있더군.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지.”
원강이 말했다. 둘은 요괴들을 물리치기 바쁜 줄 알았는데 1층에 있던 사람들도 챙기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2층으로 갔다. 우리가 묵었던 방마다 한 명씩 사람의 생기가 약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여기에 사람을 데려다 놓았나 생각했지만 문을 열어보니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기운은 느껴지는데.
그 기운을 따라간 우리는 침대 앞에서 멈추었다. 추기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대의 커버를 휙 당겼다. 이불과 함께 커버가 벗겨지고 매트가 드러나자 그것도 들어서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매트 아래쪽은 평평한 나무판자가 대어져 있었다.
안효정이 허리춤에서 쇠로 만들어진 단검을 꺼내더니 칼끝으로 판자 가장자리를 따라 훑었다. 중간쯤에서 달칵 소리를 내며 판자가 움직였다. 관 뚜껑 같이 무거운 판자를 벗겨내자 그 아래에는 미라와 다름없이 바짝 말라붙은 사람이 있었다.
코를 막고 싶은 악취와 후끈한 열기가 함께 올라왔다. 사방의 나무 벽에도 말라붙은 팔다리에도 검붉은 색으로 알 수 없는 글자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어.”
“꺼내면 안 됩니다. 묘란의 기운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미라 같은 사람에게 팔을 뻗는 추기영을 향해 백은호가 말했다. 추기영이 백은호의 말을 듣고 원강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사람의 정기를 뽑아내는 수법이네. 최근에 당한 사람은 괜찮겠지만 오래 전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이미 위험해져서, 여기에서 꺼내면 곧 죽을 걸세.”
침대 아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그럼 내 방에도? 어젯밤 잠들어 있을 때 내 아래에서는 희생자가 요괴에게 정기를 빨리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오싹해졌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안효정도 질린 얼굴로 파르르 떨었다.
“다른 방도 확인해 보자고.”
추기영이 말하며 먼저 뛰어나갔다. 사람들과 함께 방을 나가려는데 안효정이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도령, 아까 그거. 청단애기님을 깨웠던 거, 도령이죠?”
묻는 그녀의 표정이 진지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느꼈어요. 도령이 한 거예요. 그렇죠?”
청단애기가 깨어날 때의 일이라면, 나도 모른다. 가여운 마음이 들었고, 무사히 깨어나기를 바라기는 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순이 넘었을 할머니를 어린아이처럼 쓰다듬어 줬던 것이 나 자신의 의지였는지도 사실 확실치 않았다.
뭣 땜에 그런 행동을 했담. 그런 생각도 조금 들었었다. 모르겠으니 대답할 말도 없었다. 실없이 웃는 수밖에.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내가 한 거라면, 다시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침대 밑 공간에 누워있는 미라 같은 사람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삭바삭 말라붙어서 부서질 것만 같은 그 사람을 내려다보며 나는 바랐다.
가능하다면 좋겠다.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홀로 말라 비틀어져 가는 일은 정말로 비참하다. 그것만은 싫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내 이름을 부르고 나를 향해 걸어왔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울지 말고…
잘그락 잘그락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이리로 왔으면 좋겠다.
- 도령.
목소리가 들렸다.
“도령.”
한 번 더 들렸다. 바로 옆에서 귀를 울리는 목소리였다. 돌아보자 거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까만 머리카락을 땋아서 붉은 댕기를 물리고 연두색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잘 아는 사람인데, 어쩐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을 이끌어 미라 같은 사람의 몸 위로 가져갔다. 손바닥에 메마르고 서늘한 피부가 닿았다.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사람을 낫게 할 수 있었다.
말라붙은 몸을 살찌우고, 혈관 안에서 피를 돌게 하고, 깨끗한 숨을 들이쉬어 기운이 흐르게 할 수 있었다. 혈색이 도는 볼로 웃고 맑은 눈을 떠서 나를 보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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