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59화 (59/218)

보낼 수 없는(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제 어쩌면 좋나.”

남자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나자 박선생이 내게 물었다. 나도 고민하고 있었다. 직접 만나봤지만 위험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별 일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기에는 걸리는 데가 있었다.

“일단 집에 돌아가 있어. 나는 백은호를 찾아볼 테니까. 그 녀석에게 들을 이야기도 있고.”

뭔지 작은 조각 하나를 찾아내더니 휭 하니 사라진 백은호 녀석은 분명 아는 게 있었다. 비늘. 물고기 비늘 같이 보였던 그것. 뭐였을까?

물고기 비늘이라기에는 본 적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 감돌았다. 박선생이 이무기라 의심하고 있으니 뱀의 비늘인가 싶어도 그런 묘한 색의 뱀이 있을 리가 없다. 음…이무기가 되면 비늘이 예뻐지나?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는 것 같은데.

박선생을 보내놓고 나는 지금까지와 달리 빠른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가로질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산양처럼 뛰어 백은호가 갔음직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상여봉에서 북쪽 비탈진 곳에 움막이 있었으니 그 아래 계곡에서부터 백은호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멀리 보이는 상여봉 꼭대기에서 움막의 위치를 어림짐작으로 가늠해 계곡을 따라 달리자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온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우거진 수풀과 나무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요새 계속 맑은 날씨였는데도 물살이 좋았다. 움막의 남자가 사용하는 식수는 이 계곡의 물인지도 모르겠다.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맛보니 박선생의 칭찬은 사실이었다. 정수기 물이나 판매용 생수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어…?”

물속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졸졸 흐르는 물길을 따라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유심히 지켜보자 손톱만한 크기의 작고 얇은 조각이었다. 백은호가 찾았던 그것과 비슷했다.

물속으로 손을 넣어 잡으려고 했지만 워낙에 작고 가벼운데다 물살도 제법 세서 앗 하는 사이에 물과 함께 넘쳐 손을 벗어나 버렸다. 비늘은 물을 따라 멀리 흘러갔다. 백은호 녀석이 버린 건가. 아니면 물가 어디쯤에 이런 비늘 같은 꽃잎이 달린 이상한 나무라도 자라는 건가.

못 잡은 비늘을 아쉬워하며 일어선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움칫 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흘러간 비늘이, 아니 그것과 같은 모양의 비늘이 수십 개나 더 흘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굽이 흐르는 물을 타고 오색의 아름다운 빛을 반짝이며, 비늘들이 무수히 떠 내려왔다. 나는 그것을 잡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비늘이 몽땅 빠질 일이라는 게…’

내 의문에 대답하듯이, 계곡 위쪽으로부터 힘의 파문이 밀려왔다. 익숙하고도 요사한 기운이었다. 그것이 살갗을 훑고 지나가자 등이 서늘해졌다.

‘백은호!’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물을 따라 달렸다. 계곡을 거슬러 달리자 한 번 더 비늘이, 그리고 이번에는 흙탕물과 함께 불그스레한 것이 섞여 내려왔다. 가까운 곳에서 한 차례 더 힘의 파문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더 강하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힘이 맞부딪친 여파에 근처의 나무들이 우우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미 여러 번 겪은 적 있는 여우 요괴의 요사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과 어우러져 춤추듯 흔들리던 또 다른 기운이 확 퍼졌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저기다!’

바위와 나무로 가려진 계곡 안쪽이었다. 거기에 집 한 채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웅덩이가 있었다. 다가가자 물비린내에 쇠비린내가 섞여 풍겼다.

물가에 백은호가 서 있었다. 그의 청회색 슈트에 얼룩진 붉은 자국이 보였다. 물감이 듬뿍 묻은 붓을 가지고 뿌려버린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의 피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길게 돋아난 손톱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자 오싹해졌다.

“백은호!”

달려가며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발밑에 널브러진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되 사람은 아닌 어떤 것이었다.

어린아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몸이었다. 물에 반쯤 잠겨 뒷모습을 보이며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사람처럼 보였다. 흰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하지만 옷 밖으로 드러난 팔과 다리는 오색으로 영롱한 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기묘한 몸으로부터 붉은 피가 실처럼 흘러나와 웅덩이를 물들였다.

늘어져 있던 백은호의 손끝이 흔들렸다. 목을 노린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거기에 대한 내 반응은 하나뿐이었다.

몸 아래에서 물보라가 쳤다. 나 역시 반쯤 물에 잠긴 채로 온 몸이 젖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백은호의 손톱이 내 가슴 앞에서 멈춰 있었다. 내가 빨라서가 아니다. 슬라이딩 하듯 그와 물에 잠긴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처음 움직인 시점에서 이미 늦어있었다. 백은호의 손톱이 멈춘 것은 막으려고 한 내 의도를 그가 존중해줬기 때문이다.

“뭡니까.”

방해 받아 짜증난 얼굴로 그가 물었다.

뭐냐고 묻는 것부터가 잘못 되었잖아. 그럼 눈앞에서 사람처럼 생긴 것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겠어?

“이 사람. 아니…이거…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일 셈이야? 무슨 짓이야? 지금.”

“죽일 생각입니다.”

태연히 대답하는 여우요괴의 눈이 번득이고 있었다. 아직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변했다. 굵은 손가락마디에서 튀어나온 손톱과 날카로운 송곳니, 색이 연해진 머리카락 같은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래 산 짐승의 요기가 서리서리 맺힌 눈으로 물에 잠긴 것의 뒷모습을 집어삼킬 듯이 노려본다. 굶주린 것 같기도 하고 취한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붉은 혀로 송곳니를 핥으며 그가 손을 거두어들였다. 공격을 취소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다음번 공격을 위한 행동이었다.

“비켜주시지요.”

“무슨 일인지 먼저 설명해 줘!”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차가운 대답이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뒤, 물에 잠겨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서부터는 요괴와 요괴 사이의 문제다.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우리 사이에는 그런 묵계가 있었다. 사람이 관련되면 내 결정이, 요괴끼리의 일은 백은호의 결정이 먼저였다.

가끔 내가 고집을 부리면 그가 양보해주는 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랬다. 무엇보다 요괴들의 일은 그가 나보다 잘 알았고 나 역시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번만은 내가 고집을 부려도 양보할 것 같지 않았다. 백은호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평소와 달랐다. 그리고 그래서,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

“용원아!”

째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눈을 하고 있던 백은호조차 힐끗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비통한 외침이었다. 계곡 위쪽의 비탈을 따라 움막의 남자가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비탈의 각도를 생각 않고 훌쩍 뛴 발이 제대로 바닥을 딛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남자는 비탈 아래로 서너 바퀴나 굴러버렸다.

“용원아! 용원아!”

구르며 부딪친 몸에 생긴 상처도 아랑곳 않고 남자가 절룩이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남자는 물에 엎드려 있던 사람 모양의 요괴를 끌어올렸다. 어린아이 크기의 작은 몸이 물을 주르륵 흘리며 남자의 품에 안겼다.

“애야! 용원아! 정신 차려라!”

남자에게 안겨있는 그것은 사람의 아이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한 앳된 얼굴에 까맣고 긴 머리채, 비늘에 덮여있을 망정 손도 발도 사람과 같았다. 상처 주위의 비늘이 벗겨져 나간 부분은 오히려 사람의 피부와도 같아서 마치 분장이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찡그린 얼굴로 남자를 내려다보던 백은호가 손끝을 떨쳤다. 조금 손끝을 저었을 뿐인데 남자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의 몸이 들썩 떠올랐다. 남자가 놀라며 아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백은호!”

아이와 함께 남자의 몸도 들썩이며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내가 백은호의 손목을 잡았다. 짙은 요기가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에 반응해 나도 모르게 힘을 가하는 순간 백은호의 어깨가 흔들렸다. 강력한 기운이, 그의 안에서 한 차례 폭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끌어내 내게 쏟아 부으려던 힘을 그의 의지가 막아낸 결과였다.

“도령…”

이를 으득 문 백은호가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우둑우둑 뼈가 이동하며 몸이 형체를 바꾸고 있었다. 정성들여 세팅했을 머리가 너울거리며 하얗게 변했다. 청회색 슈트가 희끗희끗해지더니 은색의 털로 뒤덮인다. 허리를 늘여 엎드리는 그의 뒤로부터 희고 풍성한 꼬리가 아홉 방향으로 자라났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은색의 여우. 세상에 있을 리 없는 그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으으…”

백은호의 변신에 남자가 덜덜 떨면서 뒷걸음쳤다. 품안에 아이는 꼭 안은채였다.

“비켜주십시오.”

여우의 모습을 한 백은호가 말했다. 더는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는 거잖아. 무엇보다 남자가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본 이상.

“싫어.”

내 짧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힘이 휘몰아쳤다. 힘과 함께 날아든 꼬리에 부딪쳐 내 몸이 휙 날아갔다. 웅덩이를 거의 가로지른 몸이 물속에 풍덩 빠졌다. 꼬리를 막으려고 내밀었던 팔이 얼얼했다.

그러나 지체할 수가 없었다. 백은호가 남자를 아니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를 향해 도약하는 것을 본 것이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백은호는 도망치는 남자의 머리 위에 닿았다. 급한 마음으로 집어던진 돌이 그의 꼬리에 맞아 튕겨나갔다.

백은호의 발이 남자와 함께 아이를 짓눌러 물속에 처박았다. 남자는 버둥거리면서도 아이를 끌어안고 보호하고 있었다.

“작작 좀 하란 말이다!”

달려들어서 백은호의 꼬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 꼬리에 얻어맞고 도로 튕겨나가 버렸다. 이 자식…. 사정 안 봐주고 하잖아.

수련할 때와 달랐다. 적당히가 아니었다. 얻어맞은 곳에서부터 쩍쩍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이 엄습했다.

백은호의 꼬리 중 하나가 아이의 목을 휘감았다. 남자를 앞발로 꽉 누른채 아이를 끌어내자 남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팔에 힘을 줬다. 아이를 사이에 둔 줄다리기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꼬리는 아이의 목을 강하게 옥죄게 된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남자가 창백해지면서 곧 손을 놓고 말았다.

꼬리에 목이 휘감긴 아이가 축 늘어져서 공중에 흔들렸다. 그 모양을 보는 백은호의 눈이 어둡게 번득였다.

크르르르…

목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효후가 송곳니 사이로 새어나왔다. 번득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의 입을 벌린 그가 아이의 목을 확 물었다.

피가 튀었다. 이빨이 살 속으로 파고들며 뼈에 닿아 부딪치는 감각이 분명히 느껴진다. 과연 백은호야. 수백 번의 칼질에도 흠집이나 좀 나는 내 팔을 한 번에 뚫어버리다니.

이번에는 그의 배려가 아니었다. 내가 확실히 시간에 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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