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2화 (12/218)

가장 가까운 남(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바깥은 추웠다. 차갑고 습도 높은 공기가 피부에 감기자 소름이 돋았다. 셔츠 위에 뭐라도 입고 올 걸. 이렇게 오싹한 건 곧 비가 올 거라서 그런 거겠지? 그럴 걸. 아마도.

집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멀리서 볼 때는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구경하는 기분이었지만 가까이 가자 남의 집에 들어갔을 때의 위화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마당은 잔디가 무성해 발이 푹푹 빠졌다. 화단에도 잡초가 웃자라고 꽃잎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현관에 깔려 있었다. 관리가 소홀해진 흔적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조경한 거나 나무들 다듬어진 모양이나 꽤 애정을 갖고 가꿔온 집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데 최근에는 그럴 새가 없었나보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움직이다 말고 철컥 소리가 나며 멈췄다. 잠겨있다. 아, 며칠씩 집을 비우니 잠그고 다니는 게 당연하구나. 뭐? 잠겨 있으면 어떻게 들어가? 혹시나 하고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철컥 철컥 소리만 날 뿐 열리지 않는다.

어쩌면 근처에 열쇠를 숨겨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문틀 위, 화분 밑은 물론 근처 화단과 바위틈까지 샅샅이 뒤져봤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혹시 열려있는 창문이 있나 집을 한 바퀴 돌며 확인해 봤지만 집주인의 꼼꼼한 성격만 확인했을 뿐이다. 남의 집에 무단침입 하는 건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야, 꼬맹이. 너네 집이잖아. 열쇠 어디에 숨기는지 몰라?”

쟁반을 보며 물어도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이렇게 된 바에는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이층 창문까지 잠근 건 아니겠지? 창틀에 발 걸치고 테라스에 매달리면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쟁반 손잡이를 입에 물고 한 발을 창틀에 올린 다음 다리와 팔을 쭉 펴며 펄쩍 뛰었다. 너만 믿는다, 대퇴사두근! 이층 테라스에 닿게 해줘! 그리고 2초 후 내가 믿어야 했던 것은 대퇴사두근이 아니라 상완이두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라스에 매달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올라가기는커녕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이 한계였다.

유령의 집에 불법침입할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팔근육 좀 키워둘걸. 착한 어른은 하지 말아야 할 후회를 하며 도로 내려가려던 나는 내 무릎 앞에 서있는 희끄무레한 사람 그림자를 보고 움찔 놀랐다.

처음에는 꼬맹이가 다시 나타난 줄 알았다. 그러나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어두운 속에서도 잿빛인 머리카락과 반들거리는 정수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웬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계셨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는 할머니도 한 분 계신다.

“안녕하세요.”

어르신을 향해 예의바르게 인사했으나 하자마자 후회했다. 입에 쟁반을 물고 있었던 걸 깜박한 것이다. 쟁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뭐여? 이거.”

할아버지가 쟁반을 내려다보자 뒤쪽에서 할머니가 손뼉을 짝 쳤다.

“맞쥬. 그쥬? 도동놈 맞쥬?”

예? 저요? 할머니! 저 말입니까?

“아까서부텀 그집 가생이를 이리 어슬렁 저리 어슬렁 하드만. 저것 봐유, 훔친 거 맞쥬?”

할머니가 쟁반을 손가락질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햐, 마누라. 신고혀!”

“자, 잠깐만요!”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바로 밑에 할아버지가 서계셨다. 손을 놓으면 할아버지와 부딪칠 참이었다. 뼈만 남은 것같이 깡마른 몸집에 허리도 굽은 영감님 위로 뛰어내렸다가는 이분 분명 어디 한 군데 부러지실 것 같았다. 테라스에 매달린 채로 변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오해하실 만한 상황이라는 건 아는데요. 전 도둑이 아니라…”

그러나 제대로 변명하기도 전에

“뭐여? 엉?”

“도동놈이라는디유?”

“우덜 같은 노인네들나 사는 데서 머 훔쳐갈 것이 있다고…”

“저 원생이 모양 매달려있는 저것이 도동놈이여?”

수런수런 말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근처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제 집 앞을 지나가는 발소리를 듣고 개들이 컹컹 짖어 동네 안을 울렸다. 그러자 근처 뿐 아니라 제법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둘 바깥으로 나왔다.

“뭣들 하는겨? 나도 삭쿼 줘.”

“뭔 도동놈이 배룸빡 타고 올라가다 걸렸댜.”

“집안을 그냥 탈탈 털어 나오는데 이장님허구 부녀회장님이 잡았디야.”

“이장님허고 도동넘허고 둘이서 막 벽을 탐서 싸웠잖여.”

“우리 이장님이 한 때는 쉴찬히 날린 양반이여.”

“쟈 좀 봐유. 새파랗게 젊은 것이 흉악한 얼굴을 해갖고….”

나는 지금 상황이 악의적으로 왜곡 확대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게 아니라…어르신, 그 전에 잠깐 옆으로 비켜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비키지 말어유, 영감. 토낄라 그러는 거유.”

“아암. 내가 바보여?”

할아버지는 오히려 등을 빳빳이 세워 가슴을 내밀었다. 아놔, 할아버지. 저 팔에서 쥐날 것 같다고요.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백은호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지만 집 아래 세워져 있던 차는 어느새 사라진지 오래였다. 백은호 이 의리 없는 자식…

그 와중에 이웃 간의 정과 애향심이 충만한 마을 사람들은 각자 여자는 음식, 남자는 무기로 무장하고 와서 나를 감시하는 동시에 서로의 공로를 치하했다.

“몽뎅이 크기가 그것이 뭐시유. 쥐도 못 잡겄슈.”

“영감은 사람 잡을 일 있슈? 뭔 낫을 다 들고 왔댜.”

“이장님, 고생하셨슈. 한 잔 혀유. 성도 먹구 햐.”

“나물 맛있겄네. 좀 집어줘 바바.”

나는 발밑에서 마을잔치를 벌이는 어르신들을 보며 신고를 받은 경찰이 제발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내가 할아버지 위로 떨어지기 전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두 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리자 어르신들이 각자 무용담을 들려주느라 좀 지체되기는 했다.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게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벽을 타며 이장님과 싸운 도둑이 경찰에게 체포되자 사람들은 잔치 자리를 마을 회관으로 옮겼다. 이장님과 부녀회장님만 경찰을 따라 파출소로 향했다.

나를 연행한 경찰은 알고 보니 파출소장이었다. 체구가 듬직한 40대 남자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권하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살갑든지 다행히 성격 좋은 분이라고 안심했건만 나를 휙 돌아보자 표정이 일변했다. 내가 신분증도 지갑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파출소장의 얼굴은 더욱 험악해졌다.

어디서 온 누구냐, 그 집에 골동품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여기까지 무엇을 타고 왔느냐, 공범이 있느냐, 좋은 말로 할 때 불어라. 이런 식으로 취조하는 동안 뒤에서 도둑을 잡은 용감한 부부는 “우리 소장님이 짱하게 위엄이 있어.” “그랴. 그랴.” 라고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소장님의 위엄이 더욱 높아지는 동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도둑질을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 유령이든 외계인이든 다른 뭐든, 누구도 믿을 것 같지 않은 주인공만 아는 비밀 말이다. 그럴 때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애쓰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비웃고는 했었다. 바보 아냐? 그런 말 하면 미친 사람 취급당할 게 당연한데. 적당히 거짓말해서 넘어가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당장 내가 용감한 시민들과 위엄 있는 파출소장님에게 천하에 쓸모없고 양심 없는 도둑놈 취급을 당하고 보자, 말하면 미친놈 보듯 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치미는 것이었다.

억울하다. 내가 비록 고액 부업으로 세금 떼먹는 정도의 불법을 저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도둑은 아니라고! 그야 의심받아도 싼 상황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잘못한 것도 사실이고. 그래도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거잖아. 보기와는 다르게…

‘어……보기와는 다르게 꼬맹이도 그럴까…?’

라는 대견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기에도 그렇고 하는 짓도 확실히 못돼먹었지만 녀석에게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있지만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그러는 것처럼.

만일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을 꼬맹이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바라는 것. 편견 없이 들을 준비가 된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것. 의심하지 않고 귀 기울여 주는 것.

그러고 보자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실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했던 게 그런 거였다. 편견을 갖고 내린 결론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만 행동했다.

도깨비라고 생각했을 때는 우선 좋아하는 먹을 것을 주고 구슬려 보자고 했고, 혼령이라고 알게 된 다음에는 수수께끼 풀듯이 힌트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하고 있던 것은 쟁반에 붙은 귀찮은 혼령을 떼어내고 돈 받는 일이었다. 그게 잘못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혼령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닐까.

물레 도깨비가 내 집에 머물게 되어 안심이라고 말하던 순례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때의 할머니는 도깨비를 요괴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던 동무로 여기고 있었다. 물레 도깨비는 그것에 부응했다. 창고 안의 도깨비들이 나를 따돌리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확실히 지금 내게 그들은 요상하고 귀찮은 어떤 존재에 불과하니까. 그들에게도 나는 이상하고 불편한 어떤 존재일지 모른다.

소장님의 책상 위에 놓인 은쟁반을 힐끗 쳐다보았다. 증거물로 압수당한 쟁반이 마을 사람들에 이어 경찰들 손에서 이리 저리 구경당하는 동안 꼬맹이 혼령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본래부터 평범한 물건인 것처럼 녀석은 꼼짝 않고 있었다.

시작이 틀렸던 것 같다. 인정한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보호자, 백은호가 파출소에 도착해서 소장님의 취조는 30분 만에 끝났다. 백은호는 마치 전화를 받고 금방 달려온 것처럼 파출소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상냥하고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내가 신원이 확실하며 건실한 자영업자라는 점을 어필한 다음, 무식하고 단순해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근본은 착하며 큰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선량한 시민임을 역설했다.

저 여우같은 놈이. 혼자서만 도망친 주제에!

그가 신기에 가까운 말발로 파출소장을 홀리는 동안 부녀회장님은 “뭔 총각이 가시나 한양 이쁘장하댜. 입은 것도 깔짬하고.”라며 녀석의 뒤태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이장님의 “이쁘장허기는 사내새끼가 이쁘장헌게 뭐 자랑이라고.”라는 고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백은호는 5분 만에 내 혐의를 무효로 만들고 증거품까지 되돌려 받은 다음 나를 데리고 파출소에서 나왔다. 물론 거기에는 그의 신묘한 화술도 한 몫 했지만 동행한 사람의 증언이 가장 유효했던 것 같다. 내가 들어가려던 집의 안주인인 꼬맹이 어머니가 함께 왔던 것이다.

파출소장 앞에서 그녀는 쟁반이 1년 전에 판 물건이라는 것과 백은호와 골동품 문제로 안면이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내가 한 주거침입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언제 병원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데리고 왔는지,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도둑놈을 잡았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부는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안해 하다가 백은호로부터 저 생각 짧은 놈-나 말이냐?- 때문에 죄송하게 되었다는 사과와, 기력과 용기가 젊은이 못지않으시다는 칭찬을 듣고 다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래. 나만 나쁜 놈이지.

밖으로 나오자 꼬마의 어머니는 병원으로 돌아가겠다며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는 백은호의 제의도 거절당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은쟁반 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확인을 위해 잠깐 쟁반을 봤을 때 그녀의 얼굴에 번지던 표정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늦은 밤이니 택시를 잡을 때까지라도 같이 있어주겠다는 걸 거절한 다음 그녀가 말했다.

“그 쟁반을 산 집마다 귀신의 장난 같은 일이 생겼다고. 우리애가 원귀가 되어서 붙은 게 아니냐고….”

말하다 목이 메었는지 침을 한 번 삼키고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하고 이쁜 아들이었는데. 죄가 있으면 어린 자식을 못 챙긴 내 죄지, 어째서 불쌍하게 죽은 우리 아들한테 죄를 뒤집어 씌워 원귀니 뭐니 하는 거예요. 당신들이…당신들은 남 말이라고 그렇게…”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오는 것을 그녀는 눈물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내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우리 아들 죽은 이유만 알 수 있으면 원이 없을 거예요. 내가 혼을 팔아서라도 그 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할 거예요. 남 속도 모르고 아픈 애아버지 욕하는 사람들이나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지어내는 사람들이나…정말 다…”

치오르는 숨을 내쉬는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내뱉듯이 말하고 그녀는 떠났다.

파출소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기쁨이 후회로 바뀌었다. 오늘 우리는 분명 그녀에게 몹쓸 짓을 했다. 무리한 짓을 한 백은호보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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