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어머니 성함을 어떻게…아니, 아닙니다. 용하신 분이라고는 듣고 있었는데…죄송합니다.”
그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다 다급히 사과했다. 잠시나마 내 영험함을 의심했던 것 때문에 동티라도 날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별 걱정을 다 하신다. 이래 뵈도 서비스 직종일걸요. 고객을 소중하게 여겨야죠. 감히 이 몸을 몰라봤다고 타박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보다 나 나름 용하다고 소문 났었나보다. 나도 내가 용한 분이라면 정말 좋겠는데.
어쨌거나 손님은 어머니의 벽장에서 나온 상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귀신이 말한 순례란 병중이라던 어머니의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여자 귀신, 벽장안의 벽돌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손님이 금세 벽돌을 상자로 대치했다면 숫자는 동일하다는 뜻이다. 벽장에서 나온 상자가 다섯 개.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상자 하나는 비었지요?”
내가 묻자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을까 귀신같다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상식에 기반해 사고하던 사람이 비상식을 경험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불과 몇 시간 전 삽살개가 말하는 것을 보고 내가 바로 그런 심정이었거든.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지금의 나는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영험한 무당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확실히 물린 것 같으니 슬슬 줄을 당길 때였다.
“얘기해 보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볍게 말하고 선반 앞 의자에 앉았다. 귀신과 대작하며 벌여놓은 술자리가 그대로 있어 마치 손님이 올 줄 알고 차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앉자 남자도 머뭇거리다 마주 앉았다.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앉으면 뭐든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 법이다.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술잔을 들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듣는 쪽의 자세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사실은 갑인데 심리적으로 을인 손님이 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집에서는 주방을 수리하는 작은 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낡은 주택이었다. 그동안 증축에 개축을 거듭하여 집이 점점 커지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영역인 안방과 주방은 처음 그대로였던 것이다.
금간 벽을 헐어서 메우는 작업 중에 안방의 벽장과 맞닿은 벽이 뚫리면서 뜻밖의 물건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함이었다. 안방 쪽에서 보자면 벽장 가장 깊숙한 곳에 놓여있던 셈이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겉에 공단을 씌우고 수놓은 띠와 장식 술을 달아 사뭇 고급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그것을 풀고 뚜껑을 열자 다시 황금색 보자기로 포장된 것이 나왔다. 보자기 안에 다시 한지가 한 겹, 또 그 아래에 뭔가가 무명천으로 곱게 싸여 있었다.
“옷이 있었습니다. 상자마다 다른 옷이었는데 모두 한복이더군요. 옛날에 선비나 입었을 것 같은 도포도 있고 요새 흔히 입는 한복도 있고요. 처음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입으셨던 건가 싶었는데 상자 두 개는 여자 옷이더라고요. 그것도 하나는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 다른 하나는 당의라서 어머니가 입으실만한 옷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네 개의 함에 남자 옷이 둘, 여자 옷이 둘. 그리고 상자 하나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남자 옷 두 벌도 아버지 옷은 아닌 것이, 돌아가신지 20년이 지난 분의 옷이라기에는 새것이었다. 갓 지어 곱게 개켜놓은 뒤로 한 번도 손댄 적이 없는 모양새라서 그는 의아했다. 그런데 옷을 보고 부인이 한 말이 그를 더욱 고심하게 만들었다.
부인은 상자에서 나온 남자 옷을 보더니 천이 눈에 익다며 얼마 전에 안방의 쓰레기통에서 같은 무늬의 천 조각들이 나온 적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어머니께서 손수 지으신 걸까요?”
이야기를 듣던 내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묻고 나서 아차 싶기는 했다. 영험한 무당이 그런 걸 몰라서 물으면 안 되잖아. 그러나 다행히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닙니다. 어머니는 바느질이 정말 서투셨어요. 이 물레도 할머니가 쓰시던 건데 오랫동안 다락에 있었습니다. 안방에 놓인 지도 몇 달 안 됩니다. 거의 장식품이었지요. 어릴 때도 옷이 찢어지거나 양말에 구멍이라도 나면 할머니가 기워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여동생이 대신 했고요. 손재주라곤 없는 분이셨는데 어머니를 닮아서 저도 그렇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옷상자만 나온 거라면 어디에 쓸 생각이셨는지는 몰라도 필요하니 지어오셨겠지 할 수 있지만 만들고 남은 조각으로 보이는 천이 나왔다니 문제였다. 어째서 문제인고 하니, 어머니의 병환은 다름 아닌 치매였고 그 증상이 도벽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생전 남의 물건이라면 길바닥에 떨어진 돈도 거들떠보지 않은 분이셨는데, 갑자기 몇 달 전부터 남의 물건을 아무거나 마구 집어오시는 겁니다. 그것도 누가 보거나 말거나. 상점에 진열된 물건을 그냥 들고 나오시질 않나 지나가던 어린애가 먹던 걸 뺏어 먹질 않나. 입원하시기 전에는 식품점에 진열된 메밀묵을, 주인이 말리는데도 그 자리에서 죄다 포장을 뜯어 드시는 바람에 경찰까지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옷상자가 나오자 부부는 함께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입원 전의 어머니가 집 근처 한복샵에서 거기 놓여 있던 걸 아무거나 덥석 가져와 버리신 게 아닌가 하고. 상자를 본 뒤에 혹시나 해서 안방을 구석구석 뒤져봤더니 상한 음식을 비롯해 어디서 가져왔을지 모를 물건들과 함께 한복에 쓰는 천도 몇 필 나왔다고 한다.
“여든이 가까운 연세이신데 고집을 부릴 때면 힘이 장정 같으셔요. 꼭 신들린 것 같아서 무서울 때도 있었습니다. 낮에는 주무시다가 해지면 일어나서 밤새 그렇게 딴 사람이 되시니 가족들이 배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입원을 시켰는데 또 이 사단이 났습니다.”
인상 좋아 뵈던 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어디서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 놓고 비탄에 잠긴 모습이 어두웠다. 치매환자의 범죄니까 아마 법적으로 감독의 책임은 자식들에게 있을 터였다.
“입원하신 후로 그런 증상은 없어졌는데 이번에는 또 건강이 악화되셔서…. 그래도 집에 계실 때는 건강하기라도 하셨는데 자식으로 이게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의 탄식은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져, 거기 묻혀있던 죄책감과 애정이 함께 쏟아졌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아이와 같은 치매환자가 되어버린 지금, 그는 사실 부모가 없는 것과 같았다. 나이 들면 누구나 그런 식으로 고아가 되는 것이다. 가엾게도.
나는 이제 막 고아가 된 그를 동정했다.
고통과 슬픔을 한 움큼 토해놓은 다음, 그는 한 움큼만큼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을요. 집에 가는 길에 한복샵 들러서 잃어버린 물건이 있는지나 물어봐야겠습니다. 물레는…되도록이면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힘없이 나가는 그를 멀찍이서 배웅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된 작업장 안에서 낡은 물레를 바라보았다.
그가 한 이야기에서 물레에 귀신이 붙을만한 이유는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쓰시던 물레라니까 할머니의 귀신이 붙었나 싶어도 그 젊고 예쁜 처자가 할머니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물론 할머니도 젊으셨을 적에는 미인이었을지 모르지.
게다가 귀신이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째서 물레에 붙어있느냐가 문제잖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따금 말을 걸어봤지만 세상 천지에 걱정이라고는 없는 태평한 여자 같던데.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남자에게 끼도 잘 부리고…
‘잠깐.’
뭔가 번뜩 스쳤다. 뭔가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채로 미뤄두고 있었다.
뭐지?
자다 깨어보니 기억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물건이 사람으로 변하고 개가 말을 하고 귀신과 대작을 하는 비정상적인 일을 연달아 겪다보니 평소라면 분명 이상하게 여겼을 텐데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그런 일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사소해서, 보았지만 들었지만 건성으로 넘겨버렸던 것들이.
뭐였지?
나는 손님을 배웅하던 그대로 서서, 팔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게 일어난 일들을 천천히 돌이켜보았다. 가장 가까운 순간으로부터 점점 멀리. 하나씩 하나씩.
그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귀신이 사라지고 남은 술자리를 기억해냈다.
그녀가 춤을 추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귀신이 처음 나를 부르던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기억하고 나자 그것들이 하나씩 모여 누가 봐도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헛웃음이 터졌다.
“뭐 이런 바보 같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실소가 나왔다.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작업장의 불을 다시 껐다. 기억도 기억이지만, 다시 보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캄캄해진 작업장 안에서 잠시 기다리자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굴렀다. 이번에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술자리로 돌아가자 아까 어둠 속에서 마시다 만 때처럼 빈 술병과 빈 안주그릇이 보였다. 내가 먹은 나물을 빼면, 완전히 비어있는 그릇은 하나뿐이었다.
맞은편 잔에 새 술을 따르자 어디선가 푸른 불빛이 휙 지나갔다. 불빛이 날아간 방향에서 흰 옷자락이 풀럭 날렸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춤을 추지도 않고 이쪽을 보며 사뿐사뿐 걸어온다. 이 옷 저 옷 뒤섞어 입은 그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여자는 다가오더니 생긋 웃으며 술잔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무어요, 김서방. 향을 맡았으니 이번에야말로 이 몸을 얼러보고 싶은 게요? 아니면 아직도 주향이 부족하오?”
“그보다,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인데…”
난처한 기분으로 말끝을 흐렸다. 앞으로 해야 할 말을 생각하면 난처해도 보통 난처한 게 아니었다. 말만 힘든 게 아니라 해야 할 일도 곤란했다.
혹시 때리는 거 아닐까?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아냐. 쇠똥에 파묻혀 죽거나 동전에 맞아죽을 수도 있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번득번득 떠오르며 용기를 갉아먹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금, 힘없는 등을 보이며 떠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서 그만두기 싫었다. 조금쯤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단단히 주고, 숨을 천천히 들이쉰 다음, 누가 봐도 해맑아 보이는 표정으로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그 치마를 좀 들춰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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