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6 회: WEC 개막 -- >
본선 당일, 상현은 한국 공격대 인원 전부를 모아두고 분대장들의 명령을 잘 따라줄 것을 부탁했다.
공격대의 총대장은 환상현, 미쏠로지 A와 B팀은 백종현과 엄지연이 맡기로 했으며 나머지 70명의 인원은 3팀으로 인원을 재분배해 3명의 분대장을 새로 뽑았다.
비록 임시로 합류한 인원들이었지만 그들이 이번 WEC 대회에 가지는 열의는 대단했다.
'반드시 눈에 들어서 미쏠로지에 가입할 거야!'
71명의 대원들 중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세계 최고의 공격대에 들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이번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상현을 비롯한 미쏠로지 대원들에게 눈도장을 받는 것이었다.
대회의 막이 오르자 양팀이 무대로 입장했고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떠들석하게 했다.
포르투갈과 한국의 경기가 오늘 본선의 첫 경기였다. 미리 사용방법을 숙지하고 들어섰기 때문에 준비에 차질은 없었다.
캡슐 안에 몸을 누이고 해치가 닫히자 금새 어둠이 가셨고 그들은 전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네."
백종현이 중얼거렸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변을 스치는 바람이나 무거운 공기가 마치 현실처럼 느껴져 레이드에 대한 긴장감을 끌어올리게 했다.
[2분 뒤에 디멘션 홀이 열립니다. 7급의 랜덤 괴수가 나타납니다. 공격대 여러분께서는 최선을 다해 대회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멘트가 흘러 나오자 대원들은 전신의 근육을 바싹 조이며 완벽하게 전투 모드로 돌입했다.
일부 힐러를 제외하면 전원이 7레벨 이상의 상급 능력자들. 다들 나름의 경험을 쌓은 사람들인지라 거대 괴수를 맞닥뜨린다고 해서 크게 당황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것은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고통이 리얼하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잠시 뒤, 포효하며 차원을 찢고 나타난 괴물은 이미 본 적 있는 거대한 청동거인. 콜로서스였다.
'운이 좋군.'
디멘션 홀에서 나온 괴수가 콜로서스라는 것을 확인한 포르투갈 공격대장 로페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기록된 7급 괴수의 종류가 적다고는 하지만 최종 예선에서 상대했던 괴수와 동일한 녀석을 상대한다는 것은 공격대에게 있어 분명 행운이었다.
아마 한국팀은 콜로서스를 처음 상대하고 있을 테니 아무래도 한 번이라도 더 싸워본 쪽이 유리한 것이다.
대지를 울리는 진동과 함께 엄청난 마법 포탄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백종현과 엄지연은 보충 인력의 대부분을 탱커와 원거리 딜러, 힐러로 채워넣었다.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는 각각 장단점이 명확했다. 가까이 치고 들어오는 적들, 들러붙는 다수의 적과 맞붙어 백병전을 펼치기엔 근접 딜러들이 유리했다.
그 외에 단일 개체로 이동이 느리고 패턴이 단순한 적을 상대하려면 원거리 딜러들이 유리했다. 거리를 벌리고 공격할 수 있다는 이점은 안전을 중시하는 상급 레이드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화염과, 전격, 바람과 냉기, 온갖 속성마법들이 콜로서스를 향해 빗발치듯 날자 놈은 거대한 동색 방패를 들어 마법을 방어했다.
방패의 표면을 무수히 때리는 마법들, 단단한 마법 방어력을 믿는 콜로서스가 대원들을 짓밟을 기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콜로서스의 크기는 약 50미터, 15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였다. 놈이 상체를 숙이며 지면을 쓸어담을 기세로 검을 휘둘러오자 탱커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진했다.
"탱커 전진!"
백종현이 명령을 내리자 공격대의 탱커 수십명이 일제히 날아드는 검에 각을 맞춰 돌진했다.
쿵─!
뼈 속을 울리는 묵직한 충격에 다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우워어어어!"
그러나 놈의 검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탱커들이 힘을 합쳐 발을 내딛자 콜로서스의 검이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공격대의 단합이 생각보다 좋다고 생각한 콜로서스는 뒤로 물러나 건물을 파괴하고 커다란 콘크리트 잔해를 집어들며 공격대에게 마구잡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레이드가 이뤄지는 전장은 실제를 가장한 도시였기에 콜로서스가 투척무기로 삼을만한 재료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실드!"
마법사들의 기본 방어소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방어막이 펼쳐지자 빠르게 날아온 잔해더미들은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방어막 표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혼자서의 막으려고 했다면 어림 없겠지만 실드가 한 겹, 두 겹, 계속 겹쳐지자 상상 이상의 방어력을 보였다.
"플레임 아레나!"
때마침 기운의 충전을 완료한 상현이 강력한 일격을 공격대의 중앙에서 뿜어냈다.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다리를 녹여버린 기술, 콜로서스는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며 방패를 들어 방어했다.
고오오오-
심상찮은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어둠과 불꽃이 뒤섞여 방패의 절반 가까이를 녹여낸 상현이 신호를 내렸다.
"일제사격!"
궁수를 비롯한 원거리 딜러진이 다시 매섭게 불을 토했다. 방패가 반쪽으로 줄어든 터라 콜로서스는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했고 뒷걸음질 치며 건물 뒤로 숨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딜러들의 화력이 너무 강했기에 엄폐물로 삼은 건물 정도는 금방 뚫고 지나가며 마법이 콜로서스의 등에 작렬했다.
"쿠오오오!"
심한 고통에 콜로서스가 몸부림을 쳤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건가."
대회 지하의 모니터실, 양 팀의 레이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미국 관계자들은 한국팀의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굉장한 정보의 양이 새롭게 쓰여지며 대형 모니터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목적은 한국에서 예상했던 것과 같이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예상되는 팀이 바로 현재 모니터링중인 한국 공격대였다.
"대단하군."
방금 전, 상현이 플레임 아레나를 일으키며 기술을 소환했을 당시의 잔해마력량이 모니터에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미국 공격대가 테스트 했던 기록을 전부 모아도 저만한 출력을 자랑하는 기술이 관측된 적은 없었다.
물론 에딕손이 제대로 힘을 쓴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고 지금은 더 높은 기술을 개발했을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상현이란 존재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이 정도의 패널티로는 어림도 없겠어."
관계자들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계속 경기를 주시했다. 포르투갈 공격대가 최종 예선에서 맞붙은 괴수와 같은 녀석을 배정받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은 VTR시스템의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자국 능력자들을 다수 투입해 만든 가상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콜로서스의 강함을 2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힘겹게 한국팀이 결승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상대팀을 꺾고 결승에 도달한 그들이 에딕손 공격대에게 큰 차이로 무릎을 꿇는다면 세계는 다시 한 번 미국을 찬양하게 되리라.
'그나저나 포르투갈이 너무 못하는군.'
기왕이면 한국팀은 상대와 박빙의 승부를 벌여주길 바랬다. 그렇게 된다면 프로스트 자이언트 토벌이 실은 거품이 아니었냐는 여론이 생길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바램대로 되지 않았다. 최종예선과 같은 괴수를 불러내줬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은 벌써 사상자가 7명이나 됐다.
1시간 10분의 추가 시간이 더해진 상황, 그에 반해 인원이 모자라 70명이 넘는 인원을 땜빵해 왔다는 한국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엄지연씨, 뒤를 부탁합니다."
한국에서 힐로 따를자가 없다는 미쏠로지 B팀의 대장 엄지연에게 뒤를 맡기고 상현이 튀어나갔다.
콜로서스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목숨을 도외시하며 공격에 나섰는데 그 기세가 흉흉해 탱커들도 막기 버거웠다.
전신에 보석갑옷을 두르고 튀어나간 상현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콜로서스의 흉악한 검과 충돌했다.
콰르릉-
일개 능력자의 방패와 7급 괴수의 검이 충돌했을 뿐인데 섬광이 번쩍이며 거대한 충격이 일대를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한 관중들의 폭발적인 환호를 조금도 들을 수 없다는게 애석하게 느껴질 정도로 관중들의 상현에 대한 지지는 대단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상현은 한층 더 가속하며 상대의 하체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검기에 휩쌓인 은색 검이 별빛을 수놓으며 콜로서스의 발목에 무수한 상처를 만들었다.
"화력 더 집중하세요!"
이수연이 외치자 잠시 움찔했던 마법사와 궁수단이 더욱 힘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멈칫한 것은 원거리 공격의 여파에 상현이 피해를 입을까봐서였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 화력을 퍼부어도 콜로서스와 상현의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거대한 화염 속에서 오직 단 둘이서만 대결을 펼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쐐애액-!
바람을 가볍게 가르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콜로서스의 머리에 강력한 일격이 꽂혔다.
때가 됐다고 판단한 백종현이 전력을 담아 창을 투척한 것이다. 현실이었으면 창이 아까워서라도 고민했겠지만 이곳은 가상 세계, 눈뜨고 일어나면 창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을 터였다.
뒤통수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콜로서스의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 상현의 검에서 강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거인의 가슴을 후려쳤다.
파가각-
다크 프레셔의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의 가슴을 헤집자 콜로서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법과 화살을 얼마나 맞았던지 전신은 녹아내릴 정도로 이글거렸으며 너덜거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상현은 레이드를 마무리 짓기 위해 힘을 끌어올리며 달려들었다.
"설마!"
상현이 다크 프레셔를 쓰는 순간 모니터에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시스템 경고 메시지가 출력됐다. 그것을 본 관계자들은 흠칫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반응은...."
주변의 마력속성을 체크하는 감지기가 팽팽 돌며 미친 듯이 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불안정 마력속성이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던 요원은 상현의 검이 어둠을 뿜어낼 때의 상황을 클로즈업 하며 화면에 드러냈다.
이것은 특급 정보였다. 에딕손 외에도 신성력을 다루는 특급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포착한 것이다.
신성의 힘은 디멘션 홀이 지구에 처음 나타났을 당시, 신을 섬기던 샤먼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 알려진 힘이었다.
신들의 힘, 기적을 행하게 만들어준다는 만능의 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을 다루는 샤먼들은 전부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부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라며 잠정 결론을 짓고 신성 연구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몇 년 뒤, 세계 최고 능력자로 발돋움한 사나이에게서 다시 한 번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샤먼들이 부리던 소꿉장난 같은 신성력에서 벗어나 만능의 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각인시킨 남자, 그가 바로 에딕손이었다.
"저런 능력자가 한국에서 나왔다니...."
어둠의 검을 흩뿌리는 상현을 보며 관계자들은 심각한 반응이었다. 신성을 다루는 또 한 명의 초인이 나타났다면 계획이 헝크러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미 에딕손에게서 신성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건네받은 상태였고 신성 보유자가 디멘션 홀의 괴수에게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들을 꺾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군. 기왕이면 저자를 미국에 눌러 앉힐 수 있다면 좋겠는데."
관계자들의 중앙에 서있던 남자가 흘러가듯이 중얼거렸다. 그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그 말을 허투루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 옆 방에서는 상현을 비롯한 미쏠로지팀을 미국으로 끌어들일 새로운 계획이 세워지고 있을 터였다.
미국 정부에서 능력자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남자, 그의 입김이 닿지 않은 능력자 정책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능력자 세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백클레이.
세계 1위의 능력자 국가에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그가 상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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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녀 가리지 않고 인기를 누리게 되는 환상현 씨...?
조쿠나님, 낙뢰파천황님, 치우형님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바깥에서 폰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으신지 조용히 추천 눌러주고 가시는 독자님들이 많네요.
독자님들이 활기찬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마냥 부러운 1인 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도 겨우 12시간도 안남았습니다.
남은 시간 알차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