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67화 (67/123)

< -- 67 회: 중국에서 생긴 일 -- >

중국에서 마련해준 훈련장은 한국의 교습소와는 달리 간단한 몸풀기를 위한 장소라 풀세트로 장비를 착용한 능력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종현과 안정수도 구경을 목적으로 들린 참이었기 때문에 들고 온 것은 백종현의 흑창이 전부였다.

"저기 이사벨 씨, 저는 무기가 없는데요?"

"이중에 편한 걸 고르세요."

이사벨은 벽에 걸려 있는 병장기를 보여주며 편한 것을 집으라며 권했다.

그녀가 먼저 집은 것은 봉이었다. 평소 둔기류를 사용하는 안정수는 망설임 없이 무게가 제법 나갈 것 같은 철퇴를 집어들었다.

"간단한 대련인데 무기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안정수의 말에 이사벨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거렸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제 안전이 아니라 안정수씨 체면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안정수는 정신이 번쩍 들며 주변을 둘러봤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그들의 대련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상태였다.

'이런!'

그제서야 안정수도 자신이 이곳에서 지는게 단순히 쪽만 팔리고 말 문제라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 공격대의 위력을 자신으로 판가름 하는 자리인 것이다.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정수는 뒤가 마려운 것처럼 우물쭈물 했다.

'망했군.'

긴장한 안정수를 보며 종현은 이마를 짚었다. 안그래도 저 포르투갈 쪽 여성대원이 실력이 더 좋아보이는데 긴장까지 하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대련은 초장부터 볼썽사납게 진행됐다. 안정수는 철퇴를 평소처럼 사용하지 못했고 그 빈틈을 이사벨의 매서운 곤봉 끝이 파고들었다.

겨우 삼십 합쯤 겨뤘을 때 이미 안정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몸에 멀쩡한 곳이 없었다.

'이거 완전 병신 취급 당하겠는데.'

일본과 프랑스 팀 앞에서 아프다고 사양을 해놓고서 대련에 나가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상병신 취급을 당할 것 같았다.

"커헉."

매섭게 들어오는 곤봉을 막지 못하고 안정수는 무기를 떨어트리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가벼운 대련이라더니 그야말로 인정사정 없었다.

이사벨은 앞으로 넘어온 머리를 다시 뒤로 쓸어넘기며 이 정도면 된 것 같다며 뒤로 물러섰다.

"정수씨 몸이 많이 아픈 것 같네요."

부드럽게 말했지만 겨우 그 정도의 실력이냐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엄청난 굴욕감이 안정수의 전신을 덮었다.

"얌마 나와."

어느새 무대 위로 올라온 백종현이 안정수의 어깨를 부축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평소 같았으면 죄송합니다 라며 곧바로 대답이 나왔을텐데 대꾸 한마디조차 못하는 것이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머, 제가 너무 심하게 했나요?"

"아니요. 이 친구가 오늘 아침에 뭘 좀 잘못 먹어서 이러네요."

안정수를 무대 아래로 보낸 종현은 벽에 있던 창을 들고 나와 자세를 잡았다. 맘 같아서는 전용 무기인 흑창을 써서라도 제압하고 싶었지만 상대도 일반곤봉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괜찮으면 한 수 배워보고 싶은데요. 아가씨."

"이사벨이라고 합니다."

'망할 놈의 안정수.'

척보기에 여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곤봉을 다룬 다는 것이었다.

종현 역시 창을 다루기 때문에 이 경우엔 초식의 깊이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 있었다. 종현은 마력의 양은 밀릴 수 있어도 창술의 깊이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스팟-

싸움은 기선이 중요한 법, 먼저 발을 뗀 종현의 창이 뱀처럼 휘어지며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구쳤다.

종현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이사벨은 뒤로 한 발 물러서며 반격을 준비했다. 허공에서 봉과 창이 얽히며 따다닥 거리며 콩볶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하앗!"

바다를 가를 것 같은 기세로 종현이 창을 내려찍자 이사벨은 비스듬이 무기를 올려 받아쳤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백종현의 힘이 대단했던 것이다.

초장부터 봐주지 않겠다는 듯 전력을 퍼부었으니 그 위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힘 가늠을 잘못한 이사벨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결국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봉이 부러졌고 바닥을 후려친 창이 충격파를 토해냈다.

"꺄악!"

이사벨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대련 치곤 종현의 손속이 강하긴 했지만 안정수가 싸지른 똥을 치우려면 이정도의 인상은 심어줘야 했다.

한국 능력자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사람들밖에 없더라는 소리가 나돌면 곤란했다.

안정수의 망신에 킥킥거리던 다른 능력자들도 백종현이 제법 한가닥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차분히 다음 상대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자신들의 대원이 큰 코 다쳤으니 포르투갈 측에서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었다.

"포르투갈 DSA, 알베스라고 합니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흡을 얼마나 오래 쉬었을까. 몸 속에서 회전중이던 마력을 잘 갈무리한 상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한솔이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나 지난 상태였다. 대체 여기서 4시간이나 왜 있었는지를 생각하며 상현은 그녀를 깨웠다.

"한솔아."

그녀는 상현의 손길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깜빡 잠들었나 봐요."

"자려면 방에 가서 편하게 자지. 왜 이러고 있어."

"아, 이제 많이 자서 하나도 안 졸려요. 오빠는 이제 훈련 다 끝난거에요?"

"대충은."

아직 점심시간, 남아있는 일행들을 모아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까 생각했던 상현은 메신저를 체크해 대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능력자 메신저에 내장된 위치 발신 기능이 대원들이 어디 있는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수형이랑 종현 선배는 훈련장에 있고 재식이 형은 자고 있네. 우리 두 사람 찾아서 같이 밥먹자."

"네."

후드티 앞에 달린 캥거루 주머니에 아이리를 넣고 상현과 한솔은 방을 나섰다.

'거지같은 새끼들!'

종현은 혼자서 악전고투 중이었다. 그녀는 이사벨을 시작으로 무려 다섯 명이나 상대하며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제는 좀 쉬고 싶은게 사실이었지만 포르투갈 팀은 종현을 놔주지 않았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아직 아닙니다."

이런식으로 계속 물고 늘어지며 내려갈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한 명이 쓰러지면 득달같이 다른 놈이 치고 올라오는 통에 종현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저들은 자신이 피를 보기 전까지는 놓아주려 하지 않는 눈치였다.

"투창 3식 파!"

가공할 바람이 용처럼 튀어나가 상대를 때렸다. 종현의 강공격에 상대는 열 걸음이나 밀렸지만 끝내 무대 밖으로 튕겨나가지는 않았다.

'젠장.'

방금 전 일격은 끝장을 낼 요량으로 날린 회심의 공격이었다. 그것을 맞고도 상대가 버텼다는 것은 체력이 바닥이 났다는 소리였다.

"내가 졌소."

안되겠다고 판단한 종현은 무대 바깥으로 훌쩍 뛰어내려 정수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성난 포르투갈 대원들은 무대 밖으로 내려온 그를 둘러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입니까. 우리를 망신만 주고 도망칠 셈입니까?"

"아니 그럼 우리 중에 누구 하난 뒈질 때까지 해보자 이 소리요?"

백종현이 버럭 성을 냈지만 포르투갈 공격대는 그것도 상관없다며 다시 무기를 들었다. 완전 찰거머리들이 따로 없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국가중에 전력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는 것은 한국이었다.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사벨을 내보냈는데 결과는 오히려 연패.

벌써부터 포르투갈이 한국한테 확실히 밀리더라. 이제 포르투갈은 끝장이군 하는 것같은 환청이 귀에 들렸다.

저쪽이 둘 밖에 없는 이상 자존심을 회복하기는 글른 상태였고 이리 된 이상 백종현을 패주기라도 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뭐 이런 개새끼들이 다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종현은 다시 창을 움직여야 했다. 종현이 수세에 몰린 것을 확인한 안정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뛰어들려고 했지만 다른 포르투갈 공격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패자는 조용히 앉아 계시죠."

이쯤 되면 한판 해보자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애석하게도 훈련장에는 미쏠로지 인원이 너무 적었다. 안정수는 당황하며 다른 팀들을 쳐다봤지만 그들은 이 사태를 흥미롭다는 태도로 지켜볼 뿐 개입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큭!"

결국 한계 다다른 종현의 몸에 서서히 자잘한 생채기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금새 상처가 커졌고 피가 방울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뼈 정도는 분질러줘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포르투갈 대원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일대일 대결도 아니고 완벽히 차륜전이었다. 백종현은 기가 막혔다.

정부 직속의 공격대라기엔 하는 짓이 뒷골목 잡배 수준이었다.

"개새끼들아! 치사하게 연합 공격이냐! 포르투갈 수준을 알만하다, 더런 놈들!"

능력자 메신저를 통해 욕설이 여과없이 전달되자 그들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굳었다.

그에 비례해 손속도 더욱 매서워졌다. 이제는 뼈를 부러뜨리려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푸학-

어깨가 크게 베이며 피가 분수처럼 솟자 이를 악문 종현은 뒤로 물러서며 진작 뽑아든 흑창을 매섭게 투척했다.

"극!"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전부 짜내 창을 투척하자 공격대 한 명이 복부를 관통당해 저 멀리로 나가 떨어졌다.

실전이었으면 죽이고도 남을 부상이지만 근처에 대기중인 힐러들이 엄청난 힐을 퍼부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자 이제 맨손인데 어쩔 참이지?"

백종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맨손인 상대를 무기를 들고 공격하는 것은 수치중의 수치다. 그의 태도에 눈을 부라린 포르투갈 공격대는 무기를 버리고 주먹으로 달려들어 백종현을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종현에게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건장했던 능력자 한 명이 반 시체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쿨럭."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쓰러진 백종현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그를 불쌍히 여긴 브라질 팀 힐러가 치료를 해주려하자 백종현을 둘러싼 포르투갈 대원들이 눈을 부라렸다.

종현이 숨만 가랑가랑하게 쉬고 있을 때 저편에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은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짓이냐!"

훈련장에 모인 세계 각국의 대원들이 모두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기세였다. 그곳에는 주먹을 떨며 분노하고 있는 환상현이 있었다.

"다른 한국팀 대원인가 본데?"

"이쯤 했으면 이사벨 복수는 충분히 한거지."

이제 흥미가 없다며 돌아가려는 포르투갈 대원들의 앞에 순식간에 상현이 나타났다.

"억!"

저 멀리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자신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깜짝 놀랐지만 상현은 틈도 주지 않고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후려쳤다. 백종현을 둘러싸고 있던 다섯 명의 포르투갈 대원이 걸레짝이 되서 하늘을 날게 된 것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였다.

"저 자식이!"

다른 포르투갈 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자 상현은 옆에서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던 브라질 대원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아 그들을 향해 검기탄을 날렸다.

콰르릉-

폭죽이 바로 옆에서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훈련장이 진동했다. 상현은 그들 사이를 누비며 지속 전투를 할 수 없도록 힐러들을 제일 먼저 타격했고 그 다음엔 가까이 있는 순서대로 마구잡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훈련장에 모인 포르투갈 공격대의 숫자는 41명, 모두의 이목을 끌며 등장한 상현이 그들을 일어나지도 못하게 완벽히 박살내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분이었다.

충격.

괜히 포르투갈 대원들 옆에 있다가 험한 꼴을 당한 타국가 공격대들은 감히 따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멍청히 쳐다봤다.

"끼룩."

상현이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리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곧바로 종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최상급 힐러 뺨치는 치유 능력에 백종현은 금새 끄응-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선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상현은 무릎을 굽히며 백종현의 상태를 살폈다. 외적인 상처는 치유의 눈물 덕에 거의다 회복이 됐지만 마력이 엉킨것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개같은 포르투갈 새끼들, 내가 이제 포르투갈 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안싼다."

종현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사자들은 전부 상현의 검과 주먹에 당해 크게 당한 상태였다. 목숨만 잃지 않았다 뿐이지 꽤나 손속을 잔인하게 둔지라 그들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좋게 밥먹기는 글렀네요."

상현은 몸이 불편한 백종현을 부축해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껏 능력자 파워 중위권에 머무르던 한국이 재평가를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매우 춥다고 합니다.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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