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5 회: 전력증강 -- >
팀 아리아에겐 어떠한 예고도 없었다. 그들은 자고 일어나보니 더 이상 아리아 컴퍼니 소속이 아니었다. 팀 매각이 종종 있는 일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 자네들은 이제 우리 소속이 아니네. 거기 적힌 시간에 맞춰서 그 장소로 가면 되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수고가 많긴 많았다. 아리아에서는 대원들에게 투자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상당히 무리해서 레이드를 돌게 만들었으니까.
하루아침에 모기업이 바뀐 그들은 손에 쥔 종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서울의 고급 한식당, 당장 그곳에서 4시간 뒤에 미팅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식전이시죠?"
수십 명이 앉아도 넉넉할 것만 같은 큰 방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이 셋 있었다.
"어? 언니 그 사람인데요."
이수연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신지혜는 그녀의 귀에 대고 수근거렸다.
"안녕하세요. 팀 미쏠로지 공격대장을 맡고 있는 환상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부대장이신 백종현 씨, 그리고 이쪽은 오늘 계약을 맡아주실 정석영 씨 입니다."
설마 자신들을 영입한 곳에 환상현이 소속 돼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수연은 조금 당황한듯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저희 팀 공격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녀는 간단하게나마 나머지 대원들의 소개를 했다.
"그럼 천천히 이야기를 해볼까요."
정석영이 손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상현의 말재주보다는 아무래도 그가 설명하는 것이 나았다.
"이번에 저희는 아리아 컴퍼니에서 팀 매각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촉하여 팀을 인수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아실테고...자 이것을 받아주시죠."
그가 구 아리아 팀에게 건넨 것은 새로운 계약서였다.
"본래 팀을 인수하면 종전의 계약을 기간동안은 그대로 따르게 되어있지만 선수간 합의하에 계약 내용을 새로 갱신할 수 있죠. 한 번 읽어보시죠."
신중하게 계약서를 살피던 그들의 눈빛이 조금 이상해졌다. 조건이 너무 좋았다. 강제로 뛰어야되는 레이드 횟수도 적을 뿐더러 연봉도 다른 곳의 몇 배 이상 대우였다.
"정말 이렇게 대우해주신다구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박현정이 물었다.
"물론, 전원은 아닙니다."
정석영의 말에 대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여러분을 찢어놓겠다는게 아니니까 그리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연봉이 높은 이유를 말씀드리죠. 저희 팀은 현재 국내 어느 팀보다도 높은 대우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백업 시스템은 10대 기업 1군에 버금갈 정도죠. 여러분의 연봉이 높은 데는 생명수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 수당이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강제 레이드의 경우에는 급수 제한이 없습니다. 심한 경우 팀원들 중 사상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정석영의 말에 다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표정들이었다. 아리아에서 맺은 계약은 강제 레이드 횟수가 정해져있긴 했어도 급수에 대한 거부권은 행사할 수 있었다.
상급 디멘션 홀로 치기 시작하는 5급 부터는 공격대장의 재량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까지 레이드를 뛰며 생명에 위협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이수연이 말했다. 그녀는 돈 때문에 팀원들을 위기에 빠트리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대우가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갱신을 거절하신다면 여러분은 손해만 보는 조건으로 강제 임무 수행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여기 계약서에 적힌 거부권은 이수연 씨가 아닌 팀 내의 공격대장에게 있습니다. 현재 미쏠로지 팀의 공격대장은 이수연 씨가 아닌 여기 환상현 씨 라는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말도 안됩니다. 정식으로 협회에 항의하겠습니다."
안전한 기업팀에 속해있다가 하루아침에 팔려 강제로 위험 임무에 나서라고 하는 계약은 누가봐도 불공정했다. 그녀는 정식으로 능력자 협회에 항의하겠다며 발끈했다.
"자, 다른 분들은 이야기를 마저 들어주시지요. 저희는 이수연 씨를 제외한 다른 분들에게는 이 자리에서 계약을 해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남은 2년 기간의 연봉에 대한 보상금을 받으실 수 있으며 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다른 어떤 팀과도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자유 신분이 됩니다."
정석영의 말에 아리아 대원들이 술렁거렸다. 2년을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연봉을 당장 받는데다가 자유 신분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하지 않을 대원은 없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며 이수연은 이들이 자신만을 노리고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원들은 갈등했다. 당장 눈앞의 보상금이 탐이났다. 하지만 미쏠로지 측에서 내건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받기 힘든 대우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와 임무를 같이 하면 사망자도 나올테니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백종현이 운을 떼자 그 때 까지 고민하던 대원들의 마음이 결국 탈퇴를 하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돈을 받고 나가는 것이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이수연 씨,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우리를 키워주고 같이 함께한 건 고마운 일이지만 여기까지인가 보네."
"수고들 해요."
아리아 컴퍼니의 모든 대원이 이수연의 지인은 아니었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가치관을 가진 능력자들은 즉시 보상금을 받아 자리를 떠났다.
"꽃밭이네."
남아있는 인원을 보더니 백종현이 말했다.
이수연을 비롯해 박현정, 신지혜, 서유림까지 전부 여자였다. 역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는 미모는 별 도움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여자 대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 대원들까지 전부 나갔으니 말이다.
"방해꾼도 사라진 것 같으니 계속 이야기를 진행해 볼까요?"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수연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저희는 애초에 팀 아리아의 인원 열 명을 전부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최우선으로 이수연 씨를 데려오고 싶었죠."
"저흰 팔려오고 싶지 않았어요."
"팔려오다니요. 저희가 정중히 모셨다고 생각해 주시죠."
"흥, 필요없으니까 저희 팀을 얼마에 인수했는지나 알려주세요. 제가 그 대금을 대신 갚겠습니다."
이수연은 팀 인수 비용을 전부 갚고 새출발을 하고 싶었다. 지금 자신의 곁에 의리로 남은 친구들과 어린 후배를 위해서라도 목숨이 달린 임무를 할 순 없었다.
"저희가 구 아리아 컴퍼니의 공격대를 인수하기 위해 들인 금액은 1700억 입니다."
정석영의 말에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1700억이 뉘 집 개이름도 아니고 개인이 갚을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수연은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한 레이드와 던전만 고집하느라 큰 돈을 모으지도 못했다.
"말, 말도 안되요. 그렇게 큰 돈을 주고 인수할 만큼 저희 팀은...."
"가치가 없죠. 맞습니다. 이수연씨 말대로 아리아 컴퍼니는 1700억이란 돈을 투자하기엔 전혀 합당하지 않은 팀입니다."
"그럼 어째서죠?"
"여기 계신 환상현 공대장님이 이수연 씨 영입을 적극 추천하셨거든요."
그의 말에 이수연의 시선이 정석영에게서 환상현에게로 넘어갔다. 환상현의 정직한 눈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모기업이 진짜로 어디에요?"
신지혜가 물었다.
미쏠로지에 대해 가장 많은 소문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모기업 관련이었다. 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는 배후가 누구인가, 능력자라면 다들 궁금해하는 정보였다.
"정말로 은둔 재벌이라도 뒤에 있어요?"
"정부입니다."
대답한 것은 환상현이었고 남아있는 일행들은 다들 놀라했다. 설마했던 정부의 직속 정공팀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저희가 거절 불가능한 강제 임무 조항을 달고 운영되는 팀이긴 하지만 그만한 이유는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망한 사람도 없구요."
"이유가 뭔가요?"
"그건 제가 설명드리죠. 현재 한국 정부는 괴수퇴치에 있어서 기업에게 모든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입니다. 물론 초기 시장 당시 정부가 한 일들 때문에 어느정도 자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석영은 유사시를 대비한 국가 직속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며 이수연 일행을 설득했다.
"미쏠로지팀의 모든 대원들은 공격대장의 남은 기한에 맞춰서 기간을 갱신합니다. 현재 2년 6개월 정도 남았군요. 이수연씨 일행이 2년 남았으니 6개월이 추가 돼야 맞겠군요."
"하지만 역시 다른 일행들이 위험에 빠지는건...."
이수연은 8레벨 능력자다. 그녀는 스스로 몸을 지킬만한 힘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녀의 친구들인 박현정은 5레벨 탐지 능력자였고 전격계 마법능력을 가진 서유림 역시 5레벨, 아리아 컴퍼니에 와서 친해진 어린 친구 신지혜는 이제 막 6레벨을 달성한 바람계열 마법 능력자였다.
난이도 높은 던전이나 레이드에 나서면 얼마든지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아까 조금 퉁명스럽게 말한건 잔챙이들을 거르기 위함이었죠. 만약 그들이 전부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수연 씨를 따르겠다고 했다면 예상과 달랐더라도 저희는 전부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 복을 찬 거지. 나도 한 때 대한민국 넘버원 소리를 듣고 다녔지만 미쏠로지보다 대우 좋은 공격대는 본 적이 없으니까."
정석영의 말을 백종현이 거들었다.
"아저씨가 왜 넘버원이에요? 한국 능력자 랭킹 1위는 우성진 아니에요?"
신지혜가 말하자 백종현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그놈한테 당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최초 9레벨 달성자 타이틀을 달고 있었을거다!"
"아 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어린친구는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건데 대한민국 최고 능력자와 같이 함께할 수 있다는건 능력자로서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종현의 말에 일행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환상현을 쳐다봤다.
"우리 공격대장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사실이니까."
환상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백종현은 씩 웃어보였다.
"미쏠로지 공격대장님께서 국내 최고 능력자시라구요?"
박현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국내 뿐이랴, 세계 최강이지."
대체 무슨 자신감들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환상현은 그들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있었다.
정석영이 제안한 최고의 대우.
최고급 장비와 상급 던전의 지속적인 확보, 그리고 고액 연봉에 보너스도 두둑하다. 심지어 그들의 공격대장은 세계 최고 레벨의 에딕손 뺨치는 능력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설령 강제 임무에 투여된다고 해도 충분히 할만 했다. 물론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박현정이 말하자 정석영과 백종현은 그렇게 나와야지 하는 표정으로 고양이 입술을 닮은 므흣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수연 일행을 데리고 그들이 돌아온 곳은 중앙 능력자 센터의 지하에 마련된 능력자용 대련실이었다. 여차하면 대피소로도 쓸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은 어지간한 충격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강도를 자랑했다.
"여러분들이 확인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이 건물에서 해결할 수 있죠. 최고의 장비! 고액 연봉을 지불할 수 있는 자금력! 그리고 최고의 능력자까지!"
그렇게 말하며 정석영은 상현을 가리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그 장비로 괜찮으시겠어요?"
상현이 차고 나온 장비는 C급의 평범한 중급 능력자용 장비였다.
"장비를 앞세워서 이수연 씨를 상대하면 말이 많을 것 같아서요."
상현이 그렇게 말하자 이수연은 할 말이 없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절반 이상이 A급 장비에요. 나중에 딴 소리 하시면 안되요. 아셨죠?"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방패와 검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딜탱 포지션의 템트리였다.
이수연을 지켜보는 여성들은 환상현이 얼마나 분발할지를 두고 열심히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절대로 이수연이 질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끌었던 공대장에 대한 절대적 자신감이었다.
"자 그럼! 시작!"
정석영의 손이 아래로 내려지는 순간 대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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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현, 정석영 : 이거 월척이야. 파닥파닥 싱싱하구만!
한 줄 요약이 가능한 55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