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관계의 재정립 =========================
26화
도건은 두미의 말에 두미가 포장마차에서 결혼 하자고 했던 날이 떠올랐다. 도건은 그 날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두미의 실수를 기회로 삼았었다. 평생, 법적으로라도 당당하게 두미 옆에 있을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도건은 그렇다면, 이것도 기회인 것일까 생각했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또 한 번 제 욕심을 채우고 싶다는 부도덕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두미가 원하는 대로 잠자리를 가진다면, 다음날 술에서 깬 두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되지 않았다. 도건은 고작 하룻밤의 추억을 얻자고 두미와의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혹여 두미가 다신 자신을 보려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최악의 결과가 없었다.
결국 도건은 두미의 말을 무시하고는 상을 치우며 말했다.
“이두미. 들어가서 자. 너 많이 취했어.”
“옮겨줘. 침대까지.”
두미가 빨리 자신을 안으라는 듯 도건을 향해 팔을 벌렸다. 도건은 묵묵히 두미를 안고,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도건은 침대 위에 두미를 내려놓고 나가려 했으나 두미가 도건의 목에 두른 팔을 풀지 않았다. 도건이 두미의 팔을 떼려고 하자 두미가 그러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도건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도건은 결국 두미와 같이 침대에 누워버렸다. 두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배부른 고양이처럼 그녀가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도건은 두미가 금세 잠들 줄 알았다. 이미 회식을 하고 온대다가 또 같이 술을 마셨으니 피곤해서 술에 취해 금방 잠들어 버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두미가 잠이 드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래서 도건은 조심스레 목에 둘러진 두미의 팔을 풀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이번엔 두미의 팔이 도건의 허리를 감아왔다. 잠꼬대인 줄 알았으나 두미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와 척추 뼈를 살짝 쓰다듬었다.
화들짝 놀란 도건은 떨리는 손으로 두미의 손을 자신의 옷 속에서 빼냈다. 두미의 손을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으려고 하자 두미의 손가락이 맞잡은 도건의 손에 깍지를 끼며 얽혀왔다.
두미가 깍지 껴진 손을 들었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살살 손가락들이 맞물린 사이를 매만졌다. 그 간지러움에 도건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이내 깍지 낀 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간 두미가 도건의 검지 손끝을 살짝 깨물었다. 두미의 치아가 맞닿은 손톱의 시작부분부터 찌르르한 감각이 몰려왔다. 반만 떠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는 두미의 나른한 눈길이 야했다. 도건은 침은 꼴깍 삼키며 급하게 손을 빼내었다.
두미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느릿하게 올려다보았다. 얼빠져 있는 도건을 보던 두미는 갑작스레 말릴 새도 없이 티셔츠를 벗어버렸다.
놀란 도건은 고개를 확 돌렸다. 도건은 두미가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평소의 두미는 성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는 것처럼 담백했는데, 하필 이런 술주정이라니… 도건을 말려 죽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도건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자. 눈을 세모꼴로 뜬 두미가 도건의 등 뒤의 티셔츠를 끓어 올리며 자신의 몸을 비볐다.
“이두미! 그…그만해.”
도건은 이불을 그러모아 두미의 앞을 가려주며 두미를 떼어냈다. 브라는 또 언제 벗은 건지 등에 닿았던 말랑한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너, 이거 성추행이야.”
성추행이라고 하니 두미가 비웃듯이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럼 허락해줘.”
“뭘?”
“네 목에 키스해도 돼?”
“안 돼.”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도건의 등을 끌어안은 두미가 안 돼라고 하지마자 도건의 목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뜨겁고 말랑한 감촉에 도건의 몸이 뻣뻣해졌다.
“등엔?”
두미의 입술이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얇은 티셔츠 한 장 사이로 느껴지는 숨결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도건의 이성이 자꾸 어딘가로 도망가려고 했다.
“안된다고….”
누구한테 안 된다고 하는 건지 도건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성에게 가지 말라고 안 된다고 외쳤지만, 자꾸만 이건 기회라고 한 쪽의 술 취한 이성이 속삭였다. 이참에 몸이라도 부비면서 살라고, 혹시 몸 맞대고 살다보면 두미가 널 좋아하게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설득해왔다.
“여긴?”
“읏.”
등에 끝없이 입을 맞추며 도건의 단단한 옆구리를 살살 더듬던 두미가 갑작스레 옆구리를 깨물었다.
“이두미. 진짜 왜 그래. 내일 이불 차면서 후회하지 말고 그만해.”
“벗어. 걸리적거려.”
도건은 결국 자신의 옷을 벗기려고 하는 두미의 두 손을 잡아 멈추게 하고는 두미를 보았다.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애써 두미의 얼굴에 고정한 도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만하고 자자. 응? 제발.”
두미가 잡힌 손을 빼려고 했으나 도건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나 싫어? 여자도 된다며.”
두미가 결혼을 망설일 때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그때는 그저 농담으로, 장난으로 했던 말이었다. 반은 진심이긴 했지만, 도건은 애써 말을 돌렸다.
“벌써 12시 넘었어. 내일 회사 가려면….”
왠지 분한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던 두미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도건은 놀라서 두미의 손을 놓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그래? 응? 이두미.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무슨 일인지 말해줘야 알지.”
“난 너 좋은데. 넌 나 싫어?”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왜 싫어해. 너 이런 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만하자.”
“시작도 안했는데 뭘 그만해!”
“그러니까 이런 건 서로의 동의하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설명하는 도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은 두미가 갑작스레 입을 맞춰왔다. 두미의 눈물이 맞댄 입술 사이로 흘러 짭조름한 맛이 났다. 놀란 도건이 눈을 크게 뜨고 있자, 입을 맞추면서도 눈을 감지 않고 있던 두미가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때었다.
“나 안 싫다며. 그러니까 그냥 하자.”
도건은 인지부조화현상이 생길 것만 같은 당혹스런 상황에 머리가 꼬여 아무 말도 못했다. 도건의 입술엔 수 없이 바라던 이의 흔적이 아직도 가득했다. 도건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두미를 보았다.
하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울고 있는 두미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이 날아갔다.
“안 싫다…으앗.”
순식간에 도건의 눈빛이 변하며 침대 위로 두미를 쓰러트렸다.
“이두미. 이번에도 네가 하자고 한 거야. 네가 시작 한 거라고.”
도건이 두미의 입술을 핥았다.
“후회 하지 마.”
============================ 작품 후기 ============================
선추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