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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매력-26화 (26/32)

00026 상실의 두려움 =========================

25화

마음이 복잡했다. 팀장님께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나는 팀장님께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듯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술에 취해 눈 앞의 모든 것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도건이에게 회식 끝이라는 문자를 보내고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숙취해소 음료를 하나 샀다.

숙취해소 음료 하나를 덜렁 들고서는 편의점 밖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가을이 되어가면서 밤의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차가워진 공기에도 술에 취해 몽롱한 정신은 도통 선명해지질 않았다.

자동차 매연에 하수구 냄새에, 주변 음식점에서 나는 온갖 음식냄새가 진동했다. 도시의 냄새였다. 이로운건 하나 없는, 그런 냄새. 코를 벌렁 거리며 거리의 냄새를 맡다가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료냄새, 온갖 동물들의 똥 냄새, 나무보일러 때는 연기에서 나는 탁한 냄새…. 사실 딱히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향에는 뒷산에만 가도 나무로 가득한 빽빽한 숲이 존재했다. 신선한 공기로 가득한 곳. 지금 내겐 그런 곳이 필요했다. 다 잊고 정자에 누워서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잠만 잘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차가 쌩쌩 달리는 편의점 앞의 도로를 멍한 눈으로 지켜보다 도건이의 차가 편의점 앞에 정차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는데도 비틀거렸는지 도건이가 물었다.

“너 또 주량초과해서 먹었지?”

“아니야.”

“얼굴 빨개.”

도건이의 말에 나는 볼에 손을 대었다. 얼굴 전체가 뜨끈했다. 아, 나 얼굴 빨가면 꼴불견인데….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빨개진 얼굴을 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들고 있던 겉옷을 얼굴에 휙 덮어 버렸다.

“졸려?”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리며 자는 척을 했다. 얼굴에 옷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열이 빠지지 않아 얼굴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집으로 가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얼굴을 덮은 옷을 살짝 내려 창문으로 밖을 보았다. 도로 위엔 차가 빽빽했다. 좀처럼 집에 도착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빨리 집에가버리고 싶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나는 창밖을 보며 습관처럼 도건이를 불렀다.

“도건아.”

“왜?”

“도건아.”

“왜?”

몇 십번을 불러도 도건이는 대답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습관처럼 내 연애사의 한 부분이 될 오늘 일을 말했다.

“나 오늘 고백 받았다.”

고개를 창문 쪽으로 하고 있어 도건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창문 위로 희미하게 날 쳐다보는 도건이가 보였다. 창문에 비치는 얼굴만으로는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

“신태완 팀장님. 저번에 파티에서 봤던 우리 회사 상사라고 했던 분.”

나는 항상 도건이한테 주절주절, 이 사람한테 고백 받았는데 어때? 이 사람 어떤 사람 같아 보여? 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호감은 있는데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 같은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고, 내 감정을 가감없이 토해내곤 해었다.

그러면 귀찮아하고 질색하면서도 도건이는 내 감정에 귀기울여 주고, 늘 내 질문에 대답해 주곤 했었다.

“그래서, 만나보게?”

“모르겠어.”

신호가 바뀌었는지 차는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나를 보던 도건이가 차를 출발시키며 다시 앞을 보는 것이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보았다. 도건이가 앞을 보며 운전하자 나는 창문 쪽으로 돌려져 있던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도건이를 보았다.

내가 바라보자 도건이가 날 한번 바라보다 다시 앞을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무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집에 술 있어?”

“없어.”

“오랜만에 같이 술 마실까?”

도건이의 미간이 좁혀지며 주름이 생겼다.

“너 지금 술 마시고 왔어.”

“다 깼어. 또 마실래. 응? 너 내일 부터 출장 간다고 했잖아. 3일 동안 못 보는데 술 마시자. 응?”

온갖 잔소리를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도건이는 결국 내 장단에 맞춰주었다. 우리는 집 옆의 편의점에서 술과 과자 몇 개, 즉석 떡볶이와 순대, 닭강정을 사들고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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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건아. 너 자위해?”

큽, 켁. 먹고 있던 닭강정이 목에 걸렸는지 도건이 기침을 하다 물을 따라 마셨다.

“너…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우리결혼한지 벌써 세 달이 다되어가는데 그동안 성욕해소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갑자기 그런 게 왜 궁금한데.”

도건이 얼굴을 찡그렸다. 상한음식을 씹은 표정이었다.

“다른 여자들도 그런 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생리하기 전에 이상하게 막 성욕이 솟더라고. 호르몬의 영향이라는 데 그 때만 되면 꼭 야한영화 찾아보고 그랬었어.”

도건이는 갑자기 얘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 연애해보려고. 신태원 팀장님이랑.”

탕-

도건이가 들고 있던 포크를 소리 나게 식탁에 내려놓았다.

“안 돼.”

“왜?”

“유부녀인데도 건드는 놈이면 정상 아니야.”

“신 팀장님 우리 계약 결혼한 거 알고 계셔. 알고 고백하신거래.”

“그걸 그 사람이 어떻게 알아?”

“처음에 내가 결혼하자고 했던 우리 회사 앞 포장마차 기억나? 우리 있던 날 팀장님도 그 포장마차에 있었대. 듣고 싶진 않았지만, 그냥 다 들려서 그렇게 어쩌다보니 알고 있었대.”

하-. 도건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비스듬이 괴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물을 한 잔 마신 도건이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와서 물었다.

“그래서, 넌 신태원이 좋아?”

“모르겠어. 근데 좋은 분이니까 사귀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너 근데 말의 흐름이 이상하잖아. 성욕 때문에 사귄다고 하는 거야?”

“왜? 안 돼? 사귀다보면 좋아지고, 그러다보면 잠자리도 가지고 그러는 거지 뭐. 한 번도 못해보고 죽을 순 없잖아.”

“이번엔 괜찮은 놈 인거 확실해?”

“걱정돼?”

“그럼 안 되냐? 네가 만났던 놈들 중에 멀쩡했던 놈이 있었냐?”

“그럼 도건아.”

나는 도건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네가 나랑 자줄래?”

잔에 술을 따르려던 도건이가 놀랐는지, 소주병을 잡은 손이 휘청거렸다. 술이 식탁에 흘렀다. 나는 멍하게 웃으며 쏟아진 술을 바라보았다.

술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원래는 술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도건이에게 청혼했을 때처럼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내 불안과 힘듦을 해소하려고 했다.

엄마의 결혼하라는 끝없는 잔소리와 매 주말마다 이어지는 선 자리에 지쳤던 나는, 게이인 도건이와 결혼해서 이 상황을 타파하자는 이상한 생각을 술을 마시고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었다.

그리고 이번엔 도건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과 나도 김호신씨 동생처럼 도건이랑 자보고 싶다는, 마음이 안 되면 몸이라도 섞어보자는 미친 충동이 술과 만나 결국 날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몸이라도 섞어보자니…. 내가 생각해도 난 최악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감사합니다♡

미친규니님 감사합니다. 고쳤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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