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과유불급 =========================
15화
??? 내 머리 위로 여러 개의 물음표가 떠다녔다. 직원분이 인사를 하고는 어리둥절한 채로 멈춰있는 나를 두고 가버렸다.
“뭐해? 앉아.”
“너 여기서 뭐해?”
“뭐하긴 미팅 있어서 왔지.”
황당한 나는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도건이와 마주앉은 나는 내가 투자회사이름도 제대로 듣지 않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청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M&B투자회사 대표 임도건입니다.”
임도건이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필요 없거든요.”
“표정이 많이 불편해보이시는데, 뭐 안 좋은 일이라도?”
뻔뻔한 낯짝을 하며 임도건이 정말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왜 이런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네가 왜 내 연구에 투자를 해! 이런 것도 엄연히 그, 무슨 불공정 거래? 그런 거야.”
“이게 무슨 불공정 거래야. 친구사이에도 서로 투자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나는 네 친구 임도건이 아니라 회사 대표로서 하나하나 검토하고, 관련 직원들의 의견과 동의도 얻어서 결정한 거야. 투자하겠다고.”
“지금 내가 하려는 연구에 투자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내 연구가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네가 투자해준다고 하니까 괜히 더 부담되잖아.”
“너 긴장하고 부담되면 오히려 뭐든 다 더 잘하잖아.”
“여태까진 어쩌다보니 그래오긴 했는데…….”
“성공할 거라고 믿어. 죽기 전엔 성공하겠지. 뭐, 죽어서 다음 생에 성공한다 해도 상관없으니까 걱정 말고 투자 받아.”
다음 생이라니…. 내 표정이 풀릴 줄을 모르자 도건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 안에 창호지로 되어있는 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 밖에 펼쳐진 풍경에 나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와!”
분명 이곳은 서울 한 복판이었는데 창문 밖에는 빽빽한 빌딩과 아스팔트 깔린 길들이 아닌 작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작고 맑은 개울에는 작은 송사리 같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꽃들이 무성한 곳에 활짝 피어진 백합의 진한향이 열린 창문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진짜 잘 해 놨다. 밥 먹으면서 기분 좋겠다.”
홀린 듯이 창문 밖을 구경하고 있자 문이 열리고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제법 덩치가 있는 도건이가 누워도 남을 것 같은 길고 큰 식탁에 음식이 차례로 놓이기 시작했다. 음식들은 하나 같이 먹음직스러웠다. 보기에도 예뻤고, 아마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과 여러 종류의 회, 생선찜, 보리굴비, 메로구이, 삼치구이, 다양한 생선요리들이 다 올라오자 육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익힌 고기 요리 여러 가지가 올라왔다. 고기 요리는 고기의 종류와 고기에 배인 양념도 전부 달라보였다. 구절판에 신선로에 탕과 국까지. 궁중요리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상차림이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그 넓던 식탁이 다 채워지고 직원들이 나가자 얼빠진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이걸 다 어떻게 먹어.”
“걱정 마. 나 많이 먹잖아.”
임도건은 꼭 인터넷 방송에서 먹방을 찍는 bj들처럼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 와서 그런 듯했다.
무슨 생선인지는 모르지만 회를 하나 집어 먹은 나는 부드러운 회의 느낌에 놀랐다. 부드럽고 맛있었다. 이것저것 하나 씩 다 맛보고 있는 데도 여전히 안 먹어본 요리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도건이도 배고팠는지 말없이 먹고 있었다. 도진이가 집어서 먹으면 왠지 모르게 맛있어보여서 나도 그를 따라 그가 먹었던 요리를 집어먹기도 했다.
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우리는 여러 종류의 후식까지 맛봤다. 후식까지 다 먹자 도건이 서류를 내밀었다.
“읽어보고 사인하고 회사에 말해. 내 사인은 해놨어.”
“진짜 지원 해준다고?”
나는 서류 맨 뒷장에 적혀있는 연구지원금액을 봤다. 공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와, 진짜 돈 많다 임도건.
“내가 무슨 연구할 건지는 알고 투자 하는 거지?”
“응. 기획서 다 읽어봤어.”
“…고마워, 허투루 안 쓸게.”
“고마우면 오늘 저녁 네가 해줘.”
“그래! 내가 해줄게 기대해.”
“네 요리 실력을 아는데 기대하라고?”
“그럼 왜 시켜!”
“요리하는 모습이 웃겨서. 칼질도 더럽게 못하는 게 너무 웃겨서.”
“허, 칼로 네 손 자를지도 모르니까 요리할 때 거실에 있어라. 저번처럼 옆에서 알짱대지마.”
“큭, 네가 자꾸 이상한 거 넣으니까. 어쩔 수 없이 지켜 본거지.”
“그래도 보지 마! 이번엔 내가 요리 하는 거 보지 마. 뒤에서 몰래 지켜보지도 마”
“알았어. 이번엔 설탕이랑 소금 제대로 구별해줘.”
임도건이 예전에 내가 해줬던 망작 부대찌개가 생각나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싱겁게 자꾸 웃었다. 저 웃음을 나는 감탄과 환호성으로 바꿔버리 겠다고 결심했다. 이번에야 말로 내 요리 실력을 뽐내서 꼭 도건이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회사에 가서 소연씨의 요리 실력을 전수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약을 성황리에 끝낸 나와 도건이는 각자의 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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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건은 두미에게 투자를 해준 것을 후회했다. 두미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벌써 일주일째 그녀는 야근을 불사하며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도건이 두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지도 일주일이나 되었단 뜻이다.
결혼하기 전에도 두미는 몇 번씩 연구에 올인을 하고는 했는데 두미가 그럴 때마다 도건은 짧게는 일주일동안 길게는 4달 동안이나 두미를 만날 수 없었다.
이 사태를 예상했어야 하는 건데…. 도건은 안일해진 자신을 탓했다. 결혼 후 부터는 매일매일 두미를 봤더니 그새 그녀를 매일 보는 것에 중독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도건은 이두미 금단증상이 오고 있었다. 두미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도건은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내가 결혼 전엔 혼자서 뭘 하면서 저녁을 보냈더라? 고민하던 도건은 문자가 왔다는 알림에 핸드폰을 봤다.
<응. 나 완전 열심히 하고 있어!>
두미의 문자였다. 삼십분 전에 오늘도 야근이냐고 보낸 문자의 답장이 이제 온 것이다. 왜 열심히 하는 걸까…. 이게 다 도건이 두미에게 직접 투자를 해준 탓이었다. 두미는 도건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녁은 먹었어?>
<대충. 걱정 마!>
이번에 온 답장은 빨랐다. 그런데 대충이라니. 도건은 다시 한 번 생각 없이 투자한 자신을 욕하며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재료를 쭉 스캔한 도건은 중국식 볶음밥을 만들고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구웠다. 두미가 좋아하는 총각김치도 담았다. 후식으로 먹을 과일로 두미가 좋아하는 사과를 깎고 딸기를 담은 도건은 도시락을 들고 두미네 회사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행복한 일주일 보내세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