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과유불급 =========================
14화
다음날 회사에 출근 한 나는 이상하게 침울한 분위기의 1팀이 있는 곳을 지나 우리 팀 내 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들어오면서 1팀 몇몇 분들과 인사를 했으나 다들 어쩐지 축 쳐져있는 것 같았다.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소연씨가 대리님! 하고 날 부르며 빨리 휴게실로 오라는 격한 몸짓을 했다.
소연씨는 휴게실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소연씨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1팀 연료연구 파투 났대요.”
“어? 이번에 투자 받아서 새로 연구 시작한다고 했던 거?”
“네.”
“진짜? 왜? 그거 박 팀장이 자기 연구계획으로 투자 따 낸 거라고 한 달 내내 그거 가지고 으스댔잖아. 김 대리님 연구 가로챈 거면서.”
“들리는 말론 투자자 쪽에서 갑자기 투자 철회한다고 했대요. 정식 계약한 게 아니라 가계약까지만 한 거여서 회사에서도 위약금 달라고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갑자기? 도대체 왜?”
“잘은 모르겠지만, 연구윤리도 모르는 연구자와 그 팀에게 투자하고 싶지 않다고 했대요.”
“아…. 근데 소연씨 이런 거 다 어떻게 알았어?
“제가 본부장님 비서랑 친하거든요. 같은 대학에서 동아리선후배로 만난사이라 가끔 같이 술 마시고 그러거든요.”
“그렇구나…. 근데 설마 그 일 때문인가?”
“무슨 일이요?”
“1년 전에 소연씨 입사하기 바로 직전에 우리 팀에서 송진으로 바닥재 재료연구 한 게 성과가 좋아서 연말에 회사에서 상을 줬었어. 원래 항상 1팀이 연구결과가 좋았는데 그 해에는 아니었던 게 분했는지 연구결과를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고 좀 부풀려서 보고를 해서 말이 많았지. 근데 뭐 어차피 그때 부장님 선에서 잘려서 다시 제대로 발표하긴 했는데….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회사사람들도 쉬쉬하는 거거든. 연구결과 사기 친다는 이야기 퍼지면 회사자체를 안 좋게 봐서 회사사람들도 좋을 것 없으니까 밖에 얘기하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아….”
“그리고 그 일 말고도 1팀이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긴 하지. 1팀 과장님도 정직성이나 정확성 없기로 회사 내에서 말이 많거든.”
“맞아요. 박 과장님도 은근히 박 팀장이랑 똑같아요. 성도 똑같아가지고. 그리고 이런 말하면 1팀 다른 분들한테 죄송하지만 박 팀장님 물 먹어서 좀 좋네요.”
히히히. 소연씨가 웃었다. 완전 동감이었다. 하지만,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긴 한데, 좀 걱정이다. 괜히 다른 팀들도 투자 못 받으면 어떡해. 외부투자 받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건 또 그렇네요. 휴. 민폐에요 완전.”
그렇게 휴게실에서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휴게실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자 휴게실을 떠났다. 자리로 돌아온 소연씨와 나는 그 사이에 출근한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팀원들이 전부 출근하고 9시 30분이 되자 아침회의를 위해 다 같이 회의실로 향했다. 아침회의가 끝나고 나는 연구실에서 오늘의 연구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쯤 연구실 컴퓨터에 메시지가 떴다.
<긴급회의! 3회의실로>
아침에 1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하던 연구를 정리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연구실을 나와 바로 3회의실로 갔더니 팀원들이 전부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그 이상한 광경에 나는 회의실에 들어서려다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대리님! 축하해요!”
명우씨가 기뻐하며 말했다. 입사한 이후로 명우씨가 저렇게 기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뭐가요? 다들 왜 그렇게 웃고 있어요?”
“이 대리가 계획했던 친환경충전재연구에 투자하겠다는 회사가 있다고 연락이 왔어.”
장 팀장님이 말했다.
“네?! 정말요?”
“응. 근데 거기 담당자가 직접 연구내용을 기획자한테 듣고 싶다고 했대. 내일 점심 같이 하면서 이야기 하자더라고.”
“와!”
“대리님 축하해요! 박 팀장 물먹은 이때에 대리님이 승승장구해서 너무 좋아요!”
소연씨가 너무나도 솔직하게 축하를 해줬다.
“고마워요. 근데 아직 투자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다들 진정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가는 입 꼬리는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요!”
팀원들이 함께 기뻐해주니 좋았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투자자와의 미팅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어떻게 내 연구를 쉽게 현실성 있고, 필요성이 있고, 투자성 있어보이게 설명할지 계속 고민했다.
이 소식을 박 팀장이 듣는다면 비꼬면서 아니꼽게 바라볼 것이 뻔했지만, 어쨌든 좋았다. 내가 계획한 연구로 외부투자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어서 어제 화가나서 울었던 것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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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침을 삼켰다가 숨을 다시 쉬었다. 의식적으로 쉬는 숨은 리듬이 맞지 않아 결국 콜록거릴 수밖에 없었다. 큼큼, 나는 몇 번짼지 세기도 지겨울 만큼 충분히 서성거렸다.
이렇게 투자자 미팅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밥 먹으면서 어떻게 회의를 하지? 이야기하느라 밥은 입에 대지도 못할 것 같았다. 또, 왜 하필 내가 설명해야 하는 거지? 생각하다가 내가 아니면 누가 나보다 더 잘 설명할까 하는 생각에 다시 잘 해보기를 마음먹은 것이 수 십 번 이었다.
기품 있어 보이는 한정식 집은 나의 긴장에 불을 더 붙이고 있었다. 이거, 식사 값은 누가 계산 하는 거지? 내가 내면 회사에서 비용처리 해주나?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답 모르는 질문들만 쏟아져 나왔다. 모르겠다. 일단 들어가자.
식당에 들어서자 직원분이 예약하셨냐고 물었다. 나는 투자회사 담당자 분 이름을 말했고, 직원분이 안내해주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그곳엔….
…
임도건이 있었다.